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유럽의 장애우 정책 발전은 했지만 끝나지 않았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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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서남부에 위치한 인구 7만 5천여 명의 작은 도시 마브룩(Marburg). 유럽 교통의 요지인 프랑크푸르트에서 차로 이동할 경우 약 50여분이 소요되는 거리에 위치해 있다.
마브룩은 작지만 꽤나 유명한 지역이다. 이 작은 도시 앞에 붙는 말들이 그걸 증명하고 있다. 도시 전체가 대학이라 마브룩 대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래서 교육의 도시라 일컬어지고, 특히 진보적 성향의 학자들이 많이 배출돼 진보의 도시, 좌파의 도시로 불리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법이나 정치학, 사회학, 신학, 교육학 등을 공부하러 온 유학생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역사적으로 독일은 2차례의 세계대전을 경험했기 때문에 어느 도시에서든 전쟁의 상처를 발견할 수 있지만 이곳에서는 전쟁의 아픔을 발견할 수 없다. 무슨 이유에선지 단 한번도 폭격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축복받은 도시로 이해하기도 한다. 도심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마브룩 성이 온전히 보존되어 있고, 일부가 학생들의 기숙사로 개방돼 사용되고 있는 인상적인 도시다.
‘장애우 도시’ 명예는 싸움의 결과
마브룩을 찾은 이유는 이곳 대학에서 교육학을 가르치는 로만 에카르트 교수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독일 내에서도 유명한 진보학자로 손꼽히는 그가 “장애우들만을 위한 생활시설은 필요 없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 전공은 교육학이지만 “모든 영역에서 ‘특수’라는 말은 필요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사전에 충분히 연락할 시간적 여유가 없어 급하게 스케줄을 잡다보니, 아, 역시나 였다. 독일 대학은 현재 방학중이었고, 그와 연락이 닿지 않아 끝내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이런 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 그럴까? 마브룩은 장애우의 도시, 특히 시각장애우의 도시로 불리워지고 있었다. 그 이유에 대해 한국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하고 마브룩 대학에서 사회교육 박사과정에 있으면서 심리운동사 자격을 갖고 있는 김윤태 씨는 “시각장애우의 중심소라고 할 수 있다. 거의 모든 협회와 학교, 직업학교 등이 이곳에 있다. 자연스럽게 도시 환경에서의 장벽도 적고, 또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뭐든 하려고만 하면 철저한 지원이 뒷받침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마브룩은 독일 5개의 주 중 헷센주에 속하는데, 이곳과 근처에 독일에서 가장 큰 정신병원이 2개나 있어 더욱 유명하다고 한다. 그 중 카젤 정신병원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목사, 종교인, 의사, 군인, 판사 등이 정신병 판정을 내리면 그들을 죽여서 각종 해부학 실험을 했던 것으로 유명해졌다고 한다. 기준이 무엇이었는지 모르지만 그 위원회에서 정신장애우로 판정받은 2천 여명의 사람들은 ‘단지 정신적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죽임을 당한 것이다. 히틀러의 우생학이 적용되어 인간 마루타로 사라져간 사람들 덕(?)에 이곳 병원은 그 연구결과들을 바탕으로 심리학, 신경정신학 영역에서 독보적인 학문적 지위를 갖게 되었다. 그 후학들이 여전히 학문적 전통을 이어받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데, 현재까지도 특수교육을 전공한 사람들과는 항상 대치되는 학문적, 이론적 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도시 전체가 대학이라 할 수 있고, 이론과 실천에 있어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과 개념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의 논의가 끊임이 없으니, 장애우의 목소리도 높을 수밖에.
마브룩이 장애우 도시라 불리워지는 이유는 끊임없는 장애우들의 저항이 있기 때문이었다.
**마브룩 대학의 기숙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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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이 장애학생방이고 왼쪽이 비장애학생들 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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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과 함께 있는 미끄럼틀은 화재시 장애학생들이 이용하는 비상설치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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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를 가진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에 대해서는 어디서든 잘 알아볼 수 있게 표시가 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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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숙사의 공동주방. 휠체어 이용자의 사용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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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각장애를 가진 사람이 혼자 다니는 모습도 눈에 띄고, 오래된 거리라 벽돌로 되어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흔히 보는 노란색 유도블럭이 아니라 다른 벽돌로 길의 방향을 표시해주고 있다. 그들은 도시 전체의 조화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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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결정권 인정이 핵심
우여곡절 끝에 그곳에서 10여 년 간 생활한 신옥주 씨(마브룩대 법학과 박사과정)의 도움으로 Fib(핍)이란 장애우 기관을 방문할 수 있었다. 작은 3층 짜리 건물은 독일 지역노동사무소와 아게프라이자이트(자유시간협회)라는 문화를 주제로 한 장애우 단체가 함께 사용하고 있었다. Fib(핍)은 장애우통합촉진운동을 하는 단체다. 주로 장애우들의 상담활동과 활동보조인 교육 및 파견활동, 가족지원활동을 펼치고 있었지만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독일은 대부분 시설이나 기관이 대형화되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마브룩의 특성상 대규모 시설과 조직은 있을 수 없다고 한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최소한 가족의 형태로 보장되어야 하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하기 때문에, 조직 또한 소규모화 하면서 연대하고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좋다는 기본정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Fib(핍)은 1982년에 설립되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정부에서 어떤 지원을 받을 권리가 있는지 정보를 제공해주고, 사회에서 겪는 어려운 문제들에 대한 상담을 주로 하고 있다. 특히 ‘사회통합’이란 관점에서 장애우의 자기결정권과 독립을 중요시 여기고 있었다. 장애우가 독립생활을 원할 경우 많은 문제에 봉착할 수 있기 때문에 당사자와 가족에 대한 상담과 교육, 직접 필요한 시설 설치 등에 도움을 주고 있다.
