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피플퍼스트 운동 현장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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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지체장애우 부모운동과 인연이 있었던 덕분에 지난 4월 24일부터 5월 5일까지 약 열흘 간, 미국 IFDD(International Friends for the Developementally Disabled 대표 Neil Juhn) 라는 기관을 통해 미국 정신지체장애우의 복지 현장을 돌아볼 기회를 가졌다.
가장 비중 있는 복지소비자이지만, 장애우 운동영역에서 항상 외곽에 있는 정신지체장애우 운동. 그 운동의 주체세력들에게 조금이라도 동력이 될 수 있고, 장애우 운동의 다른 운동주체들이 정신지체장애우에 관심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에 미국의 정신지체장애우 운동의 두 기둥을 소개하고자 한다.
동서를 막론하고 출발점이 같은 정신지체장애우 부모운동
미국 정신지체장애우 운동의 큰 줄기는 무엇보다 부모들이 중심이 된 미국발달지체시민협회(The National Association for Retarded Citizens, 이하 ARC)다. ARC라고 불리우는 이 조직은 1950년 정신지체장애 전문가 모임인 미국 정신지체협회 (AAMR: American Association for Mental Retardation) 부모모임에서 출발했다.
1950년대 당시 미국에서도 교육권에서 소외되고 있는 중증정신지체장애우의 현실과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주거시설, 주립시설의 불만족스러운 서비스, 턱없이 낮은 예산 등의 문제점들이 부모들을 하나로 뭉치게 한 것이었다. 부모들은 정보교류 뿐 아니라 서로 도와가며 일을 하면 대중의 인식이나 정치적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공유했고, 이 과정에서 미국정신지체장애우협회(AAMR) 전문가들의 적극적인 조언도 뒤따랐다.
마침내 ARC는 1952년부터 연구자문위원회를 두고 활동을 시작했으며, 1954년에는 뉴욕에 사무소를 두고, 정신지체장애우의 교실, 유아교실, 오락 및 사교 활동, 부모자문, 부모교육교실, 사회보장제도컨설팅, 그 외에도 지역 내의 정신지체인 상황조사, 지역사회의 법제정운동, 전문인을 위한 특별훈련보조, 연구사업 등 다양한 활동을 시작했다.
이런 ARC의 생성배경과 초기 활동을 보면 우리나라 장애우부모운동과 출발이나 배경이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동서를 막론하고 부모로서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과 정서는 동일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직접서비스보다 정신지체장애우 권익운동에 초점 맞춰
하지만 활동영역이나 영향력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기에 이런 출발배경과 초기 활동으로 “ARC를 전부 알았다”고 속단하기에는 이르다.
ARC는 이미 1956년 미국의 정신지체장애우를 위한 행정방침을 미 의회에 제출한 바 있고, 정신지체장애우의 교육권에 관한 연구를 확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 미 의회에서 결정적인 증언을 하기도 했다. 또한 1960년에 연방정부의 사회보장 보조금을 결정하는 10개의 대통령자문기관 중의 하나가 되기도 했으며, 1962년에는 케네디 국제상을 수상하고 케네디 대통령정부가 1963년 ‘정신지체장애우에관한법’을 수립하는데 자문과 협조를 할 정도로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하지만 ARC의 활동방향에 큰 전환점을 가져다 준 시점은 바로 1965년이 아닐까 한다. 초기 정신지체장애우와 부모 그리고 전문가들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던 ARC는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신에, 정신지체장애우를 위한 서비스를 받아내도록 노력하자”는 본래 취지를 재확인하게 된다. 즉, 정신지체장애우를 위한 복지서비스를 ARC가 직접 제공하기보다 “어떻게든 복지서비스를 연방정부나 주정부로부터 받아내고 감시하는 역할을 하겠노라”는 정신지체장애우 권익단체로서의 정체성을 다시금 확인한 것이다.
