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호 특별기획 (3)| 함께걸음과 나의 인연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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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즈음, 그 시절에는 그랬다.
오로지 ‘함께걸음’을 만드는 일밖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내게 그런 시절이 있었다. 원고 쓰느라 밤 새우고, 손으로 일일이 편집 작업하느라 밤새우기를 밥 먹듯이 한 나날이었다.
난 지금도 10여년 전 그 때의 ‘함께걸음’을 펼쳐보면 눈물이 핑 돌곤 한다. 참 이상하다. 이제는 빛바랜 꺼칠한 종이에 불과한데 그 위에 펼쳐져 있는 문장과 타이포, 행간, 자간이 마구 살아 움직이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히곤 한다. 아무리 살펴봐도 어설프기 짝이 없는 레이아웃에, 엉성하기 이를 데 없는 편집디자인인데도 말이다. 그건 바로 구석구석 숨어있는 나의 손길과 숨결 때문이다.
원고 쓰느라 문장과 씨름하고, 편집 디자인하느라 문자(타이포)와 죽어라 씨름했다. 인화지를 잘라서 내 손으로 직접 붙이고 떼고를 반복하며 만들어내는 대지작업(그 시절의 편집디자인 방식)은 내 숨결과 혼을 불어넣는 작업이었다. 제목서체는 어떤 것이 적당한지, 몇 포인트로 해야 할지, 중간제목과 발문은 어떻게 들어가는 것이 좋을지, 사진처리는 어떤 식으로 하는 것이 적절할지, 나아가 어떤 기교를 부려야 이 잡지가 멋있어 보일지… ‘디자인’이라는 개념을 몰랐던 그때 괜찮은 잡지를 옆에 몇 권씩 놓고 보면서 따라하고, 일일이 자로 재보고, 또 확인하고를 반복했다. 그러면서 기본 틀을 익혔다. 그때의 노고 때문일까, 지금은 어떤 글자나 문장을 보면 한 눈에 포인트, 자간, 행간의 정도를 알 수 있다.
내 손으로 한 권의 잡지가 완성된다는 사실은 ‘함께걸음’을 대강 만들 수 없게 했고, 조금만 더 고민하면 더 멋진 모양새(디자인)로 탈바꿈한다는 사실은 내게 더욱 더 긴장과 흥분을 유발했다. 나의 생각과 고민, 이상과 가치, 안목과 관점… 그렇게 씨름했던 순간순간이 거기에 담겨있었다. 그것은 사라지지 않고 오래도록 아니 영원히 그 속에 담겨 있는 생동감이 되고, 생명력이 되는 것임을 깨달았다. 고백하건데, 그 시절 함께걸음의 편집 작업은 내게 ‘디자인’의 세계를 맛보고, 알게 하고, 끝내는 그 길로 들어서게 한 시발점이 되었다.
한 권의 잡지, 한 권의 책이 탄생하는 것은 험난한 여정이다. 좋은 내용이 담겨야 하는 것은 가장 근본요소, 두말 할 나위가 없다. 그 근본이 되는 내용을 아주 적절하고 아름답고, 편하게 꾸미는 형식이 바로 디자인이다. 내용과 형식은 따로가 아니라 하나다. 훌륭한 내용이 훌륭한 형식 속에 있을 때 눈에 띄고, 보고 싶고, 읽고 싶다. 나아가 아름답고 편안하고 행복하다.
요즘같이 디자인이 트렌드의 핵심인 시대에, 그리고 멋진 디자인으로 포장된 인쇄물이 넘쳐나는 시대에 월간 ‘함께걸음’의 정체성을 어디에 둘 것인가는 지금 다시 고민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월간 함께걸음’의 자부심은 단연 그곳에 몸담은 구성원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정확하고 올바른 글을 쓰기 위해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도 더욱 치열했으면 좋겠다. 맞춤법, 띄워쓰기, 문장을 손보는 교정?교열작업을 우습게 여기거나 제쳐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장애우들에게 좋은 정보를 알려주기 위해 발품을 팔고, 더욱 다양하고 재미있는 기사를 쓰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편집디자인을 맡아서 하는 업체가 있겠지만 고스란히 맡기지 말고 디자인에 대한 안목을 키워 그 업체와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잡지를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험난한 이 여정을 후배들이 포기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후배들에게도 ‘함께걸음’이 생동감으로 넘쳐나는 책으로 남게 되기를 감히 기원해본다.
나는 지금 감히 제안한다. ‘함께걸음’을 추억 속에서 끄집어내어내야겠다. 언제까지나 내 청춘의 보물함 같은 추억의 산물로 두고 싶지 않다. 잡지는 변화해야 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욱 새로와져야 하는 절대 절명의 과제 앞에 서야 한다. 그래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읽어야 하고, 소수일지라도 자꾸자꾸 펼쳐보고 싶은 책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퇴보하고 결국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오랫동안 답습했던 내용과 형식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변화의 흐름 앞에 서 보자. 자, 어떻게 탈바꿈할 것인가? ‘함께걸음이라는 독창적인 브랜드’로 어떻게 리뉴얼할 것인가?
글 고은경
1991~1994년까지 ‘함께걸음’ 기자로 근무
그래픽디자인 회사 ‘디자인 명작’ 설립, 8년째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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