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통에나 쳐넣어라!- 재활용도 못할 복지부의 장애인차별금지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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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우는 ‘결함’때문에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다?
처음으로 제가 장애인차별금지법 준비 모임에 결합했던 2002년 여름 즈음에 함께 실습을 하던 친구로부터 ‘빈정 상하다’라는 말을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이 표현이 ‘씨봉뎅이(씨 의 귀여운 표현, 친구사이에 애칭처럼 사용되는 정감있는 표현)’처럼 왠지 정감 있고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어 여기 저기 사용했었는데 며칠 전 이 말의 진정한 용법을 알게 되었지 뭐예요.
누군가가 나의 심장을 얇게 저며서 급속 냉동건조 하여 종이처럼 만든 후에 순식간에 확 구겨버린 느낌.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장애인차별금지법안을 보고 빈정이 확 상해버렸으니 나는 그 법안에 대해 빈정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건지. 한 때 유행했던 쓰레기통에서 건진 ~시리즈의 최종판으로 장애계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준비하면서 버린 이면지들을 차곡차곡 모아 조각조각 이어 붙이기를 해봤던 건지… 갑자기 요즘 유행하는 공익광고가 생각납니다. ‘쓰레기는 죽지 않는다! 다만, 재활용 될 뿐이다!’누구보다 공익에 앞장서는 보건복지부라서 그런지 실천력이 대단하십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듯이 보건복지부가 지난 5월 25일 ‘특별히(?)’ 부탁을 드리지도 않았는데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방안 공청회를 열어 주셨답니다. 우선 자신의 일도 아닌 일에 ‘특별히’ 배려하여 ‘신체적, 정신적 및 심리적 결함이 원인이 되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자들’에게 관심을 보여준 보건복지부에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특별한’ 걸 무척 좋아하시는데 제가 오늘 드릴 말씀은 별로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라서 말씀드리기가 망설여지네요. 근데 뭐, 생각해보면 지난 25일에 발표하신 법안도 몇 가지 우리를 당황하게 만든 표현만 아니었으면 그다지 ‘특별한’ 것은 아니었답니다. 발표하신 분 표정으론 그걸 전혀 모르신 거 같아서 약간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날 여러 ‘신체적, 정신적 및 심리적 결함이 원인이 되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자들’이 널리 두루 지적한 내용들을 ‘특별히 배려’해서 다시 말씀드리려고요.
아참, 잊을 뻔했네요. 민망하실까 봐 조용히 알려드리는데요, 입법 이유에서 인용하신 ICF(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Functioning, disability and health)는 세계보건기구에서 2001년 발표한 것으로, 번역하면 ‘기능, 장애, 건강에 관한 국제 분류’정도 되겠죠? 장애우 분류 안이라고 번역하시면 좀 거시기하지 않나 싶은데 이거야 뭐, 다른 것에 비하면 별로 중요한 얘기도 아니니 그냥 넘어가죠. ICF의 정의를 잘못 이해하시고 인용하신 거 같아요.
얼마 전에 투자해서 ICF 번역하시더니 아직 읽어보진 않으신 모양이네요. 글을 쓰신 분이야 법을 전공하신 거지 장애학을 전공한 게 아니라서 잘못 이해하고 인용하셨더라도 보건복지부 이름을 걸고 나가는 건데 복지부에서 안 고치신 걸 보면 그때 번역하신 건 생돈 들어간 거라 소장본으로 책장에 고이 모셔두신 모양이에요. 아무튼, 신체적 정신적 및 심리적 결함이 원인이 되었다고 하시면 곤란하구요, 개인의 건강상태와 상황적 맥락의 상호작용에 의해 기능과 장애를 설명하는 것으로 이해하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손상의 전제 위에 능력장애를 논하고 능력장애의 전제 위에 사회적 장애의 여부를 판단하는 체계는 그 이전에 있었던 ICIDH랍니다. 그리고 ICF의 또 다른 특징은 모든 언어적 표현을 중립적으로 바꿨다는 사실이었는데…, 그래서 손상(impairment)을 신체기능과 구조(body function and structure)라고 바꿨잖아요.
그런데 손상도 아니고 ‘결함’으로 번역하신 건 좀 그랬답니다. 이건 뭐 거의 더 디스에이블드(the disabled)를 ‘무능력한 인간’으로 번역한 거랑 비슷하지 않나요? 사실 여러분들이 ‘결함’이라는 표현에 많이들 ‘빈정 상하신’ 거 같은데…, 아시죠? 그래서 말인데 지금까지는 보건복지부를 존중하는 뜻에서 보건복지부의 표현을 빌어 장애우를 ‘신체적, 정신적 및 심리적 결함이 원인이 되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자’라고 표현했는데, 본디 저는 장애우복지를 전공하려는 학생이고 제가 존중해야 할 분은 복지부 이전에 장애우들이니 이제 이 표현 쓰지 않으려구요.
