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현장-이라크 아브그라이브 포로수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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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브 그라이브 포로수용소가 폭파되길 원한다.”
그녀가 이 얘기를 했을 때, 우리는 이 문장이 끝나자마자 동시에 “ecause(이유는?)”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다시 “Because I’m pregnant by American soldiers(미군 병사들에 의해 임신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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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일(수). 이라크 바그다드 시내에 위치한 점령감시센터(IOWC) 책임자인 이만 카마스가 들려준 얘기다. 아브 그라이브 포로수용소에 수감돼 있던 이라크 여성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의 일부분이었다고 하는데, 편지에서 그녀는 “제발 핵폭탄일지라도, 어떤 폭탄으로라도 우리를 죽여달라”고 절규하며, 마지막 부분에 그곳에 있던 이라크 여성들이 ‘미군 병사들에 의해 임신했기 때문이다’ 라고 쓰여있었다고 한다.
이 편지의 내용은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라는 신문에서도 언급되었다. 신문은 이 편지가 위작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하면서도 반미 성직자나 저항세력이 이미 이 편지를 연합군에 대한 분노를 일으키기 위해 사용하고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아브 그라이브 포로수용소 학대 고문 사건이 미국 CBS 방송사에 의해 처음으로 전세계에 보도될 때, 이라크 현지의 반응은 외국 사람들의 눈에는 아이러니 하게 비쳐졌다. 그것은 단순히 분노로만 비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패전국인 이라크 사람들이 포로수용소에서 침략자 미군들에게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 학대 장면 사진이 전세계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낱낱이 공개되었을 때, 이라크 사람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아랍 문화와 이슬람 종교 문화로 이 상황을 설명하자면, 다른 문화권보다 훨씬 더 극도의 수치심과 함께 분노를 유발했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이만 카마스의 설명도 마찬가지였다. 이만은 아브 그라이브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풀려난 여성 수감자뿐 아니라 남성 수감자의 경우도, 안에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한 증언을 극도로 꺼리고 있어 조사에 어려움이 많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도 이라크 사람들이 느꼈을 법한 또 다른 감정은 분노를 표출할 출구를 찾은 것에 대한 시원함(?)이라고 설명해야 할까. 모욕과 수치로 점철된 경험이었지만, 이를 통해 그들은 자신들의 분노를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통로를 찾은 듯 폭발하고 있었다.
CBS를 통해 처음으로 아브 그라이브 수용소에 대한 보도가 나간 후 나는 이라크 현지 인권단체 한 관계자를 만나 사진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그러자 그는 끝내 눈물을 보이며 이렇게 말한다. “미군은 우리를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동물이라 생각한다.”
그는 분노를 참기 힘든지 어깨를 들썩이며 좀처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하던 세계 여론은 미군의 만행을 보며 충격을 받은 듯 보인다. 그 때문인지 이라크 사람들은 일종의 위로를 받는 듯하기도 했지만, 이라크 국민 모두가 발가벗겨진 것만 같은 수치심 또한 느끼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일주일 후쯤 후 5월 8일(토), 한국 언론에도 바그다드에서 대규모 항의집회가 조직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갔지만, 실제로 그 날 집회는 이뤄지지 못했다. 5월 6일 집회를 조직하는 단체관계자들을 만났을 때, 그들은 “이라크 문화를 이해한다면 그 집회 조직이 얼마나 힘든지 이해할 것”이라고만 설명했다.
그리고 그 즈음에 바그다드 시내 곳곳에서 자살폭탄 테러가 시작되었다. 대부분 미영연합군 임시행정처(CPA)를 중심으로 일어난 폭탄테러였다.
이라크 사람들은 미군정의 점령하에서 일어나는 만행을 규탄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시위하는 것이다.
집회는 무산됐다. 대신 다음날, 이라크 현지에 있는 NGO인 점령감시센터와 인권센터를 중심으로 조직한 기자회견이 마련됐다. 아브 그라이브 수감자들이 직접 나와 증언을 하는 기자회견이었다.
