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우 섹스 서비스에 대한 찬반
본문
지난 달 함께걸음에 소개된 간 섹스 자원봉사를 기억하는가.
이 책이 출간된 이후, 장애계에서는 섹스 자원봉사에 대한 조용한 찬반논쟁이 또다시 벌어졌다.
그러나 성과 관련된 것이면 논쟁까지도 빨간 딱지가 붙나 싶을 정도로 물밑에서만 뜨거운 논쟁일 뿐.
이로 인해 혹시나 했던 장애우의 관심은 무기력과 침묵으로 이어지고
솔깃하여 눈길을 보냈던 세인의 관심은 냉소와 무관심으로 이어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제. 세상의 은밀하고도 선정적인 관심을 이성적 판단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해 장애계 두 사람이 용기 있게 나섰다.
장애여성공감의 대표 박영희 씨와 장애인 성 관련 싸이트 팍시에이블넷을 운영하고 있는 조항주 씨가 그들이다.
당시도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한가?
끌리면 오라! 그 논쟁 속으로!
‘장애인도 성을 향유할 권리가 있다’는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조항주 : 이 이야기는 근원적인 물음이에요. 장애에 대한 이해, 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이야기죠. 꼭 장애인이라고 딱지를 붙이지 말고 한번 생각해봅시다. 인간은 성욕을 가지고 있습니다. 너무 당연한 얘기죠. 그리고 누구나 성을 즐길 권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장애인에게는 왜 이 문제가 특별하게 생각되는 걸까요?
장애인들에게 성욕이 있다고 하면 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들은 굉장히 의아해해요. 장애인이 에로틱한 비디오를 한편 본다고 해보세요. 가족들이 난리 납니다. 장애인은 ‘착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정상성이라는 개념에서 볼 때, 장애인의 성을 향유할 권리는 다른 것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장애인의 이러한 권리를 말하는 것은 비장애인들에게 장애인을 인식시키는 일들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장애인의 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것은 불과 1~2년 사이의 일입니다. 아직은 그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을 뿐이죠.
박영희 :‘성을 향유한다’는 말은 남성중심적인 성문화 속에서 만들어진 언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말은 모든 사람이 성을 즐긴다는 것을 전제로 한 말인데, 그렇게 되면 성에 대해 무감각하거나 무성적 존재로 있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소외되거나 배제되잖아요. 성을 즐기지 않는다고 문제가 있는 사람은 아니니까 성적 다양성이 인정되어야 하고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한 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따라서 ‘장애우도 성적 자유와 자기결정권이 있다’고 표현해야 할 것 같아요.
이렇게 짚고 넘어가는 건 성에 대한 권리를 이야기하다 보면 이것이 남성이 만들어 놓은 성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그냥 인간의 성 자체를 이야기하는 것인지 헛갈릴 때가 많기 때문이에요. 현재의 남성적인 성문화는 억압자, 피억압자가 있는 성문화인데,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 서로 평등한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성, 선택도 결정권도 자신에게 있는 성을 요구하는 것이잖아요.
그리고 덧붙이자면, 누구든지 성을 자유로울 권리는 있지만 이것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권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섹스를 서비스한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보다 구체적으로 질문하면 성이 서비스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혹은 섹스서비스가 식사보조, 이동보조 등의 일상생활서비스와 동일한 종류의 서비스로 볼 수 있는지 등에 관한 생각을 듣고 싶다.
조항주 : 우선, 성을 상품화하는 것과 성을 복지서비스로 인식하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 복지서비스라는 측면에서 성을 서비스로 인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섹스서비스라는 것이 대단히 광범위한데다 인간이 개입되느냐 아니냐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이러한 서비스는 세심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대상자의 측면에서도 장애인뿐만 아니라 성생활이 원활하지 않은 비장애인에게도 역시 이러한 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 섹스서비스가 일상생활서비스로 인식되길 바래요.
박영희 : 저는 이런 질문부터 던지고 싶어요. 장애우가 성치료를 받아야 할 ‘대상’인가요? 장애우의 성이 자유롭지 못한 것은 장애우가 성적으로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인 차별 때문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장애우가 평등한 성을 누리지 못하는 거잖아요. 성서비스가 제공되기 시작하면, 특히 국가 차원에서 프로그램 형식으로 성서비스가 제공되기 시작하면 장애우는 치료를 받아야 할 대상, 혹은 서비스를 받아야 할 대상으로 규정되기 쉽죠. 또다시 ‘대상’이 된 상황에서 평등한 성이 가능할까요?
