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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호 특별기획 (3)| 함께걸음과 나의 인연 ①

모든 것… 그리고 언제나

본문

희정에게
함께걸음과의 인연이라…. 이 글을 쓰겠다고 자청을 했지만 막상 컴퓨터 앞에 앉으니 만화책에 가끔 나오는 실타래 엉킨 머릿속 마냥 복잡하기만 하다. 대학 졸업 후 함께걸음을 통해 나의 꿈을 구체적 성취목표로 연결시킬 수 있었고, 일과 놀이의 노동해방을 이루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했건만, ‘과연 그러한가’ 라는 부분에선 나의 성찰을 요구하기 때문이지. 여하튼 참 어렵다. 그리고 ‘함께걸음? 내 삶 자체지’라고 말하기에는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동시에 들지만, 그래도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 함께걸음을 통해 처음에 희망을 품었고,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내 삶의 이유이자 방식이니까.
지난 해 12월, 함께걸음 편집부를 그만두면서도 “나 내치지 마”하면서 객원이라는 이름으로 한 발은 담그고 있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겠다. 암튼 이태곤 국장님과 너, 은영이에게 여전히 어려운 상황에서도 남아 지키고 있다는 것에 고마움은 물론이고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인데, 그래서 체 게바라의 말을 인용해 ‘모든 것…그리고 언제나’ 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 여하튼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네가 나에게 이 글을 청탁한 이유는 네가 더 잘 알겠지만, 맞아, 난 사람들에게 거의 함께걸음 홍보대사(?)를 자처하고 다닌 사람이었어. 
너는 처음 장애 가진 사람을 본 게 언제였니? 난 고등학교 2학년 때가 처음이었다. 청원학교라는 특수학교가 바로 옆에 있어서 교문지도(생활부장이었거든.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지)를 수시로 했는데, 당시 우리 보다 나이 많은 분들도 있는 듯 했지만, 친구들은 그 사람들에게 반말을 하거나 도망가거나 했었어. 근데 난 가서 말이 걸고 싶은 거야. 너도 알겠지만 정신지체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유독 사람에게 친근함을 보이는 분들도 계시쟎니, 내가 그렇게 다가가니까 자신의 간식도 주시고 뭐라 제대로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서로 웃고 장난쳤던 기억도 나. 물론 이름은 알지 못한다. ‘왜 그때는 이름을 묻지도 않았고 알 생각도 안 한 걸까?’ 싶은데, 아마 그 때 난 그저 ‘신기해서’ 그 사람들에게 다가갔던 것 같아. 내가 가졌던 장애 있는 사람에 대한 접근의 한계였지.

그러다가 고 3때 진로를 고민하면서 특수교육과를 선택했는데, 이유는 잘 모르겠어. 그냥 자꾸 막연한 관심이 가는 거야. 전기, 후기 뭐 그런 입시제도였을 때인데, 여하튼 전기를 떨어지고 집안 형편 상 재수는 못하겠고, 후기는 거의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부모님의 ‘공무원 돼라’는 말에 행정학과를 가게 되었는데, 학교에 들어서자 동아리 모집 중에서 ‘농우회:농아인을 위한 벗들의 모임’이란 것이 보이더라. 냉큼 1번으로 들어갔지. 그리고 정말 1학년 내내 가장 열심히 했고, 그래서 차기 회장으로까지 내정(?)되기도 했어. 지금 생각해도 참 열심히 살았던 때구나 싶어. 하하.
하지만 난 그 때 학생회 활동도 병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후로는 학생운동에만 매몰되었단다. 그러다 4학년 때 갑자기 졸업 후를 구체적으로 고민하게 되었어. 선배들과 친구들은 지역에서 통일운동을 계속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지만, 그때 난 생활운동에 관심이 많아서 단체 활동은 안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어느 날 나에게 한 권의 책이 날아온 거야. 그게 바로 ‘참좋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월간지, <함께걸음>’이었단다.
야, 정말이지 목차를 꼼꼼히 살펴보고는 만세를 불렀어. 당시 말지나 새날열기(현 임종석 의원이 만들었던), 통일샘 같은 것만 보다가, ‘장애문제를 이렇게 운동적 차원에서 고민하는 조직과 매체가 있구나’하는 게 얼마나 기쁘고 감격스러웠는지 아니? 난 그 때부터 빨간 펜 갖고 줄 치며 기사를 읽었고, 완전 숙독했다(물론 지금은 기억도 안 나지만^^).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이런 책이 있다’고 선전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얼마나 기뻤으면 내가 자진해서 독자기고를 했겠냐. 그게 지금 95년 12월호 독자의 소리에 역사적 사실(?)로 기록되어 있기도 한데, 가끔 맥없이 정신 못 차릴 때면 한번 씩 들춰보는 빛바랜 사진첩 같은 것이 되어버렸단다.
암튼 그 때 편집부에게 받은 도서상품권을 아깝고 소중해서 한동안 쓰지도 못하고 지갑에 갖고 다니기만 했던 기억도 난다.

