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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05 , 장애계를 전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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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05, 장애계를 전망한다(1)

  2004년 장애계는 그야말로 다양한 이슈와 가열찬 투쟁으로 후끈, 달아올랐던 한 해였다. 그 중심에는 장애우의 교육권, 이동권 투쟁이 있다. 또한 온 장애계가 마음을 모으고 있는 「장애인차별금지및권리구제등에관한법률」제정과 중증 장애우를 주축으로 하는 당사자주의와 자립생활, 장애연금도 있다. 그리고 시설민주화 투쟁으로 대표되는 정립회관 사태, 총선, 성담론까지.
모두 열거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힘차게 달려왔다.
그렇지만 2004년은 여전히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숨통을 조였던 한 해였다.
신자유주의와 신보수주의의 거센 물결 속에 정부는 예산을 이유로 그나마 장애우들이 피부로 느끼고 있는 복지시책부터 대거 축소했다. 최근 엘피지 지원축소를 비롯해 고용장려금 축소, 대책 없는 사회복지 예산의 지방이양이 그러하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장애우들은 생계가 막막해 굶어 죽고, 시설에서 구타와 감금으로 쥐도 새도 모르게 죽고, 지하철에서 떨어져 죽어나간다.
반면에 여성장애우를 성폭행한 파렴치범은 무죄 선고를 받아내고, 정신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몇 천 만원씩 등쳐먹고, 심지어 가짜 장애우 행세까지 하는 비장애우도 있다.
이렇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장애계는 아이러니하게도 살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만 했다.
그렇다면 2005년 장애계는 또 무엇을 향해, 어떻게 갈 것인가.
작년보다 좀 쉽게 갈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작년보다 더 힘들고 치열해질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리고 현장투쟁을 중심으로 진보를 외치는 새로운 연대체들과 기존의 제도권 내 대규모 단체의 활동이 극명히 비교되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들 했다.
이에 〈함께걸음〉은 2004년 장애계를 바탕으로, 2005년 장애계의 흐름을 전망해 보고자 한다.


 

 

 

 

이제는 욕구가 아니라 권리다

 

이제 2004년은 역사로, 2005년은 ‘현재 진행’이 됐다.
2005년 한 해 장애운동은 또 무엇을 향해,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살아남기 위해 ‘목숨 걸어야’ 했던 2004년이었는데, 2005년에는 조금이나마 천천히, 앞과 뒤 혹은 옆도 돌아보면서 갈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아니오’가 망설여지지 않는다.
정부는 작년부터 고용장려금 축소를 신호탄으로 아무런 대안도 없이 각종 복지 정책을 대폭 삭감하고 있다. 장애계가 참여정부에 대해 혹시나 하는 기대를 버린 지는 오래됐고, 이제는 국회의원조차 암흑기라고 말할 지경이다.
그러고 아직 장애계에는 역사 속으로 넘기지 못한 과제들이 아직 너무 많다.
이에 2005년 장애계에 불어닥칠 새로운 흐름들을 전망해본다.

전망1 다양한 주제별 장애운동 강세

  2004년은 봇물이 터지듯, 장애우 당사자들의 욕구가 쏟아져나온 한 해였다.
물론 장애운동사 자체가 당시 장애우들의 요구를 반영하기 위해 노력해온 과정이다.
그러나 2005년, 장애우들의 욕구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현 장애운동은 과거와는 다르다.
2000년 이후 장애계에 자립생활이념과 당사자주의가 강타하면서 장애우들은 자신의 욕구를억압하고 있는 사회의 차별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장애우들은 자신의 욕구를 거침없이 드러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단체를 만들었다. 이렇게 같은 욕구를 주제로 뭉친 단체들은 교육권, 노동권, 이동권, 자립생활, 장애연금, 등을 중심으로 각 영역에서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김정렬 소장은 “현재 당사자 요구운동으로 진행되고 있는 주제별 운동방식은 더욱 확산될 것”이라며 “당사자주의가 힘을 받으면 받을수록 의제 생산력은 더욱 활발해져 주제도 세분화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리고 한국DPI 김대성 이사는 “80년대 중반 이후 20여년 장애역사상 최대의 욕구분출 상황”이라며 “이는 우리 사회의 정치상황과도 맞물려 있다. 과거 군사정부에서 국민의 정부, 그리고 참여정부로 넘어오면서 정치적인 의사표현이 점점 더 가능해지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진단했다.
한국뇌성마비장애인연합 김주현 정책교육팀장은 2004년 이후 특히 장애우들의 욕구가 급격히 뿜어져나오고 있는 이유로 ‘총선’을 꼽았다. 김 팀장은 “과거에는 장애우 단체들이 국회의원을 만나기도 어려웠기 때문에 우선순위로 집약된 사안을 가지고 장애계 대표 몇몇이 만나는데 그쳤다. 그런데 2004년 총선으로 장애계의 요구를 대변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받는 장애우 당사자 국회의원이 탄생했다. 그러면서 장애계의 요구들이 검증되지 않은 상태로 곧장 국회로 전달되고, 언론을 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장애우 당사자들의 욕구를 바탕으로 하는 다양한 주제별 운동은 당분간 주요한 흐름이 될 전망이다.
특히 전동휠체어의 대중화, 「교통약자의이동편의증진법」 제정으로 이동권에 대한 인식개선과 편의시설의 확충, 실시간 정보공유의 확산 등 물리적 환경 개선으로 중증 장애우들이 더욱 사회진출은 빠르게 이뤄질 전망이다.
이제 분명 존재했지만 숨겨졌던 중증장애우들의 욕구분출은 막을 수 없으며, 또 그래서도 안된다.
이러한 장애대중의 욕구를 바탕으로 확산되는 다양한 운동에 대해서 장애계는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과정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반면에 아직은 충분히 조직화되고 정리되지 않은 연대들이 경쟁적으로 생기고 있고, 터져나오는 이슈들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에 대한 우려도 있다.

