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빈곤해결을 위한 사회연대(준)의 최저생계비 현실화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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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헌법 제 34조 제1항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갖는다.’
인간다운 생활이란 무엇일까.
광고에 나오는 것처럼 아파트 자체가 행복공간이 되고, 고급승용차에 평면텔레비전과 김치냉장고 정도야 기본이며, 성취감만큼 임금이 높은 직장과 부자아빠가 되고 온갖 명품들에 웰빙한 유행을 맞추어 사는 것이 인간다운 생활인가.
아니면 한 평도 안되는 쪽방에서 공동화장실과 세면실을 사용하며, 하루 일자리에 전전긍긍하고 아파도 치료받지 못하고 아이들의 교육은 꿈도 꾸지 못하는 것이 인간다운 생활인가.
우리나라 헌법은 행복추구권과 인간다운 생활의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10월 28일 헌법재판소는 2002년 5월에 이승연씨가 제출한 "최저생계비 위헌청구 소송"에 대하여 9명 재판관 전원의 만장일치로 이를 기각했다.
지난 2002년 이승연 수급자(3인 가구)는 낮은 최저생계비로 인해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받지 못하며, 장애우기 때문에 드는 추가지출에 대해 최저생계비가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에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요지의 헌법소원심판청구를 제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9명 전원의 만장일치로 기각하며 합헌판정을 내린 것이다.
장애우 수급자의 헌법소원은 이승연씨가 처음이 아니다. 2001년 명동성당에서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요구하며 농성했던 최옥란 열사가 농성 마지막날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었다. 그러나 최옥란 열사는 그 결과를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고, 헌법소원은 자동소멸되었다. 그 뒤를 이어 이승연씨 가족이 동일한 내용으로 헌법소원을 내게 된 것이다.
하루하루의 생활을 버텨내는 것이 고통스러운 이들이 헌법소원까지를 내는데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헌재는 하루가 급한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에 귀 막고 2년 6개월이 넘게 끌어오다 결국 전원 만장일치로 기각 결정을 내린 것이다.
너희들의 관습헌법
판결의 근거는‘인간다운 생활’이라는 개념 자체가 상대적이고 추상적이기 때문에 ‘국가의 최소한의 조치 여부’가 기준이 되며, 국가는 다양한 조건을 고려하여 최소한의 조치를 ‘재량껏’시행했다고 본다는 것이다.
국민이면 누구나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받을 권리가 있음을 명시한 법이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하 기초법)이 그것이다. 기초법은 최저생계비 이하의 국민이면 누구나 최저생계비와 소득의 차액을 급여형태로 보장받게 되어 있다.
즉, 최저생계비는 한국사회 유일한 사회안전망인 기초법의 보장기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최저생계비의 정의는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준"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의 최저생계비는 최소한의 생존조차도 유지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1인 가구 36만원의 낮은 최저생계비는 대다수의 빈민을 유일한 사회안전망에서 제외시키고 있으며, 수급권이 보장되더라도 월20만원도 되지 않는 급여로 극도의 궁핍한 생활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9명의 재판관의 판결은 스스로 가치를 가진 인간임을 잊어야만 견딜 수 있는 생활도 인간다운 생활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루에 3명이 생계를 비관하여 자살하고, 6백만에 이르는 방치된 빈곤층과 100만 가구에 이르는 단전단수가구, 치료를 받지 못해 죽어가고 있는 환자들과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일하는 빈곤층, 100만 명에 이르는 빈곤아동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것이 국가가 ‘재량껏’ 조치한 결과이다. 빈민은 국가의 최소한의 조치에 감사하며 인간다운 삶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판결의 두 번째 근거는 장애우기에 추가지출에 대해 생계급여가 보장하지 않더라도 장애우를 지원하는 타 법령에 의해 부담이 경감되므로 단일한 최저생계비 기준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장애우에 대한 각종 감면은 소비를 할 수 있는 장애우로 국한되어 있어 저소득 장애우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난은 개인이 무능력해서 발생한 것이므로 그 벌로써 ‘빈민답게’살아야만 한다는 헌재의 논리는 가진 자들의 관습헌법에 다름 아니다.
인간다운 생활은 무엇인가? 이번 판결 속에는 가난은 개인이 무능력해서 발생한 것이라는 굳어진 인식이 깔려있다. 가난하면 영화를 봐서도, 화장을 하거나 사교생활을 해서도 안되며, "빈민은 빈민답게" 살라는 것이다. 고통과 수치심을 참아가며 한 달을 36만원으로 사는 것이 인간다운 생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가난의 개인의 탓이고, 가난하면 가난한데로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과연 9명의 재판관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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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1일 2005년 최저생계비가 공표되었다. 이번 최저생계비는 5년만에 실제로 계측되어 발표되어 향후 3년동안의 기준이 되기에 어느 때보다도 현실화 요구의 목소리가 높았다.
최저생계비 현실화의 요구는 단순히 최저생계비를 1,2만원 인상하는 문제가 아니라 인간다운 생활의 권리를 빈민 스스로의 권리로 획득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여전히 가난은 개인의 탓이고 가난하면 가난한데로 ‘빈민답게’ 살라고 하는 인식을 스스로 깨어나가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발표된 최저생계비는 인간다운 생활의 권리를 포기하라는 강요에 다름 아니었다.
