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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특 집// 장애우 정치세력화, 가능한가 (Ⅰ)

장애계, 정치판에 ‘끼어들기’ 시도 그러나…

본문

또 한번의 기회가 왔다.
과연 17대 총선에서 장애우 정치세력화가 가능할 것인가.
정치권의 무관심과 외면 속에 좌절과 패배감에 익숙해 있던 장애계.
17대 총선을 맞이해 새로운 모습으로 움틀거리고 있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는 예측 불허다.
장애우 정치세력화를 위한 역사적 과정을 되짚어보며, 장애계가 무엇을 중점에 두어야 하는지 <함께걸음>이 정리해봤다.

 

장애계, 이제 당선운동이다
선거사상 처음으로 장애계는 총선을 맞이해 조직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전국을 아우르는 48개 단체로 구성된 「2004장애인단체총선연대」는 각 정당에 10% 장애우 비례대표 의석 확보 요구 뿐 아니라, 출마의사를 갖고 있는 15명의 장애우 후보에 대해 공식 지지, 지원 활동도 하고 있다. 지난 2000년 16대 총선 활동에 비추어 보면, 조직적, 체계적, 지속적이란 측면에서 한 단계 발전한 의미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당시 장애계는 거의 모든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했던 총선연대의 낙천·낙선운동에 동참했다. 정책제안이나 선거환경 개선을 위한 실질적인 참정권 확보 활동은 이어졌지만, 이번 17대 총선처럼 장애우 후보를 추천 받아 당선시켜야 한다는 공개적 발언과 조직적 움직임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한 단계 진전된 듯한 당선운동으로의 변화된 흐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과거 20여 년 전부터 장애계가 입버릇처럼 되뇌이던 ‘장애우 정치세력화’, 그렇지만 어떤 준비를 하고 활동을 전개했는지,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통해 그 가능성을 진단해 보자.
 
13대 이철용 전 의원에서 시작된 국회 진출
정치권에서 장애우 대표를 최초로 인정한 것은 1996년 15대 총선이었다. 당시 새정치국민회의는 비례대표 3번이라는 당선 가능 순번에 이성재 전 의원(47세, 지체장애1급, 현 건강보험관리공단 이사장)을 배치해, 제도로 국회진출이 가능함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장애계가 정치세력화의 꿈을 키웠던 것은 훨씬 이전부터다. 1988년 민주화의 요구가 드높던 시기, 빈민운동을 하던 이철용 전 의원(55세, 지체자애 3급, 한국장애인 문화예술개발원 이사장)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는데, 그 자신이 장애를 가지기도 했고, 정치적 정체성을 빈민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애계’라 할 것도 없는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장애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몇몇 젊은 활동가들은 이철용 전 의원의 의정활동을 통해 장애우의 이익을 대변할 정치지도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터득했다. 그 때부터 장애계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장애우 정치세력화’를 주장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움직임은 더디고 모자랐다. 과거 20여 년 전 장애계 상황은 활동가 수도 적었을뿐더러 각 단체의 조직적 역량도 이제 시작하는 단계였기 때문에 힘있는 실천활동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은 버거운 일이었다. 정치적 욕구가 있다해도 어떻게 해서든 벌어먹고 취업해야 한다는 경증장애우의 생존권 요구가 가장 큰 관심사이며 과제였기 때문이다. 다른 것에는 눈을 돌릴 주체적 역량과 객관적 상황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1988년 13대 국회에서 이철용 전 의원이 장애인복지법 개정, 장애인고용촉진법 제정 등 관련 법 제정에 앞장서자 사람들의 인식이 변하기 시작했다. 장애우 몫으로 국회에 들어간 것이 아닐지라도 그나마 ‘당사자’이기 때문에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 장애우 정책에 힘을 쏟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개인적 욕망에 사로잡힌 정치세력화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장애계가 1992년 14대 총선에서 주체적 활동을 꾀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장애계 전체의 합의가 아니라 개별 단체들이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형식이었기 때문에 가능성보다는 오류와 극복해야 할 과제만이 남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당시 지장협, 신장협 등은 노골적인 친여 성향을 보이며, 정권과 가까워짐으로써 입지를 강화하려고 했다. 특히 이들은 특정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 지원하기도 했는데, 그런 의사결정 과정이 밑으로부터의 합의를 통해서가 아니라, 일부 단체장들의 정치적 성향에 이끌린 측면이 강했기 때문이다. 또 전체 장애계를 살펴보더라도 선거국면을 통해 각 정당과 후보들에게 무엇을 요구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14대 총선은 장애계가 정치적 역량을 어떻게 강화하고 정치세력화를 어떻게 꾀할 것인가 과제만 안겨주었다.

