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장애우, 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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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를 가진 장애 청년이 빵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10년 전, 일본 ‘장애인차별과 싸우는 전국공동체연합(이하 공동연)’과 첫 교류로 일본에 갔을 때의 모습이다.
그 곳에 간 한국 사람들은 큰 충격으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보호’대상 또는 ‘시설수용’대상의 모습인 우리 사회의 중증장애우 모습에 익숙한 탓이리라. 정신지체 또는 자폐 등 중증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노동현장에서 일하고 있는지, 어떤 훈련을 받는지, 월급은 제대로 나오는지, 보호고용인지, 출퇴근은 어떻게 하는지, 한국 참가자들의 질문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그 날 한국 참가자 환영식을 정신지체 장애우가 진행했다.
민간주도로 중증장애우 사업장을 만들고, 정부는 사업장에서 꼭 필요한 판로 확보 등 몇 가지를 지원하는 형태의 일본의 중증장애우 사업장. 월급은 일본 대입 졸업자 초임 수준으로 모두가 동일하게 받고, 관리자와 노동자가 따로 있지 않다. 단지 경험을 많이 가진 선배와 후배가 있을 뿐이다. 짧은 설명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본의 장애우와 비장애우가 함께 일하는 중증장애우 사업장 공동체의 모습이었다.(함께걸음 1994년부터 2004년 공동연 관련 기사 참조).
이들과의 만남 10년의 경험이 우리 사회에서 작은 움직임이 일기 시작한지 이제 3~4년. ‘자식보다 먼저 죽지 않길 바라던’ 부모들이 ‘자식보다 먼저 죽어도 괜찮을 것 같은 꿈’을 키우며, 삼삼오오 그룹으로 중증장애우 사업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재활용사업장, 기러기 농장, 세차장, 버섯농장, 커피숍 등 중증장애우들의 일터가 생겨났다. 부모들이 이렇게 용기를 갖게 된 결정적인 정책은 ‘고용장려금 제도’였다. 부모나 관심 있는 사람들이 투자를 하여 사업장을 만들고, 생산성이 적은 부분은 고용장려금으로 대체하며, 중증장애우들이 노동의 꿈을 키웠다. 한 달 한 달 일거리를 만들어내고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을 만들어냈으며, 4대 보험에도 가입했다. 월급을 받은 중증장애우는 그 소중한 돈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이런저런 고민도 하기 시작했다. 월차, 연차 휴가를 내서 여행을 다녀볼 생각도 했다. 그동안 관심 있게 지켜본 사람들에게 술 한 잔을 대접하기도 했다. 어쩌면 결혼하고 아이를 갖는 꿈을 꾸기도 했다. 이제 부모들은 사업장들이 좀 더 안정적으로 운영되기를 바랐고, 어려운 부분은 재투자를 감행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고용장려금이 축소됐다. 모든 꿈들은 당분간 접어야 한다. 그렇게도 가기 싫었던 시설로, 아니면 보호고용 현장으로 가야할 것 같다. 무엇보다도 부모나 중증장애우 노동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사업장을 만들기 위해 이리저리 동분서주하다가 손을 놓고 있다. 중증장애우 일터는 현상유지도 어렵지만, 오히려 막 시작하려던 사람들의 의지마저 꺽어 버렸다.
고용장려금 축소 철회를 향해
축소된 고용장려금 시행시기가 코앞에 닥쳤다. 2003년 말 개정된 고시가 사업장 공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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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장려금 축소 발표 바로 직전, 이 소식을 접한 장애 관련 타 단체는 장애인고용촉진공단을 점거했고, 그곳에서 일정 정도의 타협안이 나왔다. 그러나 타협 지점을 바라보던 중증장애우 중심 사업장들은 ‘고용장려금 축소는 타협할 사항이 아니다’며 크게 분노했고, 이에 대응키 위해 ‘장애인고용장려금축소 철회를 위한 중증장애인사업장공동대책위원회(이하 사업장공대위)’를 조직했다.
3월 첫 준비모임에는 중중장애우사업장 7개 단체가 합류했다. 사업장공대위에는 장애 단체도 없고, 이렇다할 운동조직도 없다. 단지 고용장려금이 사업주에게 크게 도움이 됐던 중증 장애우 사업장 중심으로 문제의식을 가지며, 대책을 논하자고 모였다. 고용장려금 축소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사항이 아니었다. 고용장려금 축소가 정신지체 또는 발달장애우를 중심으로 고용한 장애우사업장의 폐쇄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했기 때문이다. 고용장려금 축소는 일반고용 현장에 진입이 어려운 중증장애우 노동자들에게 그 여파가 훨씬 클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따라서 조직의 목표를 ‘고용장려금 축소 철회’로 정하고, 3월 말, 첫 발대식을 가졌다.