노동권이나 교육권처럼 성도 권리라고 한다면, 권리가 지켜지지 않을 때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장애인의 성 문제에 국가가개입해야한다고 보나?
조항주 : 국가가 무조건적으로 개입해서 모든 것을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단지 원활하지 못한 부분이 있으니 그것이 왜 그런 것인지를 찾아내서 적절하게 개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개입의 이유에 대해서는 인권 개념의 감수성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국가가 경사로와 같은 편의시설을 설치해야 하는 이유는 설계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일반인만 고려하고 장애인을 배제함으로써 장애인이 가진 차이를 차별로 이어지게 만들었다는 데 있습니다. 장애인의 성 문제 역시 똑같다고 생각해요. 차별의 결과로 장애인이 성적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면 국가가 개입해야죠. 실제로 농촌총각의 결혼문제는 사적인 문제이지만 국가나 민간단체들이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잖아요.
박영희 : 일단 국가가 국가재정을 사용해서 장애우에게 성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서비스 제공의 합리적 이유를 찾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합리성을 찾는 과정에서 장애우의 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거나 장애우는 성에 매우 목말라하는 사람으로 규정되는 등으로 장애우의 성이 왜곡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요. 또 장애우가 성서비스를 받겠다고 했을 때, 국가가 개입해서 이 사람이 서비스를 받을 사람인지 아닌지를 가려내게 될 텐데, 그 과정에서 장애우는 또다시 대상화되는 거죠. 장애계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이 재활에서 인권으로 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장애우 스스로 성치료를 받아야 할 대상, 혹은 성서비스를 받아야 할 대상이 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어요. 이것은 자칫 잘못하면 장애우에 대한 인식 자체를 왜곡시켜서 장애우와 관련된 다른 운동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섹스서비스가 성매매와 차이가 있다고 보나?
조항주 : 당연히 다릅니다. 그리고 이런 질문 자체가 섹스서비스의 본질을 왜곡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성매매의 가장 큰 특징은 성을 사고파는데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은 복지서비스예요. 섹스서비스라고 하면 성행위 그 자체에만 너무 매몰되어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것 말고도 섹스하는 것과 동일한 느낌을 받게 하는 기구나 장치를 이용할 수도 있어요. 섹스서비스의 내용은 다양합니다.
단, 돈을 주거나 받는 것은 절대로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외국의 경우처럼 공창제를 이용하자고 주장하는 게 아니에요. 돈을 주고받으면 그건 성매매죠. 그건 자발적인 것이 아닌데다가, 빈곤한 사람들을 착취하는 등의 인권침해 문제가 발생할 거예요.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돈을 지급하지 않으면 자원봉사자가 모이지 않을 것’이라고. 전 그것도 억압된 사고에서 나오는 생각이라고 봐요. 아시다시피 저는 장애인 성관련 사이트를 운영하는데 그곳의 상담게시판을 보면 실제 비장애인이 자발적으로 섹스자원봉사를 하겠다고 나서기도 하거든요. 실제 자원봉사자가 얼마나 모일지는 모르는 일이에요.
박영희 : 섹스서비스는 서비스 제공자에게 돈을 주는 경우와 돈을 주지 않는 경우 둘 다 문제의 소지가 있어요.
일단 서비스 제공자에게 돈을 주는 경우, 이건 성매매와 다를 바가 없죠. 성매매에서 나타나는 인권침해의 문제가 동일하게 나타날 거예요. 여성의 상품화 문제는 물론이고, 경제적으로 소외된 계층의 여성이 이 서비스의 제공자가 되면서 또다른 인권침해가 발생할 가능성도 커요. 설사 이들이 소외된 계층의 여성이 아니라 중산층의 여성이라고 하더라도 문제는 크게 다르지 않아요. 결국 돈이 개입되기 시작하면 ‘평등하고 자유로운 성’이 될 수 없죠.
이렇게 얘기하면 남성도 제공자가 될 수 있다고 얘기하겠죠? 하지만 남성중심의 성문화가 팽배한 우리사회를 생각할 땐 많은 경우 제공자가 여성이 될 가능성이 커요. 길가다 보면 베트남, 월남 여성과의 결혼에 대한 현수막이 걸려 있잖아요. 거기엔 심지어 ‘맘에 안 들면 바꿔준다’는 얘기도 써있어요. 여성이 무슨 물건이냐고요. 우리사회가 그 정도로 여성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성문화에요.
