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한 인간집단의 성인은 우월한 인간집단의 아동과 같다? > 기획 연재


기획 연재

열등한 인간집단의 성인은 우월한 인간집단의 아동과 같다?

정신지체장애우 뒤집어보기(3)

본문

 지난 호에서 우리는 인간의 지적 능력을 서열화하는 대표적인 방법론으로서 19세기 초엽 서구에서 유행하였던 두개측정법과 이 ‘과학적’ 접근이 복무했던 인종차별과 제국주의의 정당화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인간의 지능을 수치화하는 IQ라는 개념이 탄생되기 이전 두개측정법이 두개측정학으로 발전되고 마침내는 학문적으로 폐기되어가는 과정과 인간 서열화의 작업이 뇌에 대한 측정에서 인간의 몸 자체로 그 대상이 확대되어가는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

사실 인간 서열화에 대한 논의에서 19세기 전반부와 후반부는 매우 중요한 차이를 보입니다. 다윈의 역작 “종의 기원”이 1859년에 발표되면서 진화론은 인류를 포함한 생물의 기원과 발달 그리고 진화에 관한 한 여타의 담론들을 모두 휩쓸어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진화론과 더불어 19세기 후반 과학자들 사이에는 측정과 수치화에 대한 열광적인 유행이 있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측정하고 그것을 수치화 할 수 있다는 매혹에 빠진 것이죠. 현대 통계학의 선구자라 일컫는 프란시스 갈톤 같은 경우 심지어 따분함이나 기도의 효율성을 양적으로 수치화 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였다고 하니 측정과 숫자에 대한 확신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몸의 차이로 서열을 매기다

진화론이라는 통일된 관점과 통계라는 발전된 수치화 방법론을 가지고 이제 두개측정법은 두개측정학으로 업그레이드되고, 보다 세밀하고 정교한 과학적 접근을 통해 인간가치의 서열화 작업을 진행시킵니다. 이 작업의 최정점에 서있던 사람은 세계 최초의 인류학 학회인 파리 인류학회를 창립하고, 또 브로카 영역이라고 불리는 뇌의 언어중추영역을 발견한 것으로도 유명한 폴 브로카라는 프랑스의 의대교수였습니다.

 이 사람은 뇌의 용량을 측정했던 그 이전의 모든 방법들을 세밀히 고찰하고 마침내는 납 탄환을 이용한 가장 객관적인 방법을 개발해냅니다. 그리고 지적인 능력이라는 단일한 척도 위에 인간의 여러 종들을 서열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줄 ‘의미있는’ 인간의 다른 특징들을 찾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팔꿈치 아래뼈와 윗뼈 길이의 반경을 측정하여 그 둘 간의 비율을 내기도 했는데, 높은 비율이 바로 유인원의 특징인 긴 팔을 표시한다는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 두개측정학에 의해 오용되었던 대표적인 측정방법은 뇌 지표라고 불리던 뇌의 폭과 길이에 대한 비율이었습니다. 이 비율 즉, 뇌 지표가 높을수록 두개골은 더 긴 모양을 갖게 되는데 이것을 진화의 척도로 보았던 것이지요. 그러나 위에 예를 든 팔꿈치 위아래 뼈들 간의 반경비율이나 뇌 지표의 연구들은 모두 예상치 않은 결과를 낳게 됩니다. 팔뼈 반경비율의 경우 황인종인 에스키모의 비율이 백인에 비해 더 낮다거나, 혹은 뇌 지표의 경우 아프리카 흑인들의 뇌 지표가 높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인류의 조상으로 여겨지는 화석 속의 크로마뇽인의 뇌 지표가 현대 프랑스인들보다 더 높은 결과를 보였던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석학이라고 공인되던 유명인사들 가운데 작은 뇌가 있다거나 아니면 (열등한) 범죄자들 중에 큰 뇌를 가진 경우들이 드러났고,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뇌의 크기에 있어서 (열등한) 황인종들이 가장 큰 뇌를 가지고 있다는 연구결과들이 나오면서 두개측정학은 뇌의 크기를 통해 인간의 가치를 서열화할 수 있다는 그 기본가정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됩니다. 폴 브로카 자신도 나중에는 뇌의 크기가 지적인 능력의 핵심준거라는 생각을 거의 포기하기에 이르게 되지요. 

이처럼 서구의 19세기 후반이 두개측정법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두개측정학의 상승과 몰락을 극적으로 보여준다면, 새로운 거대담론으로 자리잡게 된 진화론으로부터 직접 파생되어 인간차별과 서열화의 논리를 충실히 제공하게 되는 또 다른 두 가지의 이론이 같은 시기에 유행합니다. 그 하나는 생물반복설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범죄 인류학입니다.

