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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장차법을 제정하자 (13)- 권고 100%수용에 대한 놀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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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를 준비하는 도중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간하는 월간 「인권」이라는 잡지를 통해 “권고를 말한다”라는 기획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때마침 공청회 의 주제가 “차별 시정을 위한 실효성 있는 권리구제수단”이었기 때문에 ‘권고’에 대한 기사가 눈에 확 들어 올 수밖에 없었다. 그 중에서도 나의 눈길을 잡은 것은 “~차별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도 18건 가운데 14건이 수용되었고, 3건이 검토 중에 있다. 차별과 관련해서 수용되지 않은 권고는 아직까지 없다”는 부분이었다.

그렇다면 “권고를 수용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혹시나 필자가 편파적인 입장을 가진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 때문에 여러 명의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다. 차별 사건에 대하여 권고가 수용되었다는 것이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는지를.

질문을 받은 사람 100%가 한결같이 대답을 한다. 사건이 해결되어 차별이 해소된 것으로 들린다고 말이다.
지금까지 국가인권위원회 제1호 진정사건인 ‘제천시 보건소장 임용에 있어서의 장애인차별’과 관련하여 행정소송과 민사소송을 어렵사리 진행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부디 국가인권위원회가 보다 객관적인 자료를 토대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몇 자 적어 보도록 한다.

장애 차별과 관련한 권고의 실제 이행 상황

차별과 관련한 사안 중에서 장애와 관련하여 개선을 요구한 권고는 ‘제천시 보건소장 임용탈락’과 ‘운전면허발급시 장애우차별’에 대한 사건으로 총 두 건에 불과하다.

그 중 제천시 사건은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장애차별’임을 인정받았지만, 피해자를 위한 실질적인 권리구제조치를 내리지 않는 바람에 별도의 행정소송 및 민사소송이 진행되고 있으며, 피진정인인 제천시는 아직까지도 장애차별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또 하나 운전면허와 관련된 사건은 장애우 운전면허 발급시 개인별 특성 및 보조장치 사용 등에 의한 운동능력 보완가능성을 반영하도록 관련 규정을 개선하도록 권고하였으나, 피진정인인 경찰청은 4개월이 넘도록 단지 연구 중이라는 이유로 관련 시행규칙을 개정하지 않아 현재 피해자들이 별도의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태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위와 같은 상황임에도 차별과 관련한 권고가 전부 수용되었다는 의미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먼저 국가인권위원회 담당관을 통해 확인한 사실은 권고 수용이라는 것은 대상기관이 차별을 위한 적극적 조치를 취한 것 뿐 아니라 어떠한 이의제기도 하지 않은 것을 의미하며, 권고 내용이 수개일 경우에는 일부만을 수용했어도 이를 수용으로 분류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국가인권위원회법상 위원회가 내린 권고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다. 실제 제천시 장애인차별 사건에서도 피진정인이 이의신청을 하였으나, 위원회는 “국가인권위원회법 제44조에 근거한 시정 또는 개선 권고는 이의신청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회신한 바도 있다(문서번호 차별일 07000-46). 이에 따르면 향후 위원회가 내리는 권고에 대하여는 100% 수용이 예정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차별시정을 위한 어떠한 조치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가해자가 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아야 하는가.

또한 제천시가 일부 수용하였다고 하는 권고의 내용을 살펴보면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적 제도와 정책이 있는지를 조사하여 이를 시정하고, 신체적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행위를 하지 않을 것을 권고한다.”는 부분이다. 이러한 추상적인 권고만으로 과연 차별시정을 담보해 낼 수 있을 것인가.

이미 헌법 및 장애인복지법상에 명문으로 규정되어 있는 차별금지조항을 확인하는 데에 불과한 권고가 도대체 어떠한 실효성을 갖게 된다는 것인가. 더군다나 진정 사안에서의 차별 사실은 인정조차 하지 않는 상황임에도 피진정인이 권고를 일부 수용했다고 보는 것은 자화자찬의 한도를 넘어서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차별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먼저 차별이라는 것은 대부분 그 차별상태가 지속되기 때문에 그 원인이 제거되거나 실제 적극적인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피해자는 차별상태를 그대로 감내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차별 진정에 있어서는 적극적인 시정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차별행위는 본질적으로 매우 은밀하게, 주로 가해자의 내심 영역에서 관철되는 것이기 때문에 가해자가 이를 부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자신의 차별행위를 인정하고 이를 자발적으로 시정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더군다나 가해자가 차별행위를 계속 부인할 경우에는 피해자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결정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비용과 시간을 들여 별도의 구제수단을 마련해야 한다.

과연 이러한 차별의 특성에 비추어 보았을 때 시정권고만으로 차별시정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필자는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모임을 통해 상담 사례 등을 접하면서, 현재의 시정권고로서는 차별시정이 어렵다고 판단, 특히 차별영역에 있어서는 강제력 있는 ‘시정명령권’의 제한적인 도입을 주장해 왔다.

가해자에게 구체적인 의무부과를 함으로써 이를 강제함과 아울러 구체적인 차별금지에 대한 적법성까지 부여하고, 위원회의 명령에 대하여 가해자가 다투게 함으로써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점 등을 이유로 했던 것이다.

결코 권고 자체로 끝나서는 안된다

물론 필자가 국가인권위원회의 시정권고가 전적으로 무기력하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구체적 사안에 대하여 국가인권위원회가 ‘차별’이라는 것을 선언할 때에 사회에 미치는 교육적, 예방적 효과를 생각한다면, 권고의 효과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위원회가 보다 융통성 있고 신속한 구제를 통해 차별해소 및 인권보장을 도모하고자 한다면, 권고의 한계에 대하여도 정확히 짚어내고 이에 대한 개선점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실제 권고가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차별이 시정되지 않는다면, 위원회는 법개정을 통해서라도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별도의 수단을 마련해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권고의 이행상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수집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작성자안선영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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