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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몸을 해방시켜라3

비너스 상에는 양팔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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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내기는 자연스런 그녀의 삶

ꡒ나는 내 신체에 대해 매우 만족하고 또 편안해요. 한번도 내 신체가 트라팔가 광장을 꾸밀 것이라고는 상상을 못했지만 말이예요. 여성성의 강력한 이미지가 전쟁의 유산들과 연관된 그러한 장소에 놓인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 생각하고, 논쟁의 여지가 있는 임신한 장애여성 조각상을 올리도록 결정한 영국이 자랑스럽습니다.ꡓ

최근 트라팔가 광장에 놓여질 작품으로 결정된 마크 퀸의 작품 ꡐ임신한 앨리슨 래퍼ꡑ의 주인공 앨리슨 래퍼(2003년 영국의 공로자 MBE상: Member of the Empire 수상)의 말이다.

자신의 나신을 소재로 빛의 명암을 강조하는 사진 작품으로 유명하기도 한 앨리슨은 두 팔이 거의 없고, 짧은 다리 모양을 갖고 있는 여성 장애우다. 그녀는 1999년 그녀가 임신 8개월이었을 때 마크 퀸 작품의 모델이 되기 위해 나체로 자신의 몸을 숨김없이 드러내었다. 그동안 구족화가 겸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몸 여러 곳을 빛의 농도와 관련해 두드러지게 혹은 색다르게 표현하는 작품을 추구해와서인지, 이번 작품에서 그녀가 장애를 가진 몸 그대로 ꡐ드러내기ꡑ를 한 과정은 어떤 용기가 필요한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녀의 평소 생각과 활동의 자연스런 이어짐일 뿐.


확고한 자아의식 ꡐ나는 앨리슨일 뿐ꡑ

그녀는 1965년 탈리노마이드(Thalidomide)에 의해 유발된 것과 비슷하게 양팔과 다리가 거의 없는 형태로 태어났다. 생후 6주가 지났을 때 어머니로부터 버려져 장애아동을 위한 학교 - 장애가 아주 심한 아동들을 위한 일종의 수용시설 - 에서 생활했다. 어려서 잠깐 인공 의수, 의족을 착용하기도 했었지만 철이 들면서 그 모든 것들을 벗고 장애가 있는 몸 그대로, 자신의 장애를 온전히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더 나아가 자신의 몸은 ꡐ21세기 비너스ꡑ라고 자찬하며 자신의 몸을 구석구석 파헤쳐 그림과 영상으로 승화시키는 작품활동을 통해 미(美)와 장애에 대한 사회통념에 질문을 던진다. 철저히 자신의 개인적 생활에서 영감을 구했던 것이다.

1999년 그녀가 아이를 임신하자 많은 사람들은 ꡒ아이가 또 장애를 가지면 어떻게 하냐? 그 몸으로 임신하다니 걱정스럽지 않냐?ꡓ라는 질문 일색이었다고 한다. 보통은 아이가 딸일까, 아들일까를 먼저 묻는 게 상식이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임신 가능한 ꡐ여성ꡑ이라기 보다는 ꡐ장애ꡑ에 눈길이 먼저 간 것이다. 사실 그녀는 임신에 대한 계획이 전혀 없었단다. 또 병원에서는 앨리슨이 너무 심한 장애를 갖고 있어 위험할 수도 있다고 충고했단다. 게다가 그녀는 부모나 일가 친척도 없고, 또 결혼도 하지 않아 남편도 없는 독신의 입장이었다. 여러 조건에 있어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그녀가 임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출산 의지를 갖게된 것은 바로 ꡐ모성성ꡑ.

이미 자신 안에 꿈틀대고 있는 것은, 장애가 있건 없건 존재 자체만으로 위대한 ꡐ생명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낳은 아이가 바로 페리스(Parys). 태어나 9개월 간은 멜빵을 해서 그녀의 느낌과 애정을 보냈다고 하는데 어느덧 4살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위험한 상황(?)은 존재한단다. 사회복지사들은 그녀가 아이를 키울 능력이 없다고, 자칫 위험할 수 있다며 보호시설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ꡒ우리는 매우 초조하게 살고 있어요. 그러나 새로운 방식으로 아이를 돌볼 수 있는 방법을 일찍 배웠지요. 전 말로 다 할 수 있어요. 아이가 넘어지면 제가 뛰어가지는 못해도 스스로 저에게 와 키스를 합니다. 서로가 노력도 하지만 그 아이는 본능적으로 스스로를 챙기는 방법을 알아요.ꡓ

그녀는 ꡐ영국에서 가장 용감한 어머니ꡑ란 제목의 기사가 보도되었을 때도 강력히 항의했다. 도대체 뭐가 용감하다는 건지, 장애를 가진 어머니는 아이를 낳을 수도 기를 수도 없고, 또 그게 화제인지, 참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미혼모, 여성, 장애, 어머니가 그녀의 정체성

그녀가 작품활동을 하면서 갖고 있는 화두는 ꡐ독신의 어머니ꡑ, ꡐ장애의 인정ꡑ, 그리고 ꡐ미적 존재로서의 자신의 몸ꡑ이라고 한다. 이번 트라팔가 광장에 세워질 마크 퀸의ꡐ임신한 앨리슨 래퍼ꡑ에 대해서도 ꡒ내가 갖고 있는 화두 모두를 결합한 작품이다. 개인 작품활동 속에서 사진술과 기계장치 등을 통해 이러한 문제들을 탐색해왔다. 하지만 나는 결코 15피트(4.572m) 높이의 조각상을 제작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마크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ꡓ고 작품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축하를 마크에게 돌렸다.

하지만 이 작품이 선정된 것에 대한 반대와 비난 또한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일부 미술 평론가들은 ꡒ징그럽다, 소름끼친다ꡓ ꡒ영구적인 전시가 아니라 다행이다ꡓ는 거침없는 속내를 드러내며 부정적 반응을 보였고, 장애우 인권 단체에서는 ꡒ다양한 몸의 아름다움을 인정한 것으로 환영한다ꡓ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해지고 있다.

특히 이 트라팔가 광장은 프랑스 나폴레옹 해군 함대를 격파해 영국을 살린 넬슨 장군을 기리기 위한 전쟁기념 광장이다. 말을 탄 남성 장군들의 근엄한 동상만이 자리하고 있는 등 권력과 힘을 강조하는 남성성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장소. 그러한 곳에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장애여성의 몸, 그것도 임신을 해 배가 불쑥 튀어나와 보기 흉하다고 평가되어질 수 있는 여성의 몸이 자리하게 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평화의 세기가 될 것이라 염원했던 21세기였지만, 벌써 두 차례의 전쟁이 진행된 세계의 상황은, 이 조각상이 갖는 의미를 더 극명히 전달해주고 있는 것 같다. 앨리슨 래퍼, 그녀도 말했듯이, 장애와 여성성이 갖고 있는 평화와 생명 존중, 드러냄의 미학과 다름의 공존이라는 잊고 있던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깨우쳐주는 것 아닐까.

몸짱, 얼짱의 시대를 살고 있는 이 때, 획일화를 거부하는 장애우의ꡐ당당한 드러냄ꡑ이 그립다.

 

글 홍여준민기자

사진 영국 장애전문지 DN(Disability Now), 인터넷 BBC방송

 

작성자홍여준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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