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방] “제 동생은 단지 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느끼고 표현할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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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이 절정에 이르고 있다.
방학은 그야말로 숨 고르는 시간. 하지만 요즘은 방학이 더 힘들다고도 한다. 학기 중보다 더 많은 학원으로 내몰리기 때문에. 그래도 여전히 학생들에게 ‘여름방학’은 더위를 녹일 수 있는 강력한 청량제임에는 분명하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가족센터에서는 매년 여름방학 때 ‘형제캠프’를 열어왔다. 가족센터는 발달장애아동을 주간보호 하고 있는데, 장애아동과 그 형제들의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 마련한 이 캠프는 벌써 10회째다.
이번 함께걸음 ‘수다방’에서는 이 형제캠프에 참가한, 그러니까 발달장애를 가진 동생의 형, 언니들을 만났다. 이들 모두 비장애우지만 장애아동을 바라보는 부모와는 또다른 생각이 있을 것이다.
형제이고 자매인 자리에서 발달장애를 가진 동생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어떤 고민들이 있는지 진솔하게 털어 놓는 이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여보자.
함께 : 안녕하세요? 어제 오늘 캠프 활동하느라 많이 지쳤을 텐데, 이렇게 수다방에 입장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시간에 참석하신 네 분은 모두 발달장애가 있는 동생을 둔 언니, 형, 누나들인데요. 혹시 동생의 장애 때문에 친구들에게 놀림 받거나, 잘 어울리지 못했던 기억이 있나요?
지호 : 저 같은 경우는 오히려 동생 때문에 친구들과 더 친해졌어요. 친한 친구 쪽으로 말이죠. 친한 친구들과는 동생 얘기 나누면서 서로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이가 된 것 같아요.
성수 : 저는 동생이랑 같은 초등학교 다녔어요. 그리고 동생과 같이 학교 다녔던 기간동안에는 엄마가 그 학교 선생님이었고. 엄마라는 그늘 때문에 아이들이 동생을 해꼬지 할 수 없었어요. 아니, 오히려 더 잘해줬죠. 부모님은 ‘너는 네 인생을 살아라. 동생은 부모 몫이다’라고 하셨죠. 제 생활 자체가 동생의 장애를 다른 친구들에게 굳이 소개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동생은 늘 엄마가 데리고 다녔으니까.
축하 : 저도 동생 때문에 놀림을 받아 본 기억은 없어요. 그렇지만 형제 중에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가 있는 친구들 중에는 다른 친구들에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친구들도 많아요. 놀림을 많이 당했거나, 그게 걱정이 되어서 말을 쉽게 꺼내지 못하는 거죠. 그런데 오늘 이 수다방에 참석한 저희들은 이 형제 캠프에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참석해오고 있는 학생들이어서 이런 면에 있어서는 좀 특이한 경우죠. 그런데 저는 선생님 때문에 정말 화났던 적이 있었어요.
함께 : 선생님 때문에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축하 : 중학생 때, 기술 선생님 때문에요. 나이가 좀 드신 분이었지만, 장난도 잘 쳐주시고 해서 친했어요. 하루는 떠든 애를 앞으로 나오라고 하더니, 그 애의 팔다리를 이렇게 안쪽으로 꺾고 “나는 애자다”라는 말을 하도록 시키는 거예요. 너무 화가 나서 그 후로 그 선생님과는 말도 안했어요. 복도에서도 아는 척 안하고. 그랬더니 선생님이 무시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던지 “꼬락서니가 그게 뭐냐. 왜 그러냐?”고 화를 내시는 거예요. 그래서 대들었죠. 선생님 말 꼬락서니는 왜 그러냐고. 그 선생님한테 저 멱살 잡혀서 학생부로 끌려갔어요. 버릇없는 말 한 것은 인정해요. 하지만, 선생님이라는 사람이 그래도 되는 거예요? 정말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어요. 다행히 제 심정을 이해해 주신 담임 선생님 때문에 풀려나기는 했지만.
그런데요, 기술 선생님이 우리 집에 전화해서 엄마한테 잘못했다고 하면서 자기가 교회 집사인데, 자기도 매주 장애우들 돌본다고 그러더래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뻔뻔할 수 있어요? 아무튼 그 때 학교가 뒤집어질 정도로 엄마하고 그 선생님하고 싸웠어요.
함께 : 그 장면에서 친구들 반응은 어땠나요? 특히 축하랑 친한 친구들은 뭐라고 하던가요?
축하 : 장애 동생이 있다는 것을 아는 제 친구들도, 그 상황에서는 재밌어 하더라고요. 저보고 힘들겠다고 하던 친구도 웃고. 그러니까 장애우 놀리는 장난이랑 동생 때문에 제가 고민이 많다는 것은 친구들한테 별개였어요. 그런 친구들이 미웠어요.
