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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LG 장애우복지기금, 운영주체를 둘러싼 장애계 분열

잠자는 40억 기금 놓고 분열된 장애계

본문

LG 복지기금, 1년 6개월간의 파행 논의과정, 무엇을 어떻게 논의했는가

1. 복지부, 정부 주도하의 기금 관리 주장

2002년 7월 9일 보건복지부는 LG 복지기금의 운영주체 및 용도를 놓고 처음으로 복지부 산하 20여 개 단체가 모인 자리에서 공개적인 논의를 시작했다. LG카드사와의 협약서 21조에 의하면, 보건복지부 장관이 기금 운영과 절차를 정하도록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당시 복지부는 복지진흥회로 위탁해 기금을 운용할 것으로 제안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장애우 단체에서는 “정부 주도의 기금운영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대의 입장을 명확히 했다.
그 후 2003년 1월 복지부는 전 차관과 단체장, 전문가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간담회를 개최했는데, 이 때 복지부가 주장한 것이 바로 「신규 재단설립」이었다. 복지부는 기존의 장애우 단체가 독자적으로 기금을 운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며 각계의 인사들로 구성된 독립된 재단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한국장총의 김동범 사무처장은 “복지부는 기금 운영에서의 주도권을 가지려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전에 장애우 단체들과 협의도 하지 않은 채, 전혀 관계없는 전 차관까지 참석시킨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장애우 단체를 들러리로 세우려는 의도였다고 보여진다. 그래서 당시 한국장총의 주신기 회장과 지장협의 장기철 회장이 강하게 반대했다.”고 당시 회의 성격과 분위기를 전했다.

2. ‘기존의 사단법인체 관리’합의에서 ‘복지부’로 위임

그 후 서둘러 1월 29일 한국장총과 장총련은 연대회의를 갖고 복지부의 안에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논의 결과는 기존의 사단법인체가 관리하는 것. 신규 재단이 설립될 경우, 인건비와 운영비 사용으로 기금 낭비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우려에 합의가 된 것이다. 물론 기존의 사단법인체가 어디인가는 확정하지 못했지만 한국장총이 LPG인상에 대한 투쟁을 주도적으로 해왔기 때문에 한국장총이 될 수도 있다는 여지를 보인 회의였다고 참석자들은 전하고 있다.
그로부터 2개월 후인 3월, 복지부는 다시 장애우 단체장과 사무국장까지 포함하는 확대회의를 개최하여 기금의 적극적 활용을 위해 조속히 신규 주체가 세워져야 함을 주장했는데, 이에 장총련은 찬성을, 한국장총은 반대의 입장을 표명했다. 한국장총은 “장총련이 단체간 합의를 파기하고, 갑자기 태도를 바꿔 복지부 의견인 재단설립에‘찬성’표를 던진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를 두고 장애계에서는 “장총련과 복지부 사이에 사전논의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조심스런 목소리도 나왔는데, 장총련 측 관계자는 “장애계에서 합의하지 못하면 복지부에 위임하자고 한국장총과 합의한 바 있다”고 말하며, “위원 중 장애우가 과반수를 차지하고 운영비를 최소화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찬성”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3. 신규재단설립의 쟁점: 장총련, 한국장총 3:3 동수 참여 구조

