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지 못한 사람, 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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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역행하는 「채용신체검사제도」〉
“도대체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이런 게 존재한다는 말입니까? 여기 나오기 위해 불합격판정기준을 꼼꼼히 살펴봤는데, 기가 막혀서 말이 안나옵니다. 이 규정대로 적용한다면 심지어 무좀이 심한 사람도 공무원이 될 수 없어요. 개명천지에 이게 뭡니까!”
지난 12월 11일 국가인권위가 주최한 「채용신체검사 개선방안 마련을 위한 청문회」에서 울산의대 조홍준 교수는 현행‘공무원신체검사규정’을 두고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본인도 병원에서 채용에 따른 건강검진을 하는 사람이지만, 어떻게 이런 검사항목과 기준이 나오게 되었는지 의문”이라며 “이 항목으로는 건강의 위험마저 판단하기 어려운데, 왜 이 같은 채용신체검사가 필요한 지 모르겠다”며 어이없어 했다.
이 날 청문회는 지난 11월 행정자치부가 공무원채용을 실시하면서 신체검사서에 B형 간염인 사람들을 인위적으로 구분하는‘간염검사’및‘간염 예방접종 필요 여부’란 표시를 한 것은 평등권과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는 것이라며 인권위가 행자부에 관련 규정 삭제를 권고한 바 있는데, 채용신체검사 자체에 의문을 갖고 정책적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후속조치였다.
〈질병·장애 가진 사람은 직무수행능력 없다?〉
행자부 고시과 정지만 사무관은 “공무원채용신체검사는 직무를 담당하는데 필요한 신체적 적격성 여부를 사전에 판정함으로써 건강상 또는 신체상으로 공무원으로서 정상적인 직무수행이 불가능한 정도에 이른 경우에는 채용을 제한하여 장기병가 등에 따른 행정공백, 예산낭비 및 공무수행의 비효율성을 사전에 방지하고 다른 건강한 공무원을 질병의 감염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을 설정하여 실시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 “규정이 만들어진 1963년도 이전에는 질환자가 공무원으로 채용되어 재해의 보상 및 요양비 지출로 막대한 국고지출을 초래했고 최근 몇 차례 개정을 통해 합리적 기준을 마련하였다”고 밝혔다. 그는 “향후 업무의 비효율성과 예산 낭비를 방지하고 건강한 공무원들을 질병의 감염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채용신체검사는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의료기술이 발전하고 있어 그때그때 합리적으로 조정해나갈 것이며, 장애우를 채용하지 않았을 경우, 그 사유를 명확히 밝히도록 하겠다”는 것으로 채용신체검사제도에 대한 향후 방향을 제시했다.
〈현 신체검사로는 직무배치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민간단체 소속 토론자들은 “신체검사로 업무적합성을 판정할 수 있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현행 기준이 아무리 개정에 개정을 거듭한 것이라 할 지라도 단순하고 계량적인 기준은 건강한 사람들만을 뽑겠다는 낡은 사고방식을 넘어서지 못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장애와 질병이 다양하기 때문에 지금의 단순한 기준으로는 적합치 않으며, 적절한 업무환경과 직무배치를 목적으로 한 신체검사가 실시되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졌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 김정하 간사는 “채용 전에 실시되는 신체검사를 채용 후 적절한 업무배치를 목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며, 장애우들이 직업의 기회, 즉 노동자로 편입되기 전부터 심각한 차별이 존재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현행 신체검사제도라고 꼬집었다. 또 김정하 간사는 “채용 전(前)이냐 후(後)냐는 문제는 자기결정권, 행복추구권, 직업선택의 자유, 인격권(프라이버시권) 등 인권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라고 주장하며, 채용신체검사제도는 타당성과 효율성을 넘어, 사람으로서의 존엄성을 인정받느냐 마느냐 하는 인권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소관 부처도‘차별’인식하지 못했다〉
물론 장애 가진 사람들에게 뭔가 특혜를 주는 듯한 느낌을 주지만 예외조항도 있다. 등록장애우 중‘직무수행에 지장이 없는 자’는 신체검사결과에 상관없이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장애와 직무수행능력의 관계를 평가할 수 있는 척도가 연구·개발되지 않아 자의적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현재 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정도를 고려할 때, 손쉬운 것은‘배제’쪽으로 기우는 것 아니냐는 것이 토론자들의 지적이었다.
채용신체검사제도로 논문을 썼던 이석민·신윤진씨는 직무수행능력과 관련해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국민적 관심이 크게 모아졌던 월드컵 축구에 비유해 설명해본다. 유상철이라는 선수는 여러 가지 포지션을 담당할 수 있는 소위 "팔방미인"적 선수였다. 히딩크 감독은 이러한 점을 십분 활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떄 안정환, 황선홍과 같은 공격전문선수들 모두를 수비도 잘 하는 선수는 아니라는 이유로 대표선수 선발에서 제외해버릴 수 있을까? 현행의 신체검사제도는 이러한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는 제도다.”
이 날 청문회에 참석한 행정자치부 정지만 사무관은 “직무분석도 제대로 되지 않는데, 어떻게 업무적합성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겠느냐, 게다가 순환보직이기 때문에 큰 의미 없다”고 답해, 행정자치부 역시 관례로 이어진 제도일 뿐이지 효율성 있는 제도로 생각치 않음을 나타냈다. 한마디로 이 제도에 의해 피해 당하는 사람들은 무수히 많았지만 문제를 제기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시험을 주관하는 입장에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해 온 고질적 차별제도임을 인정한 것이다.
〈차별 철폐는 윈-윈(win-win)〉
채용신체검사제에 대한 문제인식은 간헐적이지만, 간사랑 동우회,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노동건강연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등 시민단체들이‘신체검사제도 폐지를 위한 모임’을 구성하고 사회여론화 하면서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이 날 청문회를 준비한 인권위 정책국의 김화숙 씨는 “관련 부처와 민간의 의견을 청취했으니, 올 1월 말 정도에 소위원회 등의 논의과정을 거쳐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신체적 장애와 질병으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평가하는 것은 인간이 갖고 있는 다양한 능력과 존엄성을 무시하는 처사다. 모쪼록 노동에서의 배제는 빈곤으로 이어지는 구조적 빈곤의 악순환을 가져올 수밖에 없음을 상기하며, 모두가 윈-윈(win-win)할 수 있는 정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글·사진 홍여준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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