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실맺는 소송운동(2)
본문
재판부, 장애인을 전체로 파악하는 것은 오류다
지난 2월 12일 서울중앙지법 민사28단독 황문섭 판사는 민간보험에서 장애를 이유로 가입 거부당한 조병찬(29세, 뇌병변장애1급)씨가 푸르덴셜생명보험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담당 임성택변호사, 법무법인 지평)에서 “2백만원을 배상하라”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민간보험에서 장애로 인한 차별은 무척 다양한 형태로 있어왔다. 가입부터 거부하거나, 사고 발생시 기왕증(기존 장애 때문에 능력이 부족하거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적용하는 등 장애를 이유로 보상금을 적게 지급하는 일들은 비일비재했으며, 위험성이 높을 것이라는 근거없는 편견으로 장애인 시설의 화재보험이나 상해보험에서도 거부당하기 일쑤였다. 물론 이번 판결에 대해 피고측의 항소가 예상된다. 그렇지만 장애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장애’를 이유로 무조건 거부 반응부터 보였던 민간 보험사가 합리적 근거를 마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는 점에 대해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소송을 제기한 조병찬씨는 “금액부분이 좀 아쉽지만 판결문의 내용과 결과에 만족한다”며 “승소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고 해도 반반이었는데, 그 만큼 우리 사회가 장애 차별의 현실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합리적 이유없이 일반적인 통념으로 ‘위험할 것이다’라는 편견의 잣대를 들이미는 것은 차별이라는 점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사적영역에서의 차별 인정, 어떤 의미인가
그동안 장애계가 운동차원에서 제기한 소송은 생존권, 교육권, 이동권, 노동권 등 공적영역에서의 차별 문제가 대부분이었다. 소송의 법적 근거가 될만한 것들은 국가나 지자체의 책임 관계에 놓여져 있는 것이 주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이번 승소 판결이 더 의미를 지니는지 모르겠다. 일반 서비스 영역에서 차별문제를 공식적으로 다투기는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2002년 국가인권위로부터 연구용역을 받아 「민간보험상에서의 장애 차별」이라는 연구를 실행하기도 한 임성택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선례가 없어 많은 변호사들이 소송제기를 회피하기도 했지만, 그는 “장애문제를 잘 모른다. 배워가겠다”는 겸손함으로 이 소송을 담당했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이번 판결이 갖는 의미를 살펴보자.
함께걸음: 2002년 민간보험에서의 장애 차별이라는 주제로 연구작업을 한 경험이 있기도 해서, 이번 판결에 대해 남다른 소회를 갖고 있을 것 같다. 이번 승소판결이 갖는 의미를 정리하자면?
임성택변호사: 국가인권위원회의 용역사업으로 「장애인에 대한 민간보험 차별」에 관하여 연구보고서가 제출되었고, 위 보고서에는 장애인에 대한 보험차별이 일정한 경우 불법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견해가 피력되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연구자의 개인적인 견해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런데 구체적인 사건에서 법원이 ‘장애인에 대하여 합리적 이유가 없이 보험계약 체결을 거부하는 등 차별행위를 한다면 불법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에 관하여 공적인 판단을 내렸다는 것이 이번 사건의 큰 의의라고 생각한다.
우선‘계약자유의 원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다. 그리고 계약 상대방을 선택할 자유도 ‘계약자유의 원칙’에 포함된다. 그 동안 장애인에 대하여 장애를 이유로 각종 서비스 제공을 거부하거나 계약 체결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계약 자유를 내세워 왔다. 그런데 이번 판결에서는 장애를 이유로 계약 체결을 거절하는 것이 부당한 차별로 인정된다면 계약자유의 원칙을 내세워 항변할 수 없으며, 이런 때에는 불법행위로 평가되어 손해배상을 할 의무가 생긴다는 것을 확인하였다는 것이 첫째 의의라고 할 것이다.
과거에는 장애인의 보험가입이 광범위하게 제한되었다. 예컨대 청각장애인이 그 장애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암보험에 가입하는 것도 거절되었다. 이러한 보험업계의 관행을 개선하기 위하여 금융감독원 등의 권고에 따라 생명보험협회에서는 2000년도에 장애인보험공통계약심사기준을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위 심사기준에 해당되는 사안이었다.
이번 판결에서 재판부는 보험회사가 위 심사기준을 토대로 보험가입을 거절한 경우에도 위법성이 인정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위 심사기준 자체의 합리성, 위 심사기준 적용의 합리성 등이 제도적으로는 검토되는 계기가 되리라고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이번 사건의 재판부는 장애 차별소송에 입증책임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기준을 제시하였다. 판결문을 살펴보면, “장애를 이유로 차별을 받은 사람은 상대방의 보호영역 내에서 장애를 이유로 차별을 받은 사실에 관한 입증책임을 부담하고, 그 차별에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 자의적인 차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에 관한 입증책임은 상대방이 부담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차별에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지에 관한 입증책임을 차별행위자에게 부담시킨 것은 입증책임의 부담에 관한 좋은 선례가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함께걸음: 소송을 진행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임성택 변호사: 뇌성마비 장애인이 다른 사람에 비하여 수명이 짧다고 볼 수 있는지, 기타 각종 보험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높다고 볼 수 있는지에 관하여 입증하는 것이 어려웠다. 관련 자료도 부족하고, 특히 국내에서는 이에 관한 연구나 통계자료가 전무했기 때문이다. 특히 의료계의 도움을 받는 것이 어려웠다.
함께걸음: 일부 승소에 대한 예감은 있었는지?
임성택 변호사: 승소하여야 할 사건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런 케이스가 그 동안 전혀 없었기 때문에 소송 도중에 승소할 것이라는 예감을 가지지는 못했다. 다만 승소한다면 위자료의 액수는 우리가 청구한 금액의 일부만 인정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함께걸음: 앞으로 어떤 변화를 예상하는지?
임성택 변호사: 상대방이 항소할 것이 예상되므로, 확정판결이 있기까지는 큰 변화를 예상하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이번 판결을 계기로 장애인에 대한 보험차별을 비롯하여 각종 서비스 제공에 있어서 있어왔던 차별 관행이 개선되는 논의의 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