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악화일로 정립회관, 사태본질을 바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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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악화일로
관장 연임문제로 불거진 정립회관 사태가 어느덧 점거농성 70일을 넘기고 있다.
그러나 정립회관과 공대위 측은 여전히 합의 지점을 찾지 못한 채 팽팽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을 뿐이다. 더욱이 주변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는 것은, 조직간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과 개인의 문제로까지 번져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8월 12일 비노조직원들이 사무실을 방문하려는 과정에서 공대위 측과 몸싸움이 벌어져 직원 ㅇ 씨(남)와 ㅈ 씨(여)와 공대위 측 김재익 씨(한국뇌성마비연합회 직업재활센터 소장)는 폭행이다, 성추행이다 주장하며 맞고소를 한 상태다.
게다가 또 다른 이용자라는 곰두리봉사대 소속 장애우들이 “노조가 물러나야 해결된다”고 주장하며, 농성장으로 몰려와 물리적 충돌을 빚은 적도 있다.
직원 사이의 갈등도 좁혀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일부 비노조원들은“저 사람들이 복직되면 내가 그만 두겠다”란 말을 할 정도로 극한 감정 대립상태에 있다는데….
이렇게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것을 두고만 볼 수 없어 8월 24일 민주노동당 현애자 의원이 다시 정립회관 농성장을 방문했다. 그 후 27일에는 한나라당 정화원 의원이 현장을 방문했다. 전과는 달리 관리책임이 있는 광진구청에서 소극적이나마 개입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뭐하나 달라진 상황은 없다.
본질을 뒤로 한채 감정의 대립만
이를 두고 위드뉴스 이철용 기자는 8월 24일 기사를 통해 “정립회관 사태 해결을 위해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뒷짐을 지고 있다. 그러는 동안 사람들 사이의 갈등과 폭력, 고소고발 사태 등이 연이어지면서 비본질적이고 지엽적인 문제만 불거지고 있을 따름이다”라고 진단했다.
위드뉴스에서 이장미라는 가명으로 정립회관에 대한 기사를 올렸던 정우영 씨 또한 “지난 10여 년 전 정립회관 사태 당시, 청년 장애우들이 어떻게 투쟁해서 현재의 정립회관을 만들었는지 그 역사성을 되새겨, 당사자들이 본질적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제언하기도 했다. 그는 “사사로운 감정만 앞세운 나머지 서로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접근태도를 보이지 못하는 현재의 상황이 매우 안타깝다”며 낮은 한숨을 몰아쉬었다.
사태를 바라보는 상반된 시각
그렇다면, 정립회관의 본질이 무엇이기에 서로가 대화를 통한 합의점을 찾아가지 못하는 걸까. 우선 사태의 본질을 바라보는 서로의 입장이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정립회관 측은 사태의 원인을 ‘노-사 문제’로 규정하고 있는 반면, 공대위는‘시설 민주화투쟁’으로 보고 있다.
정립회관 측은 처음부터 줄곧 “노-사 문제이기 때문에 공대위만 빠져주면 된다”는 안을 제시하고 있다. 정립회관 김동호 사무국장은 함께걸음과의 인터뷰를 통해 “시설 운영이란 노-사-이용자, 이 3자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노조와의 문제는 노사협상을 통하면 되고, 이용자와의 문제는 이용자협의회를 구성, 대표가 운영위원회 등에 참여할 수 있도록 구조를 모색하면 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공대위는 관장 연임 철회와 이용자 참여 보장 등 시설민주화 기틀 마련을 정립회관 사태의 본질로 보고 있다. 노조는 사회복지노동자로서 사측의 운영에 당연한 견제의 목소리를 내는 것뿐이고, 임금인상, 처우개선 등은 노조의 당연한 활동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변칙적인 방식으로 이완수 관장을 연임시킨 것은 민주적 운영이란 잣대에 원칙적으로 어긋나는 것.
때문에 사회복지시설이 공공의 성격을 갖는 것이라면, 이용자를 더 이상 객체화시키지 말고 주체로 인정해 시스템의 변화를 함께 모색하자는 것이 정립회관 사태의 핵심이라고 보는 것이다. 대표제를 통한 대의민주주의만이 민주적 운영 구조라는 길들여짐에서 벗어나 직접 참여를 보장하라는 당연한 요구라는 것이다.
