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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형사소송법 개정 당위성, 국가도 인정했다

형소법 개정 필요성, 열기 후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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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가 인정한 형소법 개정 필요성
지난 8월 29일 법무부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발표하면서 ‘법 제정 50년 만에 처음으로 인권을 최우선시한 법안’이라고 자평하며, 이례적으로 각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그러나 정작 장애우 등 소수자에 대한 기본적인 인권보장에 대한 내용은 빠져 있어, 인권단체와 장애계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았다.
그동안 현행 형소법에는 장애를 가진 피의자, 피해자에게 어떤 권리가 있는지 전혀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장애’의 특수성이 인정되지 않아 피해자가 오히려 가해자로 둔갑하고, 죄 없는 사람들이 감옥에 가야 했다. 피해자가 정신지체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진술이 인정되지 않아 피해보상은커녕 가해자도 구속시키지 못했다.
그와중에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와 부산 강서경찰서에서, 수사단계에서의 장애우의 인권이 어떻게 침해되는지, 어떠한 수사방식과 제도적 대안이 필요한 지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사례가 나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주는 것도 못 받은 법무부
지난 3월부터 장애계에서는 ‘형사소송법 개정을 통한 장애인 인권확보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을 구성해 수사나 재판과정에서의 장애인 인권침해를 예방하기 위한 형소법 개정을 위해 올해 3월부터 활동을 하고 있다.
공동행동은 그동안 형소법 개정 공청회 개최, 실무단위 면담(’04. 5. 6), 강금실 법무부장관면담(’04. 6. 18 / ’04. 7. 13)등을 통해 형소법 개정의 필요성과 내용을 알려냈으며, 법무부로부터 최대한 내용을 반영하겠다는 답변을 들은 바도 있다. 또한 지난 7월 19일에 보낸 공개질의에 대해 법무부는 “형소법 개정시 공동행동의 제안내용을 반영하겠으며 이를 위한 논의자리를  마련하겠다”는 답변을 받아내기도 했다. 그러나 법무부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무시했다. 법무부가 지난 8월 29일 보도자료를 통해 발표한 형사소송법 개정안 기본 골격에 ‘공동행동’의 제안사항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장애계의 지속적인 반영요구와 성실한 노력과 약속을 저버린 것이다. 50년 만에 법무부 스스로가 인권을 보장해주겠노라면 대대적인 홍보를 했지만, 빈껍데기에 불과했다.

인권위, 장애청소년의 심신상태 살펴 보호조치하라
그런데 최근 지난 10월 25일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의미 있는 권고문이 나와 주목을 끌고 있다. 경찰은 수사 시 장애청소년 등 피의자의 심신상태를 살펴서 보호조치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이번 권고안은 위례시민연대가 인권위에 “서울 강동경찰서는 지난 2004년 3월 21일 미성년정신지체장애인인 조모군(16세, 특수학교 1학년 재학중)의 절도혐의를 조사하면서  가족의 입회 및 접견을 거부하고  아무런 보호조치 없이 장시간 수갑을 채우고  구타하는 등 부당한 수사를 했다”며 낸 진정사건에 대한 결과다. 
국가인권위 조사과정에서 피진정인들은  당시 조모군이 관련 혐의를 숨기고 체포사실에 당황해 횡설수설하는 것으로 판단했으며 정신지체장애인임을 알지 못했고   어머니에게 체포사실을 알려주자 거칠게 항의하는 바람에 접견 및 입회 등 보호조치를 하지 못한 점은 있으나  체포 및 수사 중 구타 등 가혹행위를 한 사실은 없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그러나 피진정인들은  피해자의 가족 등 보호자의 입회 및 접견을 허용하지 않았고  2004년 5월 2일 19시 10분경 피해자의 신병을 확보한 때로부터 같은 날 23시 50분경 까지 약 4시간 40분간 수갑을 채워 피해자를 데리고 다니며 공범의 거주지, 소재확인, 범죄현장 및 여죄 등 수사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진정인과 피진정인의 주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팽팽한 입장차이를 보였다. 피진정인인 수사관들은 조사 내내 조모군이 장애를 가졌는지 몰랐다고 답했는데, 부모와 관계자들은 “4-5시간 동안 이야기를 하면서도 몰랐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알고 한 일이든 모르고 한 일이든, 장애에 대한 무지는 차별로 이어질 소지가 크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국가인권위는 조사결과  당시 피해자는 정신지체 2급 장애로 특수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청소년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고,  이러한 장애 청소년에 대한 조사를 하는 경우, 소년법 제9조, 사법경찰관리집무규칙 제41조, 범죄수사규칙 제197조 등에 따라 청소년 피의자의 성격, 경력, 가정상황, 심신상태 등 제반 사정을 면밀히 파악해 특별한 배려를 해야 하고,  아울러 신속히 체포사실을 가족에게 고지해 가족 및 후견인 등의 접견 및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인 보호조치를 강구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국가인권위원회는 조모 경감 등의 행위는 피해자의 비변호인과의 접견교통권과 신체의 자유 및 아동으로서 보호받을 권리 등을 침해한 것으로, 서울강동경찰서장에게  피진정인들에게 주의 및 경고 조치하고  소속직원들에게 관련 규정을 준수하도록 자체교육을 실시할 것을 권고했다.

