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을 닫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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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 환자인 나는 백혈병 환자를 직접 본 것이 `거울로 본 내가 처음(?)`이었다. 헌데 2년 전에 한국백혈병환우회를 창립하자 수 천명의 환자들이 환우회로 모여들기 시작하는데, 그 때 나는 웬놈의 환자가 이렇게 많은지 적잖은 놀라움을 느꼈다.
게다가 의아했던 것은 이 환자들의 상당수(아마 4~50%를 육박할 것이다)가 수급권자(의료보호 1종 수급자)들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후 투병생활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 매우 의도적으로 의료보호 1종을 만들기도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그것도 그나마 기본적으로 가진 것이 없어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이렇게들 돈이 없어서 어쩌나…`하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그럼 돈 있는 사람들은 병에 안 걸릴까? 물론 그런 일은 절대 없겠지. 병으로부터 자유로울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 그렇지만 의료에 있어서 `빈부 격차`는 한 사람의 삶과 죽음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만 50세가 넘는 백혈병 또는 다른 혈액질환자들이 골수이식을 하고자 할 때, 혹은 나이와 상관없이 재발되는 모든 환자들이 다시 골수이식을 하고자 할 때는 보험적용이 되지 않는다. 만일 골수이식을 해서라도 살고자 하는 환자들이 있다면 병원은 현금으로 1억을 준비하여 공탁할 것을 요구한다. 그래서 나이 50세가 넘은 환자들은 사회적으로 한창일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이식을 포기하거나 확률 50%도 채 되지 않는 매우 위험한 골수이식에 가진 것을 모두 바치게 된다. 그러나 병이 낫든 안 낫든 분명한 결론은 가정이 경제적으로 파탄지경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중증의 질환일수록 훨씬 심각하다. 사회 내에서 ꡐ빈곤은 악순환 된다ꡑ고 보지만 현재의 의료제도는 이런 평균적인 악순환을 더욱 심화시키고 고착화하고 있다.
ꡐ가진 것 없고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병에 걸렸다ꡑ고 단정짓는 것은 과학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면 난 주저없이 그것이 병에 걸리거나 더 악화되는 요인 중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런데 얼마전 이것이 그저 나의 허황된 주장만이 아니라는 것이 판명되었다. 두 달 전, 한국노동패널 학술대회에서 울산대 의과대학 강영호 교수는 `통칭 하류계급의 사망위험이 다른 사회계층에 비해 약 1.6배 가량이 높다` 또 `교육․직업․소득을 포함해 부모의 전반적인 사회경제적 처지가 낮으면 낮을수록 당사자의 사망위험이 다른 집단에 비해 60~73% 정도가 더 높다`는 보고서를 발표한 것이다. 그러니 만일 부모나 당신이나 가진 것 없고, 그리 많이 배우지 못했다면, 당신은 `비교적 빨리 죽을 수 있는`그룹에 속해 있다는 걸 빨리 알아차려야 한다. 그것밖에 방법이 없다.
그게 아니면? 모든 사람의 재산과 학력을 사회적으로 고르게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할 명분과 방법이 있을까? 답은…, 있다. 이러한 상황은 바로 `제도적 차별`에서 기인하는 `의료 접근권 침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신이 환자라면, 당신이 장애우라면, 당신이 돈이 없다면, 당신이 배우지 못했다면 그리고 더 나아가서 우리 다음 세대가 이렇게 차별 받지 않게 하려면 제도를 뜯어고치고 바로 세워야 한다. 이런 차별을 제도적으로 거세시키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한, `걸렸구나 생각되어도` 그때는 `콘택 600`으로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살자고 하는 일이라면 정말 함께 살자. 모여서 함께 나가자. 그래서 개밥그릇으로도 못 쓸 세상의 모든 차별을 우리가 끝장내자!
글 강주성 (건강세상네크워크 공동대표)
백혈병환우회를 창립하고 현재는 의료소비자로서의 목소리를 모아내 높이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그는 의사라는 전문가의 손에 모든 걸 맡긴 채 ꡐ환자ꡑ라는 수동적 역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 권리를 행사하는 의료의 주체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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