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우 팔아먹는 상술, 이젠 초등학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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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중순 함께걸음에 한 통의 제보 전화가 울렸다.
서울 신림동 미송초등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학부모라고 밝힌 제보자는 “동화책을 유통시키는 한 업체가 장애우 단체를 돕는다며 교실에서 신청서를 뿌리고 있다.”는 내용을 알려왔다.
함께걸음에서는 지난 1월호와 4월호에서 장애우를 팔아 이익을 챙기는 통신판매 업체에 대한 기사를 실은 적이 있다.
함께걸음은 이번 제보도 혹시 이와 유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 제보자와 미송초등학교, 이와 관련된 유통업체인 ‘S월드’, 그리고 S월드사가 돕는다는 장애우 단체를 추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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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중순 함께걸음은 이번 사건을 제보해온 제보자를 만났다.
서울 미송초등학교 2학년에 다니는 아이를 둔 학부모인 제보자는 지난 8일 아이가 학교에서 받아온 것이라며 기자에게 전단지 한 장을 내밀어보였다.
16절지 재생지로 만든 전단지 상단에는 ‘가정통신문’이라고 크게 적혀 있었으며 내용인즉 어린이 동화책 전집 30권을 9만9천원에 판다는 것이었다.
‘가정통신문’이라는 문구 때문에 얼핏,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나눠준 것처럼 보였다.
다행히 제보자는 아이가 “둘째 수업 끝나고 쉬는 시간에 아저씨가 들어와서 나눠줬다.”고 말해, 유심히 살펴봤다고 한다.
특히 아동문학과 관련된 일을 하는 제보자는 무슨 동화책이 이렇게 싼가 싶기도 하고, 학교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상행위를 하는 것은 불법인데 하는 생각에 꼼꼼히 보았단다.
제보자는 “혹시나 싶어서 아이가 그동안 학교에서 받아온 통신문과 비교해보니 학교에서 발송한 것과는 형식이 다르더라고요. 뿐만 아니라 내용도 S월드사가 유통시킨다는 책 판매 광고였고요. 제 아내도 아동문학을 하는 사람인데, 아내는 동화책 목록과 가격 등을 읽어보더니 아마 해적판으로 낸 조악한 동화책일 것이라고 하더군요.”라고 말했다.
문제의 전단지에는 글쓴이는 물론 출판사 소개도 없었다.
제보자는 “전단지에 적힌 전화로 문의하니까 출판사가 **교육미디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출판사는 인터넷 검색이 안되던데요. 그래서 이 동화전집이 해적판 일 것이라는 생각을 더욱 하게 되었어요.”라며 “설마 학교에서 이런 책을 광고하나 싶어서 미송초등학교 교무과에 문의를 했습니다. 학교 측은 모르는 일이라며 쉬는 시간에 교실에서 광고 전단지를 나눠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확인해보겠다고 그랬죠.”라며 그간의 상황을 전했다.
또한 제보자는 “이런 전단지를 보고 학교가 추천 한줄 알고 책을 구입하는 부모들이 분명 있을 텐데, 이렇게 무방비 상태로 아이들 손에 들려 이런 것을 집으로 보내도 됩니까? 아이들 교육 현장에서 내용 검증도 없는, 불법 유통되는 해적판 책을 판다는 것 자체가 비교육적인 상황인 거잖아요.” 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리고 “당시 저와 통화한 교사가 그러는데, 간혹 장애우 협회에서 요청 들어온 경우는 학교장이 허락한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하던데요. 그래서 S월드로 문의했더니 장애우 단체를 돕는다고 하더군요.”라고 덧붙였다.
함께걸음은 이러한 제보 내용을 바탕으로 미송초등학교와 S월드, 그리고 이 업체가 돕는다는 장애우 단체를 추적했다.
학교장 허락 받았다는 거짓말은 물론 학교장 직인까지 위조해
기자로부터 위와 같은 상황을 들은 미성초등학교 교감은 “학교 안에서의 상행위는 불법이입니다. 그런데 특히 장애우 돕는다며 물건 팔러 학교에 오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교사들 실내화부터 학습자료까지, 뭔 장애우 협회에서 왔다고 하면서 팔아달라고 엄청 그래요. 교무실에서 안통하면, 쉬는 시간에 각 교실로 불쑥불쑥 들어가 담임교사에게 떼를 쓰는 경우가 종종 있기는 하죠. 하지만 사실 이런 상황까지는 통제가 잘 안됩니다.”라며 2학년 담임교사들을 수소문해 확인하기 시작했다.
확인결과, S월드의 한 영업사원이 2학년의 세 반에 들어가 전단지를 뿌린 것으로 드러났는데, 그 중 2학년의 한 담인 여교사는 “들어오면 안된다고, 나가라고 했죠. 그런데도 비장애남성 영업사원이 장애우들 돕는 거니까 좀 봐달면서 강압적으로 밀고 들어오는데 어떻게 합니까. 겁도 좀 나고요. 그러는 통에 제지를 못했어요.”라며 난감해했다.
이러한 취재 과정을 지켜보던 한 교사는 “학교마다 장애우 돕는다며 물건 팔아달라고 들어오는 사람 정말 많이 와요. 영업 사원들이 직인까지 위조해 속이는 경우도 봤고, 교장 허락 받았다고 거짓말까지 한다는 얘기도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수익금으로 장애우 단체 돕는다’는 것은 거짓말
이에 함께걸음은 책 구매를 핑계로 서울 신풍역 근처에 있는 S월드 사무실을 찾아갔다.