함께 : 성수 부모님은 “동생은 부모가 책임질 테니, 너는 네 인생을 살라”고 했는데,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성수 : 발달장애가 있는 형제가 있는 비장애우들에게 나중에 자기 가족이 살 집을 한번 그려보라고 하면 열명 중에 여덟 명은 이층집을 그려요. 1층에는 자기 가족이 살고, 2층에는 동생이 사는, 아니면 그 반대이거나. 저는 이게 더 아니라고 생각해요. 동생은 도움이 필요하니까 근처에 살 수는 있지만, 같이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부모님 보험, 연금 다 동생 앞으로 되어 있어요. 제 앞으로 된 것은 없대요. 그런 상황 인정하고요.
동생 인생은 이미 짜여져 있어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직업재활 프로그램에 다니다가 그룹홈에 들어가는 거죠. 짜여져 있는 동생 인생에 이미 제가 끼어들 자리는 없어요. 제가 동생을 도울 수는 있지만.
함께 : 성수는 앞으로 취직이나 결혼 등을 맘대로 할 수 있을 거예요. 어쨌든 성수는 인생을 선택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짜여진 인생을 살 수 밖에 없는 동생 인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요?
성수 :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동생에게는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없잖아요. 물론 그렇게 짜여진 인생이 동생의 맘에 안 들지도 모르죠. 그렇지만, 판단 능력이 없는 동생을 위해서 우리 가족 모두가 최선의 것이라고 만들어 놓은 것이니까, 그대로 가길 바라는 거죠. 장애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 그게 되면 우리가 걱정도 안하죠.
함께 : 다른 분들은 어떠신가요? 동생에 대해서 부모님이 어떤 양육태도를 보이는지, 그리고 그런 부모님의 모습이나 결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영 : 저희 엄마도 제게는 “너는 취직하고 결혼해서 너 갈 길 가라”고 하세요. 나중에 엄마 아빠는 시골 한적한 곳에 동생이랑 따로 살겠다고.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우리 집 형편에 그게 가능할 것 같지는 않아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장녀인 제가 결국에는 책임져야 할 거예요.
지호 : 제 동생은 중3인데요. 제게는 아직 어려서 그런지 그런 말씀은 안하세요.
축하 : 동생이 아직 어려서 그런 것이 아닐까?
성수 : 아냐, 그렇지 않아. 우리 부모님만 봐도 동생이 초등학생일때, 그러니까 벌써 10여년 전부터 그룹홈 구상하시고, 알아보시고 그러던데. 동생이 어려서 부모님이 아직 계획이 없는 것이 아니라 부담주기 싫어서 말을 안 하시는 거야.
지호 : 그런가요? 저는 부모님이 생각하는 대로, 말씀하는 대로 따라갈 거예요. 왜냐하면 어쨌든 나보다 동생에 대한 경험도 많으시고, 더 잘 아시니까요. 그리고 아무래도 저보다 더 많은 고민을 하셨을 테니까요.
축하 : 저도 아직 부모님으로부터 동생의 미래에 대한 무슨 말을 듣지는 못했어요. 그런데 아까 성수오빠가 이층집 얘기 했잖아요. 저 솔직히 머리 속에 그거 상상하고 있었거든요. 저도 동생을 도울 수는 있지만, 동생을 위해서 희생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함께 : 축하가 생각하는 ‘희생’이라는 의미는 뭔가요? 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겠어요?
축하 : 음… 그러니까 저희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시는데요. 제 동생이 학교 마치고 집에 오면 오후 4시쯤 돼요. 그런데 집에는 아무도 없죠. 식구들이 들어오는 시간은 거의 밤10시 정도? 동생은 집에서 한 여섯 시간은 혼자 있어요. 그렇게 혼자 내버려두는 것이 맘에 걸리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동생을 위해서 학원을 안가고 집에서 같이 놀아줄 수는 없다는 뜻이에요.
함께 :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에 동생의 상황에 대한 고민을 해본 적이 있을 것 같은데.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나영 : 결혼을 안 한다면 같이 사는 것도 무방하겠죠. 그렇지만 결혼을 하면… 동생을 천덕꾸러기로 만들 것 같아요. 상황이 동생을 그렇게 만들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보편적으로 많이 선택하고 있는 그룹홈, 저도 현재로써는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부모님도 저에게 동생의 장애 때문에 짐을 안 줄려고 무던히 애 쓰세요. 전 맏이고 장애가 있는 동생은 둘째, 그 아래 셋째 동생도 있거든요. 제 경우만 봐도 둘째 동생 때문에 막내가 부담 받지 않도록, 제가 해결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제 선에서 마무리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예요. 아마 부모님도 저와 비슷한 심정이지 않을까요.
