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과 외면이 부른 어느 장애우의 죽음 > 기획 연재


기획 연재

고립과 외면이 부른 어느 장애우의 죽음

본문

▲ 주 모 씨의 장례 모습(사진제공 한겨례)
지난 2월 18일 밤 10시 7분경,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있는 강서구청 현관 셔터에 한 시민이 목을 매 숨지는 사건이 있었다. 숨진 이는 강서구 동촌동에 사는 주 모씨(지체장애 52,1급)였다.
주 씨의 죽음에 대해 경찰은 타살의 흔적이 없고 유서가 발견된 점으로 미루어 자살로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삼일 뒤 주 씨는 한 줌의 재가 되었다.
장애우가 관공서에서 숨을 거둔 이 사건은 ‘장애인, 구청장 면담 거부당하자 항의 자살’ (프레시안/2/19), ‘살길 마련 애절한 호소, 차가운 시선’(한겨례/2/20), ‘수차례 생계비 인상요구 있었다’(에이블뉴스/2/19) 등으로 일제히 보도됐다.
이러한 보도에 강서구청 측은 상당히 당혹스러워하며 사건 이틀 뒤 해명자료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도대체 어떤 상황이었기에 그는 관공서에서 목숨을 버렸을까.
도대체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이렇게 절박한 외침을 지르도록 했을까.
주 씨의 죽음에 대한 의혹이 점점 증폭되고 있다. 함께걸음이 이를 심층 취재했다.

당일 두 번의 자살시도, 그리고 그의 죽음
사건 경위를 설명하기 위해 지난 2월 18일, 주 씨가 사망할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주 모 씨가 자살한 강서구청 현관셔터