앗, 제가 혹시 너무 무례했나요? 복지부는 다만 ‘장애우를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조치’를 취해보려고 하셨는데 말이지요. 어머, 그랬다면 정말 죄송해요. 전광석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런 것이 아니었으니 노여움 푸세요. 그럼 이제 장애를 가진 당사자들이 두루 지적하신 내용들을 하나하나 짚어 볼께요.
장애우를 적극적으로 ‘보호’하시겠다?
처음으로 법안에 대해 얘기를 들려주신 장애 가진 당사자들은 복지부의 법안이 시혜적인 시각을 벗지 못했다고 평가하시더라구요. 본디 장애인차별금지법의 목적은 장애우를 시혜적인 시각이 아닌 인권의 시각으로 바라보도록 ‘발상의 전환’을 시키려고 한 것인데 시혜적인 법률로 전락시켰다고요. 그래서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법안을 꼼꼼히 살펴봤더랬죠.
어마나. 진짜로 제1조 목적에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장애인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조치’로 정의 하셨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그랬답니다. 아마 그런 것이 아니었을 꺼라고. 입법이유를 보라고. ‘이 법의 궁극적인 목적은 장애우가 결코 국가정책 및 시혜적인 보호조치의 객체에 머무르지 않고, 주체적인 결정에 의하여’라고 쓰여 있지 않느냐고 말씀드렸어요.
뭐, ‘시혜적인 보호조치’인건 맞더라도 어쨌든 이제는 객체가 아니라 주체가 아니냐고 말이지요. 이 문장 강조점이 앞이 아니라 뒤인 거 맞죠? 사실 ‘장애우를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조치’에서 장애우가 어떻게 주체가 될 수 있는지는 저도 잘 이해가 되지는 않았는데, 그 말씀은 드리지 않았어요.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한 것이 금방 불이 붙을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자리를 옮겼더니 두 번째 만난 장애 가진 당사자들은 법안의 장애정의에 분개하고 계시더군요. 장애인복지법보다도 더 후퇴한 정의라면서 쉽사리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셨답니다. 왜 앞에서 살짝 알려드렸잖아요, 잘못 이해하시고 인용하셨다고. 장애우를 신체적 정신적·심리적 ‘결함’ 혹은 ‘일탈’로 묘사하는 표현은 앞으로 웬만하면 사용하지 마세요.
이런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복지부 법안을 만든 사람들의 장애우에 대한 개념이 어떠한지가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생각을 하시거든요. 복지부가 아직도 이러한 장애개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장애우들이 분노하는 건 당연하잖아요.
기왕 두리 뭉실하게 정의하실 거면 이것도 두리 뭉실하게 하실 일이지, 왜 그러셨어요? 아참 장애우의 개념정의에 반영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신 발상의 전환은 1980년에 이뤄진 거라는 거 이미 알고 계셨죠? 제 생각에도 이제 겨우 2004년인데 국제적으로 1980년에 이뤄진 발상의 전환이 한국에서 벌써 이뤄지는 건 좀 이르다 싶어요.
하지만 이것도 장애우들에게는 말씀드리지 않았어요. 국제사회에서도 겨우 1997년에 반 버리고, 2001년에야 완전히 쓰레기통에 던진거라 이제 쓰레기통에서 겨우 3년쯤 된 거지만 사실 재활용이라고 하면 아직은 빈정 상해하는 세태잖아요. 이게 국제적으로는 이미 폐기된 거지만 국가에서 돈을 안줘서 그런 건지 공익광고에 참여하려고 그러신 건지 잘은 모르지만 쓰레기를 재활용하시느라 힘드실 행정 하시는 분들을 이해해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조용히 일어나서 자리를 옮겼답니다.
좋으시겠어요. 두리둥실, 애매모호, 여유만만
다른 자리로 옮겼더니 그 분들은 복지부 법안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 필요한 구체성이 미비하다고 지적하시더군요. 사실 장애우들과 법안을 준비하면서 우리는 법안이 갖는 교육적 효과도 많이 고려했습니다. 어떤 게 장애우 차별인지 잘 몰라서 발생하는 차별도 많으니까요.
