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계 현안인 정립회관 사태의 내막 들여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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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장애계 사람들이 몹시 분주하다.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집회와 점거농성 때문이다. 사람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이쪽 점거농성에 참여했다가 다시 저쪽 점거농성 장소로 이동을 감행한다. 그리고는 밤새 삼삼오오 모여 현안에 대해 토론하고 지쳐 잠들다 일어나면 또 다시 하루하루 변화된 상황에 따라 대응하고 입장을 밝히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 사이 밀고 당기는 현장의 분위기는 사람들을 잔뜩 긴장의 도가니로 몰아가는 느낌이다. 하지만 인정하기 힘들다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하고, 냉소적 반응을 넘어 오히려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는 등 뚜렷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함께걸음이 최근의 점거농성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이유는 이 지점이다.
점거농성은 저항의 상징으로, 매우 절실하고 중대한 사안에 대해 물리력을 행사하는 투쟁 방식으로 인식된다. 자신의 목소리가 작동 시스템 속에서 반영되지 못하는 구조에 처해 있을 때, 합리적 방식을 통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져 있을 때, 그리고 도무지 악다구니 써도 상대방이 들어주지 않을 태세일 때의 저항 수단인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장애계 점거농성을 보면, 같은 장애계에 몸담고 있을지라도 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사회적 약자의 권리 확보를 위한 진보의 발걸음으로 평가하기도 하지만, 세를 얻기 위함, 혹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함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다. 모두가 대의명분을 분명히 갖고 시작한 점거농성이지만 입장에 따라 이렇게 확연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최근 정립회관 점거농성 사태와 공단 이사장 선임관련 점거농성, 두 점거농성 사태의 경위를 구체적으로 짚어보면서, 과연 누가 무엇을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는지 살펴보자.
정립회관, 공대위 요구안 거부, 점거농성 자처
우선 정립회관 이완수 관장의 연임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정립회관 사태(?)의 경위를 살펴보자.
지난 4월 정립회관 이사회는 서면결의를 통해, 65세로 정해져 있는 관장의 임기를 정년제에서 임기제로 변경하는 운영규정을 개정했다. 이유인즉슨, 현 이완수 관장의 임기를 2년 더 연장하기 위해.
이 사실이 정립회관 노조와 장애계에 알려지면서 지난 6월 7일 노들장애인야학 등 장애우 단체들은 ‘민주적·공개적 관장 선임 요구’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틀 후 정립회관 내 사격동호회 등 7개 동호회도 같은 뜻을 비추며, ‘관장의 장기 집권 반대’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뒤이어 10일, 이들은 ‘정립회관 민주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 집행위원장 박경석)’를 결성하고 본격적인 정년제 폐지와 관장의 공개 채용을 요구하기 시작한다. 공대위는 정립회관 관장 연임의 문제는 회관 민주화의 중요한 원칙임을 주장하며, 연일 피켓시위와 이사 중 한 사람인 SBS의 윤세영 회장 항의면담, 결의대회 개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사회를 공세 해 들어갔다. 그 사이 노조는 수 차례 노사협의회 개최를 요구했지만, 사측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한편 6월 17일 정립회관 이사회는 임시 이사회를 개최, 요구 안을 들어주기는커녕 오히려 “정년을 만료한 것으로 하지만 촉탁직으로 변경한다. 따라서 2년 촉탁직 관장에 정년퇴임 한 이완수 관장을 임명한다.”는 내용을 의결해 변칙적으로 이완수 관장의 연임을 승인한다.
또 “최고결정기구인 이사회 위에 운영을 결정하는 별도의 기구를 만드는 것은 기형적”이라며 공대위에서 제안한 ‘정립회관발전을위한특별위원회’(이하 정발특위) 구성도 거부하기로 결정한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공대위 측은 22일 시급히 점거농성에 돌입하게 되는데, 23일에는 정립회관 노동조합이 지도부 파업결정을 통해 점거농성에 합류하게 된다.
이어 28일에는 국제민주연대, 인권운동사랑방 등의 인권단체 등이 ‘사회복지시설 인권확보와 민주화 쟁취를 위한 성명서’를 발표, 정립회관 관장 연임 결정 철회와 시설 이용자의 운영 참여를 보장하라며 공대위를 공식적으로 지지한다.
