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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나빠지기 어려울 정도로 엉망이 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개악 안이 3월 1일부터 발효되었다. 부안 사태의 와중에 일부 흥분한 주민들에 의해 부안군수가 구타를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노무현 대통령은 집시법이 집회를 하는 사람들에게만 너무 유리하게 되어있다는 엉뚱한 말을 하였다.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집시법의 허점이 들어난 것도 아니고, 집회와 무관하게 종교시설 내에서 단순 폭행사건이 발생했는데 대통령은 집시법이 문제라고 우겼다. 폭행사건이 문제라면 형법을 바꾸자거나,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을 바꾸자고 했어야 대충이라도 맞는 소리가 될텐데, 뜸금 없이 집시법을 들먹인 것이다.
ꡐ대통령의 말ꡑ이 있자, 경찰은 발빠르게 움직였다.
집회와 시위 자체에 대한 알러지적 반응을 갖고 있던 경찰은 가능한 지혜를 총동원하여 집회와 시위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는 묘안을 짜냈다. 학교 앞, 군부대 앞, 주요도로 등 곳곳에서 경찰의 허가를 받지 않으면 집회가 불가능하게 되어 버렸다.
부자들에게 집회란 그저 번잡스럽고 거추장스러우며 시끄럽기만 하고 비생산적인 것일지 모르지만, 가난한 사람들, 발언의 기회가 적은 사람들은 집회와 시위가 아니면 도대체 자신의 생각과 요구를 전할 방도가 없다. 탄핵국면 이후에 벌어진 광화문 촛불집회에 대해 국민주권의 회복이니 민주주의의 승리니 하며 긍정적인 평가가 쏟아지고 있지만, 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한 경찰이 규정에만 그치지 않고 집회를 원천봉쇄 했거나 강제진압을 했다면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성과들은 사라지고 물리적인 공방만이 오가는 난장판이 되기 딱좋았을 것이다. 광화문에서의 우리가 확인한 민주주의의 성취는 바로 ꡐ집회ꡑ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광화문 촛불집회는 많을 때는 10만 명도 넘게 모였기 때문에 경찰로서도 평화 개최를 유도하면 아무 불상사 없이 지날 수 있었지만, 3월 26일 촛불집회장 바로 옆에서 열리던 최옥란씨 추모 문화제는 경찰의 물리력에 의해 유린되었다. 경찰은 82명이나 되는 행사 참가자들은 연행하였고, 이들 중 몇 명은 입건되었다.
집시법의 개악도 문제지만, 이렇게 자의적으로 적용되는 것도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힘있는 사람들이 하거나, 정치적 의미가 각별한 집회는 그냥 두고, 힘없는 사람들이 하거나 사회적 이목을 끌지 못하는 집회는 개최할 수도 없고, 참석자들도 형사처벌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 한국의 집회와 시위를 둘러싼 현실이다.
법 자체가 엉망이고, 법의 집행이 지극히 자의적인 상황에서 경찰과 수구언론은 무슨 성서말씀이라도 되는 것처럼 매번 법을 지키라고 집회 참가자들을 몰아세우고 있다.
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법, 법(法)자가 물 수(水) 변에 갈 거(去)를 합해 만든 자로 법이란 물이 흐르듯이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유린하는 법률과 이 법률에 의한 자의적 법 적용이 매일처럼 반복되는 것이 물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상태인가. 그렇다면 불복종이니 무저항이니 다 접어두고 군소리 없이 법을 지킬 것이다.
글 오창익(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www.hright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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