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장애우 기자 인정 안하는 공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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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곳에서 나는 기자였다
나는 지난 5월 6일 서울지방법원으로부터 한통의 속달우편을 받았다. 우편은 2002년 1월 22일 이순신 동상 점거 농성 주동자 및 피고인으로서 5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하는 공소 사실 법원명령서였다.
2002년 1월22일, 남녀 대학생 두 명이 서울 세종로 이순신 동상에 올라가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라며 시위를 벌였다. 그들은 30분 동안 동상 앞을 지키다 소방관에 끌려 내려왔으며, 그 밑에서 도로를 점거하며 시위를 벌이던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우들과 대학생들, 그리고 활동도우미들, 그리고 목발 짚고 취재를 하던 내가 연행되었다.
그날 그곳에서 나는 기자였다. 목발을 짚고 카메라를 목에 걸고 녹음기를 보조 가방안에서 돌리면서 취재를 했던 장애인 기자 였다. 그러나 이순신 동상 아래 집회 대오, 휠체어 장애우과 함께 있던 나는 연행되었다. 기자라고 외칠 사이도 없이 연행되었고 안경이 밟혀져 부서져 버렸다. 나와 같이 있던 사람들은 다음 날, 직결 심판으로 벌금을 내야 했고 난 불구속 입건되었다.
조사를 받은 종로서 수사 2계에서 내가 기자신분으로 취재 중이었음을 주장하며 내밀었던 인터넷 신문 명함과 녹음기, 사진기들은 너무나도 ‘간단히’ 묵살 되었다.
묵살의 이유는, 에바다 복지회 민주화 투쟁과 관련하여 과거에 유사한 방법으로 집회를 벌인 적이 여러 차례 있었고 이순신 동상에 올라간 학생 중 한명이 같은 학교, 같은 동아리 후배였으며, 시위 현장에 기자들과 함께 있지 않고 ‘장애우로서’ 장애우들과 함께 있었다는 것이 그 이유요, 목발 장애우가 그런 집회 현장에서 취재 활동 자체가 불가능 하지 않느냐가 그 다음 이유였다.
기자 회견이 녹음된 테이프를 수사관이 직접 듣고 보조 가방 안에 카메라를 확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난 기자로 인정 받지 못한 채 피의자 신분으로 유치장에서 하루를 보내야 했다.
시민기자로서, 장애우로서, 저널리스트로서 “나는 무죄다”
그렇게 만 2년 뒤 2003년 12월 난 다시 서초동을 찾았다. 일반 검사실이 아닌 전화로 호출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공안 검사실’로 가서 다시 두번이나 조사를 받아야 했다.
검사는 목발로 전경을 때리지 않았느냐며 집요하게 캐물었다. 나는 “목발이 다리인데 어떻게 때릴 수 있겠냐”며 다시 기자로서 취재 중이었을 뿐임을 항변했다. 인터넷 신문 편집부가 나의 신분을 확인 해준 뒤에도 검찰의 추궁은 계속되었다. 결국 올해 초 다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했고, 결국 경찰은 그 당시 나를 연행한 전경까지 다시 불러 검찰이 원했던 진술을 받아 냈다. 그래서 결론 지은 검찰의 공소 사실은 다음과 같다.
김형수는 “2000.12.29. 서울지방검찰청에서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 등으로 각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자로서 한신대 대학원 2학년인바, 2001. 1. 22. 오이도역에서 발생한 장애인리프트 추락사 이후에도 정부에서 장애인용 버스를 운행하지 않음으로써 장애인들의 대중교통 이용시 안전하고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장애인의 이동권 쟁취를 위한 장애인이동권연대’(공동대표 박경석, 이하 ‘장애인인동권연대’라약칭함) 주최로 2001. 2. 서울역 지하철 선로 점거투쟁, 2001. 7. 서울역 천막농성 등 수회에 걸쳐 각종집회를 개최해 오던 중,… 김형수 등 나머지 70여명은 정부중앙청사 방면으로 진출을 시도하는 등의 방법으로 시위를 전개하여… ”라고 혐의를 기록하고 있다.