성명을 발표한 인권단체들은 “사회복지서비스는 국가 책임 하에 이루어져야 하는 공공의 영역이다. 관장의 임기제를 지키고, 정발특위를 구성하라는 노조원들에게 어떻게 3명 정직 1개월, 8명 견책이라는 징계를 내릴 수 있는가, 민주적 운영을 위해서라도 관장은 즉시 퇴임해야 하며, 시설운영의 민주성을 확보하기 위해 이용자들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라며, 더 이상 사회복지시설이 사유화될 위험성을 제거하기 위해서라도 이용자가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합의 기구는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소아마비협회, 받아들일 수 없다
위 일련의 과정을 살펴보면, 문제는 단순한 듯 보인다. 이완수 관장의 ‘연임 문제’.
그런데 한 복지관의 관장이 1년을 더하든, 2년을 더하든 ‘그게 점거농성을 할 만한 일인가?’라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사안을 좀 더 깊게 들여다보면, 문제는 그리 단순해 보이지 않는다. 갈등의 주체는 노조, 공대위, 이사회, 비노조 직원모임, 시설이용자, 인권단체, 점거를 반대하는 일부 장애우 단체 등인데, 서로가 합리적 해결방안 모색보다는 감정에 치우친 상처내기로 골이 훨씬 깊게 패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정립회관의 점거농성 사태에 대해, 관계자들은 각각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지 살펴보자.
우선, 정립회관 운영책임 주체인 소아마비협회는 22일 성명서를 통해 ‘수영장 건립, 본관 재건축 등의 사업을 마무리 할 적격자는 현 관장이며, 이용자의 참여를 보장한 ‘정발특위’구성 제안에 대해서는 이용자평가단을 구성하고 이용자 대표를 운영위원회에 참여시키면 될 것’이라며 공대위 요구 안을 일언제하에 일축했다. 그리고 이사장인 송영욱 변호사는 “조만간 사퇴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의지는 없고, 시끄러운 사태에 끼어 들고 싶지 않다는 태도로 보여진다. 이사회가 책임지고 이 사태를 해결해야 하지만, 이사회 구성원 중 그 누구도 나서지 않고 있다.
비노조직원모임, “점거농성은 불법이다”
노조에 속하지 않은 비노조원들은 ‘비노조직원 모임’을 결성했다.
6월 24일 이 비노조직원 34명은 사무실 점거농성에 대해 “업무방해다. 우리 일터를 빼앗겼다. 장애우를 위한 조속한 업무재개를 위해 공대위는 즉각 철수하라”고 요구하며, 사안의 본질적 측면에 접근하기 보다 ‘점거는 불법이다’는 시각으로 모든 책임을 공대위와 노동조합에 전가하고 있다.
급기야 29일에는 ‘비노조직원 모임’을 구성, ‘이완수 관장의 입장을 지지한다’는 공식적인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이완수 관장이 10년 넘게 복지관에서 일해왔지만 단 한번도 부정비리에 연루된 적 없다 내·외부적으로 지탄받을 뚜렷한 잘못이 없는 상태인데도 정년만을 주장하며 퇴진을 요구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공대위는 이용자가 중심이 아니라 외부세력이 주축이다. 점거 명분이 약하다 업무 방해를 즉시 중단하고 소수에 불과한 노조의 의견이 아닌 다수로 구성된 비노조직원들의 뜻에 따라 즉각 철수하라 이러한 의견 표명은 사측의 어떠한 협박이나 회유에 의한 행동도 아니다. 점거농성비노조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토론을 거쳐 결정한 내용이다. 등으로 요약된다.
비노조직원모임에 속한 한 직원은 이번 사태에 대해 ‘노조측의 책임’을 주장했다. 그는 “내가 선택한 이 길이 맞는 것인가, 사태를 계기로 많은 것을 고민했다. 하지만 지금 보여지는 모습은 자립생활 운동의 한 측면이 아니다. 이완수 관장 때문에 우리 사회에 IL이념이 퍼진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번 사태는 노조문제로 출발한 것인데, 노조 문제에 장애우 단체가 끼어 든 격이다. 관장이 해야 할 일이 많고 연임하는 게 점거까지 할 정도로 큰 문제라고 생각지 않는다.