전망2  일상에서의 차별, 더 이상 참지 않겠다

 
현재, 욕구를 바탕으로 한 주제별 운동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일상에서의 차별을 인식하고, 그 경험들을 운동의 내용으로 끌어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장애계에서 일고 있는 차별에 대한 저항은, 과거 정권의 탄압에 대한 저항 일색에서 벗어나, 장애우들이 생활 속에서 경험한 차별에 근거를 두고 있다. 때문에 같은 경험을 한, 더 많은 장애대중에게 강한 설득력으로 접근하고 있으며, 이들의 자발적 참여를 가속화 시키고 있다.
이에 대해 이동권연대 박영희 공동대표는 “그동안 장애 관련 정책이 장애우 당사자들의 공감을 사지 못했던 것은 이들의 피부에 와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 장애관련 정책은 경증 장애우, 전문가 중심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최근 사회로 나오기 시작한 중증장애우들은 거리감을 느끼는 것이다. 따라서 중증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생활에서 겪은 차별을 바탕으로 하는 이러한 운동의 흐름은, 중증장애우들이 더 많이 사회로 진출 할수록, 더 강력해질 것이다”고 말했다.
이를 대표하는 2004년 이슈가 바로 이동권, 교육권이다.
특히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연대회의’(이하 이동권 연대)는 2004년 12월 마지막 날, 「교통약자의이동편의증진법」을 국회 본회의에 통과시켜, 장애계에 한줄기 극적인 희망의 빛을 쏘아 올렸다.
이동권 연대에 따르면 「교통약자의이동편의증진법」은 건설교통부가 제안한 법안 이름으로 정해졌고, 내용적으로는 정부안과 현애자 국회의원 발의 안으로 조정됐다고 한다.
그러나 내용면에서는 이동권 연대가 주장한 요구들이 많이 포함되었는데, 특히 이동권의 명시와 저상버스 의무화가 관철됐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크다.
이에 대해 이동권 연대 박경석 공동대표는 “이동권에 대한 명시와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는 중증장애우들의 이동할 권리를 이제야 사회가 인정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저상버스 의무화에는 ‘예산범위 내’라는 단서가 붙었다. 때문에 앞으로 중앙정부는 물론 지자체를 상대로 지역 특색에 맞는 특별교통수당 등에 관한 조례제정이나 저상버스 도입을 위한 예산확보 투쟁에 나설 것이다.”고 밝혔다.
이동권 연대 박영희 공동대표 또한 “3년 동안 이동권 연대가 싸워 성과를 냈다는 점에서는 성취감이 있지만, 우리가 냈던 ‘이동보장법률’의 또 다른 핵심인 징벌적 손해배상이나 시정청구권이 빠졌다. 이것을 시행령에서 어떻게 녹여낼지, 또 다른 과제가 남았다. 또한 저상버스 의무화는 됐지만, 지자체 예산타령 때문에 우선순위에서 밀릴 것이다. ‘예산 범위 내’라는 단서조항은 아직도 장애우 정책은 돈이 있을 때만 할 수 있다는 정부의 인식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다. 비장애우들은 인식조차 못하는 이동권이, 장애우들에게는 따로 법이 필요한 상황이니, 그 자체가 사회적으로 얼마나 차별이 심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다.”고 밝혔다.
‘장애인 교육권 연대’ 또한 장애운동에 있어서 새 판을 짰다.
‘장애교육 관련 예산 6% 확보’라는 깃발 아래 전국적으로 연대가 조직되어 각 지역에서 교육청을 상대로 성과를 만들어냈다. 이렇게 부모운동이 조직적으로 확산된 것은 장애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러한 점에서 2005년 교육권 연대의 활동은 더욱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리나 아직 헤쳐나가야 할 고비들이 많다. 교육권 연대 김형수 사무국장은 “고등교육을 원하는 부모와 학령기 장애아동의 부모들의 욕구는 다르고, 우선순위도 정할 수 없다. 교사와 부모, 각자 입장에 따라 통합의 수위에 대한 욕구도 다르다.”며 “서로 연대의 경험이 없는 이들이 어떻게 힘을 모으는가가 관건”이라고 전했다.
장애아동의 욕구를 대변하는 부모운동은 결국, 아동들의 사회 진출을 고민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부모운동은 성년후견제나 형사소송법 개정, 노동 및 시설문제, 자립생활 등의 장애문제 전반에 걸쳐 분명, 장애계의 또다른 힘이 될 것이다.


