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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장애인, 아직도 세상에서 낯선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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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3살 때 동네 언덕에서 떨어져 걸을 수 없게 된 장애인이다.

어릴 때는 꿈도 참 많았다. 그런데 장애 때문에 학교도 다니지 못하게 되면서, 장애 때문에 취업이나 자영업도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어릴 적 가졌던 그 꿈들이 나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는 걸 하나하나 깨닫게 되면서 나는 인생에 대한 방황과 좌절 속에 삶을 허비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나와 같은 장애인들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결심이 생겼고, 우연히 기독교에서 운영하던 장애인단체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그 속에서 나는 일에 대한 보람과 함께 삶에 대한 자신감을 키워갔고, 사귀어오던 이성과도 결혼을 했다.

그리고 결혼 후 3개월 여가 지나 임신을 하게 되었는데, 문제는 거기서부터였다.

임신을 하기 전까지 나는, 내가 사실 여성장애인이란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그저 장애인이라고만 생각했다. 장애인이라 차별받고 있다고. 하지만 분명 무언가 다른 것이 있었다.

임신 후 입덧이 너무 심해 거의 밥을 먹지 못할 정도여서, 휴직 아닌 휴직을 할 수밖에 없었고, 남편도 하던 일을 접은 채 뒷바라지를 해야만 했다. 그래서 생계지원을 받고자 하는 마음에 찾아간 동사무소에서는 남편이 비장애인이고 언제든지 일할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에 생계지원이 어렵다는 얘기를 들어야 했다.

당시 친분이 있던 남성장애인의 가정을 보면 아내가 비장애인이었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생계지원을 받고 있었음에도 나에게는 여성장애인이란 이유로, 남편이 비장애인이라 열외가 되었다.

그렇게 1999년 11월 출산을 했다. 거기서도 문제였다.
자연분만이 어려워 제왕절개를 해야만 했고, 산부인과 내에 휠체어 이용이 편한 6인실이 없을 뿐더러 함께 씻는 장소를 사용할 수 없어 샤워실이 딸린 1인실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제왕절개로 인해 8일간 입원해 있는 동안 들어간 비용은 1백여만원을 훌쩍 넘겼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청으로, 도청으로 전화를 했다. 장애인 출산에 대한 지원이 없는지, 그리고 산후도우미를 파견한다거나 도움이 되는 제도가 없는지..

하지만 내가 시청, 도청 직원으로부터 들을 수 있었던 대답은 “그게 뭐예요?”, “그런 건 없는데요.”였다.  화가 났다. 어떻게 여성장애인을 위한 제도는 이렇게도 척박한지 안타까웠다. 장애인 속에서도 여성과 남성은 분명 차별되고 있었다.

그 후부터 하나하나 나의 삶을 돌아보며 많은 생각들을 하기 시작했다. 정말 장애인이었기에 학교를 다니지 못했나, 정말 장애인이었기에 피나는 노력 속에 취득한 안경사 자격증이 있어도 취업은커녕 자영업조차 할 수 없었나..

답은 “아니다”였다.

내 이웃에는 같은 나이 또래의 남성장애인과 몇 살 더 많은 남성장애인이 있었는데, 생활형편도 비슷했다. 하지만 그들의 생활은 나와 달랐다. 그들의 부모는 “남잔데, 나중에 먹고 살려면 배워야지. 알아야 무시안 당해.”라며, 업어서 학교를 데리고 다니셨고, 둘 다 무사히 졸업도 시켰다.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흘려들었던 얘기였는데, 이제야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바로 나는 여성이었기 때문에 시도조차 해보지 못한 채 포기하는 법부터 배워야 했던 것이다.
그래, 나는 여성장애인이었다.

 

그 후부터 경남지역 내 여성장애인의 모임이 있는지 여기저기 알아보았다. 그러다 소개를 받게 되어 현재 함께 경남여성장애인연대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장애인 동료들을 만나게 되었고, 준비과정 속에 함께 할 수 있었다.

