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3]UN 장애인 권리협약 제정을 위한 국제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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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회의전경 |
UN장애인권리협약을 제정하기 위한 제2차 특별위원회가 2003. 6. 16 - 6. 27일까지 미국 뉴욕 소재 UN 본부에서 개최되었다. 이 회의에는 UN 회원국 정부 대표 320명, 장애우 NGO 대표 및 국가인권위원회 대표 200여명 등이 참여하여 국제 장애인권리협약 제정을 위한 주요 내용을 토의하고 참가국간의 의견을 조율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부 대표 4명, 장애우단체 대표 4명, 국가인권위원회 대표 3명 등이 참석하여 한국의 장애우가 처한 입장을 설명하고 국제적인 동향을 파악하며 국가간의 협의에 활발히 참여하였다. 이번 특별위원회는 한국에서의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움직임과 맥을 같이 하여 정부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보건복지부와 인권위원회, 외교통상부에서 파견된 정부 대표와 장애우 NGO 대표들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향후 상호 협력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국제회의에 장애우 단체 대표 중 한 명으로 참석한 나사렛 대학교 조성열 재활학부장의 기고문을 싣는다.
<협약의 배경>
장애인권리협약을 위한 제안서를 제출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UN 장애우의 10년 (Decade of Disabled Persons) 중간 해인 1987년에 장애우에 관한 세계행동계획(World Programme of Action concerning Disabled Persons)을 검토하기 위한 세계전문가 회의에서 UN 총회가 장애우에 관한 모든 종류의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특별 회의를 주최하도록 요청한 바 있다. 협약 초안의 내용은 Italy가 기초하였고, 뒤이은 UN 총회에서 Sweden이 이와 유사한 제안을 하였다. 그러나 위의 두 경우 UN 회원국들간에 동의를 얻지 못하였다. 각국 정부 대표단의 견해는 기존의 인권 관련 UN협약이 장애우에게도 다른 소외계층과 같은 보호를 제공할 수 있으며, 따라서 장애우를 위한 특별 협약이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몇몇 전문가들은 1993년에 UN 총회에서 채택한 장애우 기회균등에 관한 표준규칙 (Standard Rules on the Equalization of Opportunities for Persons with Disabilities)이 임의규정이므로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이에 대한 강제규정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표준규칙 하에서 국가는 이 규칙에 포함된 내용을 실천할 의무가 없었다. 표준규칙은 또한 "권위 있는 규정이나 방향"을 의미하는 규칙으로서 의미도 지니지 못하였으며, 하나의 안내서(guidelines)에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표준규칙은 많은 국가에서 장애우에 관한 정책결정이나 활동시행의 근거를 제공하였다.
기존의 인권협약들이 장애우를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는 것이 사실인가? 물론, 그렇다. 그렇다면 왜 UN 회원국들이 이주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특별 협약을 체결하였으며 난민과 여성, 아동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특정 협약들을 체결하였는가? 그것은 소외집단들 각각이 그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특정 규정과 감시체제의 필요성이 인정되었기 때문에 이들 특정 협약들이 제정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UN이 장애우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특별 협약을 제정하지 않는다면, 실제적으로 장애우들을 차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왜 장애우의 권리에 관한 협약이 필요한가에 대한 충분한 답변 이유가 된다. 그러나 이외에 다른 급박한 이유들도 있다. 비록 기존의 권리협약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지만 UN의 가장 중요한 위원회 중의 하나인 경제, 사회, 문화권 위원회(Committee 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에서는 거의 10년 전에 각국 정부들이 기존의 권리협약을 어떻게 준수하는가를 조사한 보고서에서 UN 회원국들이 장애우들에게 거의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 않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지적하였다. 동 위원회의 명시적인 결론은 "장애우의 권리는 특수하게 고안된 것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법률과 정책, 프로그램에 의하여 보호되고 증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장애우협약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가장 확실한 이유는 전 세계를 통하여 매일 장애우들이 그들의 권리를 광범위하게 침해당하고 있다는 충격적이면서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침해에는 영양결핍, 강제적 불임, 성적 착취, 교육 및 취업 기회의 제한, 공공서비스에 대한 접근성 제한, 시설수용, 투표권 박탈 등이 포함된다.