사무실에는 아직 팔지 못한 책들이 가득했고, 이 회사 영업직원이 미송초등학교에 뿌렸던 전단지와 비슷한 ‘학부모님께’라든가 ‘도서바자회 안내문’으로 시작되는 전단지들도 잔뜩 쌓여있었다.
S월드 측 직원은 전국에 유통되고 있는 책들이며 이 사무실에서 취급하는 동화전집만 해도 6~7종류라고 밝혔다. 그리고 S월드를 통해 영업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략 30~40여명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판매 수익금으로 경기도지체장애인협회를 돕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기자는 경기도지체장애인협회(이하 경기도 지장협) 윤수일 회장에 사실 확인을 문의를 했다. 그러나 윤 회장은 “S월드 이름도 처음 듣고, 후원받은 적 없습니다. 우리 이름을 팔아 장사하는 것 같은데요. 거기가 뭐하는 뎁니까? 어디 있어요?”라며 오히려 되물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기자는 도대체 어느 쪽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그래서 기자는 S월드 측에 전화를 걸어 “경기도 지장협회장이 후원받은 적 없다고 하는데, 후원했다는 것이 거짓말이 아니라면 증거를 대라. 당신들 장애우 팔아서 장사하는 거 아니냐. 그게 아니면 증거 서류들을 보여주면 될 거 아니냐.”며 윽박(?)질렀다.
그러자 당황한 S월드 직원은 장애우 단체를 돕는다고 말한 적이 없다며 딱 잡아뗐다.
기자가 사무실에 가서 본인에게 직접 들었다고 하자, 그 직원은 “우리 회사가 장애우 단체를 돕는다는 뜻이 아니라, 영업사원들이 그렇게 말하고 다닌다는 뜻이었어요. 영업사원들은 판매 실적에 따라서 수당만 받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S월드 직원이 아니에요. 그 분들은 이 책들을 유통시키는 업체라면 어느 업체든지 책 구매신청서를 갖다 주고 대략 50%의 수당을 받는 사람들이거든요.”라며 발뺌했다.
그러나 기자가 “직원도 아닌 사람들이 장애우를 돕는다고 말하는 것을 회사가 돕는다고 말한다는 것이 말이 되냐?”고 따져 묻자, 직원은 “영업 사원 중에서 경기도 지장협 광명시지회 관련자가 있는데, 그 분이 영업하면 아무래도 그 쪽을 돕지 않겠냐고 생각해서 그렇게 말한 것”이라고 정정했다.
그래서 기자는 경기도 지장협 광명시지회 관련자라는 김 모씨와 전화통화를 했다. 김 모씨는 “S월드에 개인적으로 아는 후배가 있어 거래를 하고 있기는 합니다. 나는 나이 많은 노인네예요. 그리고 양쪽 클러치를 짚어야 이동할 수 있는 지체장애우입니다. 이런 내가 어떻게 교실을 다니면서 책을 팔 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렇게 책 팔은 적 없습니다. 없어요.”라며 누가 자기의 이름을 불었는지 대라고 노발대발했다.
하는 수 없이 기자는 김 모씨와의 통화 내용을 가지고 다시 S월드 측과 통화를 했다. 그러나 S월드 직원은 “그 분은 분명 우리 영업사원 맞는데… 이상하네.”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어쨌든 이렇게 S월드가 책을 팔면서 장애우 단체를 돕는다고 했던 말은 ‘거짓’이었음이 드러난 셈이다.
정작 피해보는 사람은 장애우 당사자
앞서도 말한 것처럼 함께걸음에서는 장애우를 팔아 몇몇의 뱃속만 채우는 업체들의 행태를 계속 보도해왔다.
특히 지난 4월호에서는 ‘일반 업자들이 장애우 단체에 접근해 예치금으로 수백에서 수천만원을 주고, 매월 이익의 일정액까지 제공하면서 단체들의 이름과 통장을 빌려서 영업을 하고 있다’는 내용을 보도한 적이 있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장애우를 미끼로 영업을 하는 것은, 업자들이 단체에게 예치금은 물로 수익의 얼마까지 떼어주고도, 남는 장사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행히 경기도지체장애인협회와 S월드가 이러한 관계는 아니었다.
그러나 S월드가 장애우 단체를 돕는다고 했던 이유는 장애우를 팔아 더 많은 이익을 만들겠다는 계산이었다.
더욱 개탄할 일은 초등학교까지 그 마수를 뻗쳐 장애우 돕네를 운운하며 판매를 강요했고, 비상식적으로 싼 가격에 책 소개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동화책을 어린이들에게 팔고 있다는 점이다.
이 사건을 추적하면서 기자는 S월드 직원과 마지막으로 했던 통화가 잊혀지지가 않는다.
S월드 직원은 기자에게 한 번 생각해보라며 이렇게 말했다.
“물건 좀 사주세요라고 할 때와 장애우 단체에서 왔어요 좀 도와주세요라고 말할 때, 누구의 물건을 사겠어요? 솔직히 장애우 돕는다는 사람의 물건을 살 확률이 더 크잖아요. 아니 영업사원들의 말을 들어봐도 실제로 그래요. 사회가 그렇게 돌아가요. 물론 개중에는 정말로 장애우 돕는 사람들도 있겠죠. 하지만 어쩌겠어요? 더 많이 팔 수 있는 방법이 이건데…”
장애우를 팔면, 수지맞는 장사를 할 수 있는 사회.
장애우를 파는 쪽이 잘못일까, 아니면 이러한 물건을 별 고민 없이 사는 쪽이 문제일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들 때문에 정작 피해를 보고 있는 사람은 장애 당사자라는 점이다.
글 최희정 기자 사진 조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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