돈을 주지 않는 경우에는 성매매와 다르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 경우라고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에요. 돈을 주지 않으면 서비스 제공자가 자원봉사의 개념으로 일한다는 말이 되는데, 그럼 시혜적인 입장이 되기 쉽죠. 결국 이 경우에도 평등한 관계가 아니라 수직적인 관계가 되고, 장애우가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스스로 당당하기 어렵게 되요.
자립생활에서 활동보조인에게 돈을 지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거예요. 현재 존재하는 가사도우미 제도의 경우도 분명히 시간제로 돈을 지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비스 제공자가 ‘선심 쓴다’ 혹은 ‘좋은 일 한다’는 생각으로 일을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가사도우미를 이용하는 경우 평등한 관계가 아니라 불쌍한 사람 취급을 받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예요. 그런데 성서비스가 자원봉사 형식으로 이루어지게 되면 장애우가 ‘불쌍한 사람’으로 여겨질 가능성이 가사도우미보다 훨씬 더 높죠. 성조차 서비스를 받아야 할 대상이 되는 거니까. 성관계를 갖는데 상대방이 ‘불쌍하니까 한 번 해준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박영희 대표의 말이 생각나서 물었다.) 자원활동 형식의 서비스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는 유급 활동보조인조차 평등한 관계가 아니라 ‘좋은 일 한다’는 식의 시혜적 태도로 불쌍한 사람 대하듯 장애인을 대하는 경우가 종종 일어난다는 것. 그러니 섹스서비스를 자원봉사 형식으로 모집해서 시행하면 이런 측면에서 문제가 발생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당사자 입장에 그런 문제제기가 있었다.
조항주 :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이에요. 최소한 기본적인 자존심을 유지해야 하지 않느냐는 이야기인데, 당사자의 감수성과 관련된 문제네요.
일단, 자원봉사자 교육을 잘 해야죠. 장애인에 대한 워낙 뿌리 깊은 편견과 관련된 문제라 교육을 해도 그러한 인식이 남아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전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단 시행을 하고 제대로 수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시혜적 태도의 문제가 나타난다고 해도 어쨌든 활동보조인 제도는 있잖아요. 활동보조인 제도의 경우는 일단 시행하면서 고쳐나가고 있는 건데, 섹스서비스의 경우도 그래야 하는 게 아닐까요? 섹스서비스는 시행조차 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게 문제다 저게 문제다 얘기하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실 어떤 제도든 시행을 하게 되면 이러저러한 문제가 생기는 거니까요.
섹스서비스라고 하면 우리는 보통 성행위만 생각하는데, 사실 섹스서비스는 단순히 성상담을 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섹스행위 보조자 역할, 키스 등의 애무, 자위를 돕거나 실제 흡입 또는 삽입 섹스의 파트너가 되는 것까지 수준이 다양하다. 어느 수준에서 섹스서비스가 논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조항주 : 서비스의 수위는 장애인당사자가 원하는 수위까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결국 인간이 개입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섹스서비스를 단지 흡입 또는 삽입 섹스만으로 한정짓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것 말고도 섹스서비스의 내용은 다양합니다. 안 된다고 막지 말고 다양한 방법을 고민해보자는 말이에요.
사실 어떤 행위를 성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느냐는 개인에 따라 사회에 따라 다른 거잖아요.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키스를 하는 것이 인사지만 한국에서는 연인사이가 아니면 불가능한 것처럼. 논의 자체보다는 당사자의 욕구가 어느 수준인지가 중요한 거죠.
박영희 : 섹스서비스라고 하면 성행위를 포함해서 논의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성문제를 상담해보시면 알겠지만, 단지 상담만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 것들이 많아요. 그런 경우 대안을 마련해서 알려줘야 하는데, 그 때문에 섹스서비스에 대해 논의를 하는 거죠. 지금은 자위에 대한 정보 정도를 알려주고 있는데, 결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더라고요.
상담을 해보면 애무를 원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게 단순한 애무가 아니라 사랑하고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원하는 거죠. 그런 욕구는 단순히 자위로 채워지지 않잖아요. 하지만 그게 섹스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채워질 것인가는 모르겠어요.
사실 지금도 채팅이나 전화방 등을 통해 많이들 만나요. 대부분 한번의 번개팅 정도로 끝나는데, 만나고 돌아와서는 굉장히 허탈해해요. 그 허탈감이 계속 반복이 되다보면 다른 것들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그게 풀리지 않으니까 결국 우울증에 빠지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섹스서비스라고 다를까요?