 2001년 12월, 경남여성장애인연대가 출범하던 날이 생각난다. 여성장애인이라서 받아야하는 차별이라면 여성장애인으로서 없애보겠다는 굳은 결의와 함께 일어선 날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러한 우리의 출발을 모두 지지한 것은 아니었다. 몇몇 장애인단체에서는 “이제 장애인도 여성, 남성 나눠야 하느냐”며 반론을 제기하기도 했고, “여성장애인이 뭐가 그리 차별받는 존재냐”는 식의 답답한 질문을 받고 한숨을 내쉰 날도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여성장애인의 교육수준은 초등이하 학력이 약 68%이다.
그리고 경제활동참가율은 약19%인데다 그중 임시일용근로자가 약49%, 운전면허,기능교사 등 자격증의 소지율은 약 7%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 수치는 여성에 비해서도 남성장애인에 비해서도 비교가 안될 만큼 낮은 수치이다.

청년실업이 3%를 넘었다고 온 언론이 난리법석을 떨고 있음에도, 여성장애인의 실업이 80%에 해당하는 사실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러한 가부장적인 남성중심의 사회 속에서 장애계 운동도 그와 맥락을 같이 해 왔다.
교육, 이동, 취업, 결혼, 등 보편적인 문제 속의 성차별은 제외하고라도 그동안 여성장애인의 특수한 문제인 임신, 출산, 그리고 성폭력, 가정폭력 등에 관해서조차 뒷짐만 진 채 그 어떤 대안도 만들어내지 않았다. 본질적인 문제를 회피한 채 여성장애인들의 사회진출이 낮은 이유를 ‘집밖을 나오는데 두려움이 커서’라고만 일축해 버리기 일쑤였다.

바로 이런 남성적 시각은 얼마 전 있었던 최대식의원의 여성장애인 비하 기고(경남신문 24일자)에도 너무 잘 드러났다.

“1~2급 중증여성장애인이 어떻게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 있으며. 취득을 한들 과연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냐”는 내용하며, “중증여성장애인들이 출산을 한다는 자체도 의문이지만 출산을 한들. 자신의 몸도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야 할 정도의 장애인이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능력이나 환경이 되는지”라고 문제제기를 한 내용을 읽을 때는 살아있는 우리 여성장애인들의 장례식을 보는 듯 했다.

그 뿐 아니라 운전면허 취득이나 출산, 양육이 가능하다는 것이 “소가 웃을 일”이라며 비아냥거린 부분에서는 더 이상 울분을 참을 수 없어 가슴을 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 경남여성장애인연대 회원 20여명은 도저히 참담함을 참을 수 없어 진해시의회를 찾아갔다.

최 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내가 지체1급 중증여성장애인입니다. 자가운전도 하고 다니고, 아이도 둘이나 낳아 잘 키우고 있습니다. 내 배속으로 낳은 내 아이를 말입니다.”라며 울분을 쏟아놓았다.

그리고 그만 눈물까지 보인 여성장애인도 있었고, 추운 날씨 속에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아이를 안고 와 “이 아이가 바로 의원님이 말하신 소가 웃을 일로 생긴 내가 낳은 내 아이입니다.”라며 항의하기도 했다.

자신이 저지른 과오를 용서해 달라는 최 의원은 이 해가 가기 전, 해당신문에 사과글을 기고하고, 기자회견을 열어 공식적인 사과를 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와 함께 의원직 사퇴를 요구하는 우리에게 진해시 여성장애인 정책을 최우선으로 개발해 나가겠다며 여러 가지 약속을 했다.

내용인즉 현재 1~2급 여성장애인 출산비 지원정책을 진해시만큼은 1~3급까지로 확대하고, 1~2급 여성장애인 운전면허취득 지원정책은 모든 여성장애인에게로 확대하겠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진해시 내 여성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실태조사 및 욕구조사를 실시하도록 하겠다고 굳게 약속했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던 우리 여성장애인들은 일정기간 지켜보자는 의견에 뜻을 같이하며, 부디 이 약속이 공수표로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지켜지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돌아왔다.

여성장애인은 아무 것도 못하는 쓸모 없는 존재가 아니다.
무성적인 존재도 아니다.
성적자기결정권을 가진 이 땅의 여성이며, 행복할 권리를 가진 이 땅의 사람이다.
이 당연한 사실이 보장될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우리의 목소리는 결코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글 송정문(경남여성장애인연합대표)

*글쓴이의 의사에 따라 장애인을 그대로 표기합니다

 

작성자송정문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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