그 이후부터 ARC는 지방 공공 기관이나 사립단체들에게 정신지체장애우를 위한 서비스를 마련하는 것은 정부의 의무라는 것을 교육시키고 설득하는 캠페인에 주력했고, 정신지체장애우를 위한 주정부의 서비스 질에 대해 강력한 이의를 제기하는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도 ARC는 예산모니터, 시설과 지역사회 중심의 프로그램에 대한 표준을 설정 및 평가, 시범 프로젝트 실시, 예방과 치료에 대한 지식을 넓히기 위한 연구사업을 조성하는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또 주정부마다 장애우 인권을 감시할 수 있는 기관을 설립하게 하거나, 후에 기술하겠지만 정신지체장애우 자조활동조직인 셀프-애드보커시(Self Advocacy:발달장애우의 자기주장운동)를 지원하는 활동을 한다. 이렇듯 발달장애우 부모조직인 ARC는 바로 자기 조직만이 아니라 연계된 조직, 기관까지 생성되도록 할 만한 광범위한 활동영역과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부모들의 적극적 참여, 구체적 고민이 ARC의 동력
그렇다면 이렇게 활동이나 영향력에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요인은 무엇일까? 내부 구성원들은 ARC가 풀뿌리조직이며, 회원들이 주로 중산층 이상이라는 점과 물리적인 강제력을 행사하기보다는 입법로비 등의 사회운동전략을 선택했다는 점 등을 주요 원인으로 꼽고 있었다. 그러나 직접 ARC를 만나고 돌아온 나의 느낌은 바로 ‘부모의 참여문화’가 가장 큰 원동력이 아닐까 한다.
마침 미국을 방문했을 때 일리노이주에서 ARC 컨벤션(Convention)이 개최되었고, 그 컨벤션에 참여하게 되었다. ARC의 컨벤션은 4월 27∼28일, 양일에 걸쳐 개최되었는데, 일리노이주안에서만 족히 500여명의 부모, 가족들이 참여했다.
컨벤션은 ‘전체 컨벤션’과 ‘분야별 컨벤션’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전체 컨벤션’은 누구나 한자리에 모임을 갖고 기조연설자(Keynote speaker)의 연설을 듣게 되어 있었고 ‘분야별 컨벤션’은 주제별 발표자(Convention speaker)에 의해 준비된 분야를 참여자의 욕구에 따라 찾아가서 참여하는 시스템으로 자율적으로 열리고 있었다.
내가 듣게 된 기조연설은 시간관계상 두 개정도 였는데, 두 번의 기조연설 모두 1시간 동안 자리를 뜨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뜨거운 열기와 진지함을 보여주었다. 참관자가 자연스럽게 숙연해질 정도였다. 어눌한 영어실력으로 그 내용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었지만 때로는 웃음으로 때로는 울음으로 그리고 우뢰와 같은 박수 소리로 그들 모두가 하나가 되고 있음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주거, 재정, 고용, 입법, 교육, 운동방향 등 아주 구체적인 주제를 갖고 진행되는 ‘분야별 컨벤션’그리고 그 컨벤션 진행과정 속에서 부모들의 진지하고, 주체적인 참여와 구체적 토론은 실로 놀라울 정도였다.
이 밖에도 많은 부분에서 잠시 나를 몽롱하게 하는 부분이 있었다. 예를 들어 참가비가 우리나라로 치면 약 10만원정도였는데, 그 비용을 부담스러워하는 참가자는 전혀 없었으며, 대회를 총괄 지휘하는 스텝들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듣고자 하는 주제를 알아서 찾아가는 등 자율적으로 토론이나 활동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특히 부모들이 필요로 하는 갖가지 정보나 전시, 후원모금행사 등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사회경제적인 배경이 다르지만 부모운동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도 실제로 자녀를 위한 조직활동 등에서 한발 뒤로 물러서는 자세를 미덕으로 아는 우리나라 부모들의 자세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런 적극적인 자세가 일부 몇 명의 부모들이 아닌 모든 부모들에게서 볼 수 있는 자연스런 것이었고, 그것이 바로 ARC의 원동력이며, 미국 정신지체장애우 의 복지정책, 서비스를 지켜주는 기둥임을 알 수 있었다.