정치세력화의 방법론, 비례대표
그리고 1996년 15대 총선, 이성재 전 의원이 국회에 진출하게 되는데, 그이의 의정활동을 통해 국회에 장애우 대표가 꼭 있어야 한다는 것은 일종의 당위처럼 굳어버렸다. 이성재 전 의원은 편의증진법 제정, 장애인복지법 전면 개정, 장애인고용촉진법 전면 개정 등 장애 관련 법 개정 활동뿐 아니라 사회복지사업법 개정, 기초생활보장법 제정 등 사회보장 정책 전반을 아우르는 활동을 보여준다. 그가 이렇게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비례대표였기 때문이다. 만일 지역구를 갖고 있었다면 그의 역량은 분산되었을 테지만 그는 온전히 장애우 그리고 소외계층을 위한 일만하도록 역할을 부여받은 것이다.
그러나 15대 총선을 맞이하는 장애계의 조직적 활동은 역시나 미진했다. 아래로부터의 요구를 받아안기는커녕 단체장이란 명함을 갖고 여당 공천을 받기 위해 개인적으로 조직을 이용했다. “내가 몇 십만을 대표하는 장애우 단체장이다. 그러니 나를 공천해 주면, 그 표가 당에 몰릴 수 있다”는 식이었다. 선거국면을 장애우의 인권현실과 정책을 공론화 하는 장으로 만들기보다 개인 영달을 위해 단체를 이용하는 수준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게다가 장애계는 이성재 의원의 전국구가 확정되면서 그 결과에 만족하고 안위했다. 정치권이 장애영역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는 것은 일종의 적극적 조치를 취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비록 새정치국민회의 단 한 곳이 당선가능한 순번으로 인정했지만, 그것은 역사상 처음 시도된 장애우 정치세력화에 대한 희망의 근거였다.

선거는 표 대결 이전에 정치적 힘 대결
장애계는 15대 당시 이성재 전 의원이 장애우 대표로 의회에 진출했었기 때문에 2000년 16대에서도 무난히 인정되리라 전망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장애계는 단 한사람의 장애우도 조직적인 힘을 통해 진출시키지 못했다. 각 정당은 장애우 비례대표제를 한번의 시혜적 시도로 여겼다. 활발한 의정활동으로 장애우 대표의 역량이 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6대 총선에서 어느 정당도 장애우 의석확보를 제도로 보장하지 않은 것이다. 또 일단 실력이 검증된 이성재 전의원에 대해 지역공천은 가능하다 여겼지만 정치권은 이것 또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부 시민단체들과 종교계에서 부랴부랴 이성재 전의원을 다시 국회로 보내야 한다며, 모임을 구성하고 연대서명을 받아 당에 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연이은 국회 진출은 좌절되고 말았다. 대신 민주당에서는 나사렛대 겸임교수인 이일세(1급 척수장애, 현 환경관리공단 감사) 씨가 전국구 순위 37번, 자민련에서는 한국지체장애인협회 장기철 회장이 11번을 배정 받았으나 이들의 순번은 당선권과 거리가 멀었다. 겉으로는 장애계의 할당제 요구에 부응한 것이라 비춰지지만 우는 아이 달래듯 형식 선에서 그치고 말았다.
물론 16대에는 심재철 의원(한나라당, 지체장애 3급)이 있다. 그러나 장애계는 그가 비록 장애를 가진 당사자라 할지라도 그의 국회 진출을 두고 장애우의 정치세력화가 진행됐다고 말하지 않는다. 장애계의 대표성을 인정받아 진출한 것이 아니었고, 장애우 분야에 집중적으로 관심을 갖고 헌신적인 활동하는데는 한계가 있었다는 평가다.
당시 장애계 또한 선거환경과 정치문화 개혁 차원에서 총선연대에 결합했을 뿐 후보를 직접 준비해 공략하는 적극적 당선운동은 진행하지 못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등이 장애우 10% 할당을 요구하기는 했지만, 그 뿐이었다. 정치적 환경을 변화시키기 위한 어떠한 공론화 장도 마련하지 못한채, 수동적 자세로 정치권의 선택과 결정에만 목매달고 있었다. 그러다 단 1명도 장애계 힘으로 진출시키지 못했다는 결과는 장애계에 깊은 자괴감과 반성, 적극적 행동의 필요성을 인식시켜주었다. 17대 총선을 맞이한 장애인단체총선연대는 이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출범했다.