뭐 장애우를 ‘특별히 배려’하시는 보건복지부 분들도 잘 모르고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차별적인 발언을 서슴치 않으시는데 비장애우들이야 오죽하겠어요? 무엇이 장애 차별이고 그런 차별을 하면 어떠한 처벌을 받게 되는지 그리고 차별들 속에서 장애우가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는지 알림으로써 우리는 무심코 발생하는 차별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뭐가 차별인지 잘 알려주지도 않고 차별이 발생하고 나서 처벌을 하면 둘 다 손해 보는 게임인 거잖아요. 근데 복지부 법안은 장애우들이 지적하신 것처럼 정말로 고용, 교육, 공공시설 및 교통수단, 정보통신 등 각 영역에서 차별과 차별을 수정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더라구요. 어쨌든 입법 필요성에서 지적하신 것처럼 이렇게 모호하게 해 놓으면 정책의 수립과 집행에 있어서 엄청나게 집중도와 밀도를 가지고 하실 수밖에 없겠어요.
이렇게 해서 어떤 입법공백이 메꿔질지는 사실 의문이지만 말이에요. 아참, 법안의 통일성을 위해서 그랬는지 적극적 조치의 예외규정도 두리 뭉실 피상적이더라구요. 법안 전체가 통일성 있게 구성된 게 복지부 법안의 장점인 거 같아요. 국민의 기본권 침해는 법률로 엄격하게 제한해 놓았다는데, 이 법안은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많아서 이후 여러 모로 이용해볼 여지가 크겠어요. 이거 여러 가지 활용도를 고려해서 이렇게 한 거 맞죠? 특히 장애여성에 대한 ‘특별한 배려(?)’는 오버하신 거 같아요. 아무것도 없어서 활용도 하기 힘들겠더라구요.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입법 공백의 땜빵용이라고요?
법안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강제수단도 너무 미비하다는 말씀도 많으셨답니다. 장애우들은 여기에 개탄을 많이 하시던데 제 생각은 달라요. 뭐 차별이 무엇인지 장애우가 누군지도 두리 뭉실한데 강제수단만 강하면 반발이 심하지 않겠어요? 다 생각이 있으셔서 그러신 게지요. 게다가 아까부터 강조했던 법안의 통일성을 고려할 때도 그렇잖아요.
그리고 강력한 제재수단이 없는 법들이 실효성을 갖지 못하고 따라서 장애우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시키는 데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으신데 법안의 필요성을 강조하실 때 실질적으로 개선시키겠단 말씀은 안하셨어요. 장애우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데 목적이 있는 법이 아니라 입법공백을 메우기 위한 거라니까 오해하고 분개하지 마세요.
따라서 장애우 단체들이 실효성 있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하여 주장했던 징벌적 손해배상은 물론이고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의 시정명령 불이행에 대한 이행강제금 마저 강제규정으로 두지 않은 거 그거 다 생각 있어서 하신 거예요. 맞죠?
다른 자리로 옮겼더니 그 분들은 차별금지법안은 동등한 권리 향유가 그 목적이므로 장애우 삶의 전반을 포괄하고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복지부의 법안은 문화, 건강권 등의 부분이 누락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나마도 전 부문이 아닌 사인과 관련된 부문은 제외하였다고 지적하셨습니다. 뭐라 변명을 드리려고 했는데 이미 장애우들이 법안을 쓰레기통에 넣으신 후라서 다시 말씀드릴 수가 없었어요.
하하하! 저도 자랑하나 하면서 이 글을 마칠까요? 저도 복지부의 공익광고 실천력을 본받아 쓰레기 재활용을 했답니다. 장애우들이 글쎄 복지부 법안을 죄다 쓰레기통에 넣고 가시지 뭐예요. 그래서 제가 주워다가 지금 이렇게 읽어보고 활용해서 글도 하나 썼잖아요. 잘했죠? 가지고 다니면서 좀 많이 읽었더니 너덜너덜해져서 저도 이제 그만 버리려구요.
아참, 근데, 전 이거 산업폐기물로 버릴래요. 살펴봤더니 여러 모로 환경오염 소지도 있고, 인체에 유해한 성분도 들어있는 거 같아요. 이 법안을 보신 장애우들이 가슴 답답증을 호소하시고 머리가 아프다고 호소하시는 걸 보면 말이에요. 저도 조금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프네요. 버릴 때 분리수거나 해야지, 쓰레기 재활용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봐요. 저도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복지부 분들 너무 수고하셨구요, 이왕 수고하신 김에 폐기처분 하실 때도 좀 신경 써서 해주세요. 그럼 혹시 ‘신체적, 정신적 심리적 결함’ 같은 거 생기지 않게 조심하시고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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