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마을, 이렇게 잊혀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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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는 이미 잊혀진 일이 되어버린 "양지마을" 사건에 대해 필자가 소속된 단체에서 발행하는 <인권하루소식> 2003년 1월 22일자는 다음과 같은 기사를 싣고 있다.
20일 서울고법 제16민사부(재판장 이흥권)는 충남 연기군에 위치한 부랑인 수용시설 "양지마을" 퇴소자 22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2심 재판에서 “연기군청 공무원이 양지마을 등에 대한 지도·감독을 한 것은 국가의 위임사무를 처리한 것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인 연기군의 사무를 처리한 것”이므로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삶을 앗아간 양지마을>
양지마을(현 금이성마을, 충남 연기군 전동면 소재)의 인권침해 실상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던 것은 1998년 7월이었다.
콘크리트 담으로 세상과 격리된 그 부랑인 시설에서 짧게는 2년, 길게는 15년 넘도록 만기 없는 형벌을 살아야 했던 양지마을 사람들이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도 그때였다. 그 뒤 형사소송에서 양지마을을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 천성원의 이사장 노재중 씨가 3년형을 받은 것을 비롯하여 시설 관련자들이 대거 형사처벌 되었다.
그렇지만 오랜 세월을 수용되어 인간이기를 포기해야 했던 사람들은 세상에 나온 뒤 힘든 세월을 겪어야 했다. 마침 양지마을의 육중한 3중문이 열린 때는 IMF가 터진 때라서 일부의 사람들만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공중전화도 걸 수 없을 정도로 세상과는 격리된 속에서 살았던 이들을 반길 곳은 없었다. 하나 둘 부랑인으로 떠돌다가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고, 더러는 죽기도 했다.
부랑인이 되고, 알코올 중독자로 거리를 헤매다가 죽은 이들의 경우 양지마을이 없었다면 그렇게 비참하게 인생을 거리에서 마감했을까? 사회 밑바닥 인생을 살았지만, 그들에게는 그래도 꿈이 있었고, 소박한 행복을 누릴 가정도 있었지만, 그들이 보낸 지옥 같은 양지마을은 그 모든 것을 빼앗아 갔다. 누군가 그들에게 배상해야 마땅한 상황이었다.
<3년만에 내려진 결론, 25만원>
1999년 7월 양지마을 사건이 난 지 1년이 되었을 때 출소자들 22명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자신의 삶과 가정을 파괴시킨 책임을 노재중 이사장 등 시설 관련자에게 물어야 하나 노재중은 이미 재산을 다 빼돌렸던 상황이고, 사법부에서는 변호인이 신청한 가압류도 수용하지 않았다. 방법은 관리감독·지도의 책임을 국가에 대신 묻는 방법밖에 없었다.
22명의 원고들은 자신들이 강제노역을 당했던 세월을 배상 받고 싶어했다. 자신들이 격리되었던 시간을 계산하여 수천만 원씩의 배상금을 청구했다. 원고들은 형사 책임도 인정된 마당에 당연히 배상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빠르면 6개월만에 재판이 끝나 배상을 받는다면 그 돈을 종자돈 삼아 제2의 인생을 살아보자고 다짐했다. 그들에게는 매우 절실한 돈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원고들의 처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재판은 매우 더디게 진행되었다. 6개월, 아니 1년이면 끝날 것 같던 재판은 3년 가까이 끌다가 2002년 5월에서야 1심 판결이 났다. 결론은 원고의 일부 승소였다. 노역에 비해서 임금의 일부를 받지 못한 점을 인정했고, 국가의 관리감독 책임을 인정했다. 그렇지만 액수 면에서는 실망스런 것이었다. 최하 25만 원에서 최고 3백만 원을 배상하라는 내용이었다. 양지마을 출신 원고들은 재판부에 분노했다. 3년 가까운 세월을 재판 결과에만 목매고 살았던 이들로서는 재기의 의욕을 꺾는 일이었다.
<작업동의서 작성, 강제노역 아니다?>
이렇게 배상금의 액수가 적어진 데는 재판부가 강제노역 부분을 인정하지 않은 때문이었다. 작업동의서를 작성하였기 때문에 자발적인 노동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고, 강제노역을 인정할 근거는 없다는 것이었다. 정말로 한심한 일은 체계적인 폭력구조가 온존하는 사회복지시설의 현실에 대해서 판사들이 너무도 무지하다는 점이었다. 어느 누가 작업동의서를 거부하여 그 엄청난 폭력을 견디려 할까. 어떻게 자신이 죽어나갈지도 모르는 격리 공간에서 징벌방에 가죽 수갑에 꽁꽁 묶여서 몇 일을 고통받아야 할 지도 모르는 일인데 어떻게 작업동의서에 도장 찍지 않을 수 있을까.