전망3  연대, 형식에서 내용으로

 
장애우 당사자들의 욕구를 바탕으로 하는 주제별 운동은 기존 형식을 파괴하고 있다.
다시 말해 장애계에서 암묵적으로 행해지던 형식적 연대 틀을 깨고 있는 것이다.
90년대 후반 이후, 장애계는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이하 장총)과 한국장애인단체총협의회(이하 장총련)으로 나뉘어져 왔다. 그리고 장애계의 각 단체들은 장총과 장총련이라는 조직을 중심으로 각각 연대해왔다. 위 두 거대 단체는 장애계를 대표해, 장애운동의 우선순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이슈를 리드해왔다.
그러나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위 양 단체의 위상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장총과 장총련이 급격히 변하는 장애운동을 이끌지 못하고, 정부의 각종 복지정책 축소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서 기득권 혹은 관변 단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독립생활연대 윤두선 대표는 “기존 장총이나 장총련의 의사소통 방식, 그러니까 형식적이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방식이 현 장애운동에 있어서 별 도움이 안된다. 이제 현장에 나오기 시작한 장애우들에게는 오히려 괴리감만 준다. 그런데도 위 단체들은 이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지체장애인협회 또한 지체장애우들 위에 군림만 하려고 하는 고압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경증이든 중증이든 지체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새로운 형식의 연대를 필요로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현 장애운동에서 ‘연대’는 이제 더 이상 장총이냐 장총련이냐를 선택하는 의미가 아니다. 형식이 아니라, 운동의 주제나 내용에 따라서 장애관련 단체들이 흩어지고 모인다. 2004년 한 해를 뒤덮었던 이동권 연대가 그렇고, 교육권 연대, 장애인차별금지법추진연대, 성년후견제추진연대 등이 그러하다.
특히 이동권 연대와 교육권 연대가 힘을 합해 조직한 ?장애인 등의 이동보장법률 제정과 장애인 교육예산 확보를 위한 공동농성단?의 연대는 가히 장애계의 새로운 연대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망4 ‘진보’, 장애운동의 또 다른 방점
2005년 장애계를 전망하는데 있어서 현 상황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진보?와 ?보수?에 관한 논쟁이다.
장총이나 장총련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장애대중의 욕구를 최우선으로, 현장에서 다양한 이슈 파이팅을 했던 단체들이 두각을 나타내면서, 진보와 보수에 관한 논쟁은 내년에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장애계에 불고 있는 새로운 ‘진보’에 대한 요구는 이제 태동기여서 아직 무엇이라고 정리하기에는 어렵다. 각자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는 진보에 대한 내용 또한 다르다.
이동권 연대 박경석 공동대표는 진보에 대해서 “체재내화 되지 않는 것, 자본의 논리에 수긍하지 않는 반자본의 형태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 “장애문제에서 보면 자본의 효율성, 속도에서 중증의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소외되고 배제될 수 밖에 없다. 효율성이나 속도가 바로 자본이 중시하는 가치가 아니겠는가. 이런 자본의 논리를 인정한다면 중증 장애우들은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상실할 수 밖에 없다. 좀 남는 자본의 덕으로 시설이나 복지 서비스가 좀 괜찮아져 삶이 그나마 나아질 수는 있을지 몰라도, 자본의 논리 안에서는 중증장애우들은 아무런 쓸모없는 인간에서 벗어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장총의 김동범 사무처장은 “현 장애계에서 진보는  이미 대세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현 장애계를 대표하는 장총과 장총련에 속하지 않은 신흥 장애운동 진영으로부터 부는 바람인 것 같다. 이 운동진영들이 뭉치기 위해서는 뭔가 새로운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동의가 잘 안되기는 하지만, 어쨌든 기존의 단체들을 보수로 몰고, 진보라는 이름으로 모이는 것 같다.”고 밝혔다.
한국 DPI 김대성 이사는 “현 장애계는 극좌적인 운동방식과 보수적 운동방식으로 갈라져 있다. 극좌적인 운동은 노동자나 농민 계급이 정권을 장악해야 장애운동도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기본으로, 이미 잘 짜여진 노동운동을 장애운동에 접목하고 있다. 반면에 보수적 운동방식은 전체 장애판의 문제 해결보다는 힘의 논리를 중시한다. 이들은 숫자가 많으면 이들의 요구가 장애판의 요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단체의 생존과 세 불리기에 열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뇌성마비장애인연합 김주현 정책교육팀장은 “자분주의 사회구조를 인정하는데서 시작하는 장애운동이 있는가 하면, 사회변혁을 꿈꾸는 장애운동도 있다. 2005년도에는 진보적 성향의 장애운동이 새로운 흐름이 생길 것이다. 과거에는 이슈를 권력을 가진 비장애우들 혹은 경증 장애우들이 만들어냈지만, 이제 이슈의 중심에는 중증 장애우의 욕구가 있다. 이를 중심으로 이제 장애계는 장애우와 비장애우 구조가 아니라, 진보와 보수의 구조로 갈 것이다.”고 전망했다.
현재 ‘진보’를 주장하고 있는 운동진영들은 과거 장애운동을 주도했던 주체들과는 좀 다르다. 제 3그룹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이 진영들은 과거의 운동주체보다 더 중증이고, 엘리트가 아니며, 제도권도 아니다. 이들은 자기경험을 바탕으로 밑바닥에서부터 모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그동안 법과 정책에 몰두해 온 운동방식이 장애대중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어렵게 해 기층 장애우들의 욕구를 제대로 반영하고 못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진보를 외치며 출범했던장총이나 장총련이 기득권 단체로 군림하면서 보수화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쨌든 제 3그룹이라고 불리우는 작은 단체들의 연대가 작년 한 해 굵직한 성과들을 내면서 이들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장애계는 2005년, 진보를 외치고 있는 제 3그룹들이 또 다른 판을 짤 것인지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다.