권력분산, 내부민주주의 실현이 정치적 힘
그러나 여전히 정치권의 분위기는 냉랭하다.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장애인단체총선연대지만 기존 정치권과 우리 사회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아직 함량미달이라는 것이다. 얼마전  각 당 지도급들과의 간담회에서도 여실히 드러났지만, 장애계의 할당제 요구 1인 시위와 장애우 후보 15명에 대해 관심을 나타내는 당은 아무도 없다. 30분, 그리고 5분, 그렇게 밖에 대화 시간을 줄 수 없다는 것이 각 당의 솔직한 심정을 대변하는 거다.
그렇다면, 정치권은 왜 장애계의 요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는가. 왜 장애계 내부에서조차 무관심과 외면으로 강 건너 불 보듯 하는 걸까. 우선 일반적 정치혐오증이 장애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때문에 그 놈이 그 놈이다, 누가 되든 상관없다는 무관심은 커져만 가고 장애계 역시 마찬가지란 것이다. 게다가 15명 장애우 후보들에 대한 인물평가도 한 몫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회와 정치권에 내놓은 인물들이 장애대중들이 열렬히 환호할 만큼 과연 검증되고 활동성을 인정받았는가 하는 점인데, 이는 곧 장애우 단체와 장애계에서 내세운 후보들이 정치개혁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가하는 점과도 상통한다. 단순히 선거 때니까 혹은 개인적 입신양명을 위해 정치 행위주체로 변질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여기서 장애우 당사자면 누구든 좋은가하는 문제도 쟁점이 될 수 있다. 장애당사자주의 세력이 어떤 정치적 과정을 거쳐 장애우를 정치적 주체로 만들었는지, 조직적 평가와 전망을 통해 정치권으로 외연을 확장하는 것인지.
선거를 맞이한 장애계의 현 상황은, 장애우 단체들의 조직 운영방식과 의사결정 구조, 지도자들의 리더십이란 것들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반증하고 있다. 선거 대응 모습은 비민주적이고 몇몇 개인 명망가 중심으로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장애우 단체의 열악함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한가지 다행으로 평가되는 것은 15명 장애우 후보들이 공천을 신청한 당을 살펴보면, 여당인 열린우리당으로 집중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과거 여당의 힘을 믿고 정권의 눈치만 보던 것과는 달리 열린우리당, 민주당, 한나라당, 민주노동당 등 각 정당별 고른 선호를 보이고 있다. 이제 다양한 정치적 성향을 갖고 본격적인 정당활동으로 승부하겠다는 것으로 보여진다. 과거 ‘정권을 위한 정치’쯤으로 여겨지던 행태에서는 벗어났다는 분석이다.

장애우 정치세력화, 의미를 바로 세우자
이번 장애계 당선운동을 여성계와 비교해보면 그 질적 차이는 두드러진다.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이하 맑은정치네트워크)는 지난 11월 결성해 102명 여성후보 추천명단을 발표하기까지, 추천을 받고 본인의사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과정에서 개개인에 대한 도덕성과 활동성, 사회발전과 공익성에 대한 기여도, 전문성, 민주적 리더십, 양성평등 및 시민의식 등을 주요 평가 기준으로 삼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장애계는 어떤 과정을 거쳤는가. 또한 진보적 관점에서 현 상황을 파악하고 밑그림을 그리고 출발했는가. 기존 정치판에 접근성을 강화하고 네트워크를 실현하겠다는 큰 틀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아래로부터의 요구를 모아내면서 질적 변화를 꾀하고 있는가 하는 점에서는 대체로 부정적 반응이다. 
장애우 정치세력화는 기존 정치문화를 바꾸고, 장애우의 정치참여를 확대하자는 것이다. 그럼에도 장애계는 단 한번도 정치제도를 개선하는데 주도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자리는 필요하다’‘누구라도 진출하면 의미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 당위성만으로 해결 가능했던, 어거지가 가능했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명확한 근거와 조직적, 체계적, 지속적이지 못한 주장은 한낱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장애인단체총선연대의 활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현재 진행형이다. 때문에 가타부타 어떤 평가를 내리는 것은 쉽지도 않을뿐더러 가능하지도 않다. 또 분명한 것은 조직의 결성, 즉 양적 성장은 대체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뭔가 확 몰아지는 분위기는 별로 없다. 각 정당과 일반 언론이 여성계 요구에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지만 장애계 요구에 대해서는 성에 안찬 대응을 하고 있다. 그건 바로 장애계 현 역량이 이 정도 수준이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음이다. 조직적 대동단결과 준비된 인물들의 부재 그리고 정치세력화란 명제에 대한 뚜렷한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했다는 것은 외부로 그대로 비춰진다.
선거를 눈앞에 두고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는 시대적 요구에 따르기는 했어도, 진보의 관점이나 정치개혁을 위한 다양한 논의의 장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장애우 정치세력화’ 오랜 숙원이었지만, 무엇을 준비하고 어떤 노력을 기울여왔는지, 장애운동의 질적 발전과 정치적 입지 강화를 위한 힘은 어디서부터 오는 건지, 더 늦기 전에 되새겨볼 일이다.

