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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이야기]포옹은 사랑을 전달하는 가장 아름다운 표현입니다

본문

                       

그대가 껴안는 그 사람을
진정으로 껴안아야만 한다.
그대의 두 팔 안에서
그 사람을 진정으로 느껴야만 한다.
겉으로 보이기 위해 대충 껴안을 수는 없다.
자신이 진정으로 느끼고 있다는 듯
상대방의 등을 두세 번 두들겨 주는 것으로
그것을 대신해서도 안 된다.
껴안는 동안 자신의 깊은 호흡을 자각하면서,
온몸과 마음으로,
그대의 전 존재로
그를 껴안아야만 한다.

- 틱낫한의 《마음에는 평화 얼굴에는 미소》중에서

 

한 달 뒤에 결혼해요
 

 
교실 안은 스무 명쯤 되는 부천 혜림원 사람들로 왁자지껄하다. ‘상대 성(性) 알기’ 수업에 참여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네모지게 둘러앉은 한쪽 모서리로 가서 조용히 앉았다. 선생님이 없는 교실이 언제나 그렇듯 꾸밈없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한사람 한사람의 특성을 단박에 알아차리게 된다. 그 중에 나란히 앉은 간격이 남들에 비해 상당히 좁은 것이 한눈에도 연인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다. 눈이 마주치자 자신을 한재범(37)이라고 소개한 후 묻지도 않았는데 여자친구라며 백혜연(28)씨도 소개해주었다. 새초롬하게 앉아 있는 백혜연씨의 등 뒤로 팔을 두르며 다음 달에 결혼한다고, 결혼하면 운전을 배워서 알콩달콩 살 계획이란다. 나중에 이 수업을 담당하는 ‘인천 여성의 전화’ 배임숙일 회장을 통해 안 사실이지만 매번 “한 달 뒤에 결혼한다”고 한단다. 청첩장을 보내준다는 한재범씨의 말에 명함을 건넸다. 딱 한 달 뒤는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청첩장이 오지 않을까?
수업이 시작되었다. 언제나처럼 이전 시간에 배운 내용을 정리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배임숙일 회장은 참여한 사람들의 장애 특성을 고려하여 같은 동일한 주제의 수업을 여섯 번 되풀이한다. 그래서인지 콘돔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어떠한 목적에서 왜 사용하는지, 포옹할 때의 예의와 규칙은 무엇인지, 미팅할 때는 어떻게 하는지 잊지 않고 있었다. 요즘엔 수업에 참여한 사람들이 혜림원에 들어오는 후배들을 위하여 이제껏 배운 내용을 가르치는 연습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배운 내용을 실제로 적용할 수 있도록 10월엔 부평작업장 핸인핸 사람들과의 미팅도 계획하고 있었다.

에이∼ 더운데∼!!
‘포옹’ 복습을 하자는 배임숙일 회장의 제안에 수업에 참여한 한 사람이 장난기어린 웃음을 얼굴 가득히 담고 “에이∼ 더운데∼!!”하고 대꾸한다. 그 장난기 너머로 쑥스러움이 언뜻언뜻 비친다. 연인이라는 커플이 제일 먼저 나섰다. 재범씨가 혜연씨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고 묻는다. “포옹해도 될까요?” 혜연씨는 얼굴 가득 수줍은 미소를 띠며 말없이 뒤로 한걸음 물러선다. 재범씨가 당황하여 팔을 잡아끈다. “강제로 포옹하면 안 돼요. 허락을 받아야해요. 안 그러면 성폭력이 될 수 있어요. 그럼… 따귀 맞고 경찰서에 가요.” 선생님이 재빨리 일러준다. 사람들이 웃는 사이 해연씨가 재범씨에게 다가가 꼭 껴안았다. 수줍은 미소 위로 행복한 미소가 번진다.

포옹은 사랑을 전달하는 가장 아름다운 표현

 
어찌보면 보듬어 안고 싶은 마음이야 말로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사랑 그 본 모습일지 모른다. 포옹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틈을 없애고 마음과 마음이 직접 교류하게 하는 행위이다. 포옹은 원래 ‘나’였던 존재를 직접 느끼고 냄새 맡는 일이며 존재와 존재의 가장 많은 표면이 서로 닿아 온몸으로 소통하는 일이다. 그래서 포옹은 나를 위한 것도 상대를 위한 것도 아니고 둘의 하나됨을 위한 것이다. 결국 포옹은 타인을 더욱 깊이 받아들이고 더욱 깊이 소통하고 싶은 욕망의 표출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움도 결국은 서로 떨어져 있는 두 사람이 서로를 끌어안는 포옹의 한 형태가 아닐까?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 때문에 그리움은 느슨하게 끌어안는 행위처럼 보이지만 서로 떨어져 있는 자석처럼 그 공간 사이로 무수한 에너지들이 긴박하게 흐른다. 그래서 포옹은 사람이 그리운 사람, 사람들 사이에 섞여들지 못하고 소외된 이들 그리고 상처입어 옹송그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더 절박하지 않을까?

소통불능의 세상에서 타인을 보듬어 안기

현대는 소외된 이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의 뜻이 전달되지 않는다는 절망감, 타인과 단절된 관계에서 오는 외로움과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소통의 부재. 그 끝은 폭력으로 이어진다. 소통 불능의 당혹감과 두려움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나와 다른 타자를 멀리하기 보다는 타인의 세계를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마음을 교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포옹해도 되냐고 묻기 직전의 난처함처럼 타인에게 다가설 때도 거절당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는 난처한 노력을 하기보다는 차라리 편리한 쪽을 선택하려 한다. 타인에게 다가서서 보듬어 안지 못하고 냅다 소리만 지르는 쪽으로 말이다. 그래서 소외된 사람은 더욱 상처받고 고립되어 버린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전철 안. 사람들 사이에서 알코올의 냄새와 함께 그리움의 냄새가 짙게 풍겨와 가슴이 아렸다. 수업에 참여했던 이들의 행복한 웃음이 떠오른다. 혹시 지금 당신의 곁에는 온몸과 마음으로 나의 전 존재로 뜨겁게 포옹할 누군가가 존재하는지…, 아니면 타인에게 다가가서 ‘포옹해도 될까요?’라고 물어볼 용기가 존재하는지…. 그것이 아니라면 이들의 행복한 웃음을 마음에 담아줬으면 좋겠다. 포옹은 존중, 배려, 사랑, 위로를 전해주는 소박하고 든든한 사랑의 내구재이다.

글 조은영기자 / 사진 정선아 객원사진기자


 

작성자조은영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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