전망5  진정한 ‘장애우 당사자’ 누구인가
2004년 다양한 이슈에 밀려 주춤했지만, 중증장애우 중심의?당사자주의?와 ?자립생활?은 여전히 장애계의 뜨거운 감자다.
 자기결정권,  역량강화,  소비자주권주의를 골자로 2000년대 초반 장애계에 불어닥친 당사자주의.
그러나 장애계에는 아직 ‘진정한 장애우 당사자란 누구인가’  정리하지 못한 상태다. 하지만 ‘당사자주의’는 2004년의 두 가지 사건으로 이에 한 가닥을 잡기 시작했다고 보여진다.
두 가지 사건은 바로 정립회관 사태와 교육권연대의 부모운동이다.
이완수 관장의 임기연장 의혹에서 비롯된 정립회관 사태는 회관 측의 조직깡패 동원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아직도 한 치 앞을 전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립회관 사태는 장애계에 시설의 민주화라는 화두를 던지며, 사회복지 노조에 대한 새로운 인식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정립회관 측과 ‘정립회관 민주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정립회관 공대위) 양 측 모두 장애우 당사자를 주장하면서, 장애계의 ‘당사자’ 고민에 새로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다시 말해 장애가 있는 사람만을 당사자로 규정했을 때 오는 한계에 부딪힌 것이다.
그리고 장애계는 부모가 중심이 된 교육권 연대의 활동을 보면서, 과연 부모를 당사자라고 할 것인지, 다시 한번 혼란에 빠졌다.
이에 대해 독립생활연대 윤두선 회장은 “이제 장애계에서 당사자에 대한 논란은 장애의 유무를 벗어나 그 사람이 우리 사회에서 장애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로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며 ?단순히 장애가 있는 사람이 당사자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장애문제, 장애에 대한 차별을 인식하고 이에 저항하는 사람이 당사자”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이동권 연대 박경석 공동대표는 “이제는 장애우 당사자주의에 대해서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현재의 장애우 당사자주의는 ?장애우 당사자?라는 말을 통해서 단체와 단체, 혹은 보건복지부를 향한 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단체의 알력을 위해서 장애우 당사자주의가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현재 장애우 당사자주의는 현장에서 장애우들을 대상화 시켜왔던 비장애 사회복지 관련 전문가들에 대한 적개심의 수단이 되어, 그 쪽으로 퍼부어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특수교사나 사회복지사들도 어차피 사회복지 구조내의 보수성에 의해서 자신들의 노동자성도 상실한 것 뿐이다.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문제로 치고 들어가고 그 속에서 장애우 당사자주의를 외치고 있으니 안타깝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박 대표는 “2005년에는 작년부터 투쟁해 온 교육의 문제나 노동, 자립생활, 활동보조인 등의 문제를 현장투쟁으로 받아 안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장애우 당사자주의나 전반적인 장애운동의 방향을 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투쟁을 통한 조직과 개인의 역량을 강화시켜 정부와 대응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장애우들을 무시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며 ?진정한 장애우 당사자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진보와 보수의 명확한 구분을 통해서 장애우 당사자 개념을 정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장애우의 자립생활 관련 사업도 2005년에는 더욱 힘 받을 전망이다.
그동안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서울시가 개별적으로 자립생활 관련 사업들을 해왔다. 그런데, 2005년도에는 보건복지부가 3년동안 시범사업으로 총 15억(국비 6억, 지방비 9억)을  전국 10개 자립생활 관련 단체들을 지원할 예정이다.
한국장애인뇌성마비연합 부설 장애인취업센터 김재익 소장은 “이제 자립생활도 장애복지 한 분야로 인정받았다”고 평가하면서 “그러나 아직 자립생활 단체들이 재정적으로 너무나 열악해 이 사업을 따내기 위해 내년 상반기에는 관련 단체들 간의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망6 지방분권, 장애계의 득(得)이냐 실(失)이냐
2004년 7월, 정부는 「지방분권특별법」을 근거로 국고보조로 운영되는 533개의 사업(약 12조 7천억) 중에서 163개 사업(약 1조 1천억)을 지자체로 이양했다.
보건복지부의 67개 사업(약 5천 959억원)도 지자체로 넘어갔다. 이 67개 사업 중에서 장애우 관련 사업이(24개, 1천 760억원)가장 많다. (함께걸음 2004. 10월호 참고)
게다가 지방교부세 형태로 지자체로 이양돼,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적절한(?) 곳에 쓸 수 있게 됐다.
이에 지역주민의 요구에 민감한 지자체 장의 손에 좌지우지될 장애 복지를 우려해 장애계가 유예기간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소용없었다.
당장 올 해 1월, 장애계에도 어쨌든 지방분권의 시대가 시작됐다.
이제는 지역의 복지 내용은 물론 그 수위까지 지자체별로 모두 달라질 것이다.
예산집행권을 가지게 된 지자체가 장애관련 정책을 얼마나 실행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장애와 관련된 지역주민의 극심한 님비현상 앞에 지자체가 무력할 것이라는 예측은 쉽게 된다. 이미 2005년 예산편성에서 예측은 적중하고 있다.
이하 장총 이문희 정책실장은 “사회복지의 지방분권은 지역의 특성에 맞는 지역복지를 한다는 것에서는 의미가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그러나 노인이나 아동에 비해 사회적 편견이 심한 장애 관련 복지는 그야말로 위기다. 벌써 광주나 제주를 비롯한 지자체들이 2005년 장애관련 예산을 20~30% 축소했다. 예산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된 지자체는 지방경제 자립도를 높이기 위해 경제개발 논리를 앞세우고 있다. 경제가 잘되면 사회복지도 잘될 것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복지부는 예산 집행에 대한 기준이나 대안 없이 지자체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참여정부라고 기대했더니, 박정희 정권과 뭐가 다른가.”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장총의 김동범 사무처장 또한 “장애우 당사자주의에는 소비자주의나 자기결정권으로 표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소비자주의적인 측면에서 단체를 봤을 때, 단체들은 아마 상당히 많은 여건이 변화될 것이다. 특히 지방으로 사회복지 예산이 넘어가면서 정책 소비자로써 단체들의 지자체 복지정책에 대한 평가가 중요한 역할로 대두될 것이다. 그러나 장애계가 정부의 정책 평가나 모니터 등에 함께 논의를 해 본 적이 없다. 그러다보니 정책에 대해서 일회성으로 대응해 온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2005년 사회복지 예산이 지자체로 넘어가면서 실질적으로 복지에 대한 지자체의 역할도 강화됐지만, 지자체들이 이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을 경우 이들을 제어할 수 있는 방법들이 별로 없다. 물론 가장 직접적인 방법으로는 현장투쟁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통제하기 위해서는 지자체끼리 서로 경쟁하게 하고, 정보를 공개토록 해서 장애우들이 비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의 장애우 관련 단체들은 각 정책을 분석해, 장애우들에게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밝혔다.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이 서울 및 경기도에 집중되어 있듯이 장애계도 예외는 아니다.
장총이나 장총련, 한국여성장애인연합 등 기존의 장애관련 연합체들이 각 지역에 회원단체를 가지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단체의 역량은 중앙에 몰려 있고, 각 지부들은 중앙의 인지도는 물론 사업 내용이나 혹은 재정까지 기대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2005년에는 지역의 장애단체 역량이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지자체의 장애관련 정책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조례제정운동이나 지역복지 인프라 구축, 지역간 연대 등 과거와는 분명히 다른 지역의 장애운동이 필요한 상황이 된 것이다.

