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라오스 장애우들의 삶
본문
우리에겐 이름조차 낯선 나라 `라오스`
인도차이나 유일의 내륙국가로 면적은 우리나라의 3배가 넘지만, 70% 이상이 산악지역이고 인구는 서울의 절반인 500만 명에 지나지 않는 작은 국가 `라오스`. 100여 개의 언어를 사용하는 부족이 존재할 만큼 매우 다양한 부족공동체가 존재하고 있으며, 국민 1인당 GNP 소득은 300달러 정도로, 동남아시아 최빈국이자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인 나라다. 라오스 최근의 역사를 보면, 19세기 말 서구제국주의의 식민지 경쟁이 치열할 당시에도 별 관심을 받지 못했고 1945년 태평양전쟁 당시에도 일본군이 3개월 정도 머물거나 지나쳤을 뿐 세계의 관심에서는 한 발짝 물러나 있는 국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인도차이나 전쟁을 겪으면서 북베트남(월맹)의 배후국가로 지목되는 바람에 미국에서 엄청난 양의 폭탄을 퍼붓기도 했다. 그 때문에 지금도 동북부 산악지역에서는 매몰된 당시의 폭탄과 지뢰로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고, 국토 곳곳이 폭탄자국으로 얼룩져있기도 하다. 16세기에 란상왕국으로 한 때 전성기를 맞이하기도 했었으나 주변국가의 잦은 침략으로 점차 쇠퇴해져 갔다. 한때 란상왕국 영토였던 메콩강 이남 지역은 현재 모두 태국에 속해 있다.
라오스의 공식 명칭은 ꡐ라오스 인민민주주의 공화국ꡑ, 사회주의체제 국가다.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베트남이 승리한 이후 1975년에 수립되었으며, 이후 베트남의 도이모이 정책 이후 경제개방정책을 펼쳐 자본주의적 경제개발을 도모하고 있다. 수도는 비엥티안으로 방콕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사십 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해 있다. 인구는 약 60만 명 정도로 메콩강에 접해있는 도시이다. 강 건너편은 태국으로 태국국경이 메콩강을 사이에 두고 있다. 중심가에서 30분 정도 거리에는 태국과 라오스를 잇는 유일한 다리가 있어 태국과의 물자교류에 핵심이 되고 있다.
라오스인들의 생활을 살펴보면, 경제개발정책이후 비엥티안 등 도시 지역은 도시화가 꽤나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 보면 대나무를 엮어서 만든 집에 살며 땔감을 모아 밥을 짓는 게 일반적이다. 반면 도시에서는 핸드폰과 4-500달러 하는 중국제 오토바이가 붐을 이루며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고 있다. 비엥티안 차량등록사업소에서 하루에 등록하는 오토바이가 250-300대라니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소득수준은 공무원 월급이 20-30달러 정도다. 공산주의 체제라 관공서, 병원 기타 여러 기관 할 것 없이 모두 비슷한 월급 수준이다. 라오스인들이 즐겨먹는 쌀국수인 카우삐약이 우리나라 돈으로 500원, 볶음밥인 카우팟이 800원정도 이며 펩시콜라가 200원이다. 월급이 200-300달러정도면 이곳에서는 아주 잘나가는 부류가 된다. 이렇게 라오스 상황에 대해 시시콜콜히 설명을 하는 이유는 라오스 현 상황을 알아야 장애우 정책에 있어서도 좀더 올바른 이해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우리나라에서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도 이곳에서는 사치로 여겨지는 경우가 허다하니까.
강요된 빈곤 속에 사회권은 없다
내가 근무하는 미타팝 병원에는 CTOV라 불리는 비엥티안 외상센터가 있다. 정형외과와 신경외과 수술이 주가 되는데, 비엥티안 내의 거의 모든 외상환자가 이곳으로 모인다고 생각하면 된다. 멀리 지방에서 3-4일 심지어는 일주일 걸려 이곳으로 오는 경우도 심심치 않다. 한 달에 100-120여건의 수술이 시행되고 있는데. 최근 오토바이의 급격한 증가로 교통사고 가 엄청난 증가를 보이면서 수술 건수는 날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그나마 수도에 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지방에 사는 사람들의 경우 큰 수술을 받기 위해서는 수술이 가능한 큰 병원이 있는 비엥티안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며칠 걸리는 이동시간과 엄청난 치료비는 치료를 포기하게 만드는 결정적 원인이 된다.
가족이 사고 등으로 사망할 경우 가족들은 환자 앞에서 슬퍼하거나 울지 않는다. 물론 마음이야 찢어질 듯 아프겠지만 불교와 토속신앙을 믿는 사회적 영향 때문인지 ꡐ죽음ꡑ이라는 개념을 좀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듯 하다.
