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 국회 본회의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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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4년 12월 29일, 현애자의원을 통해 발의안 장애인이동보장법률입법추진공대위(이하 공대위)의 ‘장애인노인임산부등의 교통수단 이용 및 이동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공대위안)과 정부입법안인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안’(이하 정부입법안)의 합의안으로서의 대안인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이하 이동편의증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으로써 마침내 이동보장을 위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이번에 제정된 이동편의증진법은 법률 명칭에 있어서는 정부입법안을 그대로 따르고 있지만, 공대위안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저상버스 의무 도입과 이를 위한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지원을 사실상 의무화하고 있어 사실상 공대위안의 전폭적인 수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동편의증진법의 제정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이동편의증진법은 공대위안과의 여러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기대하고 주목하기에 충분한 법이다. 공대위안을 대폭 수용한 점도 그렇지만, 장애인 당사자의 요구를 비교적 빨리 받아들여 제정한 점에서도 그러하다.
이동편의증진법의 제정은 다음과 같은 의의를 지니고 있다.
첫째, 이동권이 국민의 기본권리로 규정되었다는 점이다. 이동편의증진법은 공대위안을 수용하여 제3조에 이동권을 명시함으로써, 이동권이 국민의 권리로서 인정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갖게 되었다. 물론 편의증진법 제4조에서 접근권을 명시함으로써, 함축적으로 이동권도 보장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아 법적 효력이 약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후로는 행정소송이나 손해배상청구소송에 있어서 이동편의증진법 제3조는 보다 구체적이고 분명한 힘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저상버스 도입의 의무화이다. 이동권 쟁취 운동의 핵심은 저상버스 도입이었기에 공대위안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던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저상버스의 의무화였다. 하지만 이 부분은 국회 상임위원회에 올라가서도 계속 진통을 겪어야 했다. 문제는 의무의 대상을 누구로 할 것인가에 있었다. 공대위안에서는 운송사업주를 의무자로 규정하고, 운송사업주가 과도한 경제적 부담을 지지 않도록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에서 저상버스 구입에 따른 추가 예산을 지원하도록 했다. 하지만 건교부의 입장은 단호했다. 운송사업주를 의무대상자로 하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만성 적자로 허덕이는 버스 운송사업주를 범법자로 만드는 지나친 규정이며, 이를 위해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지원을 의무화하는 것 역시 현행 행정체계와 법 체계상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예산 책정의 권한은 국회의 고유 권한이기에 우리나라 현행 법의 어디에서도 예산지원을 권장사항으로 두고 있지 의무조항으로 두고 있지 않으며, 이를 의무화할 경우 자칫 국회의 예산편성권을 침해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상임위에서의 막판 절충을 통해 이 문제는 이동편의증진계획 수립에 있어서 저상버스 도입 계획을 세우도록 의무화하고, 버스운영에 있어서 저상버스 도입을 의무화함으로써 사실상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를 의무의 대상으로 함으로써 타결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예산 지원의 의무화 역시, ‘예산의 범위 내에서’라는 단서 조항을 포함시킴으로써 국회의 예산편성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예산지원을 의무화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셋째, 항공기, 선박 등의 교통수단에 대한 접근의 보장이다. 기존의 편의증진법에서도 버스, 도시철도차량, 철도차량에 대해서만 관련 규정을 두고 있었다. 항공기와 선박은 이제 이용률이 철도에 버금갈 만큼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 어디에도 장애인등의 접근을 보장하기 위한 근거 규정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이동편의증진법의 대상교통수단에 포함됨으로써, 장애인을 포함한 교통약자들도 항공기와 선박을 불편 없이 이용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넷째, 특별교통수단도입 및 자가운전자에 대한 지원이다. 특별교통수단의 도입은 그동안 대중교통에 대한 대안으로서만 제기되어 왔다. 지방자치단체의 이동보장정책은 대중교통을 정비하는 대신 비용이나 행정면에서 보다 쉬운 특별교통수단 도입으로 일관되어 왔다. 장애인?노약자무료셔틀버스나 장애인콜택시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특별교통수단에 대한 체계적인 준비나 관련 근거는 전혀 없었다. 자가운전자에 대한 지원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운전면허제도의 개선에 대한 요구가 높지만, 제도만 개선된다고 해서 자가운전이 가능해지는 것은 아니다. 장애인이 자신의 장애 및 정도에 맞는 운전장치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하고, 차량의 개조 등이 가능해져야 하며, 이를 위한 지원이 마련되어야 한다.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번에 이동편의증진법에서 자가운전자에 대한 지원이 보장된 것은 바로 그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서 향후 자가운전에 대한 완전한 지원의 길을 열었다고 볼 수 있다.
