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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고 비관으로 일가족 4명 음독자살", "수업료 못내는 학생 급증", "중국동포 거리에서 얼어죽어" 등 빈곤으로 인한 생계형 자살과 사건 소식이 연일 신문지상을 오르내리고 있다.
지난 해 생활고나 빚에 내몰려 자살을 선택한 사람은 하루 평균 3명꼴. 경찰청에 따르면 2000년에는 생활고, 사업 실패에 따른 자살이 786건이었지만, 2001년 844건, 2002년 968건 등 해마다 큰 폭으로 늘고 있으며, 2003년 7월까지만 해도 이미 408명이 목숨을 끊었다. 또한 경기침체의 장기화로 수업료를 내지 못한 학생들도 예년에 비해 5.7배로 크게 늘어나고 있다. 서울시가 집계한 고교수업료 미납자 현황을 보면, 서울시내 고교에서 수업료를 내지 못한 학생은 2001년 3405명, 2002년 3347명, 2003년 11월까지 1만9161명으로 크게 증가하고 있다. 게다가 정부가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는 노숙자만도 4200여명에 이른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빈곤"이 심화되고 있는 요인에는 불안정한 노동시장과 사회보장 체계의 허술함이 자리하고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더 이상 가난한 사람들의 바람막이가 되어주지 못한 현실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게다가 장기적인 경기침체 속에서 대부분의 서민들은 실업 혹은 불안정한 고용상태가 지속되면서 먹고사는 것만으로도 빚을 지게 되고, 여차해서 보증을 잘못 섰거나 환자가 생겨 큰돈을 끌어다 쓰면, 막대한 채무를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런 생계형 채무는 또 다른 빚을 낳게 되고, 악순환을 끊고 싶은 유혹은 이들을 죽음 외 다른 것을 선택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고 있다. 또한 빈곤의 대물림은 아이들이 학교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장기간 수업료를 내지 못하는 학생들은 자퇴하거나 퇴학처리가 되다보니 결국 빈곤이 아이들의 교육기회를 박탈하고 있는 셈이다. 안정적인 교육기회의 박탈은 이들을 또다시 불안정한 노동시장으로 이끌고 있다.
그럼에도 보건복지부는 올해 최저생계비로 지난 해 최저생계비 35만6천여원에서 단지 1만원 가량 인상한 36만8223원으로 발표했다. 또한 사회복지예산은 지난 해 11조1300억원에서 9.2%가 증가한 12조1600억여원에 불과하다. 게다가 저소득층 학비지원금은 2001년 745억에서 2002년 688억원, 2003년 484억원으로 오히려 점점 감소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러한 숫자상의 통계는 그냥 숫자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빈곤은 내 이웃의 생명을 빼앗아가고, 삶의 터전과 교육받을 기회를 박탈한다. 일을 할 수 없게 하고, 주위 사람들과 관계맺기까지 차단시킨다. 빈곤은 단지 가난하다는 것을 넘어 노동권, 교육권, 건강권, 주거권 등 기본적 권리를 박탈하고 사회에 참여할 권리까지 배제시킨다. 따라서 빈곤은 분명한 인권침해이고 인간의 존엄성을 부정한다. 2년 전 겨울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주장하며 노상농성을 전개하다 참담한 외면 끝에 결국 자살로써 생을 마감한 최옥란 씨의 죽음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지금도 최옥란 씨처럼 우리를 향해 고단한 삶을 증거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카드 빚에 몰려 생의 막다른 골목에 있는 사람들, 교실에서 쫓겨난 아이들, 지하보도 한 칸에서 신문지 한 장으로 잠을 청하는 노숙자들 등등.... 이들 삶의 한 가운데로부터 "사회적 연대"가 이루어져야 한다.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외침에 귀 기울이고, 권리확보를 위한 운동에 함께 나서는 일, 새해 긴 빈곤의 터널에서 우리가 빠져 나오기 위해 이루어야할 사회적 연대의 주요 과제이다.
최은아(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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