나흘 만에 27개 단체로 확대
사업장공대위 출범 이후 첫 번째로 진행한 사업은 힘을 모으기 위해 장애우를 고용한 모든 사업장에 공대위 참여를 제안하는 것. 그 때까지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를 비롯하여 다른 장애우단체가 전혀 참여하지 않은 상태에 있었다. 공문발송을 하고, 여러 군데 전화를 하는 가운데, 첫 번째로 장애우 단체가 참여하겠다는 연락을 했다. “우리는 장애단체이나, 장애우를 고용한 사업장에 해당한다. 특히 고용장려금 축소는 중증장애우를 고용한 장애단체에도 그 여파가 크다. 우리도 공대위에 참여하여 고용장려금 축소 철회를 요구하겠다”는 요지의 글을 보내왔다. 이어서 장애 자립생활단체도 ?우리는 거의 중증장애우로 구성된 자립생활단체이다. 고용장려금 축소는 우리 자립생활단체 운영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 우리도 함께 하겠다?며 전화를 했다. 이에 관해 기존의 8개 사업장으로 구성된 사업장 공대위는 협의 과정을 통해 장애우를 고용한 장애우단체와 중증장애우중심의 자립생활단체와 함께 하는 중증장애우사업장을 구성하기에 이른다. 공대위 확대 제안 공문을 발송한지, 나흘 만에 27개 단체로 확대되었다. 고용장려금 축소가 장애우 노동에 어떤 여파로 다가올지는 조직 구성 초기부터 실상을 드러낸 것이다.
공대위는 이런 힘을 모아 4월 19일, 그 첫 번째 집회를 개최했다. 고용장려금 축소 규탄대회. 참가인원이 약 100여명의 소수에 불과했지만, 장애우를 고용한 사업주와 장애우, 그 부모 등은 고용장려금 축소 부당성과 오락가락 갈피를 못 잡는 정부 실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규탄대회는 또 다시 대대적으로 언론에 노출되면서 노동부와 청와대의 반응이 접수됐다. 만나자는 것이다.
실천활동, 그리고 이어지는 면담
만남 과정에서 노동부(고용평등국장, 노동부과장 등 5명)는 이미 대표적인 장애단체와 협의를 한 상황이고, 후속조치까지도 합의했기 때문에 고용장려금 축소 문제는 더 이상 논란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만을 고수했다. 반면 청와대(차별시정기획단 김수현 비서관)는 모든 장애노동자에게 차별 없이 그리고 너무 높게 책정된 고용장려금이 문제라며, 중증장애우 중심으로 고용장려금이 차등 지급되어야 함을 제시하여, 노동부에 비해서는 그나마 발전적인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하여 별다른 정책적 진전은 없었다. 고용장려금 관련된 정책결정의 핵심 부처인 노동부가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청와대와 국무조정실, 노동부 사이트를 대상으로 사이버시위를 전개했다. 고용장려금 축소의 부당성을 알리며, 고용장려금 축소로 장애우 중심 사업장들의 폐쇄 위기에 관한 문제들을 계속 알려내는 운동을 펼친 것이다. 이어서 사업장공대위는 고용장려금 축소 문제에 관한 워크숍을 통해 고용장려금 축소의 근본적인 원인을 국가 책임을 방기한 정부가 문제의 원인임을 확인하며, 운동의 방향을 장애노동에 관한 일반 예산 확보로, 운동의 맥을 잡아갔다. 그동안 장애우 의무고용을 이행하지 않은 사업주들이 내는 부담금만으로 장애노동의 전체 예?결산을 집행했을 뿐이고, 정부 차원에서 집행하는 예산은 고작 일년에 10억원 수준을 유지하다가 2004년에야 비로서 30억으로 책정된 것이다. 사업장 공대위는 매주 목요일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국무총리 면담을 요구하며, ?고용장려금 축소 철회와 장애우노동에 관한 일반예산 확보?를 주장하는 집회를 진행했다.
사업장공대위가 이렇게 숨 가쁘게 달려온 데는 이유가 있다. 일년 시한을 남겨두고, 고용장려금 축소 정책이 발표됐기 때문에 사업장공대위가 내건 ‘고용장려금 축소 철회’는 사실상 올 한해 안에 승부(?)를 봐야만 했다. 그리고 사업장공대위의 운동이 향후 노동부가 일방적인 장애우 노동정책을 만들지 못하도록 엄중한 경고를 하는 의미도 있었다.
8월 말에 이르러 운동의 방향을 일반예산 확보만으로 그 방향을 잠시 선회했다. 기획예산처의 2005년 예산 심의 과정에 압박을 가하기 위해서다. 기획예산처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고, 대규모 집회를 구성했으며, 지속적인 사이버시위를 진행했다. 이런 운동의 결과로 일반예산보다 재특이 훨씬 높은 비율을 차지하지만, 일천억원 이상의 예산을 만드는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이와 관련 기획예산처 과장은 “경증장애우 중심의 노동정책이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앞으로는 중증장애우 노동정책 중심의 예산이 배정돼야 한다. 이번 예산안은 그렇지 못해, 일반예산을 확대하는 것은 예산 낭비라 여겨져 재특 부분을 확장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연구를 통한 대안 제시
사업장공대위는 운동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 중의 하나로 연구 사업을 진행했다. 고용장려금 축소가 장애우노동에 미치는 영향과 그 대안을 연구하고 정부에 힘 있게 제안하는 목적에서였다. 국회 단병호 의원실과 사업장공대위가 공동으로 추진한 이 연구는 8월부터 10월까지 고용장려금 축소로 장애우 노동자들의 해고 또는 임금 삭감 등의 내용을 조사했다. 그리고 고용장려금 축소가 중증?여성장애우 노동자의 해고와 임금삭감에 크게 기여(?)했음을 밝혀냈다.