물론 지금처럼 채팅이나 전화방을 통해 사람을 만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위험이 더 많이 보이는 건 사실이에요. 불특정 다수와 만나는 것이기 때문에 성병에 노출될 위험도 크고, 일단 은밀한 관계로 만나다보니 사람들 모르게 만나는데, 그럼 폭력 등의 다른 위험도 커지죠. 그래서 이것도 대안은 아니라고 봐요. 하지만 이 관계에선 적어도 집단적 프로그램으로 제공되는 경우보다는 시혜적인 느낌이 덜하다고 봐요. 이런 사적인 만남은 봉사와는 또다른 의미가 있는 거니까.
물론 섹스는 감정과 분리될 수도 있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많은데, 그렇게 일회성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그것이 그 사람 평생의 성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한번을 만나더라도 사람에 대한 감정과 성에 대해 풍부하게 느낄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장애인의 성문제도 연애나 결혼처럼 보편적인 방식을 통해 풀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보편은 상당히 위험한 얘기에요. 장애인이 사회에서 차별받는 것도 보편의 논리 때문 아닌가요? 자유연애가 가능한 사람은 그렇게 하면 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 분명히 존재하는 거잖아요. 자위조차 불가능한 장애인이 있는 거고. 섹스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에 지금 이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가요?
조항주 : 보편은 상당히 위험한 얘기에요. 장애인이 사회에서 차별받는 것도 보편의 논리 때문 아닌가요? 자유연애가 가능한 사람은 그렇게 하면 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 분명히 존재하는 거잖아요. 자위조차 불가능한 장애인이 있는 거고. 섹스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에 지금 이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가요?
박영희 : 흔히 결혼을 성욕구 해결의 가장 좋은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결혼이 대안은 아니라고 봐요. 결혼은 결혼제도 대로 또 그것이 가진 폐습이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면, 원하지 않는 인간관계까지 만들어 낸다거나, 혼인한 관계 안에서는 어떠한 방식으로 성행위가 이뤄지던 결혼이라는 틀 안에서 합법으로 받아들여진다거나 하는 것 등이죠. 결혼은 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는 문제예요. 결혼과 성은 다른 문제죠.
섹스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감정이 배제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조항주 : 먼저 물어봅시다. 감정이 왜 배제되어야하나요? 그리고 감정을 배제하든 안하든 이건은 서비스 제공 이후의 원칙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지금 앞서서 확인할 사항이 아니에요.
만약 감정이 배제되어 있기 때문에, 교감하지 못하는 것들에 허탈감을 느낀다면 그 사람들의 성취향의 문제에요. 어떤 사람은 사랑의 감정이 없으면 성행위를 못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단지 페니스가 내 안에 들어왔다는 사실만으로 만족감을 얻는 사람도 있거든요. 교감을 해야 한다는 것도 일종의 사회적 통념상의 환타지예요.
섹스서비스가 만약 제공된다면, 장애여성이 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고 보는가?
조항주 : 장애여성도 성욕이 있는 만큼 이용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환경적으로 여성이 성을 이야기하면 미친년 취급을 받기 때문에 이용에 어려움이 있을 수는 있죠. 즉, 여성의 성욕을 말하는 것이 아직도 금기시되어온 사회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서비스 제공에 앞서 여성, 노인, 장애인들의 성담론에 대해서 활발한 이야기들이 오가야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칼럼을 쓰고 있는 것이고요.
또다른 문제가 있다면 폭력의 문제에요. 사실 남성과 여성 사이에 권력관계가 있으니까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남성과 여성을 놓고 보면 여성이 더 억압받고 있기 때문에 저는 여성의 입장에서 글을 쓰려고 노력해요. 여성이 원하는 도구를 개발한다거나 하는 것도 필요하죠. 2년동안 이 이야기를 했는데 별반 나아진 건 없네요.
박영희 : 지금의 사회적 인식 하에서는 장애여성의 경우 섹스서비스를 활동보조인 쓰듯 집으로 불러서 이용하기 어려울 거라고 봐요. 장애남성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남자가 혼자 살면 성매매를 할 수도 있다고 묵인하는 분위기지만 여성의 경우는 성매매가 용납되지 않잖아요. 비장애여성도 용납이 안 되는데, 사회에서 성적 존재로 인식조차 되어 있지 않은 장애여성은 오죽하겠어요. 복지관에 룸을 만들자는 이야기도 있는데, 우리 문화 속에서 도대체 그곳에 몇 명이나 갈 수 있을까요?