주요 쟁점의 변화과정
1. 협약의 이념적 토대에 대한 쟁점
1) 차별금지 모델 (Discrimination Model) : 유럽 지지
장애우에 관한 차별의 종류와 유형을 선별하여 그것을 방지하는데 중점을 둔다. 이 모형은 장애우에 대한 재활서비스와 프로그램이 어느 정도 갖추어진 선진국 중심의 접근법이다.
2) 총체적인 모델 (Holistic Model) : 뉴질랜드와 북미 지지
선언적 의미에서의 차별철폐가 아닌 실질적인 해결을 통하여 기회평등을 실현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3) 사회개발 모델 (Social Development Model ) : 개발도상국 지지
인권적 접근을 기초로 하되, UN 회원국 각국의 경제발전수준을 고려하여 자원의 부담이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협약을 체결하되 사회보장정책을 보완해 간다.
이번 국제회의는 이러한 협약의 이념적 모델을 토대로 UN 회원국 각국이 처한 상황에 따라 논의가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2. 협약 제정과정에 대한 쟁점
1) 멕시코안 : 멕시코는 2년 전부터 논의를 거쳐서 협약의 초안까지 준비했는데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으며, 이 초안을 가지고 이번 2차 특별위원회에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자고 주장하였다. 대다수 남미와 아프리카 국가들이 이 안을 지지하였으나, 전세계적으로 보편적인 지지를 끌어내지는 못하였다.
2) 유럽안 : 합리적인 절차와 과정을 통해 나온 결과만이 UN 회원국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으며, 합리성과 효율성, 재정적 부담을 고려한 전문가 그룹의 실무단(Working Group)을 구성하여 본격적인 초안작성에 들어가자고 제안하였다. 유럽안에서는 각 대륙별로 5명씩 25명의 정부 대표와 장애우 NGO 대표 8명으로 구성된 실무단(Working Group)을 구성하자는 안을 제시하였다.
이에 대해서 각국 정부는 유럽안을 지지하고 NGO들은 멕시코안을 지지하는 입장을 취하였고 이에 따른 논쟁이 시작되었다.
3) 뉴질랜드안 : 멕시코안과 유럽안에 대하여 뉴질랜드에서 보다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절충안을 제시하여 쟁점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주요 내용은 유럽안에서 각 대륙별 5명씩 25명의 국가정부 대표와 NGO 8명으로 구성된 실무단(Working Group)을 구성하는 안을 내 놓았는데, 여기에 NGO들이 7개의 국제장애우단체의 대표와 5개 대륙의 각 1명씩 5명의 지역대표들을 인정하여 12명으로 구성해 줄 것을 요구하여 정부대표 25명과 NGO 대표 12명으로 실무단을 구성하는 안이 마지막 날 본 회의에서 채택되었다.
3. 대표권에 대한 쟁점
1) UN 회원국 정부 대표 : 아시아, 유럽, 미주, 중동, 아프리카 등 대륙별로 5명씩 대표를 뽑자고 제시한 균등한 배분은 아프리카나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타 지역에 비해 국가 숫자가 훨씬 많으므로 대륙별 숫자를 감안해 비율을 정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결국 아시아 7, 아프리카 7, 중남미 5, 서유럽 5, 동유럽 3의 대표를 포함하여 전세계 각 지역을 균등하게 대표하여 27개 정부 대표를 구성하는 것으로 결론을 맺었다.
2) 장애인 NGO 대표 : 회의가 열린 2주 동안 현장에서 활동한 장애인 단체들의 국제연대 활동을 존중하여 국제장애연대(International Disability Alliance, IDA)를 중심으로 7개의 영역별 국제장애인단체에 각각 1개의 대표권을 부여하고, 나머지는 5대륙에서 지역별로 1명씩 지명하여 12명을 선출하도록 합의하였다.