예전의 정립회관이 아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립회관 사태에서 ‘이면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점거농성이 시작될 당시에 제기되었던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싸움의 과정에서 ‘누가, 무엇을 위해’서로 입장을 굽히지 않는가 하는 점을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정립회관 측이 철저히 ‘운영자 입장’에서 한치의 물러섬도 없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에 정립회관을 알았던 사람들로서는 “대화와 협의가 가능할 것이다”는 희망을 갖고 사태를 바라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 달이 넘도록 대화다운 대화, 협상다운 협상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감정을 앞세운 입장의 차이만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은, 열려있고, 당사자의 입장을 중요시 여기는 예전의 정립회관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자신들이 주장했던 IL운동(자립생활운동)의 이념과는 전혀 다른 태도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주체 중증장애우를 인정해야
이렇게 생각하는 이들은 공대위가 주장하는 본질과 정립회관 측이 일관되게 ‘노조’를 문제삼고 있는 것과 연관이 있다고 말한다. 한 관계자는 “중증장애우들은 자립생활패러다임을 통해 자주성을 가진 사회적 주체로서의 나를 인식하게 되어 장애운동의 새로운 주체로 등장하고 있다. 그들은 시설 이용의 주체로서 정립회관이 비민주적으로 가는 걸 원하지 않았다. 관장 연임을 비민주적 행태로 보고 철회를 요구하는 것이다. 자신들도 시설운영의 주체로 인정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이는 변화된 시대에 당연한 요구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는 정립회관이 진정 자립생활패러다임을 한국 사회에 전파하는 거점이라면, 그 이념을 내면화한 중증장애우들의 요구가 정당함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산노동인권센터 김병태 씨 또한 “욕구는 발전되는 것이다. 이를 제기하고 사회화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의 정립회관이 인사권, 경영권 운운하면서 실제로 노조와 이용자들의 요구를 받아 안지 못한다면, 그건 이미 기득권 세력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이미 현실구조에 편입되어 변화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기득권을 가진 위치에 있다는 것이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지금 같은 전면전을 감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태해결 뒤로하고 노조원해고를 응수
노조와의 관계를 문제삼는 이유도 기득권 유지 차원이라고 해석한다. 노조의 정당한 요구에 생존권을 침해하는 ‘해고’로 대응했다는 것이다.
지난 7월 말, 정립회관 측은 대화를 통한 지속적인 협상을 통해서도 해결이 될까말까한 분위기에서 노조원들을 전격 해고시켰다. 김동호 사무국장은 함께걸음과의 인터뷰를 통해 “노조부터 파업을 풀고 복귀하는 모습을 보이면, 극단적인 징계는 피하려고 했다”고 말했으나, 오히려 “원칙으로 갈 수밖에 없다. 다른 방식으로 가면 불법을 인정하는 것이다”며 규정과 인사권 인정만을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이미 모든 절차와 과정이 마무리됐다. 징계는 되돌릴 수 없는 문제다. 노조는 재심청구도 안했다. 징계를 받아들인다는 말 아닌가?”라며 노조 징계에 대해 재론의 여지가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키기도 했었는데, 한 관계자는 이를 두고,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와 인권의 역사에 대한 몰이해가 전제된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관계자는 “정립회관은 노조의 활동을 기본적으로 이해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갖고 있는 권력과 힘으로만 밀어붙이려 한다”고 주장한다.
노조원 태도가 불손하다?
실제 김동호 사무국장은 “정립회관은 반민주적이고 억압적인 곳이 아니다. 노조와 파트너십을 가져왔으나 4년 전부터 갈등관계가 지속되었다. 젊은 사람들로 바뀌고 민주노총에 가입하면서부터다. 우리가 노조를 인정 안하는 것도, 요구 자체가 무리하다는 것도 아니다. 행동방식이 무리하다는 것이다.”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을 거침없는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사측과 노동조합은 동등한 관계다. 협상의 파트너이다. 상하관계가 아니다. 때문에 협상과정에서 감정적 태도와 언행이 부지불식간에 불쑥 튀어나올 수 있는 것이다. 사측이 노조원들의 이러한 태도를 문제삼으며, “이래서 노조는 안된다”는 감정을 우선시 하는 것은 “간부이며, 직원인데…”란 인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정립회관이 비본질적인 문제만을 두각시키며,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하고 있다”는 일각의 비판이나오는이유다.
