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지 못한 사람, 아웃(2)
본문
“채용신체검사, 나에게는 차별의 벽이었다”
사례1 :
“채용이 된 것이나 다름없었죠. 총장, 이사장 면접까지 본 후에 조교로부터 다음 학기 강의계획서를 제출하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니까요.” 인제대 사회복지학과에 재직중인 이선우 교수(신장장애2급). 그는 2001년 인제대의 신규 교수채용에 응시했다가 거의 합격이 확실시되었지만 최종 서류라 할 수 있는 신체검사결과 통지서에 일주일에 2-3번 혈액투석을 받아야 한다는 의사 소견서가 첨부되면서, 결국‘불합격’통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혈액투석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연구 및 교육활동에 지장을 줄 것이란 이유였고, 그 근거는 교육공무원법. 그러나 교육공무원법 시행령 제 8조 (준용규정)에 ‘교육공무원의 신규채용에 있어서의 신체검사에 관하여는 공무원채용신체검사규정을 준용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결국 장애나 질병의 유무와 정도에 따라 채용을 결정할 수 있는 근거는 결국「국가공무원법」이 되는 것이다. 이 사건은 소송을 했음에도 학교측에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하고 여론화되자 학교측에서 합의를 요청해와 국가인권위원회 제1호 합의사건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를 통해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조사과정에서 학교측이 합의를 요구해 일단락 지어진 사건이었지만, 채용시 당연하게 여겨져 왔던 ‘건강진단서 제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차별적 요소가 있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확인한 사건이었다.
사례2 :
2001년 서울교대에서 한 쪽 시력이 없다는 이유로 특차에서 합격하고도 최종 탈락한 김훈태 학생(시각장애6급)도 마찬가지의 경우였다. 물론 이 사건은 ‘양안의 시력이 0.04미만인 자’라는 규정을 눈의 합이 아닌 각각의 시력으로 해석하면서 생긴 오류였지만 서울교대 측은 끝까지 “전체교수협의회에서 공무원채용신체검사 규정을 근거로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번복할 수 없다. 어떻게 한 쪽 시력 없는 사람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될 수 있는가, 원근감이 떨어져 공놀이도 제대로 못할 것이다.”라며 장애우 단체의 강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불합격의 입장을 고집했었다. 이후 법적 소송에 들어가면서 사회 여론화되자, 시급히 불합격 결정을 철회하기는 했어도 이제 막 성인으로서 사회 편입에 기대를 갖고 있던 당사자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밖에 없었다. 불편하긴 했어도 ‘장애우’란 인식 없이 지내다가 ‘장애’가 곧장 ‘무능력함’으로 이어지는 사회적 편견의 장벽 앞에서 19살 청년은 웃음대신 눈물을 흘렸었다.
사례3 :
이 밖에도 ‘장애’를 이유로 공무원이 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졌던 사람들은 많다. 우리 나라 최초의 시각장애우 일반학교 교사인 송광우 씨(시각장애1급)는 갑작스런 레버씨 시신경증으로 시력을 잃고 1년간 병가를 내어 점자를 익히며 시각장애우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시력이 없어도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다는 강한 신념과 용기를 갖고 있었다. 1년의 병가를 마치고 복직하려 했지만 교육당국은 “채용신체검사제도에 의해 직무수행에 지장이 없음을 밝혀야 한다”며 복직신청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확대경이나 CCTV 등을 이용하면 교육활동이 가능하다는 의사소견서를 받았지만 교육청은 “그 교육활동이라는 것이 본인이 대학원 진학 등의 공부를 의미하는 것 아니냐!”며 끝까지 단어에 집착하면서 복직을 거부할 핑계를 애써 만들기도 했다. 학교와 교육청에서 내내 했던 이야기는 “개인적으로는 도와주고 싶지만 법을 어기면서까지 할 수는 없다.”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때마침 가와이 준이치라는 일본의 시각장애우 일반학교 교사가 쓴 책이 한국에 번역 출판, 홍보차 한국을 방문하면서 ‘왜 시각장애우 교사가 시각장애우 특수학교에서는 교사가 될 수 있어도 일반학교의 교사는 될 수 없는가?’란 당연한 의문이 제기되었고, 교육청은 더 이상의 시비를 걸지 않고 원칙대로 받아들였다.
공주영상정보대학의 이광만교수(시각장애2급)도 마찬가지였다.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점차 시력을 잃어갔지만 이론 수업을 주로 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시각 장애를 갖고도 학교 연구와 교육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타 학교 시각장애를 가진 교수들에 검증된 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측은 “시각장애우가 어떻게 학생들을 가르치겠느냐”며 재임용에서 탈락시켰다. 학교측은 교육공무원법에 장애우가 되면 교사나 교수가 될 수 없음이 명확히 규정되어 있다고 항변했었다.
이 두 사례는 신규채용이 아니라 중도에 장애나 질병을 갖게 될 경우에도 ‘채용신체검사제도’를 적용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글 홍여준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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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기사
선진국 [채용전 건강진단]은 업무적합성 평가를 위해서만 존재
장애인 차별을 금지하는 법을 만드는 데 가장 앞서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미국. 미국은 지난 1990년 ADA법을 제정하여 원칙적으로 채용전 건강검진을 금지하고 있다. 채용자는 원칙적으로 업무를 제공한 후에 업무적합성을 평가하거나 피용자의 건강 프로그램의 일환으로서만 건강검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선채용 후신체검사"가 실시되고 있다. 다만 소방이나 경찰직등 특수직종은 허용하고 있다.
영국은 DDA법(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 있지만, 채용전 건강진단을 금지하는 별도의 규정은 없다. 강원대 예방의학과 성주헌교수는 "원칙적인 채용전 건강검진은 금지되어 있지 않지만 직무관련성 있는 검사는 가능하며, 그 판정 결과는 채용자만 알 수 있다. 또 검진에 대한 파일이 의사에 의해 따로 관리되기 때문에, 직무수행능력이 있음에도 장애라는 이유로 채용이 거부되기란 불가능하다. 개인 프라이버시와 관련 있기 때문에 엄격히 적용되고 있다"고 말한다. 질환을 갖고 있거나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의 알권리와 비밀유지라는 윤리적 측면을 제도화 한 것이다. 전문가가 전문가다운 모습을 위해서는 윤리적 측면이 아무리 강조되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것이다.
독일은 사기업의 경우, 채용전 건강검진을 할 수 없다. 다만, 식료품을 다루는 직종에 대해 전염병력 유무를 조사하는 등 법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만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또 채용자로부터 검진을 위탁받은 의사는, 지원자가 업무에 필수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 이외의 사항에 대해서는 비밀을 지킬 의무가 있다.
관료가 아닌 일반적인 공무종사자의 경우, 그 임명은 각 주의 권한인데, 예컨대 바덴-뷔르텐베르크 주는 관계 관청이 개별적인 사안에 대해서 보건의에 의한 진단이 필요하다는 구체적인 이유를 제시하는 경우, 보건청(LGA)을 통해서 채용전 건강검진을 할 수 있다.
이처럼 선진국의 경우, 장애우에게 가해지는 각종 차별을 금지하고 장애우나 질병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하려는 입법을 하고 있다. 반면, 우리 나라는 채용전 건강검진제도를 실시하면서 직무관련성이 제대로 고려되지 않은 획일적 기준을 적용하여 장애를 가진 사람과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을 선별해내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아직 외국의 이러한 법·제도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글 이석민, 신윤진(서울대 법대 공익법학회 회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협동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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