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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초점]최저 생계비로 한달나기

희망UP 캠페인이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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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째 장맛비가 내리는 7월 어느 날 오후, 성북구 미아삼거리 역에서 자원봉사자를 만나는 것으로 나의 최저생계비 일일체험이 시작되었다. 함께 체험에 참여하신 구인회 교수님과 자원봉사자와 마을버스를 타고 좁은 이면도로와 이미 아파트단지화되거나 개발된 주거지역을 돌아 종점에 내리니 달동네 꼭대기였다. 버스 종점에서 주변과는 어울리지 않는 산뜻한 노란 색깔의 공중화장실을 확인해 두고 청소년센터에 들러 체험수칙과 일정을 확인했다. 우리는 1인 가구 최저생계비중 식비 하루 분인 5,000원을 받아 먹거리를 준비하러 갔다. 

생존할 정도로만 먹으라는 최저생계비!
하루 식비 5,000원, 보통 때의 점심 한끼 값으로 하루를 살아야 하니 무엇으로 먹거리를 준비할까 처음부터 난감했다. 빵이나 라면으로 하루를 먹을 수는 있겠다. 하지만 밀가루 음식을 몸에서 달가와 하지 않거니와 가능하면 ‘일반적 생활방식’의 테두리에서 실제적 체험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세 끼 정도 먹을 수 있는 적은 양의 쌀을 구입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햇반 2개를 샀다. 3,000원을 셈하고, 밥에 김치는 먹어야겠다 싶은데 다행히 작은 1,300원짜리 포장 김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돈은 700원. 700원으로 나머지 한끼를 해결하는 길은 라면뿐이지 않은가. 라면과 계란 1개를 사고 나니 남은 돈은 동전 100원 뿐이었다. 결국 밀가루 음식을 피하는데는 실패했지만 그나마 계란 1개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뿌듯하기만 했다.
이렇듯 최저생계비를 받아 하루 식사를 한다는 것은 싱싱한 채소나 과일은 물론 단백질을 거의 섭취하기 어려운, 그저 배만 겨우 채울 수 있는 정도였다. 이런 식비가 최저생계비에서 40.7%나 차지하고 있다니…. 그런데 실제 주민들은 이보다 훨씬 적은 22.9%만 지출하고 보건의료비, 교통통신비 등 기타 부분에 더 많은 소비지출을 하고 있었다. 현재의 최저생계비는 가난한 이들의 실제 생활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건강한 식생활조차 보장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월 10만 원짜리 집을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먹거리를 준비한 후에 우리는 숙소를 찾아갔다. 우산하나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비좁은 처마를 엇비켜가며 당도한 곳은 주인 어른의 손질이 많이 가서 깨끗한 집이었다. 어른들께 인사를 드리고, 구 교수님께서 기거하실 곳이자 식사를 해결하기로 한 오씨 아저씨 댁을 찾았다.  문 앞 한 발 짝 정도 넓이에 상수도와 하수구가 있고, 주방 앞의 창문 외에는 바람 통할 곳도 없었다. 방 창문조차 막아버린 빛 바랜 벽지는 무너져 내린 담벼락을 안고 있어 배불뚝이를 하고 있었다. 채광이 들지도 않고 통풍도 되지 않는 습습한 이곳에서 병환이 있고 거동이 불편하신 아저씨 혼자 하루종일 지내신다니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더욱 커진 빗소리를 들으며 심란한 마음으로 하루 밤을 지낸 다음날 아침, 나를 깨운 것은 서울에서는 사라져서 보기 어려워진 제비 가족이었다. 집 처마에 둥지를 틀고 몇 년째 강남을 오갔는지, 층층이 쌓인 높은 둥지 안은 연신 지지배배 거리며 입을 딱 벌리고 있는 새끼 제비 두 마리에게 번갈아 가며 먹이를 쪼아다 주는 제비 부부가 차지하고 있었다. 제비는 둥지를 찾아 매년 하월곡동으로 날아드는데, 이곳 사람들은 이제 곧 이곳을 떠나야 한다. 개발만능주의에 빠진 서울시가 주택환경개선사업이란 미명 하에 철거를 통보했기 때문이다. 내년에 철거가 되면 어떻게 하실 계획이냐는 물음에 어르신은 월세 10만 원 하는 집을 서울 하늘아래 어디서 구할 수 있겠느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보건의료 비용은 가장 비현실적인 수준!   
지역에서 만나본 주민들은 대부분 질병과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이 공통점이었다. 주민들은 노령에 의한 거동불편, 질병의 후유증에 의한 장애, 그리고 각종 만성 질환에 시달리고 있었다. 가장이나 가족의 일원이 질병이나 장애가 생겨서, 혹은 질병 치료비용 때문에 가난에 빠지는 경우를 많아 보아왔다. 또한 이들 만성질환 환자나 장애우가 있는 가구는 더 많은 보건의료비용이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지역주민 가계부 조사와 설문조사에서 보건의료비가 25.9%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보건의료비를 4.7% 포함하고 있는 현행 최저생계비의 비현실성을 분명하게 보여준 것이다. 지역주민들은 한 달 지출내용 중에서 가장 부담이 되는 항목이 식료품비와 보건의료비라고 응답하였다. 건강 유지와 질병 치료를 뒷받침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증거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건강권은 생존권과 다름없었다. 최저생계비로 빈곤한 현재의 삶을 유지할 수는 있어도 빈곤 탈출의 희망은 가능해 보이지 않았다.

희망 UP 캠페인은 계속되어야!
하루 체험자나 한달 체험자는 이제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하월곡동 주민들은 벗어날래야

 
 
벗어나기 어려운 삶의 질곡에 여전히 놓여 있다. 하루를 체험하든 한 달을 체험하든 최저생계비 체험, 빈곤 체험이란 불가능하지 않을까. ‘가난함’은 못 먹고 못 입는 문제만이 아니다. 최저 생활말고는 어떠한 것도 할 수 없는, 그야말로 살아지는 것이다.
한 주민은 이렇게 말했다.
“체험단들은 최저음식, 최저주거 체험은 하였지만 가난한 이들의 사회적 관계 체험은 하지 못했다” 라고.
‘최저생계비로 한달 나기-희망 UP 캠페인’을 통해 고립되어 있는 가난한 이웃들의 삶이 알려지고 소통되어 최저생계비를 현실화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최저생계비가 최저생계 보장으로 끝나지 말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다.
가난한 이들의 빈곤 탈출과 우리 이웃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될 때까지 ‘희망 UP’ 캠페인은 계속되어야 한다.    
 

글 조경애(건강세상네트워크 공동대표)


 

작성자조경애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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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장애인님의 댓글

장애인 작성일

이것이 우리나라 책상행정의 현주소련만 어찌합니까. 따르지않으면 굶어죽고 따르자니 따분할뿐이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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