글 최희정 기자

 


특집  2005, 장애계를 전망한다(2)

 

진보를 향해 깃발을 꽂다

 

 

 

함께걸음은 2005년도 장애계를 전망하고자 좌담을 마련했다.
2004년 12월 24일 장애인총연합회에서 진행한 이 좌담에는 장애운동의 중심에 있는 김동범(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사무처장), 박경석(노들야학 교장, 장애인이동권연대 공동집행위원장), 박숙경(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 팀장), 손복목(한국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이 참석해 얘기를 나누었다.

 

 

 

아래로부터 시작되는 또 하나의 흐름, 장애운동, 대중과 함께 할 수 있을 것인가
박숙경 : 2004년에는 현장을 중심으로 교육권이나 이동권 연대의 활동이 두드러졌는데요. 이렇게 현장을 중심으로 하는 진보세력들이 새로운 진영을 형성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제도권 단체들이나 이들이 만든 협의체들이 뭔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회의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이들은 차별에 대한 문제들이 기존의 정책이나 대안 중심의 운동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욕구에 기반한 운동들이 2005년의 주요한 흐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당사자 운동이 안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욕구에 기반한 운동들을 중심으로 가되, 사회적으로 그것을 좀 조정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2004년에는 굉장히 다양한 욕구들이 조정되지 않고 나타났는데요, 2005년에는 이를 조정하고자 하는 흐름도 있을 겁니다.
박경석 : 2005년에도 교육권 투쟁이나 이동권 투쟁을 열심히 할 겁니다. 물론 이 투쟁은 앞으로도 욕구들을 기반으로 가야 되고, 이들을 조직화해서 현장과 직접 연대하는 방법으로 강화시켜 갈 겁니다.
그리고 조직의 문제를 따지자면, 이 자리에 장총과 장총련에 속한 분들이 계시지만, 아무튼  양대 조직은 현장을 단순히 이벤트로 활용해온 측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장애운동 조직의 상층부에 있는 사람들이 정부와 파트너 쉽을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현장을 활용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것을 관변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장애 대중들의 민주적인 참여, 개인이나 조직의 역량 강화를 제한했다는 생각이고요. 따라서 이것을 깨쳐나가야 할 과제가 조직적으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 시점에서는 개인이든 단체든, 아래로부터의 직접적인 민주주의 제도를 통한 연대체 건설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현 장애운동은 돈 문제를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인데, 정부로부터 허가 받은 사단법인들은 생존 문제로 어쩔 수 없이 정부에 종속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정부에 재정적으로 독립되어 있는, 독립할 수 있는 운동의 연대체도 필요합니다.
손복목 : 최소한 2005년도 장애운동을 논할려면, 내부를 향한 냉철한 비판이 있어야 합니다. 다양한 전술을 구상했다는 것과 장애운동이 인권이나 권리측면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올해의 성괍니다. 그러나 실천적인 면에서는 너무나 다른 형태로 드러나고 있죠.
2004년 진보적인 몇몇 이슈들은 나름대로 전략과 전술이 있었지만, 사실 제도권 단체들은 그것이 부족했다고 보여집니다. 그러니 당장에 나타나는 문제들을 쫓아갈 수 밖에 없었죠. 이는 장애 내부에서 인권에 대한 중장기 전략에 대한 합의가 없기 때문에 드러난 한계입니다. 따라서 현재 진보운동을 이끌고 있는 리더그룹의 자기반성도 필요합니다.
저는 제도권 단체들이, 제도권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자기 운동성이나 자기 존재의 의미에 대한 의식들이 결여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2005년도에도 복지정책들은 대거 축소될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하지만 우리 내부에서 이에 저항하기 위한 대안들을 충분히 고민하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현장 투쟁 중심인 진보 영역과 제도권 영역에서 각자의 역할과 기능에 좀 더 합의하고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진보진영에서 할 수 없는 것들을 제도권 단체나 개인들이 만들어 낼 수도 있는 거고, 또 이를 받침으로 현장투쟁을 더 강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장애 문제가 몇 십년 안에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우리 안에서 좀더 장애운동에 대한 방향, 우선순위, 투쟁방식 등을 합의하고 조정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장총 김동범 사무처장
