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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창을 닫으며]“아프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원폭 환우 2세의 문제는 인권의 문제

본문

2003년 7월 부산에서는 한·일 원폭2세회 심포지움이 있었다. 나는 심포지움 발표자 자격으로 참석하게 되어 발표문을 일본어로 준비해 사전에 ‘전국피폭2세단체연락협의회’대표를 맡고 있는 히라노 노부토 회장에게 「한국 원폭2세 환우문제와 인권회복」이란 제목의 원고를 보여 주었다. 그러자 그는 “심포지움에서 환우(患友)라는 용어를 쓸 수 없으며 ‘한국원폭2세환우회’라는 단체에 대해서도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물론 내가 가진 병(선천성면역글로블린결핍증)을 의학적으로 원폭에 의한 유전병인지 증명할 수 없다고까지 주장하면서. 그러나 내 병은 문헌상으로 증명되었고, 원폭과 유전에 대해서는 한 개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며 국가가 나서서 올바른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 또 나처럼 원폭후유증을 앓고 있는 2세 환우들에 대한 생존권 보장을 위해서 건강하거나 그렇지 않은 원폭2세들이 함께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히라노 회장은 심포지움에 환우회와 환우라는 이름으로 참가할 수 없다고 했다. 마침 건강이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을 하는 바람에, 결국 자의반 타의반 심포지움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원폭과 유전 문제는 한 개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시민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이며 올바른 진상규명을 위해서 국가와 시민사회가 사회적 합의를 위한 노력들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쟁점이 되고 있는 원폭2세환우에 대한 유전 문제는 의학적으로, 과학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인권의 문제로 인식하고 풀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59년 동안 일본정부와 미국정부는 원폭에 의한 유전문제를 왜곡하거나 은폐해왔다. 그런데 원폭에 의한 유전문제가 국가권력에 의해 의도적으로 은폐되고 왜곡되어 온 문제를 한 개인이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부당한 행위를 넘어 인권을 유린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선천성면역글로블린결핍증’이라는 원폭후유증으로 인해 20여 차례의 폐렴 재발로 이미 폐기능이 70%이상 상실되어 있고, 30%만 가지고 죽음보다 더한 고통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원폭과 유전에 대한 인과관계를 규명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부당함을 넘어선 명백한 인권유린 행위다. 나는 당시 한·일 원폭2세회 심포지움을 통해 한국과 일본사회에 “아프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아픈 것을 말하지 못하도록 억압하는 것, 이 또한 심리적인 폭력행위이며 인권억압 아닌가.
그 후 나는 건강한 원폭2세와 건강하지 못한 원폭2세환우들이 겪는 현실에는 하늘과 땅만큼 큰 차이의 현실인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와 같이 원폭후유증을 앓고 있는 2세 환우들의 활동이 더욱 더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나는 원폭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는 현실의 목소리를 체계화하면서 국가와 사회로부터 생존권 보장을 위한 법적인 보호를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체 원폭2세들에게 강요되고 있는 차별 문제는 국가권력에 의해 구조화, 확대, 재생산되었다. 차별 해소는 사회가 해결할 문제지 결코 개인에게 떠넘겨질 문제가 아니다. 전체 원폭2세들에게 강요되고 있는 차별은 사회적·역사적 문제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는 원폭2세환우 실태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건강한 원폭2세들이 원폭후유증을 앓고 있는 원폭2세환우들의 문제를 자기 문제화하고 이해해, 함께 해결해가려는 의지를 보여줬음 좋겠다. 드러내지 않으면 안된다. 원폭휴우증으로 아픈 것은 창피하고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글 김형률(원폭2세환우회 대표)

작성자김형률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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