18일 저녁 7시경 강서구청 청원경찰인 장 모씨는 강서구청 현관 셔터에서 빨랫줄로 목을 걸며 자살 시도를 하려는 주 모씨를 발견했다. 이에 장 씨는 강서 경찰서에 신고, 1차 귀가조치를 한다. 장 씨에 따르면 평소에도 구청에서 자살하겠다고 소란을 피우던 사람이라, 당시에도 저러다 말겠지 싶어서 내일 날이 밝으면 다시 오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 시간 뒤 장 씨는 현관에서 또다시 주 모씨를 발견, 하는 수 없이 다시 경찰을 불러 귀가 시켰다. 장 씨에 따르면 당시 출동한 경찰이 주 씨가 목을 매려고 했던 빨랫줄을  빼앗지 못했을 정도로 많이 흥분한 상태였다고 한다. 어쨌든 주 모씨는 두 번째로 다시 쫓겨났다.
그리고 밤 10시 10분, 장 씨는 현관 셔터에 빨랫줄을 목에 감고 숨져 있는 주 모씨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그 뒤 출동한 119는 이미 숨을 거둔 상태라고 판정했다.
이 사건은 이튿날 언론에 보도되면서 강서구청에는 시민들의 비난이 잇따랐다.
더욱이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였던 주 모씨를 죽음으로 이르게 한 원인이 구청장과의 면담과 생계비 인상요구 좌절 등으로 보도되면서 강서구청에는 네티즌들의 항의가 쏟아지고 있다. 강서구청의 홈페이지에는 “가난한 동네 발전시키러 왔으면 가난한 사람들의 말을 들어라”, “누구를 위한 구청장인가”, “사람 죽이는 강서구청”, “서민들의 소리에 귀 막는 한심한 구청” 등 분노한 네티즌들의 글들이 올라와 있다.
이에 강서구청은 20일, “고인의 생전 행적을 밝히려는 것”이라며 해명자료를 배포하기에 이르렀다.
강서구청의 해명자료에 따르면  1995년 국민기초생활 수급자가 된 주 모씨에 대해 생계비, 장애수당, 등 법적으로 가능한 모든 지원을 하였으며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별도로 상당금액 지원을 해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지난 1년간 거의 매일 구청에 상주했으며 당시 구청장과 3회의 공식면담과 수시 대면이 있었으나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수차례의 자해행위와 자살협박, 구청 앞 도로 점거 등 상당한 소란을 피워왔다고 밝히고 있다.
강서구청 측도 이번 사건에 대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행여나 비난의 화살이 구청 탓으로 쏠릴까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강서구청장, 비리가 있다?
하지만 그의 죽음에 대한 여러 의혹들이 점점 불거지고 있는 상황이다.
먼저 주 씨가 남긴 유서에 관해서다.
사건 다음날인 19일 새벽 5시 42분, YTN은 이 사건과 관련해 “강서구청장에게 비리가 있다는 내용이 적힌 주 씨의 유서가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내보냈다. 그리고 확인 결과 이 사건을 취재한 YTN 기자는 유서의 내용에 대한 것은 당시 현장에 출동한 경찰로부터 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강서경찰서 최민영 형사는 “유족들의 요구에 따라서 유서의 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며 모른다라는 대답으로만 일관했다. 강서구청 장애인복지과 또한 “처음 듣는 얘기며 모르겠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유가족도 인터뷰를 거절했다.
이번 사건의 실마리가 될 수도 있는 유서지만, 확인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오히려 그 의혹만 더 커지고 있다.
그리고 주 씨의 죽음이 정말 자살이냐에 관한 의혹도 있다.
경찰은 타살의 흔적이 없고 고인에게서 유서가 발견된 점 등으로 미루어 자살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이미 장례가 끝난 상태. 그러니 지금 상황에서 사망경위에 대한 의혹은 이미 떠난 버스에 손을 흔드는 격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자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그의 죽음을 두고 조심스럽게 혹시 사고가 아닐까하는 얘기들이 오가고 있었다.
사망한 주 모씨를 처음 발견한 청원경찰 주 씨는 당시 셔터에 얼굴을 대고 목을 맨 상태였으며 전동휠체어가 뒤로 밀려 있었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전동휠체어의 발판을 밟고 올라선 것 같다고 전했다. 또한 목을 감은 줄의 매듭이 목 앞쪽에 있는 상태였다고 한다.
이어서 장 씨는 목을 매서 자살하는 경우, 뒤돌아서 자살하기보다는 얼굴이 전면으로 오며 줄의 매듭은 목의 앞 쪽이 아니라 뒤쪽으로 넘어가 있는 경우가 많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리고 전동휠체어는, 수동휠체어와는 달라서 전원이 꺼져 있으면 웬만한 장정이 민다 해도 잘 움직여지지 않는다. 전동휠체어가 뒤로 밀려 있었고, 주 씨가 다리에 장애가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청원경찰의 증언에 무게가 실린다. 다시 말해 주 씨가 흥분 상태에서 자살 시도를 하기는 했으나 전동휠체어의 오작동으로 본의 아니게 그만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다는 얘기인 것이다.
숨진 주 모씨의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등촌4종합사회복지관 윤귀선 사무국장도 개인적인 의견이라며 “일반적으로 목을 매는 자살인 경우 사람 눈에 잘 띄지 않는 장소를 선택하는 것으로 안다.”며 의심스러워했다.
그러나 이 사건을 맡은 강서경찰서 최민영 형사는 “현장에 도착했을 때 주 씨는 이미 땅바닥에 눕혀 있는 상황이었으며 전동휠체어가 뒤로 밀려 있었는지는 몰랐다. 정 의심스러우면 얼마나 뒤로 밀려 있었는지 목격자한테 한 번 직접 물어보고 와라.”고 어이없는 말을 했다. 최 형사의 말에 따르면 형사가 현장에 갔을 때는 이미 현장이 훼손된 상태였던 것이다. 최 형사는 “어쨌든 사고로 인한 사망일 개연성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구청장과의 면담 거절도, 생계비 때문만도 아니었다?
강서구청 측은 주 모씨가 구청장과의 면담을 번번이 거절당한 것이 아니라는 해명을 계속하고 있다.
강서구청측은 20일 발표한 해명자료에서도 작년 한 해 주 모씨가 구청장과 세 번의 공식적인 면담과 수차례의 수시대면이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강서구청 측이 제공한 또 다른 자료에 의하면 2004년 주 씨가 구청장을 공식적으로 만난 것은 모두 일곱 번이었다.
등촌 3동사무소 김정환 사회복지 전문요원에 따르면 주 모 씨는 작년 10월까지 4년동안 통장을 맡아서 활동했다고 한다.
강서구청에서 말하고 있는 구청장과의 공식적인 면담 횟수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면담 내용 또한 주 씨가 통장으로써 응당 요구할 것들이었다.
강서구청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작년에 있었던 일곱 번의 구청장과의 면담 내용을 보면, 주 씨는 영구임대아파트 단지 내 가로등, 계단 등의 전기요금을 구청에서 부담해 줄것, 재활용품을 제때 수거해 줄것 등을 요구해왔다. 그리고 주 씨 개인의 경제적인 도움을 요청한 것은, 구청장과의 공식적인 면담으로는 마지막이 되고 만, 올해 1월 면담에서였다.
그리고 강서구청의 말대로 주 씨가 구청장이 오가는 구청 내부 길목을 지켜 수차례‘수시대면’했다고 치자.
기초생활수급자이며 장애가 있는 주 씨의 절박한 상황을 구청 내부를 오가다 만난 구청장이 얼마나 얘기를 들었을까. 구청장의 스케줄을 관리하는 구청장 부속실 기획공보과도, 주 씨가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는 장애인복지과도, 주 씨가 구청장과 개인적인 상황을 얘기 할 수 있을 정도의 면담을 가진 적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모르겠다”, “수시대면에서도 충분히 말할 수 있는 거 아니냐.”며 대답을 회피했다.
과연 주 씨는 그러한 ‘수시대면’에서 구청장의 걸음을 몇 분이나 멈추게 할 수 있었으며, 또 얼마나 대화를 나눴을까. 답이 나오질 않는다.
또 강서구청에서는 ‘지난 1년간 거의 매일 구청에서 상주하며 수차례 자해행위와 자살협박, 구청 앞 도로 점거’ 등으로 ‘상당한 소란’을 피우는 그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했던 ‘그동안의 지원사항’도 발표했다.
‘그동안의 지원사항’에는 주 모씨가 9년간 받은 공적부조 금액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로부터 2003년부터 8번에 걸쳐 받은 금액이 적혀 있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주 씨는 장애수당을 포함해 월 80여만 원을 받았다. 그리고 사회복지공동모금회로부터는 3백만 원 상당의 전동휠체어 금액을 포함해 645만원을 지원받았다고 한다.
이 자료를 주면서 관련 공무원은 “올해 구정 직전에도 공동모금회를 통해 백만 원을 받아다 주었다. 그 때 다시는 행패부리지 않겠다는 각서도 썼는데, 설 끝나고 나니까 또 와서 그러더라.”고도 했다.
이와 더불어 강서구청 측은 주 모씨의 유족으로 남겨진 두 딸들이 언론에서 보도된 것처럼 어린 학생들이 아니고, 큰 딸은 이미 성인이며 따로 살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주 씨는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작은 딸과 둘이 살았다며 언론에서 보도된 생계비에 관한 것도 인정할 수 없다는 의사를 에둘러 전했다.
정리를 좀 해본다면 주 모씨는 95년부터 기초생활수급 대상자가 되어 강서구청 관내에서 공적부조를 받았다. 그리고 갑자기 2003년 1월부터 올 해 2월까지 8회에 걸쳐 집중적으로 강서구청이 사회복지공동모금회로부터 후원금을 받아다 줬다. 또한 강서구청에서 제공한 자료를 보면 이 기간은 주 씨가 생전에 강서구청에서 소란을 피우며 거의 살다시피한 기간과 얼추 맞아 떨어진다.
그렇다면 주 모씨가 개인적으로 구청장을 만나서 말하고자 했던 것은 정녕 무엇이었을까.

