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나는 편의시설에 대해 할 말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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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안전펜스 하나라도 있었으면…아마 지난 8월 4일 저녁 뉴스를 보고 놀라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하철역사 승강장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더니 곧바로 뭔가 물체가 휙~하고 튀어나와 곧바로 철로로 떨어진 것. 아, 그 때의 까마득함이란.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서울 지하철 7호선 철산역에서 50대 여성장애우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기 위해 전동스쿠터를 후진하던 중 지하철 선로로 곧바로 추락하는 장면이 지하철 CCTV에 잡힌 것이다. 그 여성장애우는 중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중이다.
이번 사고의 원인은 뭐라 해야 할까? 전동스쿠터가 고장을 일으켰거나 본인의 운전 미숙 혹은 운전부주의일 수 있다. 그러나 엘리베이터 문이 선로와 같은 방향 옆으로 나 있거나 뒤에 안전 펜스가 있었다면, 그렇게 무참히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될 수 있었을까?
안전펜스 설치 요구에 또다시 예산 타령
엘리베이터 문은 원래 선로 옆 방향으로 있어야 한다. 그걸 염두에 두고 설계를 했어야 했다. 하지만 착공 당시 장애 가진 사람의 이동과 접근은 전혀 고려하지 않아 대부분의 역에 엘리베이터를 만들지 않았다. 몇 년간의 치열한 이동권 투쟁 영향으로 2006년까지 부랴부랴 엘리베이터 설치 계획을 수립한 것이다. 그래서 모든 역이 엘리베이터 위치도 제각각이고 새로운 역을 갈 때마다 어디에 있는지 몰라 찾아 헤매기 일쑤다. 당연히 출입문의 방향도 역마다 다르다. 애초 설계도면에 없었던지라 간신히 공간이 나오면 거기에 설치할 따름이었다. 그러다보니, 출입문의 방향이 일정할 수 없고, 상당수의 엘리베이터는 선로 쪽에 근접하게 될 수밖에….
이번 사고에 대해 도시철도공사 관계자는 “엘리베이터 앞 공간이 4미터나 되어서 설마 그런 사고가 일어 날 줄은 몰랐다”고 한다.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우는 대개 손발을 이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장애가 심하고, 고래를 돌리는 것도 어려워 후미쪽 시야가 좁은 장애우도 많다. 때문에 기계고장이나 상황변화에 적응력이 느릴 수밖에 없다. 여유공간이 부족하고 안전펜스 하나 설치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사고는 충분히 예견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도 도시철도공사 측은 “2008년까지 스크린도어를 설치하기로 되어 있다. 그때 가면 안전펜스를 다시 치워야 하는데, 낭비 아닌가?”라고 반문하며, 설치를 미루고 있다. 안전펜스는 설치비용도 적고 또 사람 생명을 보호하는데 쓰이기 때문에 몇 년만 쓰고 버리더라도 충분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생명과 안전’을 위한 것인데.
백번 강조해도 지나침 없는 ‘안전’
얼마 전 지하철 승강장에서 지나가는 노숙인이 전철을 기다리는 주부를 밀어 사망하게 만든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유가족들은 지하철공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고, 재판부는 “승강장에 안전장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지하철 공사에 책임이 있다”며 “공사는 2억1576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승객의 추락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안전펜스는 역마다 5천만 원 정도면 설치할 수 있는데도 당시 승강장에는 이 같은 안전시설이 설치돼 있지 않았다”며 “공사가 추락방지시설을 제대로 설치하지 않아 승객안전 배려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재판부는 “해마다 수십 건의 승강장 추락사고가 발생하고 있어 안전선과 전동차 진입경보, 안내방송 만으로 추락을 방지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는 공공시설에서는 시민의 안전이 제일 중요한 책무임을 일깨운 판결이라 생각한다.
거봐라, 편리하지?
장애우 편의시설을 얘기하면, 경제적 비용과 효율성을 따지는 사람들이 많다. 예전에 어느 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때 지하철공사 간부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장애우들이 하루에 몇 명이나 이용한다고 몇 억이나 들여 이걸 설치하나? 이건 낭비다!” 이 간부의 말 중 하나는 맞는 것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장애우들의 엘리베이터 이용률이 저조하다는 것. 왜냐면 나올 수가 없기 때문. 전동휠체어는 고가라 직업도 제대로 갖지 못하는 중증장애우가 구입하기에는 역부족이고, 수동휠체어는 누가 밀어 줘야 하는데, 가족이나 친구가 항상 따라 다닐 수도 없으니까, 여전히 밖으로 나오는 것이 힘들고 이용률이 저조할 수밖에.
하지만 그 간부는 하나만 알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자 노인과 유모차를 끄는 젊은 부부들, 짐을 든 사람들이 몰려들어 이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그동안 계단을 힘겹게 오르내리면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처럼 겉으로 표현만 안했을 뿐이지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기를 기다려온 것이다. 수억 원 들여서 설치한 값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5호선 군자역에 가보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가를 알 수 있다.
이곳은 계단이 통로 양끝에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중간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서로 몸싸움까지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걸 보면 ‘이토록 편의시설을 원했던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데 왜 장애우들이 외롭게 쇠사슬을 묶고 지하철 선로를 점거하는 투쟁을 할 때 함께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을까?’섭섭함과 아쉬움이 밀려들기도 한다.
무임승차하는 것은 장애우가 아닌 일반 시민
지금 이동권연대에서 주장하는 저상버스가 도입되면 장애우의 이용율보다 노인, 짐든 사람,유모차 끄는 사람, 임산부, 자전거 탄 사람, 인라인 탄 아이들이 더 좋아할 것이다. 아니, 그러고 보니, 그렇다면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 아닌가. 저상버스는 가볍게 한 번 오르면 되기 때문에 쉽고 편안하며, 훨씬 안정적이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MBC ‘사실은’이란 프로그램에서 “저상버스 도입하는데 서울시 세금만 1억이 넘게 든다”며 “세금 낭비”라고 혹평한 것은 자가용만 타고 다니며 편하게 취재하는 기자들의 무지의 소산이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 기자 분들에게 “하루만이라도 휠체어 타고 버스타면서 취재 다녀보라”고 말하고 싶다
계단 옆에 설치 되어있는 경사로 역시 휠체어 이용자 뿐 아니라, 걷기가 힘든 노인이나 짐을 운반 할 때도 편리하게 이용 할 수 있다. 승강장의 안전펜스도 장애우의 안전에 도움을 주지만 비장애우들도 선로로의 실족이나 추락사고 방지에 도움이 되면 됐지, 결코 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듯 장애우 편의시설은 장애우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편리함을 가져다 주는 시설이다. 하지만 아직도 이 사실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결국 “장애우 몇 명 쓰자고 이 많은 예산을 들여서 편의 시설을 설치 할 수 는 없다”는 사회적 인식과 분위기 때문에 철산역 사고도 발생하게 된 것 아닐까.
저상버스 도입 투쟁도 어쩌면 가장 이용률이 적을 수밖에 없는 중증장애우들만의 외로이 투쟁되어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글 심승보(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문화기자단 ‘엎어’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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