성인 정신지체장애우는 아이가 아니다

일곱 살 아이의 지능을 가진 어른 - 이 표현은 얼마 전에 개봉되었던 영화 ‘I am Sam(아이 엠 샘)’에서 정신지체장애우인 아빠를 규정하는 말이었습니다. 이 규정은 영화 속에서 딸의 양육권을 둘러싼 모든 논란의 원인이 되는 핵심개념이었죠. 뜬금없이 왠 영화이야기냐고요? 이 영화에서처럼 성인 정신지체장애우와 아이를 동일시하는 말들이 스스럼없이 오고가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보게 되는데, 역사적으로 그리고 ‘과학적’으로 이런 편견의 논리적 근거를 마련해주었던 것이 바로 생물반복설입니다.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반복한다.”중·고등학교 시절 생물시간에 배웠던 이 문구가 기억나실 지 모르겠네요. 간단히 말해서 개개의 생물은 덜 진화된 이전의 어른단계를 빠르게 거쳐서 성장한다는 것인데요, 예를 들어 인간이 임신초기의 태아시기에 보이는 아가미구멍 같은 것은 그 옛날의 물고기 시절을 나타내는 것이고, 또 꼬리뼈의 흔적도 파충류나 포유류 선조의 단계를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서열화 적용에 이용당한 논리 1.  생물반복설

그러나 이 생물반복설이 인간 집단간의 서열화에 적용되었을 때 이것은 열등한 인간집단의 성인이 우월한 인간집단의 어린애와 같을 수밖에 없다는 논리로 둔갑하게 됩니다. ‘일곱 살 같은 어른’의 ‘과학적’ 근거가 여기에 있는 것이죠. 공식적으로 “천치”라는 준 학문적인 명칭을 가졌던 정신지체장애우는 말할 것도 없고 만일 성인 흑인이나 여성이 백인 남자아이와 같다면 이들은 진화에 있어서 백인남성의 선조 단계에 머물러있는 살아있는 화석인 셈입니다. 결국 두개측정학이 뇌의 크기를 통해 인간차별의 논리적 근거를 마련했다면 생물반복설은 몸 그 자체를 대상으로 인간의 서열화를 기획했습니다.

실제로 과학자들은 성인 흑인의 뇌와 7개월 된 백인 남자 아이의 뇌를 비교하기도 하고, 혹은 여성의 높은 자살율을 들어 여성이 보다 원시적인 진화의 단계에 머물러있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생물반복설은 유형성숙이라는 이론이 제기되면서 20세기 초에 이르러 무너지기 시작하는데 유형성숙 이론은 “어린 시절에 더 오래 머물러있는 것이 우월한 발달을 일으킨다”는 생물반복설에 정확히 대칭이 되는 주장이었습니다.

서열화 적용에 이용당한 논리 2. 범죄인류학

생물반복설과 함께 19세기 후반을 풍미하던 또 다른 인간 서열화 이론은 범죄 인류학으로부터 나왔습니다. 롬브로소라는 이태리 의사에 의해 주창된 이 이론은 열등한 인간집단은 동물과 마찬가지로 범죄성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으로, 그는 유인원과 같은 열등성의 증후로서 두꺼운 두개골, 긴 팔, 일찍 생기는 주름살, 좁은 이마, 큰 귀 등 수많은 신체특성들을 열거하면서, 인간의 모든 범죄행동이 이러한 열등성에 기인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후에는 인간의 범죄성을 드러내는 가장 뚜렷한 표시로서 간질을 지목하며, 모든 범죄자들이 크던 작던 간에 어느 정도 간질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보호와 감시의 대상, 정신지체장애우

열등한 인간집단과 범죄와의 논리적 연계는 20세기 전반에 ‘꽃 피운’ 우생학 운동으로 이어져 정신장애우들과 유태인을 상대로 한 히틀러 식 인종청소 작업에서 그 절정을 이루게됩니다. 사실 20세기 초 ‘정신지체’비롯한 정신장애우들을 시설에 가두어 ‘보호’하고 ‘교육’하기 시작한 서구의 사회적 배경에는 이들 ‘열등한’ 인간집단이 가진 태생적인 범죄성향과 도덕적 퇴락으로부터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는 의식이 깔려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신지체’를 곧 범죄성향으로 바라보았던 100여 년 전의 편견은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의 사회에서 얼마나 극복된 모습일까요? 정신지체장애우를 바라보는 비장애우들의 눈동자에서 거짓의 이론을 쓸어내고 두려움 없이 그들을 바로 볼 그날은 과연 언제쯤 올까요?

다음 호에서는 두개측정학의 논리적 기반이 무너진 후 지능검사와 IQ라는 개념이 어떤 역사적 배경 속에서 영향력을 획득하게 되는지 그 과정을 본격적으로 다루어 보겠습니다.

작성자김치훈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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