노조와 공대위는 뭔가 부당하고 큰 잘못이나 한 것처럼 접근하는데, 이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을 모두 무시하고 배격하고 있다. 갑자기 우리는 매우 비민주적인 사람들이 되어 버렸다”고 토로했다. ‘정립회관 민주화를 위한’것이라는 것은 허울좋은 명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얼마 전 관장과 직원들과의 대화 시간이 있었는데, 우리가 모든 것을 이해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의구심에 대해 질문했고, 관장은 성의껏 답했다. 이번 성명서도 눈치보지 않고 우리끼리 하루 종일 토론을 거쳐 작성한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건 단 하나다. 우리의 일터, 사무공간을 돌려 달라는 것이다.”라며,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문제를 납득하기도 어렵고 이런저런 유언비어로 서로 상처내기를 하고 있는 상황도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나 관장을 지지한다는 성명서까지 발표하고, 사측에서나 말할 수 있는‘점거농성은 불법이다’는 논리를 비노조직원들이 스스럼없이 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어찌됐건 사측의 입장과 동일하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투표를 통해 농성에 참여하지 않는 노조원들에게는 직원회의 조차 참여를 불허하기로 결정해, 사안을 합리적으로 판단하기보다는 노조 자체에 대한 불만의 감정이 우선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한편 공대위 박경석 집행위원장이 대화의 자리를 마련할 것을 요청한 바 있다. 그러나 비노조직원들은 “설득하려고 한다” 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더니, 결국 투표에 부쳐, 결국 “2명 찬성에 모두 반대했다”는 이유를 들어 거부했다.
노조 “민주적운영체계”요구
그렇다면, 노조의 입장은 무엇인가.
노조측의 활동은 지난 3월 8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조원들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이사회 측에 ‘현 관장 정년 이후의 대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는 피켓시위를 벌인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3명에게는 정직 1개월, 8명에게는 견책’이라는 ‘징계’ 뿐. 그 후 노조측은 항의의 뜻으로 출근피켓 시위를 벌였는데, 사측은 사진을 찍으며 노조의 시위를 감시하고 경계했다.
이 과정에서 변충근 사무국장이 노조원에게 상해를 가해 전치 2주의 진단을 받기도 했다. 징계 이유에 대해 변충근 사무국장은 “노조원들이 점심시간을 엄수하지 않고 미리 식사를 하는 등 근무시간을 지키지 않아서”라고 했지만 “노조가 경영권에 간섭하는 것 자체도 용인할 수 없다”고 말해, 사측에 대한 도전(?), 즉 보복성 징계라는 노조의 주장에 힘을 실어 주었다.
노조측은 이번 정립회관 사태에 대해 “운영의 기본 원칙도 저버리는 사람들이 어떻게 민주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며 “운영주체인 소아마비협회가 즉각 사태해결에 나서라”고 주장했다. 정립지부 김재원 지부장은 “당사자주의, 자립생활운동을 주장했던 사람들이 되려 장애인권을 침해하고 있는 모순된 논리를 반복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시설민주화를 이루기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결의를 다지기도 했다.
그러나 노조와 정립회관 측의 대립은 노-사의 문제로 이해할 수 있다해도, 노-노, 즉 노조와 비노조직원과의 문제는 좀 심각한 듯 보인다. 같은 처지의 직원이라 해도 노조 가입 여부에 따라 사태를 보는 관점은 상이하게 다르며, 감정의 골은 계속 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측은 비노조직원들의 성명서에 대해 “같은 동료로서 상반된 입장을 표명한 것에 대해 유감”이라고 전제한 후, “지난 조합 설문조사에서 관장의 연임을 반대하는 직원이 81%나 되었고, 노동부가 조사한 전 직원 설문에서도 관장의 민주적 운영에 대해 100%가 민주적이지 않다고 평가했으면서도 문제가 없다고 표명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또한 노조는 공대위를 외부세력을 보는 것에 대해, “구성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라는 말로 간단히 답한 후, 소수의 노조가 다수의 비노조직원의 의견을 따라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진실과 정의가 다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는 말로 응수했다.
