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을 닫으며
본문
“일기를 왜 써야 하냐고요? 일기는 하루 중 있었던 일을 적거나 그 일에 대한 나의 생각·느낌 등을 솔직하게 담는 거라는 것은 알지요? 매일매일 쓰지 않아도 되지만, 꾸준히 성실하게 쓴다면 일기를 통해 내 생활을 되돌아볼 수 있게 되지요. 또 소중한, 내 삶의 기록이 되어 먼 훗날, 분명 나의 보물이 될 거예요! 선생님도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쓴 일기가 아직도 있는데, 지금 보면 아주 신기하고 즐겁답니다.”
뿌듯해하며 이야기하는 내 모습에, 우리 반 아이들도 덩달아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언젠가 어른이 되어 옛 일기장을 넘기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으리라.
하지만 미처 깨닫지 못한 게 있다. 아이들에게 알려주지 않은 게 있다. 학교 숙제라 졸린 눈 비비며 억지로 썼던, 방학 숙제라 보름씩 밀려 엉킨 생각을 대충 풀어 썼던 그 일기는, 아무리 오래 되었어도 ‘진짜’ 일기가 될 수 없다는 것.
얼마 전(4월 7일) 국가인권위는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에게, 초등학교 일기장 검사 관행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하였다. 시상을 목적으로 한 일기검사나 검사를 통한 일기쓰기는, 사적 기록이라는 일기쓰기의 본래 목적을 훼손할 뿐이며 글짓기능력 향상이나 인성교육(교사 - 학생 간 대화의 창구로서) 실시는 일기가 아닌 다른 방법을 통해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인권위는, 초등학교에서 일기를 강제로 작성하게 하고 검사·평가하는 것은 아동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및 양심의 자유 등의 기본권을 침해할 우려가 크다고 판단해 이를 개선, 아동 인권에 부합하는 일기교육 방식을 마련하도록 의견을 표명한 것이다.
어린 시절 우리의 일기는, 선생님이나 부모님에게 언제나 열려있었다.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한 마디 칭찬을 해 주거나 짧은 편지라도 써 주신 날이면 퍽이나 즐거워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어른이 된 지금은, 우리 아이들의 일기를 검사한다. 그리고 아이의 생각이나 느낌을 재단(裁斷)하고 조언을 마다하지 않는다. 한 마디 써 주던 예전의 선생님 · 부모님에 비해 얼마나 잘하고 있느냐 뿌듯해하면서 말이다.
마음을 나누는 일은 행복한 일이다, 주는 이에게도 받는 이에게도.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의견을 모아 듣고 충분한 합의를 통한 교환일기·모둠일기가 아니라면, 그 공간이 왜 굳이 일기여야 하는 것인가.
이제까지의 일기쓰기 관행, 미처 깨닫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음을 그대로 인정하자.
그리고 일기가 지극히 일기로서의 모습을 - 나만의 생활을 담을 수 있고 나만의 세상이 될 수 있는-가질 수 있도록 이제 그만 놓아주자.
그만 아이들의 비밀공간으로 놓아주자
글 괭이눈(인권운동사랑방 자원활동가, 초등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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