김동범 : 내년에는 무엇보다도 장애계가 더 혼란스러워 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어들로 정리해보자면, 아마 ?지방, 차별, 연대, 진보?가 큰 축이 되지 않을요. 특히 여기서 내년에는 싸움의 상대가 지자체가 될 텐데, 곳곳에서 전선이 형성되고 갖가지 사안과 이슈들이 퍼져나갈 것입니다. 그러면 운동경험이 축적된 중앙에서 어떤 역할을 해줘야 할지 고민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2005년에는 차별이라는 용어로 대두되는 법제화하려는 노력들이 성과를 내는 시기가 아닐까합니다. 물론 장애계에서 이를 위한 노력들을 계속해 왔지만, 이것이 입법화되는 과정에서 논의가 더 활발해지겠죠.
그리고 2004년을 기점으로 장총이나 장총련이라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내용중심의 연대가 조직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이슈도 터져나올 것이고, 또 사안별로 연대단위는 훨씬 다양해질 겁니다.
그리고 장애계에서도 진보라는 흐름은 이미 대세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사회가 발전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장애 진영도 그 쪽으로 가는 듯 합니다. 문제는 이런 것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추구되어야지 독과점식으로 하나의 방법으로만 해결하려고 하면 안된다는 겁니다.
저는 너무 여러 곳에서 전선이 형성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2005년에는 더 다양한 이슈와 연대들이 생길 것이라고 예상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러한 것들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서로가 아우르려는 노력도 있어야 할 겁니다.

무엇이 진정한  ‘진보’인가
함께 : 2004년을 넘기면서 현재 장애계 내부에서는 진보와 보수에 관한 논란이 많습니다. 이는 분명 2005년의 새로운 물꼬를 틀 것이라고 여겨지는데요, 하지만 현 상황에서 각자가 생각하고 있는 진보와 보수에 대한 정의는 서로 다른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손복목 : 저는 장애우의 권리와 요구를 내놓고 투쟁하느냐, 안하느냐로 진보와 보수를 가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장애대중이 원하는 요구에 대해서 진보든 보수진영이든 아직 대안을 못 내놓고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죠. 따라서 어느 진영이든 안을 내놓고 서로 합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장애운동 자체가 진보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숙경 : 현재 장애관련 단체들을 진보냐 보수냐로 나누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는 궁극적으로 장애대중의 욕구에 맞는 유익한 방식이 진보라고 생각합니다.
일반 시민사회에서도 진보냐 보수냐 보다는 국민에게 이로운 것이라면, 국민들의 선택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한 맥락에서 장애판이 구조적으로 진보여야 한다는 것은 대국민적인 설득을 얻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진보냐 보수냐를 논하기 전에, 사람들의 욕구, 특히 장애대중들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담아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렇지만 저는 장애계가 현 상황에서는 투쟁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것, 이동, 교육, 노동의 권리조차 장애우들에게는 보장되지 못하고 있잖아요. 저는 현장에서 터져나오는 다양한 욕구들을 직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렇게 욕구가 갑자기 분출되는 과정이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우리 사회에 분명히 존재하는 문제니까요. 이것을 혼란이나 분열의 문제로 받아들이기는 보다는 다양한 표현과 방식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다만 우리 사회가 정권에 의해서 오랫동안 획일화된 문화, 하나의 의견을 내야한다는 것에 익숙해져 있어서 불안해하는 것이죠.
김동범 : 저는 장총, 장총련 외에 새로운 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운동진영들이 결집하기 위해서 뭔가 새로운 대안을 찾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대안으로 당사자를 들고 나오기에는 좀 해묵은 것 같고, 제가 볼 때는, 그 논의에 동의하기에는 쉽지는 않지만, 기존의 단체들을 보수로 몰고 진보라는 이름을 들고 모이는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박경석 : 제가 생각하는 진보는 자본의 논리에 수긍하지 않는 반자본의 형태를 지향하는