노조측은 “수차례 노사협의회를 주장하고 대화로써 문제를 풀려고 할 때 비노조직원들은 무엇을 했는가”라고 책임론까지 듣고 나왔는데, “과거 동료들의 주장에 문제제기 조차 없다가 지금에 와서 당당하게 입장을 밝히고 있는 것을 누가 순수하게 받아들이겠냐”며 서운함과 불신감을 표명했다.
“점거농성 반대한다”는 제3의 목소리
정립회관 사태는 이렇게 <정립회관측과 비노조직원 모임> 대 <공대위와 노조측>으로 나뉘어져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대립상태를 지속하고 있다.
그러던 지난 6월 30일, 정립회관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이해관계자가 아닌 그룹의 성명서가 떴다. ‘공대위의 점거농성을 반대한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한 쪽은 양천, 제주,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독립비젼 21, 전주손수레자립생활협회 등 5개 단체.
그동안 개별적 입장에서 지지 혹은 비판을 하기는 했어도, 공대위에 소속되지 않은 장애우 단체들은 대체로 ‘노-사 문제’로 인식해 사태를 관망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이 단체 중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DPI(한국장애인연맹)도 같은 입장이라 연명을 할까말까 고민하다, 결국 파장이 커질 것을 염려해 이름을 연명하지 않았다”고 말해, 정립회관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DPI측 또한 공대위의 점거농성을 반대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소아마비협회 이사중 4인이 DPI 소속이기도 하다.
이 5개 단체는 성명서를 통해 점거농성에 반대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첫째, 모든 복지시설들의 전달체계가 공대위가 주장하는 것처럼 변화해야 하는지,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지 의문이다.
둘째, 개별 단위의 민주화가 위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체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해 해결되도록 해야 한다. 그동안의 시설 민주화 투쟁이 지난한 과정을 거쳐왔던 것이 이를 증명한다.
셋째, 상황 판단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연임이냐, 장기집권이냐를 가늠할 수 있는데, 활동가의 재생산 문제가 현실의 고민인 이상, 관장의 장기집권 문제는 인권단체 또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넷째, 강제구금과 폭행으로 얼룩진 수용시설장의 장기집권 문제를 정립회관의 관장연임 문제와 동일선상에 놓는 건 논리의 비약이다.
다섯째, 정발특위 구성에서 노조와 공대위가 어떻게 함께 지위를 부여받느냐는 것이다. 노조는 공대위 소속단체이기도 하며, 사측과 논의 창구를 별도로 갖고 있는데, 이중의 권한을 부여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용자 대표와 비노조직원이 언급되어 있지 않은 점을 지적, 문제해결의 당사자는 이용자와 직원이 꼭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현실의 한계를 인정하여 주장과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과 이완수 관장 연임문제는 타복지시설 비리문제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 두가지로 요약된다.
5개 단체는 공대위가 지나치게 감정적 단어만을 되풀이하며 ‘오버’하고 있다며, 과도한 투쟁방식으로 객관적 협의 구성도 끌어내지 못한 채 사태를 파국으로 몰고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정립회관은 자립생활운동을 도입,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으며, 전달체계의 중심을 당사자로 옮겨오는 혁신적인 패러다임을 제안하고 있다며 장애청년운동의 유일한 토대였던 정립회관은 이용시설로써의 역할을 충분히 했다는 것이다.
그러한 객관적 평가없이 정립회관 민주화 운운하는 것은 ‘빗나간’ 것이며, 공대위의 주장이 450만 장애우의 요구인양 호도 되는 것을 반대한다는 입장이었다.
5개 단체는 공대위 점거농성도 반대하지만, 조속한 해결을 위해 정립회관 측이 이용자 의견이 수렴될 수 있는 창구를 신설하라고 촉구했다.
이로 인해 정립회관 사태는 정립회관과 비노조직원들, 그리고 노조와 공대위를 구성하고 있는 장애우 단체들의 대립에서, 장애계 내부의 대립으로 흘러가고 있는 듯한 양상도 보이고 있다. 특히 공대위에는 IL협의회가 들어와 있는데, 5개 단체 대부분이 IL협의회 회원단체들이란 점이다.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도 전에 IL운동이 힘을 모으지 못하고 전면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될 만한 부분이다.
