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장애우 교류,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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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광복60주년이자 분단60주년을 맞는 해이다.
동양에서 60이라는 숫자는 한 시대를 끝맺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다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 조국은 60갑자를 지나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도록 여전히 분단의 상처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지금이 그 어느 때 보다 남북간 평화와 통일의 염원이 간절해지는 시점일 것이다.
그래서인가?
올해 평양에서 치러진 6.15공동선언 5주년 기념행사는 물론이었거니와 서울에서 치러질 8.15민족공동행사를 앞두고 행사 관련 단체들은 흥분과 긴장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장애계는 이러한 행사를 앞두고 아쉬움만 삼키고 있다.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이라는 역사적 사건 이후 노동, 농민, 여성, 청년, 문예 등 각계에서 남북간 교류협력이 급진전되고 이산가족상봉도 활발히 이루어지는 동안에도, 장애계는 남북간 교류의 물꼬조차 트지 못하고 있기 때문.
이런 상황에서 남측 장애계에 남북한 장애우 교류의 물꼬를 트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고, 북한 역시 최근 몇 년 동안 장애우 문제와 관련해 움직임이 달라지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리고 있다. 조만간 장애계도 남북교류가 가능해질 것인가?
남북한 장애우 교류협력의 움직임이 어디까지 와 있고,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함께걸음이 조망해보았다.
북한이 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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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10월유엔에스캅방콕워크숍에참석한북한 정부대표들의모습(오른쪽2명)<출처:에이블뉴스> |
최근 장애우 문제와 관련해 북한의 움직임이 달라지고 있다.
그 첫 번째 움직임은 98년 7월 북한의 공식기구로서 장애우 관련 정책제안, 실태조사, 국제교류 등의 역할을 담당할 ‘조선불구자협회(회장 북한 보건성 최창식 부상)’를 설립한 것.
그 직전까지도 북한이 장애우를 평양 밖으로 이주시키고 장애우의 존재 자체를 부정해왔다는 사실과 비교할 때, 북한에 장애우가 존재한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조선불구자지원협회’의 설립은 매우 이례적이고 획기적인 변화였다.
북한은 이 협회의 설립을 필두로 급격한 변화 양상을 보였다. 협회 설립과 동시에 첫 사업으로 99년에 시행한 장애우 표본실태조사는 북한 역사상 최초의 장애우 실태조사였다.
그리고 곧 이 협회는 국제회의 등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000년과 2001년 각각 태국과 베트남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지역 장애인단체회의에 참석해 참가국 대표들과 활동경험을 나눴을 뿐만 아니라, 2001년부터는 장애우에 관한 영문홍보지 ‘협회소식’을 펴내 북한 내에 상주하는 국제기구와 해외단체에 배포하는 등 외국 장애우단체와 교류의 폭을 넓혀 갔다.
그런 노력의 결과인지 2001년부터는 국제장애인협회(HI),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와 손잡고 북한 내에서 보장구를 제작·배포하는 등의 장애우 재활사업을 시행해, 실질적인 장애우 지원활동의 토대를 마련하기도 했다.
또, 2002년에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이하 조총련) 장애우동포와 최초의 교류모임을 가졌으며, 중국에 방문해 중국의 장애우 재활시설을 돌아보는 등 주변 국가와의 교류를 맺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3년 6월에는 마침내 북한 ‘장애자보호법’을 제정하고 같은 해 11월 중국 베이징에서 진행된 국제장애인권리협약 세미나에 참여해 영문화 된 북한 ‘장애자보호법’을 각국에 전달하기도 했다. 북한이 일반적으로는 법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장애자보호법’을 영문화하여 외국에 전달했다는 점 역시 예사 일이 아니다.
게다가 당시 북측 대표로 참여했던 ‘조선장애자지원협회(장애자보호법 제정을 기점으로 조선불구자지원협회에서 명칭을 바꿈)’ 김문철 서기가 남측 참가자들에게 “현재 남북교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데, 장애자 분야만 뒤쳐지지 않으려면 장애자 쪽도 빨리 교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 결국 북한이 외국뿐만 아니라 남한의 장애우단체들과도 협력관계를 구축할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말인데, 7년 만에 일어난 변화치고 매우 급격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은 이미 민간교류를 진행하고 있는 측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1990년대 유학 당시 UN 북한대표부에 북한장애우 실태자료를 요청했다가 “북한은 의술이 발달되어 있어 장애우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던 세계밀알연합회 이재서 회장(총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은 이러한 급격한 변화를 직접 목격한 대표적인 사람 중 한명이다.