                        ▲이동권연대 박경석 공동대표
것입니다. 이를 장애문제에서 보자면 자본의 효율성, 속도라는 것은 중증의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소외되고 배제시키는 것입니다. 효율성이나 속도는 자본이 가장 중시하는 가치잖아요? 이런 자본의 논리를 인정한다면 중증 장애우들은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상실할 수 밖에 없죠. 좀 남는 자본의 덕으로 시설이나 복지 서비스가 좀 괜찮아져 삶이 그나마 나아질 수는 있을지 몰라도, 자본의 논리 안에서는 중증장애우들은 아무런 쓸모없는 인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보냐 보수냐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어떤 방법으로 차별에 저항할 것인가
김동범 : 우리 사회에서 진보와 보수는 그야말로 가치철학에 대한 문제일 것입니다. 이것을 어떤 방식으로 펼치느냐에 따라 차이가 나겠죠.
투쟁은 자기를 나타내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 중의 하나이며 절대 배제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간혹 투쟁이라는 것이 폭력에 대해 폭력을 행하는 것처럼 비춰질 때는 사회적 동의를 얻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따라서 투쟁으로만 쟁취하려고 해서는 곤란하죠. 운동차원에서 목표가 같다면 여러 방법이 함께 사용되야 합니다. 제가 볼 때는 투쟁만능주의만이 문제 해결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투쟁도 문제 해결의 한 수단이죠.
그리고 이제 내부를 가르는 것은 그만했으면 합니다. 장애운동에는 그동안 편 가르기가 계속 있었거든요. 법인과 비법인의 구도로 한참 내부적 갈등을 겪었고, 당사자와 비장애우의 그룹도 지금 갈등을 겪고 있는데, 이제는 거기에 사상적으로 진보와 보수로 나누자고요? 이러한 것들은 상당히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장애계처럼 이렇게 극명한 대립 구조로 사회에 알려져 있는 분야는 별로 없거든요. 여성계, 노동계도 다 갈라져 있지만, 외적 활동으로는 잘 못 느끼잖아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박숙경 팀장
박숙경 : 장애계에서 장총과 장총련의 대비 구조는 이미 기정 사실이죠. 어떤 면에 있어서는 이러한 구조가 긍정적인 작용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부는 어떤 사안에 대해서 장애계 내부에서 합의해 와라는 식의 태도로 이를 이용하려고도 합니다.
어쨌든 공동의 목표가 생겼을 때는 같이 전략적으로 연대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내부에서 파이를 쪼개는 데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시 말해 더 큰 파이를 획득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진 파이를 쪼개기 위해서 끊임없이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거 아닌가요?
이런 현상의 시발점을 유추해보면, 최근의 현장투쟁 때문은 아닙니다. 제도권 단체들이 전략적인 공통의 목표 없이, 그 때 그 때 떨어지는 사안 혹은 기획에만 치중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것이 장애대중들에게 부합되지 못하고 단체끼리의 상호 경쟁으로만 치달았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90년대 들어서 장총과 장총련의 역할을 컸죠. 하지만, 좀 더 바닥의 문제들에 대해서는 한계를 보였습니다. 그리고 현재 장총과 장총련이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있는 다양한 단체들을 리드하지 못하고 점점 끌려가고 있다는 현 상황이라는 거죠.
그에 비해 바닥의 상황은 너무나 절실하고 분명히 문제가 있는데, 우리끼리 나눠지면 안되니까 거기다 대고 참으라고 한다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것들이 분출됐을때, 이것들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 내부가 어떻게 의사소통할 것이냐가 중요한 지점인데, 현 장애계에서는 소통을 위한 노력이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가령 현장투쟁에 장총 이나 장총련도 같이 할 수 있고, 저는 이렇게 됐을 때 기존단체들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출발한 현장운동들이 이들과 함께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장총과 장총련이 서로 의사소통을 잘 하고 있느냐는 거죠. 저는 그렇지 않다고 보거든요. 잘한 것은 잘한 것 대로, 못한 것은 또 못한만큼 명확하게 평가하면 하는데, 서로 상대방을 까내리는 방식으로 가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손복목 : 저는 현 우리 사회 구조에서 현장투쟁은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생각이 들고요, 장애우들의 현장투쟁은 무조건 지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제도권 내에서도 투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단순히 정책적 파트너 쉽에서의 조율 문제는 아닙니다. 장애우 정책과 권리실현라는 것은 장애계가 정치를 통해서 실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현장에서 만들어질 수도 있고, 제도권 단체들의 투쟁일 수도 있는 거죠. 다만 제도권 내의 투쟁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장애인복지발전 5개년 계획이 진정 장애계의 요구냐, 그건 아니라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제도권의 전략, 전술이 없다고 평가를 하는 겁니다.
저는 현장투쟁과 제도권 투쟁은 병행될 수 밖에 없으며, 그 속에서 제도권 내의 투쟁을 어떻게 강화해 낼 것이냐는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박경석 : 제 얘기 중에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요, 진보냐 보수냐를 선택하는 것은 장애계를 가르자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같이 갈 수 있으면 좋죠. 그러나 우리가 실질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느냐는 거죠. 마음이야 다 뭉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죠. 과연 2005년에는 모두 모여서 아름답게 될 수 있을까요. 그렇지 못할 겁니다.
현장투쟁에 관한 이야기들도 하시는데, 저는 개인적으로는 투쟁이 다양한 방식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부분에서 좀 차이가 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정책적인 다양한 방식과 평가, 토론회나 공청회, 어쨌든 아름답게 더 꾸밀 수 있는 방식으로 운동한다고 해도 우리 사회에서 장애우라는 힘들이 축적될 수 있을까요. 저는 일정정도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결정적으로 현장을 통해 정부와의 힘의 관계를 바꿔놓지 않는 한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이 투쟁만능으로 평가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오히려 사랑만능, 봉사만능이던 것부터 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진보냐 보수에 관한 문제는 갈라져야할 당위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법인이냐 아니냐, 장애가 있는가 없는가, 전문가냐 아니냐라는 이분법적인 편가르기가 아닙니다. 장애운동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도 진보와 보수는 합니다. 오히려 그동안 장애계가 너무 두루뭉실 섞여 있던 것이 문제죠. 같은 노동운동이라도 어용관변화의 길을 걸어왔던 한국노총와 민주노총은 분명히 다르고 구분되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죠. 그런 부분들은 당연히 갈라져야합니다.