대상화하는 자립생활운동?
이에 대해 공대위 박경석 집행위원장은 정립회관 관장 연임문제는 ‘시설 민주화의 중요한 원칙’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는 “정립회관 측이나 비노조직원, 5개 IL단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부정비리가 없었던 사람이다. 후임에 사람이 없다.
지금의 정립회관을 만든 공헌도 있지 않느냐’고 해서 받아들일 문제가 아니다. 그게 어떻게 연임의 정당성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가. 누가 어떻게 어떤 절차에 의해 결정권을 행사하느냐는 중요한 문제다”라며, “운영규정을 변칙적으로 적용해서 관장 자리에 오르게 만드는 것이 어떻게 민주적일 수 있냐”고 반문했다. 더욱이 점거농성 사태를 바라보고 공대위를 대하는 권위적인 이완수 관장의 태도와 직원들의 “불법 활동에 활동보조인 파견할 수 없다” 등의 벌언을 예로 들며, “IL, IL 말로는 이야기하면서 정작 당사자가 참여해서 선택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대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자립생활운동이라고 하면서 중증장애우를 대상화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IL협의회의 분열조짐에 대한 우려에 대해서는 “이미 시작 전부터 분열은 예견되어 있었는데, 분열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정체성을 갖고 활동하는 것은 정당하며 관점의 차이가 크면 각자가 선택한 방향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단호히 말한다.
일각에서 내내 거론되는 공대위의 상황인식에 대한 과도성, 즉 오버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합리적 수단을 그 쪽에서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문제의 본질을 희석시키려는 전략이라고 단언했다. 박경석 집행위원장은 외부세력 운운하는 것 또한 받아들이기 힘들단다.
그는 “공대위를 분열시키려고 그러는 것 같다”고 짤막하게 답한 후, “복지시설은 사적 기관이 아니고 국가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할 뿐이다. 그렇다면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이 이용자며, 주체다. 시설을 사적으로 판단하는 건 자기들만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것인데, 그러한 구조가 되면 야합의 가능성만 커질 뿐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장애계가 이 사태에 대해 주체로서 바라볼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13년전과 똑같은 요구
그런데, 세간에서 정립회관 사태를 주목하는 것이 비단 시설민주화 차원의 접근만은 아닌 것 같다. 지금의 주장은 14년 전인 1990년과 93년에도 똑같이 있었고, 그래서 장애청년조직들은 43일의 점거농성과 삭발, 단식을 감행, 지금과 거의 비슷한 방식으로 투쟁하고, 비슷한 내용을 정립회관 측에 요구했다는 점이 그것이다. 물론 당시에는 정은배 상임이사의 부정비리가 밝혀지면서 드러난 사건이지만, 농성단 측은 이를 계기로 황연대 관장 퇴임과 시설운영의 투명성, 민주성을 주장한다. 당시의 요구 안은 아래와 같다.
<우리의 주장>
1. 국회는 즉각 국정조사권을 발동하여 장애인 복지시설에 대한 전면 감사를 실시하라!
2. 복지법인 비리에 대해 묵인 및 관리 소홀에 대한 책임을 지고 보사부 장관은 퇴진하라!
3. 복지시설 비리에 관련된 관계 공무원을 철저히 색출하여 처벌하라!
4. 공금횡령 및 유용과 세습운영을 획책하는 정은배를 구속 처벌하라!
5. 현재 정립회관 일련의 사태에 대해 황연대 관장은 책임지고 사퇴하라.
6. 관장 선출과 회관 운영에 대하여 정립회관직원 및 장애인 대중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의사결정기구를 신설하라!
7. 정립회관의 예산 및 결산 내역을 공개하라!
8. 불법 이용된 공금을 즉각 환수하라!
9. 이사회를 즉각 소집해서 수습하라!