법원은 한 마디로 장애우 관련 여러 집회는 물론이고, 급기야 2002년 1월 22일 오이도역 참사 규탄 기자회견 및 이순신 동상 농성에서 집회를 사전에 공모하고 주동했다는 것이다. 그로인해 벌금 50만원 형에 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공소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 에바다 사건과 관련하여 주동자라고 공소했다면그것은 떳떳하고 너무나도 당당한 양심적인 활동이었기 때문에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본 사건에 대해서는 나는 무죄다.
그 시간에 그 현장에서 나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지체 장애 2급 장애우으로서, 저널리스트로서 나는 무죄다.
기자로서 장애우의 취재 활동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장애우’란 집단에 대한 연좌제와 같은 차별의식이요 편견이다. 그것은 흑인이면 다 범죄자일 것이다라고 몰아부치는 인종차별적인 파시즘이요, 얼치기 양반 의식의 발로이다.
‘장애우 기자’는 나의 정체성
나는 목발을 짚고 취재 활동을 벌이는 뇌성마비 2급 장애우이다. 그 취재는 나의 이러한 인격과 나의 개별성을 근거로 하여 글로 사진들로 표현된다. 검찰은 기자 라인에 있지 않고 시위자들과 함께 있었다는 것을 가장 큰 나의 범죄 사실에 대한 증거로 삼고 있는데, 이는 장애우로서 개별성과 독립성과 존엄성을 인정 하지 않은 명백한 인격권 침해이다.
게다가 말글장이로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은 이 장애우로서 장애우 관련 기사를 쓴다는 것 자체를 취재 활동이나 기자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부분이다.
공소장 어디에도 나의 기자신분에 대한 언급은 없다. 이것은 나의 ‘기자’라는 정체성을 부정한 것이며 사회적 다양성 인정이란 사회적인 정의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내 기사가 당사자로서 편향되고 주관적이고 자기 선전적이라고 할 지언정, 그것 자체가 당사자의 목소리요, 하나의 입장이기 때문에 당연히 인정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 반대의 경우, 언론의 주류로 권력으로 사회에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객관성과 독자들의 합리적인 판단 근거에는 장애우 당사자의 관점도 존재해야 되기 때문이다.
또 공소장은 과거 전력이 있는 사람이 현장의 사람들과 ‘사전 공모’했다고 하는데, 이 부분은 정식 재판 현장에서 내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다. 난 이제껏, 이동권 투쟁에 참여 하면서 취재 하면서 누구의 설득도 받은 적이 없다.공모는 더욱 없다. 이는 기자로서, 장애인우로서의 자기 결정권을 심각하게 훼손한 경우다.
정식 재판 기일은 7월 28일에 있다. 이재판에서 나는 나의 무죄와 검찰 공소의 부당함을 밝힐 것이다. 이는 나의 무죄 뿐만 아니라 오롯이 나의 온전한 정체성과 개별성이 연결된, 즉 자기 신념의 문제이다.
앞으로 장애우의 사회 참여가 증대하면 증대할수록 우리는 보다 많은 장애우으로서의 집단 주의적인 편견이 내리는 연좌제 심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중세시대, ‘여자는 모두 음란하다’하다라는 것으로 자행된 마녀 사냥처럼 정숙한 여인이 되라고 여성들에게 강요한 것처럼 장애우의 사회 참여가 늘어나면 늘어 날수록 사회는 우리 장애우들에게 스스로 자신을 억압하도록 옥죄어 올것이다.
그러나 나같은 목발 장애우에게 망원 렌즈가 달린 수동형 카메라를 들고 취재하라고 강요 할 수 없고 눈이 보이지 않은 시각 장애우 기자에게 대본을 읽으라고 강요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흑인에게 백인처럼 하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글 김형수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 연구원,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상임 활동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위드뉴스 기자회원, 한겨레 신문 하니리포터,
뉴스엔조이 시민기자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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