90년대 유학 당시 장애우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던 북한 정부가 지난 2003년 11월 방북 때는 장애우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조선장애자지원협회가 운영되고 있는 점을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는 등 변화된 모습을 보였다고.
북한 장애우 사역 협의를 위해 지난 5월초 북한을 방문한 조이장애선교센터 김홍덕 대표도 마찬가지 경험을 했다. 김 대표는 지난 6월 4일자 뉴스엔조이를 통해, 방문 당시 북측 대표가 “우리 공화국에도 장애우가 있다. 장애우가 있다는 건 세계적인 현실이므로 북한에 장애우가 있다는 걸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며 “장애우에 대한 북한의 인식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고 전했다.
북한, 변화의 이유
그렇다면 이러한 북한의 변화는 무엇 때문일까?
북한 정부가 이렇다할 공식적인 입장을 밝힌 바가 없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 이유를 두고 남한 각계의 의견은 분분하다.
우선 통일부 한 관계자는 두 가지 해석을 내놓았다. 우선, 북한이 인권문제와 관련해 국제적인 비난이 쏟아지자 이에 대한 방어책으로 이러한 변화 움직임을 보였을 가능성이다. 특히 ‘장애자보호법’ 제정과 관련해 이러한 견해를 보였다.
이 통일부 관계자는 “북한이 지난 2004년 8월 대중용으로 발간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법전’을 통해 북한 ‘장애자보호법(2003년 6월 18일 제정)’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고 밝히면서도 이에 대해 “일반적으로 법을 공개(공표해서 운영)하지 않던 북한이 갑자기 인권적 측면이 포괄적으로 들어간 법들을 담아 대중용으로 법전을 발간, 공개한 것은 이례적인 행동”임을 지적하면서 “최근 3년간 미국 등에서 북한 인권에 대한 공격이 극심하게 가해지자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나온 대외선전용일 가능성이 높다”고 의견을 밝혔다. 결국 실제 이 법이 북한 내에서 시행되고 있는지, 이러한 변화가 북한 내부에서도 감지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셈이다.
통일부가 내놓은 또 다른 해석은 북한의 이러한 변화가 국제단체로부터 지원을 받기 위한 움직임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 북한이 북한 내의 정보를 외부에 공개했던 경우들이 대부분 지원을 위한 경우였다는 데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동일한 지적이 장애계 일각에서도 나오고 있다.
장애계 한 활동가는 “북한이 2003년 6월에 제정된 장애자보호법을 같은해 11월 영문화 작업까지 마치고 장애인권리협약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베이징 회의에 가져와 배포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근거로 “조선장애자지원협회와 장애자보호법 모두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기 위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즉, 조선장애자지원협회는 국제사회 교류의 창구로서 만들어지고 이러한 활동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장애자보호법을 만든 게 아니냐는 말이다. 이 활동가는 또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북한이 ‘조선장애자지원협회’를 설립하자마자 장애우실태조사를 벌이고 북한 내 국제기구나 해외단체들을 상대로 영문홍보지를 발간했다는 것과 DPI, RI, HI 등의 가입을 동시에 추진하면서 국제사회무대로 나오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즉 이러한 국제단체들과 관계를 맺어두고 전략적으로 선택해가면서 교류하기 위한 일련의 밑작업이라는 얘기였다.
북한과 교류를 맺어온 한 단체의 활동가도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95년부터 국제사회를 향해 공식적인 지원을 요청했던 북한이 한동안 긴급구호계획에 따라 지원을 받으면서 분배의 투명성과 주민 접촉의 문제로 끊임없는 마찰이 있었다”면서 “아마도 국제단체들이 지원을 하면서 구체적인 실태와 자료를 요구하자 이들을 상대할 창구로 조선장애자지원협회를 만든 게 아니겠냐”는 견해를 제시했다.
어쨌든 이러한 평가들은 북한 변화의 움직임이 내부보다는 외부적인 환경에서 비롯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의 움직임 속에서 북한 내의 장애우는 지금 어떤 상황에 있는 것일까?
북한의 장애우, 어떤 상황인가?