장애운동, 신자유주의 물결에 맞설 것인가
함께 : 2005년 장애계를 전망해보니 2004년에 못지않게 다양한 이슈와 더 치열한 운동이 요구되고 있는 듯 합니다. 게다가 신자유주의와 신보수주의의 강화로 장애계는 점점 힘들어질 것이라고들 하는데요. 오늘 이 자리를 마무리하는 의미로 위의 두 이념적 물결들이 장애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정리를 해주시죠.
김동범 : 이미 신자유주의 물결을 막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자본이 세계적으로 넘나들고 있기 때문에 우리끼리만 우리의 가치를 추구한다는 것은 너무 편협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속에서 삶의 경쟁도 무한대로 치열해질 것이고, 저는 그런 맥락에서 장애운동도 사회가치를 함께 추구하는 쪽으로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운동은 평화운동이 되어야 하고 인간화운동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장애운동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의미에서 사회가치를 함께 추구하는 하나의 축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손복목 : 신자유주의가 뿌리내리고 있는지 정확히 평가를 할 수는 없지만, 사회의 진보 방

▲장총련 손복목 사무총장
향이 어디로 가야하는가에 관한 문제는 더 고민해야합니다. 우리나라의 장애우들이 겪고 있는 현실은 너무나 척박합니다. 이것은 서비스의 양이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장애우들이 사회 참여에 있어 근본적인 권리로 보장받고 있는냐가 더 중요한 문제각합니다.
다만 05년에 우려스러운 부분들은 노무현 정부가 진보를 표방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의 장애우 복지 정책은 과거 보수적인 정권과 별로 다른 점이 없는 상황인데요. 따라서 장애우 당사자들이 주체로써 정책결정에 있어서 참여를 얼마나 보장받을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해질 겁니다. 그 과정이 정말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경석 : 아마 이 부분에서 진보냐 보수냐가 명확하게 갈라지는 것 같습니다. 저도 신자유주의가 막을 수 없는 대세라는 것은 동의합니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에 따라서 살 것이냐, 아니면 박살낼 것이냐, 그 차이가 여기서 보이고 있는 거죠.
인간화, 평화 운동은 물론 중요한 운동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신자유주의를 박살내는 운동과 함께하지 않으면, 이것은 결국엔 얼굴에 화장품을 칠하는 정도의 운동밖에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 평화와 인간화 운동은 단순히 치장거리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겁니다.
신자유주의를 막아낼 수 있는 역량이 아직 장애운동은 부족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명확한 관점을 장애운동 내부에서도 세워야 합니다. 신자유주의가 대세이니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서 장애우들이 일정정도의 떡고물을 받아가는 정도로 타협을 보는 운동은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장애운동이 잘 되고 난 다음에 신자유주의 문제를 생각해야할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신자유주의 반대의 전선에서 장애대중을 조직해야죠. 이는 선후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박숙경 : 신자유주의의 거센 물결 속에 자본의 논리가 강화될 텐데요. 이 안에서 정부는 국민의 사회권은 점점 국가 부담이라는 태도를 취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 있어서 장애운동은 일반 사회운동진영과 같이 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라는 대세를 뒤집을 수 없는 활동가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사실은 자기한테 주어진 당면한 과제를 책임있게 가져가고 바닥에 눈높이를 맞춰 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실천력을 높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 연말연시를 맞이해서 무척이나 바쁘실텐데 이렇게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 해에도 복 많이 받으시고, 장애계 발전을 위해 더 열심히 뛰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진행 정리 최희정 기자
사진 홍여준민 기자

작성자최희정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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