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례 제·개정 운동으로 지역을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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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에서 지역으로
4. 15 총선을 앞두고 연일 중앙정치에 대한 관심과 보도가 폭주하고 있는 이 때, 우리가 발딛고 사는 구체적인 지역으로 눈을 돌려 ‘지역을 바꾸자’는 움직임과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난 2월 13일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주최로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열린 「장애인 복지관련 조례실태와 향후 과제」토론회가 바로 그것.
‘중앙’이 어떻든 각‘지역’이 특색에 맞고, 필요한 현안을 주민발의 형식을 통해 ‘시민의 힘’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그 방식 중 하나가 바로‘조례 제·개정’운동이다.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도 국회나 공무원이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 비관 섞인 허무주의에 빠져있다면 이 내용을 주목하자.
정책도, 제도도, 시스템도 장애우의 손으로 만들 수 있단다.
주민발의, 시민의 힘으로 만든
「목포시건축물의허가등에있어장애인편의시설설치사항사전점검에관한조례」(이하 목포시사전점검조례)
우리나라 법명이 그러하듯, 이 조례 또한 이름이 꾀나 길다. 그러나 이 긴 이름의 조례가 지금 장애계에서는 꼭 외워야 하고, 또 배워야 하는 하나의 모범으로 인식되어지고 있다.
이유는 바로, 목포시 장애우 단체와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나서 시민들에게 설명하고 일일이 서명을 받아 합의하는 과정을 거쳐 의회에 제출, 결국 시와 의회가 ‘주민의 힘으로’제안한 이 조례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과정이 순조로울 리 없었다. 우선 시·도 지자체에서는 중앙의 위임사무, 즉 중앙의 모법이 있어 시행중인 것을 좀 더 보완하거나 구체화하는 것은 지자체가 조례를 제정할 수 있지만, 근거가 없으면 아무리 ‘지방화시대’,‘지방분권’을 강조해도 맘대로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며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이번 조례 제정운동을 주도했던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전남지소장인 허주현 소장(남, 시각장애1급)은 “장애인·노인·임산부등의편의증진보장에관한법률이 있다고 해도, 사전점검에 대한 근거조항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시에서는 모법에 없는 내용을 조례로 제정할 수 없다며 강하게 부정했다. 또 시에서는 건축법에도 건축사 아닌 사람이 건축물을 모니터 할 수 없다고 되어 있어, 법을 부정하고 무시하면서까지 만들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해 결과적으로 장애우 모니터단이 자문 수준의 역할에 그치고 말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장애우 관련 조례의 제·개정 운동방향-주민자치의 관점에서’란 제목으로 주제발제를 한 우필호(시민자치정책센터 운영위원)씨는 “지방공무원들은 시민단체가 뭘 좀 해보자고 하면, 모법이 없다, 위임받은 적 없다고 방어적인 태도부터 취하는데, 실제 조례는 법률 뿐 아니라 헌법에 근거하고 있다. 헌법 제117조 제1항은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고 재산을 관리하며, 법령의 범위 안에서 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방의회는 주민의 대표기관이고, 지방자치단체의 입법기관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에 조례를 단순히 행정입법으로 분류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조례란 헌법에 기초해 지방의회가 정하는 독자적인 의회입법 형식이기 때문에 기존 공무원들이 하는 말만 들을 것이 아니라 좀더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형태로 나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의 성격과 행정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앞으로 진전해나가는 것은 불가능한 법. 따라서 그는 “장애우 단체 뿐만 아니라 복지관련 NGO들은 이러한 조례를 적극적으로 해석해서 지역복지를 활성화할 수 있는 조례 제·개정운동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조례 제·개정운동,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 가능하다