-서울장애인운동청년연합회(이하 서장청련)-
당시 황연대 관장의 비리는 드러난 사실이 없었다. 하지만 서장청련은 사태 해결의 책임을 지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며 무조건적인 관장 퇴임을 주장했다. 관장으로서 비리와 파행적 운영에 대한 책임을 결코 회피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당시에도 이사회에서는 직접적으로 걸린 것도 없으며, 황 관장 이후의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했었는데, 서장청련은 황 관장이 퇴진하지 않는 한 결코 농성은 풀 수 없다고 맞대응 했었다.
이렇듯, 현재와 과거의 주장 내용이 거의 비슷하다. 하지만 다른 지점이 하나 있다. 바로 주장하고 농성을 주도한 주체가 다르다는 것. 당시 점거농성의 주체는 서울장애인운동청년연합(준비위원장 이안중, 현 양천구지체장애인협회 지회장)이었고, 지금은 여러 중증장애우 단체들로 구성된 ‘공대위’라는 점뿐이다.
14년전 농성주체들, 현재의 농성을 반대하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것은 이번 공대위 점거농성을 ‘과도한’이라고 표현한 쪽이 바로 당시 서장청련 활동을 했던 선배활동가들이란 점이다. 표면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한국장애인연맹(DPI)도 비공식적으로 공대위 활동에 비판적 입장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DPI에는과게 서장청련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이 많이 소속되어 있다. 당시 준비위원장이었고 현재 지체장애인협회 양천지회장을 맡고 있는 이안중씨 역시 “공대위가 억지 쓰는 부분이 있다”고 주장한다. 과거와 현재의 상황이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과거 문제제기 주체들이 왜 오히려 현재 상황을 받아들이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까.( 박스 이안중회장과의 일문일답 참조)
특히 그들은 최근 공단 이사장 선임 건을 두고 특정 후보를 공개적으로 반대하며 점거농성에 들어갔었는데, 자신들의 점거농성에 대해서는 강한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으면서 공대위 측에는 비판의 화살을 쏘고 있다. 공대위는 조직운영의 민주화를 위해 관장연임은 철회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공단 점거농성을 했던 범대위는 박은수 이사장애 재활론자이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것이 명분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장애계 관계자들은 정립회관 점거보다 공단 점거농성을 명분도 약하고 이해할 수 업는 주장이라고 말한다.
박은수 이사장을 반대한다는 이유가 "재활론자"라는 것인데 재활론자가 어떤 사람인지, 뭘 의미하는지도 분명치 않다는 것이다. 이에대해 일각에선 "한국장총 인사로 알려져 있고 당사자가 아니란 이유를 붙일 수 없으니까…"란 소문이 나돌고 있다. 거기다 IL 이념이 담론으로 굳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거부해야 할 것 같은 "재활"을 갖다 붙이면 거저 얻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 특정 후보의 이미지 손상을 통해, 또다른 특정후보를 선임시키기 위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공대위도 5개 단체의 성명에 대한 반박 성명에서 이 같이 지적했었다. 공대위 투쟁이 소모적이라면서 공단 점거를 통해 얻은 성과는 무어냐는 거다.
점거는 저항의 상징인데…
앞서 언급했지만, ‘점거농성’은 약한 자, 가지지 못한 자들의 ‘저항’그 자체로 인식되었었다
하지만 주체의 성격과 내용에 따라서는 단지 이해와 요구를 관철시키는 하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농성의 주체들은 각각 대의명분을 충분히 밝히고 있다.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 명분은 허울뿐이며 대중을 속이고 단순히 위기를 극복하여 자신의 영역을 더욱 확고히 고착화시키려고 하는 일종의 ‘버티기’ 혹은 ‘이권 챙기기’정도로밖에 인식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번 기사를 준비하며 88년부터 2004년까지 장애계에서 있었던 점거농성의 사건과 그 유형들을 살펴보았다.(참고자료 함께걸음) 약 30여 건 이었다. 물론 기사에서 다루지 않은 처절한 몸부림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건들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인권확보’와 ‘이권확보’로 확연히 구분된다는 점이다. 어쩌면 인권이냐 이권이냐는 보는 입장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단어에서는 받침 하나 차이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대중은 현명하다. 대중은 올바른 판단을 한다. 저항 이데올로기는 지배 이데올로기를 이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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