Fib(핍)은 기본적으로 유연한 조직이었다. 규모가 작아 자율적이며, 장애우의 독립생활을 어떻게든 지원한다는 기본 목표 때문인지, 예를 들어 집을 구해주는 역할도 하고 필요하면 함께 다니며 알아보기도 한다. 찾아오는 장애우들도 있지만 이동이 힘든 경우 가정방문을 하기도 하며, 온라인, 이메일을 통해 상담을 진행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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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핍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조형물이 있다. 휠체어가 벽 같은 것을 뚫고 나오는 모습이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벽을 벽으로 느끼지 말고 주체적으로 맞서야 한다는 의미란다. 일상의 모든 장벽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는... |
Fib(핍)의 한 관계자는 “대체로 사회는 장애우가 무엇은 할 수 있고 없다는 식으로 활동의 영역에 제한을 두고 있다”며 “그것은 궁극적으로 정부는 장애우가 집안에 머물길 원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그러한 대우는 부당한 것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장애우의 자기결정권”이라며 그들이 필요로 하는 요구에 따라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장애우가 독립생활을 한다면 가족이 가장 두려워한다.”며 “부모를 비롯해 가족이 장애우의 편일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며 가족지원팀이 따로 있는 것이 왜 필요한지 설명했다. 장애우의 독립생활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나갈 수 있는지 가족들도 오해하기 일쑤고 자신들의 입장에서만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Fib(핍) 내부의 가족지원팀은 그룹홈이나 일반가정을 방문해, 생활에 불편함은 없는지 시설을 점검하고 개조하는 도움도 준다. 또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면 어떤 식으로 정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지도 함께 의논한다. 대체로 정책이 존재하지만 몰라서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흔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심리적, 교육적인 도움도 주고 있다. 혼자라는 생각, 따돌림당하고 있다는 생각, 가족의 걱정거리 등 장애우와 그 가족들이 겪는 일상은 그리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꿈’이라 해도 ‘통합’이 원칙
독일의 부모운동조직은 2차 세계대전 후 부모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으로 결성되었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거의 모든 지역에 부모운동을 하는 조직이 존재한다. 하지만 단체 성격은 진보적인 성향을 보이는 곳과 보수적 성향을 보이는 곳 등 다양하다. 그래서 Fib(핍) 관계자는 “지역 안에서의 연대에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관련 단체 활동가들은 장애의 경, 중에 관계없이 학교에 가고, 여행을 가고 직업을 갖는 걸 당연하다고 여기지만 부모들은 그저 보호해주고 제공해주면 받는 것으로 만족하기 때문이란다. 그는 “부모들의 사상은 이곳과 배치된다. 부모들은 기본적으로 안전하게 모아두길 원한다. 보통사람들이 갖고 있는 욕구와 바람을 표출하면 겁을 먹고 하지 마라는 말 먼저 나온다. 조용히 살아주길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지속적인 교육과 상담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장애우가 지역사회 안에서 시민으로 살아가려는 애씀을 부모들이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가정에서 장애우의 자기결정권은 인정받기 보다 무시되기 일쑤고 드러나기 어렵기 때문에 가정방문을 통해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Fib(핍)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제대로 된 ‘사회통합’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관련자들과 지속적으로 대안을 모색하고 사고를 전환하려는 노력이라고 설명했다.
자본주의는 속성상 장애 인정 못한다
독일에서 통합교육이나 정신장애우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활동보조인은 이미 일상화된 지 오래다. 이미 1950년대부터 장애에 대한 개념 정립과 탈수용시설 정책, 정상화 이론, 피플퍼스트 운동 등이 논란을 거듭하며 발전해왔기 때문이다.