내가 활동하는 신경외과 영역에서는 수술과 치료 후에도 장애를 가지게 되는 경우가 있다. 크게 두부손상과 척수손상인데, 두부손상으로 인한 장애는 각종 뇌질환 및 외상의 후유증으로 인한 장애를 말하는 것이다. 정신적 장애를 동반하게 되는 경우도 많고 사지 마비나 강직 등의 현상이 나타난다. 척수손상은 외상에 의한 척추골절 손상이 많은데, 경추 골절인 경우 라오스에 장비가 전혀 없어 수술을 할 수 없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환자라면 인접한 태국의 도시로 가지만 그건 혜택받은 극소수에 불과할 뿐이며, 나머지 환자들은 진단 후 며칠 병원에 누워 있다가 그냥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전혀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장애 가진 사람들에게 그냥 집으로 가라고만 할 때에는, 정말이지 어찌하기 어려울 정도로 마음이 시리다. 하지만 마비된 환자들에게는 나사못 고정술과 같은 수술로 골절된 부위를 고정한 후 환자를 일으켜 세워야 재활 치료에 임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수술에 사용되는 기구가 상당히 고가여서 보통 사람들은 감당할 수 없다. 그나마 프랑스에서 지원한 몇 십 년 전 기구가 있어서 시술할 수 있었는데 마지막 기구를 3주전에 다 사용해 버렸다. 그 기구의 보충을 의뢰하였는데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 제품이어서 보충도 불가능하다고 하니, 앞으로 흉요추 골절환자가 오면 어찌해야 할 지 벌써부터 눈앞이 깜깜하다.
정형외과 쪽도 크게 다르지 않아 한번 사용한 기구를 다시 사용하는 것은 예사고, 좋은 기구로 장애를 최소화할 수 있는 경우도 시술도구와 재활용품의 부재로 심한 장애를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곳에서도 가난은 의료적 위기에 처해진 사람들에게 ꡐ장애ꡑ를 강화하고 고착화하는 그 무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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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재활센터의 휠체어작업장 |
장애를 갖거나 다친 사람들은 병원에서 초기 치료가 끝나면 대부분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심한 장애가 지속될 경우는 국립재활센터에서 치료를 하게 된다. 국립재활센터는 비엥티안에 한 곳, 그 외의 지방에 다섯 곳이 있어 모두 6군데가 있다. 지방 환자들인 경우 일단 지방에 있는 센터에 입원하지만, 역시나 아주 심할 경우는 비엥티안 센터로 몰린다.
휠체어 작업장
비엥티안 국립재활센터는 휠체어 작업장, 정형외과 의족 작업장, 입원병동 및 수술실, 농아학교로 구성되어 있다. 휠체어 작업장은 일본의 NGO에서 지원하는 곳으로 일본의 전문가가 파견되어 휠체어 만드는 기술을 가르치고 관리한다. 라오스에서 유일하게 휠체어를 만드는 곳이다. 라오스에서 사용하는 휠체어는 크게 두 종류다. 하나는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수동휠체어이고, 다른 하나는 자전거처럼 손으로 페달을 돌려 이동할 수 있게 만든 자전거 휠체어다. 물론 전동휠체어는 전혀 없다. 보통 휠체어는 약 90달러, 자전거 휠체어는 약 100달러 선이다. 한 달에 생산할 수 있는 양은 보통휠체어가 35개, 자전거휠체어가 20개 정도라고 한다. 우리나라 기준으로 보면 그리 비싼 편은 아니지만 이곳 사람들의 경제적 수준을 비추어보면, 상당히 부담되는 가격이 아닐 수 없다. 국가지원은 전혀 없으며, 생활이 곤란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상담을 통해 일본 NGO에서 다른 NGO나 스폰서를 통해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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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재활병원의 물리치료실 |
의족 작업장은 영국의 코프(COPE)라는 NGO에서 지원해서 운영하는 곳이다. 영국의 전문가가 파견되어 기술을 전파하고 있고, 작업장을 관리, 감독한다. 지방에 있는 5곳의 재활센터에서도 의족을 만들기는 하지만 생산량은 극히 미비한 형편이다. 이곳 라오스는 60~70년대에 있었던 인도차이나 전쟁 당시 매설된 불발탄이나 지뢰가 많아 사고로 인한 장애우가 꾸준히 나타나고 있다. 특히 산악지역을 많이 다니고 국경을 순찰해야 하는 군인의 사고가 잦은데, 군인들에 대해서는 코프(COPE)에서 전액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국가에 고용된(?) 공무원일지라도 치료비용을 부담할 국가의 처지가 아니기 때문에 외국의 NGO지원으로 해결하고 있다. 학생인 경우에도 코프(COPE)에서 비용을 부담한다. 그렇지만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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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재활병원의 정형외과 의족작업장 |
재활센터 방문 중 솜푸라는 13세 된 여학생을 만났다. 멀리 북부지방에 사는데 코프(COPE)에서 의족을 지원 받기 위해 비엥티안까지 오는데 3일이 걸렸다고 한다. 솜푸는 10여 년 가까이 만성골수염을 앓아와서 왼쪽 다리가 완전히 굳어 버렸는데, 초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았다면 이런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라오스에서는 흔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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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재활센터 안의 농아학교 |
농아학교는 말이 학교지 대략 15명 정도 수업 받고 있는 교실 하나가 전부였다. 그나마 이것이라도 있으니 수화 등 교육받을 수 있으니 다행이지 싶었다. 이곳에서 1~3년 정도 교육을 받은 후에는 일반학교로 보내어져 통합 교육을 받게 된다고 한다. 수화통역사가 배치되어 있는지, 구화를 배워 교육을 받는 것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그러나 청각․언어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비단 이 15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청각․언어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모두 어디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까….