이어서 11월에는 장애우교육예산 6% 확보 및 저상버스 의무화를 향한 공동농성단을 지지하며 사업장공대위 임용옥위원장과 오영철간사의 지지 단식농성도 이어졌다. 또한 국회 우원식 의원의 「장애우고용촉진및직업재활법」개정안에 관한 면담을 추진하였다. 의무고용 미이행 사업주들이 내는 부담금을 오직 사업주을 위해서만 사용한다는 내용(개정안 27조 2)와 관련한 사항이다. 우의원의 입장(고용촉진공단의 운영비와 인건비에 국고를 사용할 수 있도록)을 찬성하며, 법 제 51조 2를 신설하여 공단 운영비와 인건비는 국고로 한다는 조항을 제안하였다. 현재 이 법률은 올 정기국회 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한편 사업장공대위는 중증장애우노동정책 개발을 향한 법개정팀 운영을 목표로 법개정위원을 조직하고 있다.
그리고 사업장공대위는 2005년 1월 말에 일본의 중증장애우의 일터를 방문할 계획을 갖고 있다. 중증장애우 노동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일본의 중증장애우들이 일하고, 임금을 받아, 자신의 삶을 어떻게 꾸려 가는지를 현장 체험을 통해 확인하며, 향후 우리 사회의 중증장애우 노동정책을 만드는 기초 자료로 활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사업장공대위 활동 의미와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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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우리 사회에 중증장애우 노동권에 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켰다. 90년 고용촉진법이 제정된 이래, 99년 장애인고용촉진및직업재활법 개정 과정에서 중증장애우 노동에 관한 화두를 던졌다면, 이번에는 중증장애우 노동 현장을 속속 드러내고, 중증장애우 노동에 관한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연구하고, 제시했으며, 무엇보다도 중증장애우 노동의 중요성을 우리 사회에 알렸다는 점에 그 의의를 둔다.
둘째는 중증장애우 노동자성에 관한 당당한 자기주장이 눈길을 끌었다. 중증의 장애를 가진 노동자들이 “일하고 싶다!”고 분명히 외치고, 스스로 노동자임을 밝히는 시도들이 계속되는 가운데 중증장애우의 노동자성 인정에 관한 논쟁의 불씨를 키우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피플 퍼스트’운동이 우리 사회에도 근접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세 번째는 중증장애우 다양한 노동형태를 밝힌 장애를 가진 사람의 노동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다. 중증장애인은 보호고용 형태로 소위 ‘직업재활과정’을 통해 누군가의 ‘관리’를 받아야 할 존재 인식이 팽배했다. 그러나 이번 사업장공대위 운동을 통해 다양한 노동형태가 소개되면서, 실제로 그곳에서 일하는 중증장애우가 ‘보호’대상이 아닌 ‘당당한 노동자’로서 존재 인식이 가능할 수 있는 단초가 제공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고용장려금은 축소된 그 상태다. 정부는 고용장려금 축소 문제는 더 이상 논의하지 말자고 얘기한다. 또한 더 이상 정책의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 현재 고용장려금 축소 철회는 큰 논쟁거리가 되지 못하고 있다. 사업장공대위도 수면위로 부상한 고용장려금 축소 문제를 더 이상 확장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고용장려금 축소는 반드시 철회되어야 한다. 완전 철회가 안된다면, 적어도 중증장애우를 고용한 사업주에게는 최저임금에 준하는 고용장려금이 차등적으로 지급되어야 한다. 굳이 고용장려금이 아니더라도 고용장려금과 같은 중증장애우의 고용 기회를 획기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정책이 급선무다.
사업장공대위는 노동부 고시 개정으로 바뀌는 고용장려금 정책을 모법에 명시하고자 한다. 적어도 정신지체 등 중증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고용장려금은 최저임금에 준한다는 조항을 신설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려 한다. 또한 공단 운영비와 인건비 등은 국고로 부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조항으로 개정하고자 한다. 사업장 공대위는 이를 비롯하여 보다 중증장애우가 노동할 수 있는 기회 확대와 환경 조성을 위한 정책 개발을 계획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일련의 활동 목표를 향한 조직 명칭도 바꿀 움직임이다. 사업장공대위는 중증장애우 노동에 관한 비상한 관심으로 새로운 운동의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이제 33개 단체로 확대된 사업장공대위가 더욱 그 힘을 모으고 지혜를 짜내어, 한 걸음 한걸음 의미 있는 운동이 진행될 것이다. 이제, 중증장애우가 노동자로서 진정한 의미의 노동권을 확보하며, 노동권 확보를 향한 자기표현에 보다 더 자유로워질 수 있는 그 날을 향해 힘찬 걸음이 시작되고 있다.
글 박옥순(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책실장 / 사진 함께걸음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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