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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정립회관 투쟁의 의미

시설민주화 투쟁, 목표는 해방공동체 건설이다

본문

이완수 관장의 이사장 재 취임, 투쟁 대오를 무너뜨리려는 얄팍한 술수

시설 민주화 토론회에서 정립회관 투쟁에 결합했던 한 장애우 활동가의 절망적인 외침이 기억이 난다. “투쟁을 통해서 문제가 되었던 이완수 관장 퇴진을 끌어냈는데, 그가 어떻게 거꾸로 이사장이 될 수 있습니까. 정립회관 투쟁은 실패한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실제로 연령규정을 바꾸는 등 규정을 바꾸면서 편법을 통해 관장으로 선임되었던 사람이 바로 그것이 문제가 되어 물러난 후  버젓이 이사장이 되는 것은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로써 현재의 정립회관 운영진은 시설 운영에 있어서의 비민주적인 관행을 해결할 의지가 없음을 거꾸로 반증하였다. 아무리 이사회가 이사장 및 관장을 선임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고, 법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법 이전에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러한 비상식적인 행태를 보고 관장 퇴진을 요구했던 시설 사용자, 장애우 활동가, 노조원 들이 당혹해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투쟁의 성과가 이와 같이 어이 없이 유실되는 것을 보면서 힘이 빠지고 투쟁의 의지가 흔들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역사적 투쟁도 매번의 투쟁이 바로 바로 궁극적인 승리로 연결된 적이 있었던가. 지배자들은 투쟁에 의해 요구를 들을 수밖에 없게 된다고 하여도 항시 투쟁의 결과가 아닌 것처럼 은폐하고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는가.

투쟁과 투쟁의 성과는 서로 무관한 것처럼 주어지지 않았는가. 문제의 해결이 투쟁을 통해서는 불가능한 것처럼 만들고 좌절감을 심어주어 대오를 흩트리지 않았는가.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이번 이완수 관장의 이사장 취임은 문제를 제기하는 대오가 좌절하게 함으로써 더 이상의 투쟁을 못하게 하려는 얄팍한 술책으로 볼 수 있다.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쪽이 이긴다

에바다의 7년여 투쟁은 투쟁의 승리가 있을 때까지 강고한 대오를 형성해야만이 이길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주었다. 에바다 투쟁 중에 힘들었던 것 가운데 하나가 해봐야 안되는 문제를 가지고 왜들 쓸데없는 힘을 쓰느냐는 태도였다. 심지어는 마을 주민들에게 “대통령, 국회의원까지 나서서 해도 안되는데, 당신들이 무엇하려 그러느냐. 우리도 저 사람들 나쁜 것 알지만 해도 안되는 것을 알기 때문에 공연히 시끄러운 것이 싫은 것이다”는 말까지 들었다.

투쟁 대오 속에서 우리가 승리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라는 반문에 그 주민은 “그렇다면 술 한잔 사지”라고 했었다. 문제를 알고 있고, 해결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지만 해봐야 안된다는 패배주의적 관점이 오히려 널리 퍼져 있는 것이다. 도처에 만연해 있는 이러한 비관주의에도 불구하고 에바다 투쟁 대오는 이 싸움이 10년이 가든 20년이 가든 투쟁한다는 각오로 임해서 끝을 볼 수 있었다.

어쩌면 투쟁 승리의 전망이 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현실 모순에 대한 문제 제기가 그 자체로서 우리의 추동력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생각해 본다. 우리가 접하는 일상 생활 속의 저 사소한 일에까지 뿌리를 박고 있는 모순들에 대한 일상적인 투쟁, 투쟁의 생활화가 그저 우리의 삶이 되어야할 것이라는 점이다. 현실 모순의 재생산은 자기 부정의 계기를 항상 내포하고 있으며,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산이 없듯이, 또 때가 되면 아기가 나오듯이 끝이 없는 투쟁이라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장기전, 단기전 없이 또는 진지전, 기동전 할 것 없이 오로지 끝없는 투쟁, 밀고 당기기가 관건이 될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지루하고 마치 삶의 일부인 양 진행되는 일상적인 투쟁을 강조하는 것이 결정적인 순간의 비일상적 투쟁, 마치 아기 낳는 산모의 산고를 마지막 순간에 수술칼로 잘라 출산을 도와주듯이 물리력이 필요한 경우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에바다의 경우에도 7년에 이르는 투쟁의 마감은 두차례에 거친 물리적 진입이었다.

 

시혜와 온정을 넘은 민중복지 필요해

또한 유념해야할 점이 투쟁이 성공하여 투쟁주체가 운영주체가 된다고 바로 모든 모순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왕왕 과거에 억압자와 투쟁하여 새로운 운영의 주체가 된 세력이 과거의 억압자들이 하던 행태를 반복하는 경우를 본다. 이를 싸우면서 배운다는 식으로 ‘적대자와의 동일시’로 묘사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되면 모순의 지양이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고 단지 다른 형태로 재생산되는 결과를 낳는다.

듣기로는 정립회관의 현 운영진은 ‘당사자주의’에 근거하여 과거의 비민주적인 운영진을 내몰고 들어선 것으로 알고 있는 바, 협소하게 이해되어진 당사자주의는 한계를 보이고 새로이 등장한 운영자들이 과거의 관행을 반복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시설 민주화투쟁을 단순한 시설 운영의 비민주성 및 시설 비리 척결을 넘어서서, 전 사회적인 차원에서 지지를 얻어 내면서 운영자와 시설사용자를 포함한 수혜자, 지역 주민 등 모든 참여자가 실질적 주체로  궁극적인 해방공동체를 건설하는 수준에서 바라보는 관점이 제기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기획이 성공하여 자본의 시혜주의와 국가의 온정주의적 복지를 넘어서 민중의 복지가 가능해 질 때 지금의 모순은 지양될 수 있을 것이다.

작성자남구현 (한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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