***각  당의 공천 신청자들

▲변승일(민노당)

▲김세원(한나라)
▲구명회(열린우리당)

▲미영순(한나라)

 

 

 

 

 

▲김정권(한나라)

 

          
이상택(민주당)        윤석용(한나라)          박은수(열린우리당)

 

 
 

     

 
 
  

박시하(한나라)              이정선(한나라)      최민(열린우리당)      이일세(민주당)

이철용(민주당)

  
    장향숙(열린우리당)    정화원(한나라당)

글 홍여준민 기자/ 사진제공 2004 장애인단체총선연대

 

특 집//장애우 정치세력화, 가능한가 (2)

 

「2004 장애인단체총선연대」깃발을 올렸다!

 

총선연대는 어떤 목적을 갖고 활동에 임하고 있으며, 어떤 성과를 기대하고 있는 것일까.
총선연대에 의하면, 세 가지의 목표를 갖고 활동에 돌입했다고 밝히고 있다. 첫 번째는 여전히 접근 자체가 어려운 선거환경에 대한 실질적인 장애우의 선거권 확보고, 두 번째는 이번 선거부터 1인 2투표를 하게 됨에 따라, 후보뿐 아니라 선호하는 당을 선출하게 되었으니, 정책의 우선순위를 제안해 각 당이 적극적으로 추진의사를 밝히도록 할 예정이라고 한다. 장애우 정책 실행에 소극적으로 대하는 당이 있으면 조직적 투표로 낙선운동도 불가하겠다는 자세다. 그리고 세 번째는 바로 장애우 후보 공천. 어쩌면 총선연대에서 가장 염두에 두고 활동을 벌이고 있는 핵심 과제다. 각 정당이 비례대표 의석 중 5%를 장애 가진 사람으로 공천하라는 것인데, 이를 위해 총선연대는 각 당사 앞에서 매일 1인 시위를 전개하며, 적극적 조치의 일환으로 비례대표 선정을 요구하고 있다. 
활동의 과정과 내용에 대해 김동범 집행위원과 이야기 나누었다.

 