3) 국가인권위원회 대표 : 국가인권위원회에서 3명 정도의 대표 자리를 요구하였지만 회원국 정부 대표단과 장애인 NGO 대표들의 거부로 성사되지 못하였으며, 별도의 독자적인 영역이 확보되지 않는 한 이번 UN장애인권리협약 제정을 위한 실무단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참가할 확률은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의가 국내 장애계에 주는 의미>
1.장애우운동 관련 국제적 쟁점 및 동향에 대한 파악
이번 UN 장애우권리협약 제정을 위한 제2차 회의에 한국 장애우 NGO 대표 중 일원으로 참가하면서 그동안 우리나라가 장애우권리운동과 관련된 국제적 동향과 쟁점에 대하여 정부나 NGO 단체들이 모두 너무 무관심하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2002년에 열렸던 제1차 회의 때에도 우리나라에서 준비해야 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이 있었지만, 그러한 준비가 이번 회의를 대비해서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장애우운동과 관련된 국제적 쟁점 및 동향 파악에 대한 우리의 준비부족 탓으로 돌리고 싶다. 장애우재활 및 복지와 관련해서는 한국이 아시아권에서 일본과 함께 가장 앞서 감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보고와 홍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국제관계에서의 발언권이 국가적 위상과 직접 관련되는 추세인 만큼 장애우관련 회의 때에도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일 수 있도록 더욱 세심한 준비가 있어야 할 것이다.
2.정부의 적극적 역할 수행
2002년 7월에 열렸던 장애우권리협약 제정을 위한 제1차 회의 때 우리나라에서는 정부 대표단도 파견하지 않았을 정도로 이번 장애우권리운동과 관련된 UN 회의에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러한 정부의 관심부족은 금년 6월초에 같은 주제를 가지고 열렸던 UN ESCAP 방콕회의에 장애우 NGO 대표들은 10여 명이나 참석했는데도 불구하고 정부측에서는 아무도 참여하지 않음으로 결과적으로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앞으로 정부에서 장애우 NGO들이 제공하는 장애우 관련 정보에 관심을 기울이고 또한 그와 관련하여 개최되는 국제 회의에 적극 참여하여 그동안 국내에서 쌓아온 장애우복지 관련 프로그램과 사업을 적극적으로 국제사회에 알리고 장애우권리운동과 관련해서도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책임 있는 국가로 당당히 활동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 협약제정 과정에 있어서 여러 가지 의견을 종합하여 최종 초안을 만들어 내는 역할을 담당할 실무단에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뜻을 밝히고 있어 우리 정부의 역할이 주목된다.
3.장애우 NGO 단체들의 철저한 준비
이번 UN 회의와 관련하여 국제 장애우 NGO들은 활발하게 움직여 정책결정에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한 반면, 우리나라 장애우 NGO 대표들은 나름대로의 대책과 입장을 미리 준비하지 못하여 회의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일본 DPI만 하더라도 이미 이번 회의와 관련하여 일본 장애우 NGO측 입장을 정리하여 배부하였으며 태국이나 홍콩도 자기 나라의 입장을 준비하여 참가자들에게 제공하였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정부에서 국가 입장을 발표한 것 외에 NGO 나름대로의 입장 표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앞으로 8월에 여성장애우 관련 국제회의가 열리고, 11월에 아시아태평양 지역 정부와 NGO들이 참여하는 UN ESCAP 회의가 북경에서 열릴 예정인데, 이 두 회의를 대비한다는 의미에서 참가할 한국 대표들을 미리 선정하여 우리나라의 회의 전략을 수립하고 발표할 내용을 토의하기 위하여 워크샵을 개최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라 생각된다. 이를 위하여 정부와 장애우 NGO 단체들이 협력하여 사업을 추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4.정부와 장애우 NGO 단체들의 협력
이번 UN 회의와 관련하여 우리나라에서는 보건복지부와 국가인권위원회, 두 기관에서 우리나라의 국가 입장을 제시하는 문서 (position paper)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두 문서 모두 우리나라 장애우 전체의 문제를 담아내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었다. 회의에 참가한 장애우 NGO 대표들이 여러 차례 발표내용에 대한 정부 대표와 NGO 대표들간의 사전 토의를 요청했지만 정부 대표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 결과 다른 참가국들로부터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 우리나라 위상을 저해시키는 효과를 가져 왔다. 장애우 문제에 관한 한 장애우 "당사자주의"가 세계적인 추세이며 실제적으로 정부 대표들보다 NGO 대표들이 더욱 전문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에서 NGO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것은 이번 회의를 참가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아쉬움 중 하나이다. 다행히 회의 마지막에 가서 정부에서도 NGO와의 협력 필요성을 느끼는 것 같아 조금은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국제회의에 가서는 정부와 NGO를 떠나서 "무엇이 국가이익과 위상제고에 가장 도움이 될 것인가" 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며, 정부나 NGO가 대립되는 양상을 보여서는 안될 것이다.
글 사진: 조성열 교수 (RI KOREA 대표, 나사렛대학교 재활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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