▲평양시창광거리에서한장애인이삼륜자전거를타고손으로돌리며지나가는모습
북한이 장애우의 존재를 인정하고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북한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 이외의 장애우 실태에 대해서는 밖으로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이로 인해 북한과 교류를 맺고 있는 측에서도 북한의 장애우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남북한 장애우의 교류협력 뿐만 아니라 북한 장애우의 지원을 위해서도 정확한 정보가 필수적이지만, 현재로서는 여러 통로를 통해 입수가 가능한 정보들을 한데 모으고, 민간 교류를 통해 북측 대표자를 만날 때마다 확인해가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함께걸음은 이미 2003년 8월호에서 재일 조총련이 발간하는 월간지 「조국」에 보도된 ‘조선불구자지원협회’ 리성심 서기와의 인터뷰(2002년 5월)를 인용해, 북한 장애우 실태를 소개한 바 있다. 그 이후에 몇몇 언론과 연구를 통해 추가적으로 알려진 사실들이 있으나 ‘장애자보호법’ 제정(2003년 6월 18일)에 따른 몇가지 변화를 제외하고는 생활상의 큰 변화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장애자보호법에 대해서도 고려대학교 북한학연구소 이철수 연구교수는 “이 법의 제정으로 장애우복지에 대한 전기를 마련하기는 했으나, 이를 집행하기 위한 인력과 시설, 재정 등이 충분하지 않다는 현실을 감안할 때 실제에서 이를 집행한다기보다는 향후 이를 추진할 것이라는 기본적 입장을 선언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해, 북한 장애우의 실생활에는 별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남한의 장애우단체, 북측과 교류 시도
이렇게 북한에서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는 동안에 남한에서는 어떠한 움직임이 있었을까?일반적으로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남한의 장애우단체들도 북측과 일정한 교류를 시도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진전이 있었던 장애우단체는 한국재활협회.
재활협회 조성민 부장은 “본격적으로 진행된 것은 아니었지만, 2001년 베트남에서 아시아태평양지역 장애인단체회의가 열렸을 때 이미 북측 대표단을 만나 남북교류협력을 어떻게 끌어갈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고 밝혔다.
조 부장의 말에 따르면 재활협회에서 본격적으로 북측과 논의하기 시작한 것은 2003년 7월 제 3국인 HI 중국지부를 통해 북한이 보낸 공문을 전달받으면서부터다. 이 공문을 통해 북한은 최상위 단계로 회복치료센터(우리나라의 재활센터를 말함) 건립을, 그리고 그 이전단계로 기술이전을, 그보다 더 아래 단계로 보장구와 특장차 지원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휠체어는 독일 등에서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에 남측에는 휠체어보다는 북한에서는 도로사정에 더 적합한 삼륜차를 더 요구하고 있었고 특히 국빈용으로 사용할만한 특장차 지원을 원하고 있었다고 조 부장은 설명했다.
이에 대한 직접적인 논의는 같은 해 11월 말에 열린 싱가포르에서 아태지역장애포럼(APDF)에 참여했을 때 진행되었다. 이 자리에서 북한 조선장애자지원협회 김영철 서기장과 한국재활협회 조일묵 대표가 만나 북측의 요구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듣고, 또 어느 정도까지 지원을 하면 조선민화협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교류를 하게 되는지를 확답을 받는 단계까지 진행된 것이다.
실제로 조선장애자지원협회 김영철 서기장은 북한 홍보지 ‘금수강산’ 2004년 1월호에서 ‘회복치료봉사센터’ 설립계획을 수립, 이를 추진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 소개된 내용에 따르면, 이 센터에는 뇌출혈 등 노인성 질병 및 선천·후천성 질병에 의한 장애 등의 회복시설과 정신박약, 농아시설, 맹인 직업교육시설, 교정기구 제작소 등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되어 있었다.
그러나 재활협회 측이 북한의 요구를 따져보니 굉장한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고, 또 이러한 지원이 한두번의 이벤트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인 교류가 되기 위해서는 재활협회만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이러한 이유로, 실제 재활협회 내부적으로는 여기에 소요되는 기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서까지 마련한 상태에서, 이것이 1년 사업으로는 충분히 가능하지만 그 이후에 지속적으로 낮은 단계부터 높은 단계까지 수준을 높이려면 굉장한 예산 소요와 위험부담이 있다는 전략적 판단을 내리게 됐다고 조 부장은 설명했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이하 한시련) 역시 북한과의 교류를 시도하고 있는 단체로, 지난 2003년부터 북한지원에 관한 논의를 시작해 올해 구체적인 지원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시련 최동익 사무총장은 “민화협을 통해 이번 6.15행사에 남북 장애우 교류를 진행했으나 실패했다”며 “이번 8.15행사에 북측이 참여할 때 일부 장애우를 포함하는 문제를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최 사무총장의 말에 따르면, 한시련은 그밖에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를 통해 북한에 시각장애우센터를 건립하겠다고 제안한 상태란다. 아직 이에 대한 북측의 답변을 받지는 못했다.