함께걸음: 15명 후보에 대한 선정기준 등 과정에 대해 설명해 달라.
김동범 집행위원: 총선연대에서 추천하거나 강요한 인물은 하나도 없다. 우선 자발적 의지를 확인하고 공천을 신청하려는 사람 혹은 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장애우 후보를 선정했다. 후보 개인에 대한 검증이나 평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객관적 기준도 모호하고 장애우 단체에서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훼방을 놓아서는 안된다는 의견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이번 15명 장애우 후보 중 과연 ‘누가 준비되고 검증된 장애우 후보인가’라며 일각에서 던지는 의문을 알고 있다. 그러나 후보를 검증하는 것은 단체의 몫이 아니다.
함께걸음: 장애우 후보 15명 발표의 목적은?
김동범: 이번 17대 총선연대 활동은 당선이 목적이 아니다. 우선 정치권에 ‘우리도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꼭 1명이라도 장애우 후보를 비례대표로 진출시켜야 한다는 것을 각 당이 이제는 각인하도록 해야 한다. 총선연대 활동은 15명 장애우 후보에 대한 당선운동이 결코 아니다.
함께걸음: 그렇지만 전반적인 상황을 보면, 그다지 녹록치 않은 것 같다. 각 당에서 장애우를 비례대표 자리를 줄 것이라고 전망하는가?
김동범: 이번 총선에서 중요한 것은 우선 활동의 경험을 쌓는 것이다. 총선연대 활동에 있어 목표를 세 가지로 잡고 있는데, 첫 단계가 총선을 매개로 한 장애우 단체간의 공고한 연대라 한다면 두 번째 단계 는 정당이 장애우와 장애우 단체에 대해 인식을 제고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 다음 세 번째 단계가 바로 꼭 장애우 후보로 비례대표에 선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 목표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도 확언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예전과는 다르게 각 정당이 실험적인 방식들을 많이 도입하고 있지 않은가? 아무리 각 당이 확언을 했어도 뒤에서 앞에서 총선연대처럼 이런 요구 활동이 지속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함께걸음: 결과적으로는 어떻게 될 것인지 예상하기 어렵다는, 회의적 시각이 있는 것 같은데 이번에도 가능성은 희박한 것 아닌가?
김동범: 회의적인 것이 아니라 ‘상황이 그렇다’라는 것을 인식할 뿐이다.
함께걸음: 그렇다면 총선연대의 주요 활동방향은 어떤 것인가?
김동범: 장애우 조직만으로 총선연대를 꾸려 선거에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은 개인과 단체가 개별적 움직임을 보여왔는데, 그러니까 각 정당이 장애우 정책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상황에 따라 취사선택했다. 장애우 비례대표 의석을 요구한다는 것은 자기대표권을 확보한다는 의미다. 그 전 선거에서도 요구는 했지만 조직적, 체계적 힘이 뒷받침되지 않은 일회적 의사표현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는 좀 더 강도 있게 장애계의 힘을 보여줘야 결과적 성과를 안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총선연대는 그동안 내내 문제가 되어왔던 참정권 확보와 정책공약을 제시했다. 장애우 정책에 있어 우선순위가 문제인데, 장애계 인맥과 예산에 따라 시행하지 말고 이제는 장애계의 종합적 의견수렴을 통해 통일성 있게 우선순위를 정해 정책을 실행해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이번 선거에서 도입되는 1인 2 투표제를 겨냥한 것이다. 우리는 장애우 정책실현 방안을 구체적으로 내놓는 당을 선택할 것이다.
함께걸음: 각 당의 반응은 어떤가?
김동범: 각 당은 표면적으로는‘맞다 맞다’하지만 정작은 ‘장애우 비례대표가 뭔데?’라는 의문을 갖고 있다. ‘장애우’라고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소외계층’이라는 이야기는 하고 있다. 이제 구체화하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그런데 얼마 전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장총련)에서 각 당에 지도부 면담을 요청해 놓은 상황이란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총선연대 또한 간담회를 요구했고, 또 진행했다. 급박하게 변해가는 정치적 상황에서 장애계의 창구가 단일화되지 못했다는 것이 정치권에 어떻게 비춰질지…. 이제 정치권도 장애계를 보기 시작했다. 별도의 움직임이 있다는 것을 감지하는 것이다. 장애계 또한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제 목소리를 내야한다는 자기인식이 절실한 때가 아닌가 싶다.
함께걸음: 총선연대 활동이 당분간 계속 이어질 것이지만, 중간 평가를 해 본다면?
김동범: 선거상황에서의 장애계 활동은 계속 상승곡선을 갖는 발전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이번 우리당의 중앙위원 경선에서 당원들의 힘으로 장애우 중앙위원 2인을 선출하지 않았는가. 이는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장애우 대표가 시스템에 의해 선출되는 것이다. 앞으로 각 정당의 지도부 면담과 각 당사 앞 1인 시위 등을 지속적으로 펼칠 것이다. 비록 장애우 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것은 아니지만 13대 이철용의원과 우리나라 첫 비례대표로 국회에 들어간 15대 이성재의원의 경우를 보더라도 장애를 가진 사람이 꼭 국회에 들어가야 한다. 이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객관적 평가 아닌가. 16대 때 심재철의원이 들어가긴 했지만 장애계에서는 인정받지 못했다. 그 이유는 그가 지역구를 갖고 있었고, 특별히 장애계와 구체적 협력으로 장애우와 소외계층을 위한 정책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 선거제도는 지역구로 선출되면 장애문제는 뒷전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 사람에게는 지역이 먼저다. 비례대표는‘배려’가 아니다. 기회의 평등을 요구하는 것이다. 장애대중 전체를 위한 활동만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함께걸음: 이 조직적 활동을 앞으로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 예정인가?
김동범: 이후 정치참여위원회 등을 상설화해 지속적으로 사회현상과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역할을 고민하고 있다. 워스트(Worst), 베스트(Best)의원 등도 뽑고, 사회적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그 안에서 장애문제를 언급해야 한다. 사회연대를 더 구체적이고 공고히 해야 할 것이다.

인터뷰 이태곤 편집국장 / 정리 홍여준민기자

 

특 집//장애우 정치세력화, 가능한가 (3)

17대 총선,장애계에도 ‘판갈이’를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기고 : 김주현
         (한국뇌성마비장애인연합 정책기획부장, 장애인연금법 제정공동대책위원회
          실무 간사)