<항소심 결과, 국가책임 없다>
그래서 항소를 했다. 그렇지만 다시 1년 6개월을 인내한 끝에 나온 결론은 위에 인정한 대로 1심 재판부가 인정하였던 쥐꼬리만한 배상금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재판부는 또 원고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은 사실로 인정되나, 경찰과 공무원들이 시설수용과정에서의 불법 납치·감금을 알고도 묵인하였거나 비호했다고 인정할 증거는 없다고 밝혀 국가배상책임을 부인했다.”
형사 재판에서 뇌물을 수수한 죄가 인정되어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벌금 152만원을 선고받았던 당시 연기군 사회과 담당 이아무개 직원이 연기군의 군 직원이지 국가 공무원이 아니기 때문에 국가의 업무를 수행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2심 재판부의 주된 논지였다. 즉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는 얘기다. 그는 시설장을 감시하는 위치를 포기하고, “노재중보다 더 했으면 더 했다”는 양지마을 원생들의 증언은 묵살되었다.
이에 대해 담당 변호인인 이덕우 변호사는 “연기군청 공무원이 지방공무원이라고 해도 국가의 업무를 위임받아 업무를 수행한 것이므로 국가업무를 소홀히 하여 원고들에게 손해를 입힌 것으로 봐야 한다”며 “지금까지의 판례를 뒤엎고 재판부가 이를 부인하는 법리를 편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사회복지시설의 관리감독과 지도의 책임은 국가에 있다. 그렇지만 보건복지부장관이 일일이 사회복지시설을 관리하지 못하므로 시·도 지사에게 그 권한을 위임하고 시·도 지사는 다시 시·군·구에 그 관리책임을 넘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지원금과 지자체 지원금이 동시에 사회복지시설에 동시에 배정된다. 이렇게 본다면 보건복지부를 정점으로 하는 국가의 관리체계가 해당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임에도 2심 재판부는 이런 상식적인 판단마저 거스르는 판단을 내렸다.
이번 판결에 대해 원고들은 대법원에 상고했다. 앞으로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집어진다면 고등법원에서 다시 심리를 거쳐서 판결이 나야 한다. 그 시간이 몇 년이 걸릴 지 모르는 일이다. 그 동안 양지마을에서 불법으로 감금되어 강제노역까지 당해야 했던 양지마을 출신자들은 거리를 헤매다 얼마나 죽어갈 지 모를 일이다. 사법부는 이런 현실에는 눈감는다.
<사법부, 인권유린 방조>
사법부의 판단에는 처음부터 문제가 있었다. 형사재판에서는 재판부가 “노 씨가 양지마을 등을 사적인 목적으로 이용해 원생들의 노역비를 착취하고, 비리가 폭로되는 것을 막기 위해 퇴소자들을 강제로 구금하는 등 양지마을을 책임지는 입장에서 모든 범행을 주도하는 한편 각 범행에 대해 최종적인 책임을 가지고 있다”며 검찰의 기소혐의를 전부 인정했다. 그리하여 노재중 씨에게 3년을 선고하는 등 시설 관련자들을 대거 사법처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검찰의 기소단계에서 인권단체들이 어렵게 조사 작업을 벌여 특수감금과 특수강도 혐의, 암매장 의혹, 성폭행 의혹을 밝히고 고발했으나, 검찰은 이 부분에 대해서 기소하지 않았다. 역전에서 납치되어 하루아침에 양지마을에 실려 갔으며, 실제로 그런 납치를 하는 범죄를 시설장의 지시를 받아 수행했다는 증인의 진술이 있었음에도 이는 무시되었다. 다만 비리 문제와 관련한 횡령, 일부 폭행만을 문제삼았다.
사회복지시설의 인권유린과 비리는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비리 있는 곳에 인권유린이 있기 마련이며, 그 비리와 인권유린은 대개 공무원이 시설장과 유착하여 사회복지시설의 관리감독은 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거기에 검찰, 경찰의 잘못된 수사와 판단, 법원의 현실을 무시한 솜방망이 판결이 사회복지시설에서 비리와 인권유린을 방조하고 있다.
이제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려보는 수밖에 없다. 대법원이 하급심의 잘못된 판결을 바로 잡아줄 것인지, 참으로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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