2005년 최저생계비는 평균 8.9%인상이라는 포장아래 1인 가구 40만 1천원, 4인 가구 113만원으로 99년 수준에도 못미치는 최악의 금액이기 때문이다.
99년 최저생계비 계측당시 최저생계비는 가계지출의 48.7%, 근로자소득의 38.2%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발표된 최저생계비는 가계지출의 43.3%, 근로자소득의 34.1%로 99년 수준에도 못미치는 금액이다.
그나마 2005년의 물가인상률 3%가 반영되어 있는 것이기에 물가인상률 3%를 제외하고 나면 이번 최저생계비는 빈곤을 고착시키며 빈부격차를 더욱더 크게 하는 결과이다. 결국 8.9%의 인상률은 그동안 3%대의 물가인상률만 반영된 최악의 최저생계비의 현실적 반영이 아니라 우리사회 빈부격차를 더욱더 벌어지게 하는 후퇴한 결정을 감추기 위한 눈속임에 다름 아니다.
1인 가구 40만 1천원이라는 금액을 결정하면서, 이 금액으로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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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최저생계비 결정의 문제는 예산을 문제로 계측결과조차 반영되지 않은 근거 없는 결정이라는데 있다. 2004년 최저생계비가 최소한 4인 가구 기준 123만원 이상이 되어야 했다는 가계부 조사 등을 통한 실계측 연구결과를 예산을 이유로 삭감한 것이다. 최저생계비는 한 사람이, 한가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금액이며, 이는 한 사람의, 한 가구의 생존이 달린 문제이다. 이를 예산을 이유로 삭감한다면, 정부의 예산은 누구를 위해 있는 것인가.
경제위기 직후보다도 더욱 생활고를 느낀다는 최악의 불황이라는 지금의 현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생계를 비관하여 죽음에 이르고, 가족이 생이별하며, 당장 눈앞에 닥친 겨울나기가 벅찬 지금 상황의 책임은 정부에게 있다. 국민의 대다수를 빈곤한 상황에 몰아넣고 예산을 빌미로 삭감하고, 10억을 들여 계측 조사한 연구결과 조차도 반영되어 있지 않은 최저생계비의 책정 근거를 우리는 인정할 수 없다.
이러한 비상식적인 결정을 ‘위원 모두의 합의하에 결정’하였다는 것에 대하여 우리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 위원장인 김근태 보건복지부장관과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의 위원들의 자격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사회안전망의 거의 유일한 기준이 되는 최저생계비의 계측결과와 논의과정을 공개하지 않은 채 밀실에서 합의한 중앙생활보장위원회와 그 결정을 인정할 수 없다. 우리는 대부분 정부측 인사를 중심으로 구성된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의 이번 결정과정과 결과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물어야 할 것이다.
다시금 최옥란 열사의 투쟁으로부터
2005년 최저생계비는 결정되었다. 그러나 2005년 최저생계비의 결정이 국민의 ‘인간다은 생활의 권리’를 결정은 아니다. 2005년 3월에는 가구유형별 최저생계비가 결정된다. 최옥란 열사의 투쟁으로부터 계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던 장애우, 노인, 모부자가정의 유형별 최저생계비를 결정하는 것이다. 또한 향후 3년동안 비계측년도의 최저생계비를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도 남아 있는 과제이다.
2001년 최옥란 열사는 최저생계비의 현실화를 요구하며 노숙농성을 전개했다.
그 이후 최저생계비의 현실화의 요구는 계속되었으나, 변한 것은 거의 없는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나 정말 변한 게 없는 것일까. 열사의 투쟁 이후 안정적인 연대체가 구성되었으며, 2004년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게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요구하는 투쟁들이 전개되었다. 수급권 주체가 하나둘 모이고 있으며, 노동사회단체들이 최저생계비의 문제가 몇몇 수급자만의 문제가 아님을 인식하고 연대하고 있다.
우리는 다시금 최옥란 열사의 투쟁을 기억한다.
1,2만원의 최저생계비의 인상이 아니라 인간다운 생활의 권리를 우리의 권리로 만들어내는 것, 빈곤은 개인의 탓이 아니라 국가의 책임임을 분명히 하는 것, 이를 스스로의 요구로 제기하고 투쟁할 때만이 시혜나 관리가 아닌 권리가 된다는 것을 그녀는 그녀의 투쟁을 통해 이야기해왔다.
우리는 그녀의 투쟁정신을 다시금 새기는 것으로부터 다시 한번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투쟁을 준비한다. 겨울만 되면 방송을 통해 보여지는 아름다운 동정이 아닌, 인간다운 생활의 권리를 빈민 스스로의 권리를 만들어내기 위한 최저생계비 현실화의 투쟁을 계속적으로 전개해나갈 것이다.
글 유의선(빈곤해결을 위한 사회연대(준) 사무국장
사진제공 빈곤해결을 위한 사회연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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