총선에 응하는 다양한 모양새
이번 총선은 여러 가지 면에서 기존의 총선과 다를 것이라는 기대가 적지 않다.
2002년 대선직후부터 선거자금에 대한 검찰의 철저한 수사가 진행되고, 여야 할 것 없이 집권 초기부터 불법대선자금, 최근의 공천시비 등의 문제로 기존 정치판이 얼마나 혼탁해 있는지를 여실히 증명하며 공멸의 위기에 처해 있다.(아직까지 여당의 경우에 안전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야당의 내분으로만 끝나지는 않을 것 같다는 판단이다.)
또한 인터넷을 통한 정치참여가 확대되면서 일반 국민들의, 특히나 젊은 층의 정치에 대한 관심도가 증가하고 있다. 여기에 총선을 앞두고 물갈이를 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각 계급계층의 민중들이 제각각 정치세력화를 이야기하며 국회진출을 노리고 있다. 대표적으로 민주노동당은 노동자와 소외된 민중들의 정당을 표방하며 진보정당으로서 첫 원내진출이 기정사실화 되고 있으며, 정당득표 15%와 15석 확보를 목표로 물갈이가 아니라 판갈이를 하자며 득표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에서도 어느 단체는 지난 16대에서 어느 정도 효과를 보았던 낙천낙선운동을 이번에도 진행하는가 하면, 낙천낙선운동은 너무 소극적인 정치참여라는 비판으로 당선운동을 하는 단체도 있다.

장애인단체총선연대, 대중에 근거하고 있는가
이러한 시류는 장애계에도 마찬가지여서 단체마다 총선 시기를 여러 가지 장애계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기회로 이용하려는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장애인단체총선연대에서는 15명의 장애계 인사들을 국회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일면 기존의 정치권에 장애우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반영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장애대중들이 현실 정치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고, 거기에 어떻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반영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등을 생각해 볼 때, 그러한 장애인단체총선연대의 활동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
아니,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총선 이전에 지금의 메이저급 장애우 단체들이 장애대중의 욕구를 얼마나 파악하고 있고, 정말 그들의 활동이 장애우당사자들을 위한 것인가 생각해봐야 한다.
10여년 전 장애운동이 그 싹을 틔울 무렵 장애의 문제는 중증이나 경증에 관계없이 비슷한 정도의 억압과 차별로 당사자들을 짓눌렀다. 그래서 당사자들이 들고 일어났고, 당시의 사회문화적, 물리적 환경에서 중증장애우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만한 통로가 거의 부재했기 때문에, 경증장애우들과 일부 전문가들이 전체 장애우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지금은 경증장애우들은 기본적인 생활권의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되었고, 사회 각계 각층에 부족하나마 장애우 당사자들이 진출해있다. 의사, 변호사, 판검사, 기업가, 문학가, 예술가 중 장애우를 찾아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고, 장애우를 대표한 것은 아니지만, 장애우 국회의원도 있었고, 굳이 따지자면 김대중 대통령 또한 경증 중도장애우였다고 할 수 있다.

또다시 소외된 중증장애우
하지만 이제 편의시설의 제한적 확충, 인터넷 등의 매체의 발전 등 사회문화적 물리적 환경이 변화했고, 중증장애우들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직접 사회에 내뱉기 시작했다. 또한 그러한 변화된 환경이나 매체를 이용하는 계층들이 기존의 나이든 장애우들이 아니라, 20~30대의 젊은 장애우들이라는 것, 그들이 그러한 환경과 매체를 통해 사회에 노출되는 빈도가 높아질수록 그들의 사회에 대한 관심과 요구들은 더욱 거세어질 것이고, 이는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문제는 그들의 관심과 요구가 아직 조직화되지 못하고 파편적으로 불거져 나오고 있고. 기존의 굳어진 사고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복지관이나 소위 기득권을 가진 관변단체에서는 그것들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말로는 이제 장애운동의 중심이 중증장애우라 떠들지만, 자신이 가진 기득권을 놓고 중증장애우들에게 그 지위나 권력을 내어주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차별이 무언지 몸으로 느낄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있는 중증장애우들에게 차별금지법을 이야기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돈도 없는 장애우를 두고 LPG차량 할인을 이야기하고, 고용 자체에서 소외되고 있는 장애우들에게 고용장려금 축소 반대를 이야기한다 하여 얼마나 그들의 동의를 끌어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경제적인 빈곤화의 문제, 자립생활의 문제, 이동권의 문제 등 중증장애우들을 비롯한 장애민중들의 삶과 직결된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데 말이다.

정치세력화인가, 정치인이 되고자 하는 것인가
17대 장애인단체총선연대에서 내어놓은 15명의 장애우 후보의 면면을 보자. 거의 모두가 소위 말하는 장총, 장총련 등의 기득권 단체에서 다들 한자리씩 하는 사람들이다. 게다가 일반적, 사회적으로 중증이라 이야기할 수 있는 정신지체나 정신장애, 뇌병변장애우 등을 대표하는, 아니 대표하지 않더라도 그저 중증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다. 그들 중에 누구를 중증장애우이라 할 것이며 그가 과연 중증장애우의 삶을 대변해 줄 수 있는가 말이다.
15명의 후보를 전부 싸잡아 비난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적어도 장애우 당사자를 대표하는 후보로 내세우려면 장애대중의 이야기를 제대로 반영한 인물이어야 하는데, 그 15명이 후보들이 과연 그런 검증과정을 거친 사람들인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검증과정 없는 장애인단체총선연대의 이와 같은 움직임은 해당 후보 개인과 그가 속한 단체들의 이해관계와 각 당의 이미지 쇄신이라는 상호이익 추구의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다시 말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정치세력화가 아니라 기존에 비난받았던 정치인화의 확대에 지나지 않을 우려가 짙다는 것이다.