함께 : 동생의 장애 때문에 가족이 울고 웃고 했던 기억들이 있을 것 같아요. 동생 때문에 행복했던 일들이 있었다면 어떤 것이었나요?성수 : 첫 말문이 터졌을 때죠. 물론 저는 당시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부모님 말씀을 들어보면 그런 것 같아요. 아마 동생이 네댓살이었는데, 그 때까지 엄마 아빠라는 말도 못하고 있었대요. 무더운 여름 날 외갓집에서 삼촌이 시원한 물을 들고 있는 것을 보고 동생이 그것이 먹고 싶어서 달라는 의사표시를 했나 봐요. 삼촌이 “물”이라고 해야 준다고 계속 동생한테 그랬대요. 동생하고 삼촌하고 물 때문에 실랑이를 벌였는데, 갑자기 동생이 “물!!” 그러더래요. 첫 말문이 그 때 터진 거죠. 제 동생이 세상을 향해 처음으로 뱉은 말은 엄마 아빠도 아니고, 맘마도 아닌 “물”이었어요.
축하 : 제 동생은 그림 그리는 거 참 좋아하거든요. 동생은 사람 얼굴에 손발만 달린 그림을 그렸는데, 점점 목이 생기고, 팔도 생기고 손가락이 그려지고, 입은 옷이 화려해지고, 주위 풍경이 생기는 것을 보고 있으면 정말 신기해요. 그리고 참 기뻐요.
지호 : 동생 때문에 제일 기뻤던 때는 아마 제가 중 2학년인가 3학년인가였을 때였어요. 동생이 학교를 옮겨서 혼자 지하철을 타고 통학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엄마가 저보고 동생이 혼자 통학할 수 있도록 같이 연습을 하라는 거예요. 첨엔 솔직히 싫었어요. 창피하기도 했고. 방학 내내 하루에 두 번씩 동생 데리고 학교 가는 길을 왕복했어요. 그랬더니 어느 날 혼자 무사히 갔다 온 거예요. 그 때 정말 기뻤어요.
나영 : 저는 제 동생이 저보고 처음 “언니”하고 불렀을 때, 그 날이 가장 행복했어요. 그 때 동생은 일곱 살이었고, 저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죠. 동생은 그 때부터 서서히 좀 좋아졌어요. 지금 동생은 고등학생인데, 동생이 좋아하는 것은 유치원 다니는 아이들이 가지고 놀법한 그런 장난감들이에요. 좀 그렇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사달라는 의사표시를 하고, 좋아하는 감정을 보여주고 하는 것이 너무 좋고 신기해요.
함께 : 나영이는 발달장애를 가진 동생이 여동생이라고 했죠? 동생이 여자여서 생기는 고민도 있을 텐데요.
나영 : 당연하죠. 학교 보낼 때, 남자 선생님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성희롱이나 성폭행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많아요. 혹시 그런 상황에 놓였어도 제 동생이 말하는 것은 증거로 채택되지도 않잖아요. 신빙성이 없다고. 그러니 더욱 전전긍긍할 수 밖에요.
정신지체나 자폐를 가진 아이들은 어렸을 때 약을 많이 먹어요. 그런데 그 약이 호르몬에 많이 영향을 준대요. 그래서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나이보다 더 앞서서 성장해버리거나, 비만한 경우가 많은 거라고 들었어요. 여동생도 덩치는 저보다 훨씬 커요. 여자 아이들일 경우 생리도 더 빨리 한다고 들었는데, 제 동생도 지금 생리하거든요. 학교에 보조교사가 있기는 하지만, 엄마는 그것까지 남의 손 빌리기 싫으신가봐요. 아마 생리 뒷처리를 제때 잘 안해주는지… 아무튼 그래서 생리 양이 많은 며칠은 학교 안보내시거든요. 그런데 아이들이 호르몬에 영향을 주는 약을 먹다보니까 한 달에 2번 생리할 때도 있어요. 그러면 학교에 못가는 날이 벌써 열흘 가까이 되죠. 그러면 교육 받는 것에서도 차이가 많이 나요.
함께 : 발달장애나 정신지체를 가진 여성들의 성폭력에 관한 사건들이 많아지면서 나영이가 말하는 부분은 정말 큰 걱정입니다. 이런 장애 여성의 성폭력 사건의 경우 증거 불충분이나 화간으로 오히려 무고죄를 뒤집어쓰거나 가해자가 석방되는 지경까지 이르고 있는데요. 우리 사회가 정말 각성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이렇게 동생의 장애 때문에 속상했거나 슬펐던 경험들이 더 많을 것도 같은데요.