이와 관련해 안산노동인권센터의 김병태 씨는 “비본질적인 이야기를 논의를 끌어가는 것은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태도에서 나온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며 공대위와 노조는 현장의 문제에 충실히 대응하고 있을 뿐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대중의 힘이 바탕인가, 운동과는 무관한 몇몇 리더들의 목소리로 갈 것인가의 문제일 수 있다. 진정 변화를 추구하는 조직이라면, 어떠한 힘을 통해 만들어갈 것인가가 중심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과정에서의 지엽적 문제만 제기하며 논의를 비껴 가는 것은 권력을 이렇게 빼앗기지는 않겠다는 태도로밖에 보여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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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주권과 민주주의
사태가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갈 지는 정립회관 측 공대위 측 어느 쪽도 확언하지 못하고 있다. 단지 서로 버티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정립회관 김동호 사무국장은 “공대위 요구는 가당챦다. 대응할 내용이 없다”고 잘라 말하며,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냐는 질문에는 “원칙으로 갈 수밖에 없다. 다른 방식으로 가면 불법을 인정하는 것이다.”라고 짧게 대답했다.
앞으로 상황이 더 어려워 질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노조나 공대위가 물러서야 한다는 주장도 여전하다. 김동호 사무국장은 ‘결자해지’의 자세가 해법일 수 있다는 제안을 하기도 했는데, “당사자가 각성해서 정리하면, 공대위가 농성을 풀면 해결의 실마리가 잡힐 수 있다”는 것이다. 상황이 달라지면 관장 또한 달라질 것이라며.
하지만 한편으론 유연한 테이블, 즉 장총, 장총련 등 장애우 단체가 중재를 시도하면 적극적으로 나설 용의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제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도, 해 볼 의지도 없다는 의미일까? 그러나 중재가 가능한 덕망있는 인물이나 조직 하나 변변히 없는 장애계 현실을 보면, 그것 또한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정립회관 사태가 향후 어떻게 전개될지, 마무리 될 지, 아무도 전망을 예견할 수 없는 상황일까?
김병태 씨는 “당장은 아니더라도 향후 5-10년 후면 자연스럽게 평가되어질 것”이라고 담담히 말한다. 공대위가 이기는 싸움일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시대의 변화를 거스르지 않고 주체성을 더욱 강화하는 중증장애우들이 있는 한 힘은 더욱 모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 ‘역사의 배움’아니겠냐는 것이다.
정립회관은 중증장애우들에게 당사자주의 확산과 자립생활운동을 지원해 온 이용시설이다. 중증장애우들이 사회 주체로 나서도록 아낌없이 지원해왔다.
그래서 공대위 측 중증장애우들은 정립회관 사태에 대해 “배운 그대로, 진정한 당사자주권 실현을 위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당사자주의를 외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민주주의를 지향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 이유는 당사주권을 외치는 일이 곧‘나의 권리는 어느 누구에게 의해서도 보호될 수 없고, 어느 누구로부터 침해되지 않는다’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는 다수결 원칙과 대의민주주의제가 민주주의의 실현이라고 배워왔다. 길들여져 왔다. 다수결 원칙에 의해 소수가 무참히 소외되는 구조라도 그걸 ‘민주주의’라 불러왔다.
다수가 원하면, 일부 대표가 결정하면, 따르는 것이 민주적인 방식이라고, 국가와 사회는 그 방식만 인정해왔다. 그러나 진정한 당사자주권을 실현하려는 사람들은 이를 거부한다. 아니 거부해야 진정 머리와 몸이 함께 하는 실천 운동일 것이다. ‘내 문제에 있어 직접적인 참여 없이 무엇을 어떻게 결정하겠다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대위 측 중증장애우들의 항변이 ‘이유 있음’으로 읽혀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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