“발달장애를 앞세우기보다 우선 사람(국민)임을 인정해달라”
이렇게 미국 정신지체장애우 운동과 복지에 ARC가 큰 기둥이 되고 있는 것은 너무도 분명하지만 미국 정신지체장애우 운동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기둥이 있다. 바로 자기주장운동(Self Advocacy Movement: 이하 SA).
미국내 공식명칭은 SA이지만 지역에 따라, 운동조직에 따라 People First 라는 조직체로 불리기도 한다.
People First는 SA의 한 부분으로 맥을 같이하는데, 1968년 스웨덴에서 시작, 이후 5년만에 영국과 캐나다로, 1973년에는 미국 오레곤주에서 몇 명의 장애우가 그들 단체를 대표해서 캐나다에서 열린 정신지체인협의회에 참석한 계기를 통해 미국에 들어오게 되었다.
1974년 캐나다를 다녀온 발달장애우들은 첫 컨벤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지체(retard)라는 말에 진저리가 쳐진다. 우리가 국민(혹은 사람: people)임을 먼저 인정해달라”고 하는 것에서부터 유래되어 “피플퍼스트(People First)” 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 컨벤션이 성공적으로 이끌어짐에 따라 피플퍼스트(People First)는 미국전역에 퍼져나갔으며, 1991년에는 국가연맹인 미국발달지체 자기권리주장연맹(Self-Advocators Becoming Empowered)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미국 내에서뿐만 아니라, 1988년에는 런던에서, 1993년에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그리고 1998년에서는 알래스카에서, 2001년에는 영국 놀스암프톤에서 국제회의를 열기도 했다. 지금은 43개국 1만 7천명 이상이 이 운동에 참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미국에만도 800개의 자기주장그룹이 있다고 하니 그 파급효과는 어마어마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영향력이 1998년 한국에까지 미쳐 한때는 ‘발달장애우 자기주장운동’이 태동되기도 했었다.
“My voice My choice” : 모든 발달장애우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으며, 결정할 수 있다.
피플퍼스트(People First)는 발달장애우 모두가 동등하게 대접받아야 하며, 보살핌을 받아야 하고, 일반 정규학교에 가야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또 어떤 중증장애우도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말할 수 있고, 결정할 권리가 있으며, 지역사회에 살 기회를 가짐을 강조한다. 특히 “모든 시설(수용시설)은 문을 닫아야 한다”는 신념을 밝히고 있는데, “어디에 있던, 어떤 프로그램을 하던 시설에서는 장애우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제어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그들의 이런 신념은 단지 신념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피플퍼스트(People First)는 발달장애우 당사자가 인생을 변화시키는 것에 관심과 자극을 받도록 하고 자신의 인생을 자기 스스로 제어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런 기회제공을 위해 가정·그룹홈·시설에 거주하고 있는 장애우를 유도하여 자조모임을 만들고, 그룹미팅을 시도하고, 이것을 조직화해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을 위해 필요한 자원을 스스로 모금하고, 실무까지 추진하고 있다.
발달장애우 당사자가 이사가 되고 스텝이 된다.
내가 만난 일리노이주 피플퍼스트(People first) 조직체는 1990년 캐나다의 피플퍼스트(People first)와 6명의 정신지체장애우와의 만남에서부터 비롯되었다. 그들로부터 자기옹호와 그룹을 만드는 것 등에 감흥을 받고 6달 동안의 장기간에 걸쳐 수 차례의 만남을 갖고 자신들의 자조모임인 지금의 피플퍼스트(People first)를 형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일리노이주안에 40개 지부(chapter)를 두고 활발한 활동을 전개 중이라고 한다.