이에 한국장총은 3월 19일-20일 운영위원회를 개최하여, ‘LG복지기금 대응방안’이란 주제로 워크숍을 갖고 법인설립을 위한 실무위원회를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4월 복지부는 또다시 간담회를 갖고 한국장총 3인, 장총련 3인이 참여하는 신규 재단설립을 요구했고, 장총련만 여기에 합의한 채 한국장총은 또 다시 반대입장을 표명했다. 이유인즉슨, 한국장총은 20여개의 사단법인체가 모여 결성한 조직이지만, 장총련은 4개조직 뿐이기 때문에 다양한 장애영역을 대표하는 조직이 모인 한국장총이 수적으로 더 우세한 입장에 처해져야 한다는 것이 한국장총의 입장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장총련은 끝내 조직의 수가 많다 할지라도 회원의 수로 보아 장총련 또한 장애계를 대표하는 조직이 될 수 있다는 논리를 주장하며 강하게 반발해 결국 이 날 회의도 무산되었다.
한국장총은 5월 초 2차 운영위원회를 통해 신규법인의 설립 경우와 설립하지 않을 경우를 사무처에서 구체적으로 검토, 방안을 마련하기로 합의했지만, 신규 법인 설립에 대부분의 회원단체는 적극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곧바로 있었던 한국장총 회장단 회의에서는 신규재단 설립을 반대하면서 그 전까지 미시행 협의회를 구성할 것을 복지부에 촉구하며, 그 전까지는 복지진흥회에 계정위탁하고 세부 운영은 기금관리위원회를 신설하여 결정하는 안이 논의되었다. 결국 한국장총이 재단설립을 거부하는 이유는 필요성에 동의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장총련과 3:3 동수의 구조에 동의하지 못한 것이라 보아야 한다. 즉 한국장총은 명실공히 다양한 장애영역을 대표하는 단체들이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각각이 대표로서의 자격을 갖고 있다는 것이고, 장총련은 장애우 수를 보았을 때 지체가 가장 많기 때문에 동등한 자격을 갖는다는 입장인 것이다.

4. 재단 설립하되, 동수구조에서 개별단체 참여 구조로 합의

그러나 복지부는 5월 21일 갑자기 ‘법인 설립 의견 회신 요청’공문을 보내, 논의를 충분히 하기보다는 강제적인 밀어부치기를 시도했다. 23일 한국장총은 바로 회신을 보내 “이렇게 과정을 무시하고 ‘찬, 반’만을 다그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장관면담을 요구했다. 관계공무원과 몇몇 단체장의 밀실야합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폭넓은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 한국장총의 주장이었다.
한국장총이 거부의사를 분명히 밝히자, 복지부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9월까지 약 4개월간 시간을 끌었다. 기금을 운영할 수 있는 주체가 정해지지 않으면 기금은 잠잘 수밖에 없고, 결국 장애우와 가족이 그 피해 당사자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9월 25일 복지부는 다시 단체 사무국장들과의 간담회를 통해, 재단설립에 조건부로 협조키로 하고, 복지부는 장총련을 설득하여 3:3 동수 구조를 개별단체 구조로 변경하는 것으로 잠정 결론을 지었다.

5. 복지부, 합의 파기, 장총련 독자적 재단 설립 움직임

그러나 그 후 며칠 뒤인 9월 30일 장총련은 한국장총으로 재단설립계획안까지 첨부해, “신규재단을 설립할 예정이니 설립추진위에 참여해달라”는 공문을 보내왔다. 한국장총은 복지부와 합의한 것이 있기에 중간에서 잘 조정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결국 복지부와 장총련이 재단설립 움직임을 먼저 가시화하면서 추진하기 시작했고, 부랴부랴 한국장총 또한 재단설립 계획안을 복지부에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복지부는 “장총련측에 한국장총이 협조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일방적인 공문을 한국장총에 전달했다. 결론적으로 복지부는 장총련쪽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11월 14일 한국장총은 동수 구성 철회 없이 추진되는 재단설립에 반대한다는 의지를 강하게 표명했다. 그러나 12월 2일 장총련측은 독자적으로 가칭 「한국장애인재단」발기인대회와 이사회를 개최해, 송영욱(한국소아마비협회이사장)을 이사장으로, 이사로는 장기철(한국지체장애인협회장), 김수경(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장), 이익섭(한국DPI회장), 김용준(전헌법재판소장), 이성규(서울시립대교수), 김종인(나사렛대교수) 등을 선임했다. 한국장총이 참여하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에 독자적인 재단설립 추진을 하겠다는 것이다.