한국장애인연맹(DPI) 역시 북측과 교류가 있었다고 밝혔다. 북측은 현재 국제DPI에 가입할 예정인데, 한국이 현재 의장을 맡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북측과의 긴밀한 관계가 형성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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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적십자위원회가북한송림에설치한의수족장착센터 |
장애계, 분단의 상처를 넘어 남북교류의 물꼬를...
이렇게 지난 몇 년간의 상황 변화를 살펴볼 때, 예전에 비해 상황이 남북간 장애우 교류를 추진하기 쉬운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앞서 말했듯, 북측에 이미 남측 장애계와 교류할 수 있는 창구로 ‘조선장애자지원협회’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이 협회가 남측 장애우단체들과의 교류 의지를 밝힌 바 있기 때문에 남북간 장애우 교류를 위한 배경작업은 이미 되어있는 셈이다. 이제 남은 것은 ‘어떻게’이다. 그러나 이것이 녹록치 않은 작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그동안 북한과의 교류를 진행해 온 관계자들은 사실상 북한과의 교류를 맺고 이를 유지해 나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 중 한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북한과의 교류라는 것 자체가 일단 무조건적인 지원을 전제할 때만 가능한 일”이라며 “몇 번에 걸쳐 교류를 맺다가도 이쪽에서 무엇을 요구하거나 말 한마디만 언론에 잘못 나가면 그날로 교류를 끊어버리기 때문에 북한과의 교류는 언제나 살얼음을 걷는 기분”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그는 또 남북관계가 냉각되면 곧바로 민간교류가 중단될 만큼 민간교류는 남북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국제정세의 영향을 심하게 받고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안정적 구조를 갖기 대단히 어렵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렇게 북한과의 교류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남북간 장애우교류를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 남한 장애우단체들의 입장이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김정열 소장은 “북한을 잘 알기 위해서는 전해 듣는 것보다 직접 듣는 게 쉽고 실질적인데, 그렇게 하는 게 지금은 어렵다. 우선 만나는 게 교류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면서 “남측의 단일창구 마련 등 일정한 준비가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또,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김동호 사무총장은 “과거와 달리 북한이 매우 적극적으로 정책적인 접근을 하고 있고 이를 국제적 장 속에 합류해서 풀어갈 것으로 보인다”며 “접촉과 지원이 남북 장애우 교류의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사무총장은 이에 덧붙여, “북한의 장애우와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장애우당사자 단체들이 상당부분 전면에서 역할을 해야 한다”며 “특히 지체, 시각, 농이라든가 하는 유형별로 욕구나 요구,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장애우 당사자 단체들이 그들과 마음을 열고 접촉한다면 북에서도 쉽게 호응할 것”이라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한편 북한과의 교류를 실제적으로 시도했던 재활협회는 “우리나라 NGO들이 개별적으로 북한과 접촉하고 있는데, 북한조선장애자지원협회는 남측의 단일창구를 요구하고 있다”며 “따라서 국제사회에서의 단일창구, 남북간 단일창구 문제가 전략적으로 풀어야할 문제”라고 말했다. 그리고 가장 앞서 시도했던 단체답게 “현재 남측 장애우 단체가 북한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확보하지 못하고 예산이나 노하우도 축적되지 않은 상태라면 한국에서 십수년간 북한과 관계를 쌓아왔던 비정부기구(NGO)와 연합하는 것이 예산과 창구 측면에서 안정적이다. 그러나 장애우단체가 북측과 직접 물꼬를 트고 교류할 때에 비해 장애우의 문제가 남북사회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연대모색을 위해 타진을 해보았으나 그러한 위험부담이 있었다”고 구체적인 연대방안까지 고민하고 있었다.
문제는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이문희 실장의 말처럼 “어떻게 연대를 할 것인가”에 놓여 있다.
과연 남북 장애우 교류를 기존 6.15라는 틀 안에서 하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독자적인 교류를 맺는 것이 좋은지, 남측 창구는 단일화하는 것이 좋은지 아닌지, 창구를 단일화 한다면 또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등을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글 조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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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장애우복지서비스 북한의 장애우복지서비스는 비록 극소수를 대상으로 한 것이긴 하지만, 북한정권 수립 초기부터 교육, 의료, 직업, 생활보호, 주택, 시설수용보호 및 보장 등 다양하게 이루어져왔다. 또, 정권초기 전상자의 경우에는 재활서비스를 중심으로 한 시설보호서비스가 무상으로 지급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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