활동보조인은 자원봉사 개념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보조인의 활동이란 실질적인 권리보장인 동시에 국가가 책임을 지는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Fib(핍) 관계자는 “장애우와 함께 만나 그들에게 자기결정권을 부여하고 실질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잘 알아야만 한다. 자칫 잘못된 이해를 바탕으로 접하게 되면, 그것이 오히려 차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대로 교육받고 책임감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자원봉사로는 약할 수밖에 없다. 자원봉사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책임이 있고 의무가 있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라고 설명하며, 주로 많은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지만 24시간 혹은 시간제로 본인의 선택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고 덧붙였다.
이 예산은 사회보장청에서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독일정부는 통일 이후 옛동독지역 개발에 들어가는 돈이 많다며 사회보장 예산을 줄이려고 하고 있다. 그럼에도 유럽은 사회복지 개념을 특정 계층의 문제로 바라보지 않기 때문인지 전국민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예산 문제란 해결될 수 없는 주제다. 항상 싸워야 하는 문제다. 정부는 사회공동체 일원으로서 장애우를 바라봐야 한다. 구성원의 문제로 여겨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편견이 존재한다. 장애를 가진 사람은 능력이 없고 속도도 빠르지 못해 비효율적이고 비경제적이라는 것이다. 무조건 지원만 해야한다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Fib(핍) 관계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속도의 차이는 인정받기 힘든 그 무엇임을 말하고 있는 듯 했다. 차별은 언제나, 어느 곳에나 있는 것. 그래서 차별에 저항하는 세력이 지속하는가의 문제가 중요하다는 의미 아닐까.
많은 변화 이루었어도 끝나지 않았다
대체로 사람들은 서구 유럽 사회는 장애우들이 살아가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 한다. 거리에서 휠체어 탄 사람이나 목발을 짚은 사람, 시각장애우 등을 만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으니 눈에 보이는 대로만 해석한다면, 일반 시민의 모습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Fib(핍) 관계자는 독일정부 역시 장애우 정책에서는 Heim(하임) 즉, 시설 수용이 일부 필요하다는 입장이란다. 한국의 전문가들에 따르면, 독일은 각 주정부마다 정책의 차이를 드러내기도 해, 통합교육이나 시설수용정책에 있어서도 개혁적 또는 보수적인 태도 등 서로 다른 모습들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1940년대 스칸디나반도 국가들로부터 시작되어 50년대 유럽사회에 영향을 미쳤던 정상화이론으로 장애우들의 삶에 대한 국가적 성찰이 모색되었지만 작은 일에도 신중함과 오랜 준비를 하는 독일 국민성 때문인지 사회통합에 대한 논의가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물론 지금도 이러한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수한 욕구를 가진 장애우들을 위해 어떤 교육기관이 최선이며 어떠한 지원체계가 필요한지 우선순위에 두고 있는 점에서는 비슷한 측면이 있다고 한다.
이렇듯 독일은 정상화의 원리에 힘입어 70년대 이후 탈시설화가 가속화되었고, 지역사회 내 작은 규모의 치료·교육기관, 그룹홈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탈수용시설화 운동에 의해 시작된 지역사회로의 이동과 시설의 소규모화 움직임은 장애우의 사회통합에 중요한 기초가 되었던 것이다.
Fib(핍) 관계자는 “그럼에도 우리의 원칙은 통합이다. 탈시설화다. 이걸 이데아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걸 향해 간다. 장애를 갖고 있다할지라도 원하는 곳에서 필요에 따라 치료받고 살아갈 수 있어야 하는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던진 그이의 말이 귓가를 돈다.
“장애우들이 자기결정권을 찾기 위한 운동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며, 많은 변화를 이루었다고 해서 끝난 것은 아니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이 가능했던 것은 주체들의 자각이 가장 주요한 요인이었겠지만, 한편 사회적 분위기도 한 몫하고 있는 것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은 근대화과정에서 시민혁명을 경험하며 민주주의를 논했고 다양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음을 사회 정책적으로 수용하기까지 수많은 경험이 있었을테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Fib(핍) 관계자에게 정신지체, 정신장애우들의 피플퍼스트 운동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그는 짧게 대답했다. “피플퍼스트 운동은 문화운동이다. 모든 국민에게 해당하는 것이다. 전국을 다니게 되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생각과 다르게 너무 간단한 대답이 나와 당혹스러워 더 이상 그 자리에서 질문을 던지지 못했다. 그저 ‘사람은 신체적, 정신적 장애 여부를 비롯해 피부, 국적, 인종, 성별, 성적취향이 저마다 다르며, 그렇지 않더라도 다양한 개성을 갖고 있는 인격체라는 것 아닐까’하는 막연한 상상과 추측을 되씹을 뿐이었다.
‘모든 운동은 상식에서 출발한다’
그 먼 나라까지 가서 느낀 것치고는 빈약한가?
글 사진 홍여준민 기자
도움 김민정(마브룩대학 법학과 박사과정)
신옥주(마브룩대학 여성헌법학 박사과정),
김윤태(마브룩대학 사회교육학 박사, 심리운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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