일리노이주 피플퍼스트(People First) 코디네이터는 “정신지체장애우, 발달장애우도 스스로의 목소리, 스스로의 욕구를 표출해낼 수 있고, 최소한 그 욕구가 충족될 수 있도록 시도가 계속되고, 선택권을 가질 수 있도록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특히 피플퍼스트(People First) 조직체는 정신지체장애를 가진 당사자가 직접 이사가 되고, 이사회에 의해 직접 운동 목표를 설정하고, 회계감사까지 진행한다고 한다. 여기까지 설명을 들었을 때 우리는 의혹의 눈초리로 “혹시 형식적인 것이 아니냐?”고 재차 반복했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다”며 “물론 의사소통에 무수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자신들의 이사회에는 일반적 수준의 아이큐를 가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으며, 정식 이사회를 거쳐 3년마다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발달장애우 당사자가 이사회 구성원이 되는 것은 피플퍼스트(People First)만이 아니었다. 이들의 운동으로 ‘발달장애우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나 시설은 장애우 당사자 또는 가족을 이사로 선임하도록 하는 지침’이 1992년 주(state)에서 제정되도록 한 것이다. 연수기간 중 시카고에 소재하고 있는 레이 그레이험 어쏘시에이션(Ray Graham Association)이라는 기관을 방문했는데, 이곳에서 이 법을 통해 발달장애우 당사자가 이사로 참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리노이주 피플퍼스트(People First) 역시 자신들이 하고 있는 운동의 취지인 “My voice(나의 목소리), My choice(나의 선택)”를 세미나를 통해 끊임없이 알려내는 활동에서부터 정신지체나 발달장애우와 관련된 입법을 직접 모니터 하는 활동, 입법 및 예산 로비까지 직접 활동하고 있었는데, 실례로 12개의 주 입법에서 정신지체, 발달장애와 관련된 6개 입법을 발견해내고, 그 입법에 거부권을 행사한 의원명단을 자신들의 뉴스레터에 기명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했다고 힘있게 피력했다. 그리고 세미나나 미팅을 위해 기본적으로 소요되는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후원활동도 빼놓지 않고 스스로 계획, 실천하고 있었다.
조력자는 필수이지만 개입은 허용되지 않는다.
솔직히 발달장애우를 항상 ‘보호의 대상’으로만 생각해온 우리나라 정서상 피플퍼스트(People First)의 이와 같은 목소리와 활동은 납득되기 어렵고 “누군가 이끌어주겠지”하는 의혹을 갖게 한다. 물론 이 같은 활동에 조력자는 필수적이다. 실제로 내가 만난 피플퍼스트(People First)는 정신지체장애우 당사자가 아니라 조력자인 코디네이터였고, 이밖에도 활동을 조언하는 조언자(advisor)등이 자원 활동을 하고 있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조언자나 코디네이터들은 실제 피플퍼스트(People First) 활동에 직접 개입하기보다는 미팅이나 세미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장소나 이동을 지원한다. 또 조직운영이나 정신지체장애우 회원들이 직접 입법을 모니터 할 수 있도록 내용을 간략화 하는 등의 조력적 활동에 그친다.
피플퍼스트(People First) 회원들이 직접 만든 핸드북에 의하면, 조언자의 자격이나 역할 등이 상세히 제시되어 있는데, 조력자는 절대 미팅에 개입하거나 리드하지 않도록 되어있고, 단지 조언하거나 지원하는 것에 그쳐야 함을 분명히 하고 있다. 특히 조력자는 정신지체장애우에게 해답을 주기보다 질문을 하며, 당사자가 직접 부딪혀 얻을 수 있는 자원을 안내해주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것에 그치도록 명시하고 있다.
정신지체장애우 독립생활은 IL패러다임이 아닌 Self Advocacy에서부터 출발해야
최근 Independent Living(IL) 패러다임(독립생활 혹은 자립생활)의 흐름 속에 장애우 당사자들의 ‘자기옹호’와 ‘자기결정권’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IL운동에서도 최소한 자기목소리를 내어야만 가능한 운동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정신지체장애우에 대해 함구하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욕구를 표현해내기 어려운 중증의 정신지체장애우에게도 최대 6개월에 걸쳐 그 욕구를 표현해내도록 할 수 있다고 하는 그들은 “다만 참을성과 인내력만이 문제”라고 오히려 내게 가르쳐주었다. 그들의 조언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정신지체장애우에게 한계나 굳어진 답을 먼저 설정해놓은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정신지체장애우의 독립생활운동은 바로 피플퍼스트(People First)처럼 ‘발달장애우 당사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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