오히려 정신지체여성의 경우에는 이용자보다는 이 서비스의 공급자가 될 가능성이 커요. 지금도 정신지체여성들이 성매매 현장에 많이 노출되어 있는데, 이들이 다시 이 서비스 제공자로 들어올 가능성이 크죠. 장애여성이 성매매를 반대하는 이유는 바로 장애여성이 그 현장에 있기 때문이죠. 국가나 단체가 이것을 통제한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흘러들어오는 장애여성을 걸러내기는 어려워요. 이들을 걸러내는 것이 또 다른 차별이 될 수도 있고, 정신지체의 경우에는 장애등록을 하지 않은 여성이 상당수 되는데 어떻게 걸러내겠어요.
장애우의 성문제 해결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조항주 : 장애인 성문제에서 중요한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일단은 장애인의 성문제가 중요하다는 사회적인 동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작업들이 진행 중이죠.
그리고 장애인 성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는 대단히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우선, 성적인 것이 모두 성교적인 것은 아닙니다. 성적인 것에는 섹슈얼리티의 문제와 성교적인 문제 둘 다 포함이 되는데 사람들이 성이라고 말하면 성교적인 부분만 생각하기 때문에 자꾸만 논의에 혼란이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성에 낭만이니 로맨스니 이런 것들이 안 들어가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하는 거죠. 장애인의 성이라고 해서 한가지만 있는 게 아니니까 다양한 것들을 논의해야 해요.
두 번째는 성문제에 관해서는 정답이 없습니다. 이러한 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좀 더 좋은 방안이 없는지 끊임없이 모색해야 해요. ‘구더기 나올 수 있으니 된장담지 말자’는 식으로 말하지 말고, 잘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생각해야 해요. 장애인이 성적으로 소외되어 있다고 인식한다는 것만으로도 일단 모두들 문제를 바라보는 감수성과 기본적인 마인드는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세 번째는 밥 먹고 장애인의 성문제만 고민할 전문가가 필요해요. 그리고 어찌되었든, 장애인당사자들 스스로가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이라는 것이 어느 선을 정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불분명하기 그지없는 문제이지만, 장애인들의 말이 의미 있게 들릴 수 있게 진보적인 단체들과 연대하여 투쟁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봐요. 물론 그 투쟁은 장애인 당사자에게 강요된 침묵을 깨트리는 일이고 자신을 감히 스스로 드러내고 인식하는 주체가 되어 정치적인 입장을 가지는 일이 될 것입니다.
박영희 : 가장 중요한 것은 ‘평등한 관계 회복’이라고 생각해요.
비장애우도 파트너를 만날 수도 있고 못 만날 수도 있어요. 다만, 짝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많은 거잖아요. 저는 저의 장애 때문에 사람들이 저에게 호감을 못 갖는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근데 상대가 내가 장애우기 때문에 그냥 한번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건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라는 거죠.
성적으로 억압되어 있는 것은 비단 장애우만이 아니에요. 노인, 노숙인, 감옥이나 군대에 있는 사람, 그리고 여성까지. 그러나 이들의 성문제는 사회적 차별을 해소함으로써 해결하려고 하잖아요. 장애우의 경우에도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고 평등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죠.
이것이 앞으로 어떻게 해결되어야 하는가는 매우 어려운 문제예요. 저조차도 성문제에 대해 막연함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만 이 문제를 논의하는데 몇 가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우선, 장애우의 성문제를 논의할 때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문화나 성개념이 어떤 것인지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회에서 생각하는 기존의 성문화에 대해 제대로 고민하지 않으면 결국 현재 팽배해 있는 비장애남성 중심의 폭력적인 성문화를 답습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장애우의 성문화는 비장애우의 성문화를 바탕으로 할 것이 아니라 장애우 고유의 성문화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누구에게도 폭력적이거나 억압적이지 않고, 누구의 인권도 침해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비장애남성 중심의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성기중심의 성문화, 아름다운 몸을 강조하는 성문화죠. 지금은 자위도구 조차 모두 성기에 집중되어 있고, 포르노나 영화들도 전부 삽입으로 끝나요. 우리는 몸을 바라보는 우리 나름의 시각이나 체위 등을 만들어가야 해요
*조항주씨의 요청에 따라 조항주 씨의 인터뷰에서는 장애인을 그대로 표기합니다.
인터뷰 정리 조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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