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실맺는 소송운동(1)
본문
법, 활용 가능한 수단
최근 4~5년 사이 장애계에서는 활발한 공익소송운동을 펼쳐왔다. 오랜 시간동안 너무나 익숙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미처 ‘차별’이라고 인식하기도 어려웠던 사안에 대해 당사자와 단체, 법률가가 적극 결합해 사회에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시작한 것이다.
공익이란 말에서 느껴지듯 공익소송은 단순히 개인의 명예회복이나 부당함을 호소하는 수준이 아니다. 개인 구제와 동시에 사회적 파장 즉, 장애우의 사회참여와 평등이란 가치를 확장한다는 뜻이다. 또 결과 못지 않게 활동의 과정을 중시 여긴다. 소송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캠페인과 토론회, 여론화 활동 등 일정한 흐름을 갖고 진행하는 것이다. 때문에‘공익소송’보다‘공익소송운동’이라 불려지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사회복지계에서 처음 공익소송을 통해 사회복지의 법, 제도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은 94년 심창섭 노인의 ‘노인수당의 현실화’문제라고 알려지고 있다. 국가에서 지급하는 노인수당으로는 헌법 제34조에서 규정한 행복을 추구할 권리, 혹은 인간답게 살 권리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수당의 정도를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한다’는 것은 위헌이라는 소 제기였다. 그러나 법원에서는 국가가 예산의 범위 안에서 정할 수 있으며, 그 정도의 금액으로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국가의 법과 규정은 정당하다고 판결을 내렸다. 한국 사회에서 ‘소송을 통한 사회변화’가 결코 쉽지 않음을 여실히 드러낸 사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단체나 장애우 단체 등에서는 오히려 공익소송운동에 대한 활동을 세밀히 기획, 발전시켜나가는 활동을 전개했다.‘법’이 갖는 현실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법’은 여전히 활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합리적 수단으로 작용 가능하기 때문이다.
소송으로 사회변화 가능하다
우리나라 공익소송의 효시는 84년 고 조영래 변호사가 주축이 돼 진행한 ‘서울 망원동 수재사건’으로 보고 있다. 수재를 당한 망원동 주민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 5년 간의 법정투쟁을 거쳐 승소한 사건으로, 일반적으로 자연재해라 여겼던 수재(水災)가 법적인 배상을 받을 수 있는 인재(人災)란 것을 밝혔다는 의미로 평가받고 있다. 그 후 90년대부터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YMCA, 녹색연합 등에서는 단체의 치밀한 기획 하에 의도적 과 공익소송센터 등을 만들어 법률가와의 결합을 시스템화하여 활동하기 시작했다. 판결을 통한 사회변화의 가능성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장애 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표에서 보듯, 90년대 후반부터 진행된 장애관련 소송이 수적 증가뿐 아니라 내용도 다양해지고 있다. 또 기각 혹은 패소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 2~3년의 과정을 거쳐 힘겨운 승소를 얻어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몇몇 법률 전문가들의 참여로 가능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에게만 맡겨지지 않는다. 당사자와 단체, 법률가가 함께 논의하고 역할을 분배한다. 그리고 철저히 아래로부터 위로 올라가는 형태를 고수한다.
어느새 소송은 운동방식의 하나이며, 수단이고 매개 역할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그러나 그 파급효과는 매우 크다. 특히 뿌리깊은 관행과의 싸움이란 측면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사회적 인식수준에 따라 법, 제도가 변하기도 하지만 거꾸로 법의 부당함을 소송으로 밝혀내 그 허구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는 곧 관련 법 제·개정의 필요성으로 이어진다. 또 벌칙조항이 없어 사문화 된 듯 보이는 임의조항의 문구 하나도 주장과 판결에 있어 영향을 미친다. 더욱 구체화하는 작업이 필요하겠지만 선언적 의미의 조항 또한 나름의 역할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당사자의 권리의식 향상과 다양한 운동방식이 가능해진 단체들의 역량강화, 그리고 변호사들의 인식 변화와 구체적 참여 등이 결합하면서다. 이런 조직적 움직임은 잇따른 소송결과에서도 보여지듯 의미있는 성과를 내고 있다.
장애계의 공익소송운동은 법(法)이 물(水) 흐르듯 자연스런(去) 상식을 담아내는 그릇이 될 수 있음을 확인시키고 있다.
글 홍여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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