6. 한국장총 역시 독자적 재단 설립 추진

이에 급기야 한국장총 또한 서둘러 12월 9일 안국동 안국회관 14층 회의실에서 가칭「한국장애인복지재단」설립을 위한 발기인대회를 개최하였다. 이날 대회에는 한국장총 주신기 회장, 한국장총 박은수 정책위원장, 한국여성장애인연합 이예자 회장, 한국장애인정보화협회 최성중 회장, 인천장애인단체총엽합회 정의성 회장, 경남장애인단체총연합회 최제우 회장, 대전장애인연합회 송권 회장, 녹색미래연대 이정자 공동대표 등 장애계와 시민사회 단체 관계자 20명이 발기인으로 참석했다. 한국장총은 “복지부가 분열되어 있는 장애계를 감싸안고 합리적으로 문제를 풀어가려는 노력보다는 오히려 더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며 일부 장애인 단체만을 포함하는 재단이 아닌 전체 장애인들의 의견이 반영된 재단 설립이 가시화되어야 함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지난 해 12월 17일, 한국장총과 장총련은 서로 LG기금의 효율석 사용을 위해 재단법인을 설립하겠다는 신청서를 복지부에 제출하였다. 장애계의 분열과 갈등이 심심찮게 드러나고 있었지만, 이처럼 한치의 양보도 없는 가운데 서로 명분을 내세워 평행선을 간 적은 드물었다. 아니 이렇게 두 단체가 서로 비판만을 고수하며 긴장상태를 유지하게 되면 매사가 이런 식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는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3자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
 
LG 장애우 복지카드 사용으로 축적된 40여억 원의 기금은 단체의 것이 아니다. 그 카드를 사용하는 장애우와 가족들이 장애우 복지가 향상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애써 갖고 있던 모든 카드를 정지시키면서 모은 희망의 기금이다.
일부 장애계 인사들은 양 단체간의 갈등이야 성숙하지 못한 태생적 한계에서 나온 측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복지부가 투명하고 공정한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장총련은 “일관되게 재단설립 주장을 하며 준비한 것은 바로 장총련”이라며, “반대입장을 표명하다가 1년을 끌어왔는데,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한국장총이 서둘러 재단설립을 추진하는 것은 이미 명분을 잃은 것”이라는 입장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결정하지 못하고 시간을 끌어온 책임은 전적으로 한국장총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장총 고명균 부장은 “한국장총은 다양한 장애영역의 회원단체의 합의로 결정되는 구조인데, 3:3 동수로 참여하는 구조라는 것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원칙이었다”면서, “앞으로 복지부가 이를 고집하지 않고 열린 자세로 다양한 검토를 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언제든 다시 논의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해, 처음부터 주장했던 원칙에서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이제 결정은 복지부의 몫이다. 복지부 전동완 사무관은 접수된 서류를 면밀히 검토해 결정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에서 ‘결정’이라 함은 하나를 버리는 것이다. 장총련측에서는 결정이 자신들이 주장했던 것이 가시적 성과로 나타나지 않을 경우, 물리적 동원을 해서라도 관철시키겠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결정이 복지부가 장애계의 파트너로 한국장총을 생각하는지, 아니면 장총련을 더 우선에 두는지 가늠할 수 있는 예가 될 수도 있다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장애계의 분열이냐 화합이냐가 재단설립의 주체 설정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복지부가 책임져라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 지경까지 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장총련측은 한국장총이 주도권을 주장하며, 재단설립을 반대해오다가 안될 것 같으니까 어거지로 끼어들기를 하면서 생긴 문제라 보고 있다. 한국장총은 받아들일 수 없는 원칙을 전제로 한 재단 설립이었기 때문에, 공론화해서 더 논의하자는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또한 복지부는 신규재단 설립은 원칙이었고 한국장총이 나름의 이유를 들어 반대해 왔는데, 그러면서도 다른 곳에서 하겠다고 하니까 이제는 자기들이 해야겠다고 나서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1년 6개월 이상 전혀 진척된 바 없이 오히려 갈등만 더 증폭된 현 상황에 대해 양 단체와 복지부는 책임을 서로 떠넘기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복지부는 “서류가 접수된 이상 철저한 검토를 통해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을 표명할 뿐이다.

기금운영 주체 설정 문제로 불거진 장애계의 분열, 과연 치유될 수 있을까.
깨끗한 소통과 협력은 신뢰와 애정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낡은 의식을 가진 낡은 인물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장애계에서 가능할 법한 일인가 하는 회의도 만만치 않다.
LG 장애우 복지기금으로 불거진 장애계의 불신과 분열,
그것이 어디서부터 왜 오는 것인지 진지 성찰과 혁신이 필요한 때라는 점을 장애계는 곰곰히 되짚어봐야 한다. 왜냐면, 장애계에 산적한 과제는 비단 LG 장애우 복지기금 문제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글·사진 홍여준민기자

 

 

작성자홍여준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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