그러나 5월 9일(일), 그곳에 갔을 때, 증언이 이루어지는 기자회견장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증언자들은 증언대에 올라서서 자신들의 분노를 이기지 못했고, 눈물까지 보이며 미군의 만행을 규탄하는 성토대회를 연 것 같았다.
그들의 입에서는 그동안 가두어 두었던 분노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격앙된 목소리 톤은 이미 듣는 사람을 고려하는 증언이 아니었다. 증언은 멈추었다가 이어지길 반복했다. 이것은 마치 조용한 거리에서 자살폭탄테러가 일어나 아수라장이 된 거리의 모습과 흡사했다.
“차라리 어떤 폭탄이라도 가져와 우리를 폭파시켜달라”고 호소하는 한 소녀의 편지가 그 때의 분위기를 그대로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이 편지는 이라크 현실과 이라크 사람들의 심정을 가장 잘 설명해주고 있다.
아브 그라이브 포로수용소에 수감되는 이유는 정치적인 이유에서다. 이 이유에 대해서 점령감시센터에서는 13명의 여성수감자를 인터뷰한 다음 미군이 내건 죄목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첫째, 정치적이거나 종교적 믿음 때문이다.(대부분은 바트 당원이거나 이슬람주의자인데, 팔루자 사람들 대부분이 이 이유에서다)
둘째, 저항세력들에게 자금조달을 하고 있다는 것.
셋째, 저항활동을 조직하고 수행한다는 것.
넷째, 미군정의 점령을 반대하는 인사를 접촉하거나 만난 경우, 혹은 가족이 연루되어 있는 경우다.
미군 측근에서 통역과 정보수집 활동을 하는 현지인들이 미군에게 정보를 제공하면서 체포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미군정에 대한 저항의식을 가졌거나, 저항활동을 한 이라크인들은 모두 이렇게 체포되었다.
“나는 동굴과 같은 감방에 갇혀있었다. 창문과 철재로 된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어두워서 손으로 더듬어 매트리스가 없는 철재 침대가 있는 걸 알고, 거기에 앉았다. 무슨 소리가 났다. 그것이 나를 깨물어 상처를 냈다. 뱀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쥐였다. 나는 코란을 읽기 시작했다.”
감옥에서 풀려나 이 증언을 하는 이라크 여성은, 자신이 왜 이렇게 동굴과 같은 감방에 있어야만 했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어느 날 집으로 갑자기 들이닥친 미군들에게 그녀의 책과 컴퓨터, 시디(CD)등을 압수 당했고, 곧이어 감옥으로 끌려갔다고 덧붙였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녀는 미군정에 수 차례에 걸쳐 재조사와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브 그라이브 감옥 앞에는 수 백 명의 사람들이 사라진 가족들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찾아들고 있다. 그리고 하염없이 기다린다. 지금 미군정은 그저 평범하게 소시민적 삶을 살던 이라크 사람들이 “미군정에 저항의식을 가졌다”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철옹성과 같은 아브 그라이브로 끌고 들어가 인간으로서 참을 수 없는 모욕과 감금, 학대를 멈추지 않고 있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테러리스트들과 싸워야 한다!”며 전쟁의 명분을 내건 미군정은 오히려 자유와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인권침해를 저지르고 있다.
과연 누가 인권과 민주주의와 자유를 훼손하는 테러집단인지 심각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비극이 멈추지 않는 땅, 이라크는 지금도 분노로 폭발하고 있다.
글·사진 윤정은(전 함께걸음 객원사진기자)
비폭력평화물결이란 모임 활동을 하며, 내 안의 자유와 평화, 모든 사람들의 내적 평화를 간절히 바라던 그이는, 지난 2월 여전히 전쟁 중인 이라크 바그다드로 떠났다. 전쟁이 단지 물질적 파괴뿐 아니라 인간의 본성조차도 심각히 훼손하며, 정신적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을 직접 목격하면서 몹시 힘들어했지만, 이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단다.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에도 이라크 상황을 기획 연재로 보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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