궁핍해지는 생활, 심해지는 장애
주 모씨는 어떤 삶을 살다 갔을까.
주 씨를 둘러싸고 있는 관공서 그러니까 강서구청은 물론, 관할 동사무소, 복지관 등에서 전하는 그의 평판은 좋지 않았다. (허나 고인이 된 분이니 이미 보도된 것을 주로 간추리고자 한다.)
구청에 따르면 주 모씨는 용접공으로 원양어선을 탔다. 그러나 어린 딸들을 두고 집을 나간 아내 때문에 방황하다가 85년 서울로 올라왔고, 어찌어찌 힘겹게 살다가 신경계통의 문제로 다리에 장애를 입게 돼 2004년 11월에는 1급 지체장애우가 된다. 그이는 이렇게 서울 온지 10년 만에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동사무소 측은 주 씨가 자식뿐만 아니라 형제와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큰 딸은 주 씨와의 불화로 부산에 있는 할머니의 집에서 살았으며, 주 씨의 남동생과도 평소에 거의 왕래가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주 씨가 동네에서 주민과 얽힌 고소 고발건도 상당수라고 전했다.
구청과 동사무소 직원들은 주 모씨가 평소에도 자살하겠다는 말을 많이 했다고 한다. 동사무소 사회복지전문요원은, 주 씨의 사망 전에, 그가 가지고 다니던 노끈을 뺏거나 감추기도 여러 번 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구청의 한 공무원은 “예전에 숙직을 하고 있는데 그가 구청에 아직도 남아 있길래 같이 얘기해 본 적이 있다. 그 때 주 씨는 나는 살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며 많이 괴로워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등촌4종합사회복지관 윤귀선 사무국장은 “주 모씨가 96년에 처음 이곳에 왔을 당시에는 복지관에서 형편이 어려우니 후원금을 주겠다고 해도 아직은 괜찮다며 받지 않았다고 한다. 이 분이 처음에는 이렇게 자존감도 있으신 분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몇 년 사이에 어찌 그렇게 변하셨는지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런 증언들을 종합해보면, 주 씨가 비장애우였을 때는 그저 열심히 생계를 꾸리며 별 걱정이 살았던 평범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내의 가출 후, 주 씨가 기초생활수급자가 되고, 1급의 지체장애우가 되는 데에는 겨우 십여년이란 세월이 걸렸을 뿐이다.
상황은 주 모씨를 점점 변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생활이 어려워지고, 장애가 심해지는 상황이 아닌가. 누구라도 이러한 삶 속에서 가족은 물론, 이웃들과도 사소한 일에 목숨 걸고 싸우게 되고, 또 다시 상처 받으며 힘겨워했을 것이다. 