성수 : 동생이 없어졌을 때. 가족과 친척들은 거의 죽다가 살아나죠. 아마 이게 제일 힘든 부분 중의 하나일 겁니다. 제 동생 얘기를 좀 해보자면요, 제 동생은 버스를 정말 무서워해요. 절대 안타요. 그래서 동생이랑 어딜 가려면 택시나 자가용을 이용할 수 밖에 없어요. 저희가 안양에서 살았을 때 광명시에 있는 이모네 집에 갈려고 길을 나섰다가 동생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어요. 난리가 났죠. 친척 다 동원해서 안양시를 싹 뒤졌죠. 그래도 못찾았어요. 그런데 당일 새벽 2시에 광명시에 있는 한 노래방 아르바이트 학생이 제 동생이 가지고 있는 연락처를 보고 전화를 했어요. 글쎄 광명시까지 혼자 간 거예요. 그러니까 그동안 차로 이모 집 오가던 길을 제 동생이 걸어갔다는 거죠.
나영 : 동생이 없어지면 정말 눈이 확 뒤집혀요. 제가 슬펐던 경험은 동생이 학교 입학할 때 엄마가 장애 진단하는 의사에게 매달리면서 얘 학교 보내야 된다고 한 등급만 낮춰달라고 애원하셨을 때, 그리고 동생이 입학하기 위해서 면접보고 왔던 날, 동생이 무슨 실수를 했는지 엄마가 동생을 한 쪽에 재우고 불도 안 켠 채 혼자 웅크리고 울고 계신 모습 봤을 때였어요.
지호 : 저는 동생 때문에 슬펐던 경험 없어요.
성수 : 에이, 없는 것이 아니라, 지운 거 아냐?
지호 : 그런가? 그런데 엄마를 슬프게 한 적이 있었어요. 한 번은 동생을 때렸다고 엄마한테 혼이 났는데, 속이 상해서 엄마한테 왜 이런 애를 낳았냐고 소리 질렀어요. 엄마가 나도 이런 애 낳고 싶었겠냐고 우셨어요. 그 때 방에 들어가서 많이 울었죠.
성수 : 저는 제가 성질을 못 참고 동생을 때리고 난후, 그 상처를 보면서 같이 샤워할 때, 운 적 많죠. 여자 형제들은 싸워도 멍들 정도로 때리면서 싸우진 않잖아요. 왜 좀더 참지 못하고 때렸을까, 내 동생은 왜 이럴까… 그러면서 많이 울었어요.
함께 : 오늘 수다방에 참석하신 분들이 장애우는 아니지만, 가족 중에 장애우가 있는 사람으로써 장애우 혹은 장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축하 : 우리 사회에서 장애우는 단지 불쌍한 사람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신문에서도 보면 장애우한테 사기를 치거나 못된 일을 하는 사람들 얘기가 많이 나오잖아요. 장애우들은 불쌍하고 힘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거죠. 저는 제 동생과 오래 지내서 그런지는 몰라도 장애를 가졌을 뿐, 비장애우들과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제 동생은 단지 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느끼고 표현할 뿐, 나머지는 저랑 똑같거든요.
나영 : 사람들은 자기와 다른 모습을 보고 장애우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제 동생처럼 자폐를 가진 장애우들을 보면 사람들은 보통 피하죠. 그 자리를. 저한테 저만의 세상이 있는 것처럼, 동생에게도 동생만의 세상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줘야 합니다.
지호 : 장애우를 보는 세상의 시선은 세 가지인 것 같아요. 장애우는 기부해줘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하거나, 등쳐먹을 수 있는 대상, 혹은 아예 무관심하거나 말이죠.
기자는 나영이에게 인터넷 어느 싸이트에서 우연히 봤던 ‘사람이 평생 웃는 횟수가 54만번이래’ 라는 얘기를 건넸다. 그러자 나영이는 이렇게 말했다.
“아마 저는 평생 그거의 10%도 못 웃을 거예요.”라고.
장애가 있는 형제, 그들을 부모보다 더 오래 지켜봐야 하는 비장애 형제들.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이들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듯하다. 아마 장애 당사자의 현실을 개선시키기에도 너무나 숨이 차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장애우와 부모간의 문제 못지않게, 형제 자매 사이의 긴장과 스트레스도 상당한 것 같다. 신문지상에 형제 자매의 장애를 이용해 반도덕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보도되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것을 막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장애우들이 가족의 짐이 아닌, 동등한 가족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뒷받침이 절실하다.
진행, 정리 최희정 기자
사진 이현석 가족지원센터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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