장애계, 물갈이가 아닌 판갈이가 필요하다
이제는 말 뿐이 아니라 실제로 장애운동의 중심이 중증장애우로 옮겨져야 한다. 또한 장애우가 진정한 이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젊고 진보적인 장애우들이 장애운동의 핵심축이 되어야 한다. 말 그대로 장애우계도 물갈이 차원이 아니라 판갈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 장애계의 흐름과 장애인단체총선연대의 개인중심, 단체중심의 움직임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며, 이에 대한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장애우 단체나 개인들의 적절한 대응이 이 시기에 불가피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이번 총선에서 무언가 결과를 얻기 바라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이다. 이번 총선에서 진보적 장애운동진영에서 해야 할 일은 현재 장애우계의 주류단체들이 행하고 있는 총선관련 활동의 허구성과 기만성을 폭로하고, 진정한 장애우당사자의 요구가 무엇인지, 그들 후보들이 이야기하는 것과 다른 장애민중의 절박한 요구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하며, 어떠한 이유에서 선정되었든 15인의 장애우 후보들이 장애우의 그러한 권익을 제대로 대변하도록 강제하는 데에 있다.
이후 중증장애우 당사자의 역량강화, 욕구의 조직화 등 좀더 체계적인 준비를 통해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진정한 정치세력화를 이룬 후에 그 기반에서 인물을 내보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사자의 끊임없는 자기개발과 연대, 그리고 국가와 지역사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선행과제일 것이다.

 

특 집//장애우 정치세력화, 가능한가(4)

“개혁의 무풍지대 장애계에서
외부와 내부의 원활한 소통을 위한 활동에 전념하겠다.”

 

총선을 통해 새롭게 알려진 인물
열린우리당 중앙위원 출마했던 이범재 씨(한국장애인인권포럼 공동대표)

 

▲이범재
난 아직 ‘경계인’
이번 17대 총선에서 장애우 후보 중 눈에 띄는 낯선 인물이 있다. 이범재(42세, 지체장애2급)씨.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사회문화여성분과 행정관으로 활동하다가 구국전위 사건(94년)으로 기소중지 중인 것이 확인되면서 도중 하차했고, 지난 2003년 3월 잠시 구속되기도 했다. 이 때 석방활동을 주도했던 최민(46세, 오픈에스이 대표)씨와 인연을 맺으면서 장애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비록 장애우 후보로 먼저 나서기 전 있었던, 열린우리당 장애우 중앙위원 선출에서 낙선하는 바람에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고, 나름의 역할을 찾아가겠다는 그이지만 장애계의 관심은 계속 커지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 이범재 씨는 “장애를 가진 사람 중에 사회활동을 주로 했던 분들이 많지 않았죠. 저 역시 이번 구속사건을 거치면서 장애계 사람들과 인연을 맺게 되었지만 그 전에는 사회활동에 근거를 둔 사람이었습니다. 아마도 그 역량들이 장애계로 이어지길 원하는 측면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또 장애계와 비장애계의 소통 구조가 저를 통해 조금 수월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자신을 ‘경계인’이라고 말한다. 장애계와 사회운동영역의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이라면서.
이번 총선에서 출마할 의사가 있었느냐고 하자 “중앙위원에는  소신과 당선가능성을 보고 입후보한 거죠. 그러나 결과에서도 나타났듯, 꼴찌를 했습니다.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이제 제 역할을 찾아 가야죠”라고 담담히 말한다.
그래도 사람들의 기대가 있는데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10년 전 구국전위 사건이 아직도 발목을 잡고 있다고 한다. 그는 사면복권 되지 않아 선거권과 피선거권 모두를 박탈당한 상태였다.