목포시사전점검조례가 의미를 갖는 것은 바로 ‘주민발의’에 의해 제정되었다는 것. 2003년 4월 시민단체들과 조례제정을 위한 간담회를 시작해 총 6차례를 진행하면서 조례안을 만들고, 조례제정운동을 합의했다. 그 즉시 6월부터 8월, 3개월 간 가가호호 혹은 거리 서명운동에 돌입해 약 7천8백 명의 서명(그러나 주민번호의 불일치 등으로 4,708명만 인정)을 받아 의회에 제출, 결국 의원들의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조례 제·개정은 지방의회나 자치단체의 장만이 할 수 있는 고유의 활동이라고 여겨졌지만, 2000년 3월 지방자치법이 개정되면서 주민청구를 통한 조례 제·개정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20세 이상의 주민 총수 1/20 범위 안에서 연서(서명 등)로 지방자치단체 장에게 조례 제정이나 개폐를 청구 가능)
주민청구에 의한 조례 제·개정이 의미를 갖는 것과 관련해 우필호 씨는 “이는 주민에 의한 참여와 대안 제시가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또 정책과 주민이라는 정책적 연결고리가 만들어지면서 지역시민운동과 의원들의 협동작업이 의미있게 받아들여지면서 의회는 지역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결국 주민참여의 제도화 실현이라는 것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풀뿌리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한 시민자치 영역을 넓혀나가는 주요한 수단과 내용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나와 조직, 지역을 바꾸자
그동안 장애우 관련 조례를 살펴보면, 복지관 운영, 주단기보호시설 운영, 장애우 근로, 재활작업장 설치, 사회복지위원회설치 및 운영 등이 대부분이었다. 사업을 시행하는데 근거를 만들기 위한 일종의 수단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장애인복지기금, 신문판매대, 매점 등의 우선 임대, 콜, 휠체어택시 운영, 장애아보육시설 지원, 그리고 최근 천안시에서 제정한 이동권확보 조례 등 지자체가 나름의 의지로 제정한 조례들도 있다. 그러나 조례제정 과정에서 당사자의 참여, 주민의 참여가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만족스럽지 않다는 평가다.
또한 기존 장애우 관련 조례들도 과거 10여 년 전에 제정되었고 임의조항으로 되어 있는 것들이 많아 강제조항으로 바꾸는 등의 개정작업이 필요하지만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 않아 여전히 답보상태에 머무르고 있는 점도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살고 있는 동시에 지역적 근거, 즉 구체적인 자신의 삶터를 지역에서 갖고 있다. 그동안 변화의 욕구는 많아도 언제나 관심과 행동은 중앙으로만 쏠리고 또 요구해왔다. 지역적 변화를 꾀하기 보다, 중앙에서의 큰 변화에 집중해왔다. 그러나 이번 토론회에서도 제기되었듯, 조례 제·개정운동은 장애우 당사자를 변화시키고, 장애우 단체를 변화시키며, 지역 사회단체와의 연대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 또 지역주민들과 직접 만나는 자리를 만들어 설득과 동의의 과정을 거친다. 이러한 방식의 조례 제·개정은 우리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었다는 승리감을 갖게 해 이후 운동의 자발성과 역량강화로도 이어진다. 이 뿐만 아니다. 조례제정운동은 꼭 필요하고 중요한 사안에 대해 미시적으로 접근하지 못하는 부분을 일깨워주며 본질을 건드리기도 한다. 지난 99년 부천YMCA에서는 놀이터에서의 어린이용 시설 설치 및 관리에 대한 조례 제정을 시도했다. 언론을 통해 놀이터의 어린이용 기구들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 보도되면서, 법개정 필요성에 대한 여론이 확산되자, 이는 결국 아동복지법의 개정으로 이어졌다. 한 지역에서 시작된 조례제정 운동이 전체를 관할하는 법률의 개정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조례 제·개정운동이 내 삶터에서 작은 것부터, 구체적인 물음과 실천으로 시작하는 장애운동의 한 방식으로 자리매김 해야 하는 이유 아닐까.
글·사진 홍여준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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