그래, 나에게 함께걸음은 그렇게 소중했고, 또 그 인연이 고맙게도 질기게 이어져 지금의 나를 만든 거야. 그러니 내가 ‘마음이 사무치면 꽃이 핀다’는 말을 어찌 믿지 않을 수 있겠니? 내내 그것만 생각하고 관심의 끈을 놓지 않으니 기회도 오고 길도 만들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 물론 지금 생각하면 그렇다는 거지. 전에는 힘들기도 하고, 밀려서 간다는 생각도 많이 하고, 잘하고 있는 건지, 그야말로 꽃이 핀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뒤를 돌아보니 그랬다는 거야.
그래, 실은 내 이야기를 늘어놓는 참 이유는, 이게 비단 나만이 생각하는 <함께걸음>에 대한 생각이 아니라는 데 있다는 설명을 하고 싶어서 일거야. 이번 특집 좌담에서도 사람들이 말했지만, 함께걸음은 8-90년대 독보적이었고 진실이 담긴 진보였고, 새로운 동향과 흐름을 정확히 짚어내면서 장애운동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 또 밑바닥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도 했고. 시설과 빈곤, 정신지체 장애인에 대한 문제와 정책적 방향 제시는 함께걸음 만큼 집요하고 구체적으로 담은 잡지가 없다고 자신한다. 
사진과 삽화 또한 훌륭했어. 지금도 삽화를 해주고 있는 상윤이 형은 벌써 10년도 넘게 인연을 맺고 있는데, “돈 벌어야 한다”고 툴툴대면서도 언제나 우리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고, 지금은 자기가 먼저 ‘필(fill)받아’ 궁시렁궁시렁 대면서 스케치를 하고 있잖니. 잠깐이지만 지금의 강풀(본명 강도영)도 97년 함께걸음에서 공식 데뷔를 했잖아. 표지 사진은 정선아 언니가 객원으로 애쓰고 있지만, 전에는 사진기자가 별도로 있기도 했는데, 이정률, 김학리, 윤정은… 암튼 그들의 애정을 바탕으로 한 자발적 수고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한 길을 오기는 쉽지 않았을 거란 생각도 들어.
참, 분석기사는 또 어땠니?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집요하게 추적하고 날카롭게 해부했지. 과거에는 장애와 관련한 매체가 없었으니까, 아니 있다 해도 단순 정보 제공과 보도자료를 그대로 싣는 수준이었으니까, 운동적 시각으로 장애문제에 접근했던 함께걸음에 고발 기사 한번 났다하면 벌벌 떠는 단체들도 있었다는데, 여하튼 집단적으로 쳐들어온 적도 있다지, 아마?
그 밖에도 독립생활운동, 진보적 장애운동, 중중장애인 운동, 당사자운동 등 장애운동에 대한 담론을 형성하고 북한의 장애우 실태에 대한 접근을 시도하고, 해외의 이슈와 동향을 점검하는 역할도 우린 해온 것 같아. 요즘은 ‘다른 장애 매체들과 차별성을 갖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현실적 고민을 안고 있지만 그건 다시 풀어헤치고 깊이 있게 점검하면 되지 않을까?
그래, 말이 좀 길어지는 것 같다. 사실 200호를 기점으로 이래저래 다시 기지개를 펴고 바닥을 다지면서 가야하는 고민들이 산적해 있을 텐데 말이다.
아, 내가 존경하는 한 고등학교 선생님이 하신 말씀인데, ‘결국 모든 것이 당신 자신이 느낄 연민과 사랑에 있다고, 마음 깊은 곳에서 샘솟는 연민과 사랑의 기운에 집중하라고, 그러면 당신 한사람으로도 이 세상을 넉넉히 떠받칠 수 있다고’ 했던 말이 새삼 기억난다. 독자를 믿고 우리 자신을 믿으면 길은 다시 이어질 것 같아. 결국엔 ‘사람’이지.
그래, 오늘은 하늘이 참 맑다. 하지만 너와 은영이는 지금도 기획사 좁은 사무실에서 원고교정을 보느라 정신없을 걸 생각하니 미안하기만 하다. 특히 마감을 어긴 내 원고만 기다리고 있을 걸 생각하니 더더욱 그렇다.
여하튼 건강 잘 챙기고, 자주 보자.
그리고 200호, 기쁨으로 맞이하고, 다시 뒤돌아보며 새롭게 가자.
                                       
준민이가

글 홍여준민 (전 함께걸음 기자. 현 객원기자.)
더 높이 뛰어오르기 위해 잠시 웅크리고 있는 중이다.

 

작성자홍여준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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