입원실과 재활치료실
센터 내에 있는 입원실과 재활치료실은 비엥티안의 각 병원에서 초기 치료를 받은 사람들이 오는 곳이다. 증상이 심한 지방 환자들이 오는 경우도 많은데, 하루 입원비는 우리나라 돈으로 약 200원 정도. 물리치료 및 검사비용은 전적으로 환자의 부담이다. 물리치료실은 열악하리라던 애초 생각과는 달리 그런 대로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다. 물론 외국에서 지원 받은 것들이지만, 웬만한 기구들이 즐비해 있었다.
국가의 의무, 해외 NGO에 의존
방문 시 동행하며 안내를 해주었던 재활센터 원장님께 라오스의 장애우 정책이 어떤지 물어보니, 첫 번째는 적절한 치료, 두 번째는 사회로의 복귀라고 한다. 라오스의 경제 사정상 많은 부분을 외국 지원에 의존하고 있지만 여타 다른 나라들과 기본 정책은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정책은 정책일 뿐,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예를 들어 초기에 적절한 치료를 해야 하는데 치료기구가 없을 뿐더러 고가인 경우가 많은데 환자 대부분은 비용을 부담할 능력 자체가 되지 않는다. 또 병원에 입원했어도 기본적인 항생제 등의 치료약제비를 부담할 수 없어 치료를 포기하고 퇴원해버리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기초 치료는 마을 촌장이 확인서를 써주면 무상으로 치료가 가능하지만, 이러한 경우 치료비를 나라에서 병원에 지급해주어야 하나 실제로는 전혀 지급이 되지 않아 병원에서도 이러한 환자들의 치료를 못해 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게다가 재활센터 운영도 거의 외국 NGO 지원에 의존하고 있는 것을 보면, 라오스라는 국가 자체에는 운영능력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여진다.
사회로의 복귀 역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현재 라오스 내, 특히 비엥티안 등 도시지역에서는 태국의 영향으로 앞서 말한 핸드폰과 오토바이로 대표되는 소비심리가 급격히 확산되고 있는 추세지만 소비만 촉진되고 있지 이를 뒷받침할 생산이나 일자리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라오스 내 가장 큰 공장이 맥주공장이니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청년실업자는 증가하고 있고 대개가 그냥 집에서 소일을 하며 지내고 있다. 형편이 이러하니, 장애우의 사회복귀, 사회참여, 고용 등은 한낫 구호에 지나지 않는 그 무엇이다.
물질의 결핍, 사람사이 우정으로 메우다
하지만 라오스 인들은 국민성이 순하고 대체로 남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는 좋은 성품을 지니고 있다. 또 전통적인 모계 사회의 전통이 남아있어 친척들 중 누군가가 장애를 갖게 되면 친척들이 치료비 등을 모아 도와주는 것을 당연시한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태도 또한 다른 사람들이 도와주어야 하는 이웃 정도로 생각하고 있어, 절대 가족끼리 숨기고 창피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와 친분이 있는 라오스 국립음악학교 부원장에게는 두 딸이 있는데, 큰 딸이 다운증후군을 갖고 있다. 어느 곳엘 가든 가족들은 함께 하며 항상 따뜻한 말로 용기를 북돋워준다. 오히려 장애가 없는 작은 딸 보다 더 가족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다고 느낄 정도였다. 그래서 언제든 만나면 장애가 있는 가족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냥 평범한 단란한 가족일 뿐이었다.
라오스에서 활동을 시작한 지 1년이 지났다. 물론 군대 대신 자원활동을 신청해 자발적으로 오게되었으나, 실은 라오스의 의료정책과 장애우들의 삶에 대해 깊이 있고 진지한 고민을 해보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이번 재활센터 방문도 실은 <함께걸음>의 원고청탁을 받고 부랴부랴 나를 반성하며 이곳에 있을 때까지 좀 더 적극적으로 내 역할을 찾아볼 셈으로 실천의 발걸음을 옮긴 것이라 보면 된다. 자, 이제 마무리를 하자면, 라오스와 같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국가에서는 보통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 자체에 힘겨움을 느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야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애초에는 라오스의 의료정책과 장애우들의 삶에 대해 글을 쓰려고 했지만 생각외로 너무 갖추어진 것 없이오히려 단순한 패턴을 유지하고 있어 다양한 내용을 싣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내내 이곳 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것 하나는, 따뜻한 라오스 사람들이 물질적 결핍을 감싸안고 있다는 것이다. 힘들어도 더불어 살아가려는 그들의 노력은 장애우나 가난한 사람들이거나 병에 걸린 모든 사람들에게 그나마 희망의 불씨가 되고 있다.
글․사진 양동훈
(라오스 비엥티안 미타팝병원 신경외과 소속, 한국국제협력단 국제협력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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