제도권 안에서의 변화 고민
현재 그이의 공식직함은 한국장애인인권포럼 공동대표다. 아직 장애계 상황을 잘 모른다고 전제했지만 인권포럼은 창립선언문을 통해 ‘정치를 지향’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 ‘정치는 더럽고 시민사회운동은 깨끗하다’는 이분법적 시각에서 벗어나, 장애계도 제도권 안으로 들어가 변화의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이 때문에 인권포럼이 특정 정당을 지원하고 몇 사람의 정치세력화를 꾀하기 위해 결성된 것 아니냐는 항간의 소문에 대해 그는 “인권포럼 회원들의 다양한 정치적 성향을 인정하지만 특정 정당과는 관계없습니다. 제가 열린우리당 소속이니까 그런 이야기들이 나오지만 내부에서 수 차례 논의과정을 가졌는데, 정치적 권력을 지향한다는데 합의했습니다”라며 현실가능성을 따져봤을 때 정치적 활동은 의미있다고 주장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조직이 생겨나고 또 금새 없어지기도 하지 않냐는 질문을 하자, 그는 포럼 결성의 궁극적 이유는 ‘소통’이라고 말한다.
“장애계의 젊은 사람들이 장애유형과 조직을 뛰어넘어 교류,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애계가 일부 사람들, 단체장 빼고는 소통구조가 제한되어 있지 않습니까? 젊은 활동가들의 소통이 없으니 젊은 세대가 없는 것처럼 보이죠. 사람을 키우는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장애계는 다른 영역에 비해 훈련된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마 인권포럼을 통해 서로 의견을 나누고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벽을 허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그러면서 그는 장애계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이지, 특별한 목적의식을 갖고 시작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는 접경지대에 속한 자신이 어떤 특정한 단체에 들어가 활동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또 하고 싶지도 않다고 잘라 말했다.

변화, 외부 힘으로 가능하지 않아
그렇지만 변화와 개혁은 구체적 자기 근거를 가질 때 가능하지 않을까. 그는 “장애계는 독특한 정체성과 지위를 갖고 있는 듯 합니다. 민간단체라고는 하지만 아직 정부기관과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기도 하죠. 타 시민영역보다 정부에 의지하는 해결방식에 의존해 왔구요. 문제를 못느끼거나 변화와 개혁의 필요성, 욕구는 모두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가 조심스러워 하는 것은 자격, 근거, 구체성의 문제죠. 내가 얼만큼 알고 있는가, 능력이 있는가 하는 반문을 자주 합니다. 또 변화 자체를 외부에서 만들기는 어렵고 적절치 않죠. 외부에서, 내부에서, 외부와 내부를 소통하게 하는 것, 그게 아직까지는 저의 역할이라고 본거죠.”변화의 방식은 다양하며, 인권포럼은 느슨한 사람과 사람의 연대로, 사람을 다지는 활동을 우선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장애인단체총선연대에서 발표한 15명의 장애우 후보들에 대해서는 일일이 거론하고 비평할 입장이 아니라며 말을 아꼈다. 나름대로 고민해서 하고 있는 장애계의 선거참여 방식이라고 생각할 뿐이란다.
현재 그는 열린우리당에서 특별히 맡고 있는 지위나 역할이 없다. 측면 지원하고 있을 뿐이다. 우선 당원으로서 총선승리가 제1목적이기 때문에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당 조직 편재에서 현재는 장애인특별위원회가 특위형태로 되어 있는데, 이를 상설위원회화 하는 등 당 내부의 변화에 기대와 희망을 갖고 있단다. 개인적으로는 장향숙 중앙위원을 지지하고 있다며, 그이의 선거활동도 돕겠다고 한다. 또 사면복권이 언제 될 지 모르지만 가능하면 18대 총선에는 도전해보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훈련된 활동가 필요
간혹 장애계에는 과거 다른 영역에서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뒤늦게 장애정체성을 인식해 활동의 근거를 옮기는 이들도 있었고,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다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금새 떠나버리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다 다시 장애계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었고. 물론 장애계에서 활동하다가 일반 사회운동계로 외연을 확장해 간 사람들도 있다. 이범재 씨는 장애계가 열려져 있길 바란다고 했다. 이런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인정해주고 장애문제에 더 구체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계기를 던져준다는 점에서 의미있다는 것이다.
그는 인터뷰 내내 시종일관 부드럽고 섬세하게, 때로는 강한 어조와 겸손함을 동시에 나타낸다. 과거 운동 경험을 과시하거나 섣부른 판단과 주장도 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인지 이범재 씨에 대해 장애계 젊은 활동가들은 좀 더 구체적인 입장의 동일함으로 활동을 바라는 눈치다. 그러나 그는 이제 시작이라며 조급해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것들부터 천천히 해나갈 예정이라고 한다.
그가 참여하고 있는 한국장애인인권포럼은 장애계의 주축이 되고 있는 40대들의 전국 네트워크조직이다. 과거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의 경험을 살려 인권포럼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회와의 관계와 변화에 주력하며, 새로운 장애운동의 전형을 만들어보겠다는 이범재 씨. 비록 이번 총선에서 후보로 나서지 못했지만 총선을 계기로 장애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이 되고 있다.

글·사진 홍여준민기자


 

작성자여준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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