다섯째, 장애인 당사자의 요구를 반영한 법률이다. 공대위에서 초안을 마련한 것은 2002년 겨울이다. 그리고 올해 초까지 세 차례의 공청회를 거쳐 최종안 마련하였으며, 수차례 건설교통부에 법제정을 요구하였다. 그 결과 건설교통부는 지난 해 4월에 공대위의 안을 대폭 반영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 제정을 약속하며, 초안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공대위안은 의원 발의를 통해 국회에 상정되어 정부입법안과 협의를 하기에 이르렀으며, 결국 저상버스 의무 도입 등을 반영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동안 많은 법률들이 정부주도로 초안이 마련되었으며, 이해 당사자들은 초안에 대한 의견을 내는 데 그쳤던 것과 비교해 볼 때, 초안을 먼저 마련하여 정부에 제시했으며, 권리구제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내용을 제정된 법에 반영시킨 이번 이동편의증진법의 제정 과정은 당사자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시킨 법률의 제정이라는 이정표를 남긴 셈이다.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무엇인가?
이동편의증진법은 이제 막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이 법을 제정하기위해 기울였던 노력보다 더 많은 노력을 이제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만들기 위해, 더 나아가서는 이 법의 올바른 시행과 감시를 위해 기울어야 할 때이다.
첫 번째 과제는 지방자치단체에서의 저상버스 도입을 위한 계획 수립과 노력이다. 저상버스 도입은 지방분권에 따른 지방정부의 사업이다. 따라서 아무리 이동편의증진법에서 지방자치단체의 계획수립을 의무화하고 저상버스 도입을 의무화했다고 하더라도 지방정부의 사업순위에서 밀린다면 도입에 상당한 차질을 빚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지방정부의 고유의 권한이므로 지방정부가 이를 등한시할 경우 국가 차원에서 강제화 할 수 있는 방법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지방정부에서 저상버스를 보다 적극적으로 도입할 수 있도록, 또한 이동보장 정책사업을 우선순위에 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지방자치단체의 노력과 지역 단체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두 번째 과제는 예산 지원의 현실화이다. 예산지원을 의무화하는데는 성공했지만 여전히 과제는 남는다. 저상버스에 대한 지원이 균형발전특별회계사업에 속하기 때문이다. 현재 균형발전특별회계사업의 경우 국고 및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분담률은 50대 50이다.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에서 요구하지 않을 경우 국고 지원이 어려운 것이 맹점이다. 문제는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능력에 따라 50%의 지원만으로는 저상버스 도입이 어려운 지방자치단체도 있다는 점이다. 이에 해당하는 지방자치단체는 당연히 국고 지원을 요청하지 않을 것이 예상된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능력에 따라 차등지원 하는 방안이 반드시 모색되어야 한다. 서울과 같은 지방자치단체는 50%의 지원만으로도 충분하겠지만, 보다 재정능력이 어려운 지방자치단체의 경우에는 70% 혹은 80%까지 지원할 수 있는 길이 열려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 과제는 장애인 당사자 및 시민의 참여 통로의 확보이다. 장애인이동정책위원회가 반영되지 않음으로써, 이동편의증진법에 있어서 장애인 당사자 및 시민이 참여하고 감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졌다. 물론 이동편의증진법에서도 지방의 이동편의증진계획수립 및 지방도시교통정책심의위원회를 통해 장애인 및 시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이를 통한 참여 및 감시활동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참여방법 및 감시와 모니터활동을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 조례 제정 등을 통해 보완할 필요가 있다.
네 번째 과제는 다른 법률과의 관계이다. 이동편의증진법은 법의 성격상 편의증진법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비록 이번에 편의증진법의 내용 중 보행시설 및 교통시설에 관한 부분이 이동편의증진법으로 이관되었지만 이처럼 편의증진법의 내용 가운데 일부분이 이동편의증진법으로 이관된 것은 편의증진법의 상당한 부분이 건설교통부의 업무임을 단적으로 증명해주는 사례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편의증진법 역시 건설교통부 소관으로 이관되어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해 현재 편의증진법에서 일부분 담고 있는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의 정보접근권의 보장 등에 대한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또한 현재 장애계에서 제정을 요구하고 있는 장애인차별금지법과의 관계 역시 떼어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이동편의증진법에서는 장애인이동정책위원회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공대위에서 이 부분을 끝까지 요구하지 않은 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제정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즉,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에서 마련한 장애인차별금지및권리구제등에관한법률안에서는 대통령산하에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를 두도록 하고 있는데, 공대위안에서 국무총리산하에 두도록 요구하고 있는 장애인이동정책위원회와 역할에 있어서 공통되는 부분이 많았던 것이다. 장애인과 관련된 위원회를 많이 만들 수 없는 현실을 감안할 때 만약 한 개의 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면, 그것은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가 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장애인이동정책위원회를 보류한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이다. 따라서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반드시 제정되여야 함은 물론이고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가 반드시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이동편의증진법을 보다 강력하게 시행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동편의증진법의 제정은 분명히 장애인의 권리 운동에 있어서 하나의 큰 사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법의 제정에만 의의를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법의 제정이 아니라 이를 통한 실질적인 이동권의 보장이며, 법의 올바른 시행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우리 모두의 또 하나의 과제이기도 하다.
글 배융호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 정책실장 장애인이동보장법률입법추진공대위 공동대표)
*글쓴이의 의사에 따라 장애인을 그대로 표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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