진술, 그들의 방식대로 하도록 허하라
마찬가지로 정신지체를 가진 여성이 성폭행을 당했을 경우, 어떤 수사방식이 도입되어야 하는지 알 수 있는 사례가 지난 10월 28일 부산 강서경찰서에서 나와 눈길을 끈다.
경찰은 정신지체와 언어장애를 갖고 있는 박모씨를 5월부터 9월까지 7차례에 걸쳐 박씨의 집이나 인근 낚시터에서 성폭행한 혐의로 이모씨를 구속했다. 그런데, 구속과정이 무척 힘겨웠다고 한다. 이에 앞서 지난 달 9월에도 두 차례에 걸쳐 구속영장이 신청된 바 있는데 박씨가 ‘정신상의 장애로 항거불능의 상태’라는 것을 충분히 입증하지 못해 두 차례 영장이 모두 기각 당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신지체 여성의 경우 성폭행을 당해도 ‘성폭력특별법 상 항거불능 상태’여부가 수사에 중요한 영향을 미쳐왔다. 특히 최근에는 법원의 판결이 엄격해지면서 장애우라도 그 항거불능이라는 것을 입증해야만 유죄판결을 받을 수 있어, 수사과정이 좀 더 철저하고 세심하게 진행되도록 관련 법이 개정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런데 이번 수사과정에서 부산 강서 경찰에서는 언어를 일정 구사하지 못하고 다만 고개를 끄덕이거나 흔들어 의사를 표시하는 박씨를 출두시켜 진술서를 받는 것이 힘들다고 판단, 지난 해 부터 도입된 ‘진술녹화’를 적극 활용한 것이다.
진술녹화는 경찰이나 심리전문가가 피해자를 상대로 면담하는 장면을 녹화, 증거로 제출하는 것이다. 제출된 진술녹화에는 정신지체를 가진 사람의 특성으로 고려해 쉬운 질문, 단답식, 몸짓으로 의사소통하는 장면과 해부학 인형을 통해 성폭행 상황 재연이 담겨있었다. 판사는 이 CD를 본 후 실질심사를  거쳐 곧 이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이다.
지금까지 정신지체 여성장애우를 성폭행한 사건들을 살펴보면, 가해자들은 장애우가 의사표현능력이 약하다는 점을 악용해 은폐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사례는 수사과정에서 사람의 특수성을 반영한 수사방식 도입이 제도적으로 구축되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공동행동의 박숙경 팀장(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은 “이 두 사례는 국가기관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의미 있다. 하지만 제도적으로 보완되지 않으면 개별적 상황에 그칠 우려가 있다. 이 두 사례에서 엿볼 수 있듯, 수사과정과 방식은 장애가진 사람에게 무척 중요한 문제다. 따라서 신뢰관계에 있는 자의 동석과 수사과정 일체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 컴퓨터에 직접 입력해 의사소통 하는 것, 수화통역 제공, 점자문서 제공은 꼭 필요하다”며 법무부가 즉시 형소법 개정안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는 것도 제대로 못 받은 법무부, 이래서야 50년 만에 처음으로 인권을 보장한 개정안이라 해서야….

글 홍여준민 기자

 


 

작성자홍여준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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