그렇게라도 살기 위해 몸부림치던 그가, 죽.었.다.
어쨌든 죽은 자는 말이 없다.
하지만 그가 죽으면서까지 하고 싶어 했던 외침조차 세상은 귀를 기울이려하지 않는다.
그 외침에 대해 늦게나마 진정으로 고민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주변에서는 주 씨에 대해 늘 자살을 하겠다고 위협을 했던 사람, 행패를 부렸던 사람, 말이 통하지 않는 막무가내였던 사람으로만 기억했다.
심지어 ‘장애’를 무기로 무엇인가를 계속 따내려고 요구만 했던 사람으로 쉽게 말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죽은 것 뿐이었다.
더구나 그는 한 사람의 시민이기 보다는 국가의 기초생활수급자이며 게다가 1급의 지체장애우며, 지속적인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대상자’였다.
그를 ‘관리’하고 있는 관공서는 대상자가 죽자 그간에 이 사람의 이러저러한 행패를 참아왔으며, 그에게 얼마나 돈을 주었고, 어떤 서비스를 해줬다는 내용을 발표하기에 바빴다.
생활이 급속도로 궁핍해지고 장애까지 생기면서 주 씨는 극도로 피폐해졌을 것이고, 괴팍해진 그와 의사소통을 하고자 했던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점점 이해할 수 없는 외톨이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변하지 않을 사람 누가 있을까.
우리 사회에서 이런 상황에 놓인 장애우에게 진정으로 손 내밀 사람이 누가 있을까.
우리 사회에서 이런 상황에 놓인 장애우가 살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 뿐이다. 숨죽여서 그야말로 죽은 듯이 살던가 아니면 장애라도 내세워, 사람들이 말하는, 행패를 부리던가.
그렇게라도 살기 위해 몸부림쳤던 그가, 죽.었.다.

글·사진 최희정 기자

 


 

작성자최희정  webmaster@cowalknews.co.kr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함께걸음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함께걸음 페이스북 바로가기

제호 : 디지털 함께걸음
주소 : 우)07236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22, 이룸센터 3층 303호
대표전화 : (02) 2675-5364  /  Fax : (02) 2675-8675
등록번호 : 서울아00388  /  등록(발행)일 : 2007년 6월 26일
발행 :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  발행인 : 김성재 
편집인 : 이미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치훈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함께걸음'이 생산한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by
Copyright © 2021 함께걸음. All rights reserved. Supported by 푸른아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