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그 삶의 현장을 찾아서] "샬롬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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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그삶의 현장을 찾아서
"샬롬의 집"
촛불처럼 사는 12식구 아픔나누며 "평안의 집" 가꿔
두 촛불의 일생은 고귀하고 아름답다. 어두워진 / 세상을 환희 밝혀주며 자신의 몸이 작아지기까지 / 불어오는 바람에 꺼질 듯 꺼질 듯 사라지지 않는 / 작은 촛불! 하나님을 위해 까까 내리는 아픔 속에도 / 남을 위해서라면 아낌없는 촛불의 일생! / 주님 또한 남을 위하여 빛이 되어 오셨다. 물과 피를 / 흘리시며 희생의 제물로 되시고 온 세상의 모든 죄를 / 사하시며 빛이 되었고 낮아지기를 더하시며 / 몸을 녹여서 꺼져 가는 순간까지 남을 사랑한단 / 말도 못하고 몸 하나로 서서 녹아 주저앉기까지 / 쓰러지지 못하는 가벼운 촛불 주님도 하찮은 / 인간들을 위하여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가시며 / 그 험한 길로 걸어가신 주님의 사랑의 빛! / 주님의 희생과 촛불의 사랑의 빛은 / 비교할 수 없는 수수께끼의 비밀.
위의 글은 학교라고는 문턱에도 가지 못했던 지체 장애우 원상옥(29세)씨가 불굴의 의지로 한글을 익히면서 써오기 시작한 수많은 시 가운데 한편이다. 철자도 많이 틀리고 글씨도 똑바로 쓰지 못해 남 앞에 내놓기를 꺼려했지만 실은 자신의 속마음을 내보이기가 더욱 부끄러웠고, 과연 시라는 것이 자신을 일으켜 세워줄 수 있는 힘이 있을까라는 자괴감 때문에 불 더미 속에 던져버릴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시들.
그러나 이제는 그녀도 수북히 숨겨 두었던 그 때묻은 원고지들을 남들에게 내보일 수 있게 되었다. 시는 그녀에게 있어 어머니이자 친구였고 그녀만이 꿈꿀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이었다. 그리고 그녀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고 희망이라는 것을 이제 스스로도 부인할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샬롬의 집 가족들과 절대자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녀는 계속 시를 쓰며 자신을 녹여 어두워진 세상을 환희 밝혀주는 촛불의 일생을 묵묵히 따르려하고 있다.
이 촛불처럼 묵묵히 살아가는 이들이 있는 샬롬의 집은 노원구 공릉 1동에 있는 아담한 양옥집이다. "샬롬의 집"이라는 이름에서 느낄수 있듯이 그곳은 서로의 아픔을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평안의 집"이다.
샬롬의 집은 87년 5월에 개원하여 지금은 열두 식구가 산다. 원장 식재익(59)씨, 부인 이순자(53)씨, 그리고 제일 연장자인 조천수(6)씨, 엄기원(39)씨, 전갑진(36)씨, 언어와 지체장애를 가진 김정자(30)씨, 원상옥씨, 하반신 지체 장애우 김명묵(29)씨, 그리고 약시 김주미(29)씨와 언어장애와 정신지체 장애를 가진 막내 양현정(22)씨 등이다. 이들은 서로에게 힘을 주면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샬롬의 원장 심잭익씨는 교회 건축업에 종사하고 있다가 83년경 한쪽눈에 망막염을 앓았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 계속 건축 일을 무리하게 하다가 눈에 핏줄이 터져 수술을 했다. 하지만 별 차도 없이 점점 악화되어 다른 한쪽 눈마저 완전히 실명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루아침에 닥쳐온 시련 속에서 그는 미국에라도 가서 재수술을 받아 보자는 가족들의 권유를 뿌리치고 점점 삶을 포기해 갔다. 몇 번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어느 목사님과 함께 20일 동안 기도원에 들어가 금식기도를 드리고 난 후 새 삶을 찾았다. 그는 기도를 드리면서 "너와 같은 자를 위해 살아라"는 주의 음성을 듣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는 기도원에서 내려와 곧바로 장애우들과 함께 살아가는 집을 여는 일에 몰두했다. 부인 이순자씨는 처음에는 너무 어처구니없고 황당한 일이라서 그 일에 적극적으로 반대를 했다고 한다.
"갑자기 장애우 공동체 집을 열겠다는 남편의 이야기를 듣고 너무 황당했어요. 그동안 큰 일이 없이 잘 살아왔기 때문에 남편 일 하나 조차도 힘든 상황이었는데 도대체 장애우들과 어떻게 함께 살겠다는 건인지 이해가 안됐어요"
그런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심재익씨는 지하실 방 한 칸을 얻어 나가 장애우들과 함께 생활하기 시작했다. 이순자씨는 남편의 갑작스러운 실명으로 생활이 극히 어려워진 상황이라 장사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고, 여기에다 남편의 분가에 따른 혼란과 갈등 속에서 많은 시련을 겪었다고 한다. 그래도 남편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가장 많이 헤아리고 있는 그녀는 결국 남편의 뜻을 따라 샬롬의 집에 들어와 엄마 자리를 채워 주었다.
"남편은 옛날에는 세상을 자신의 지식과 고집, 아집으로만 살아왔는데 두 눈을 실명하고 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세상을 살아가겠다고 했어요. 교회를 짓는 일도 그래요. 다른 사람들은 시각장애우가 어떻게 건축일 을 하느냐고 하는데 남편은 영의 눈으로 모든 것을 보게 되었다며 더욱 정성을 다해 성스러운 교회를 지어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했어요"부인 이순자씨는 담담하게 말했다.
심재익씨는 다행히 본인은 비록 두 눈을 잃었지만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으면서 제대로 수술을 받지 못해 실명을 당하는 안타까운 사람들을 찾아 수술을 받게 하여 세 명이나 눈을 뜨게 도와주었다고 한다.
"우리 식구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모두 밝아 보이지요. 하지만 자라면서 남들보다 더 큰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죠.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고아, 계모 밑에서 괄시받고 자란사람, 버려져 오갈데 없는 노인들, 이 사람의 아픔을 어떻게 다 설명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다 일일이 헤아릴수 있겠어요?"
샬롬의 집 식구들에게는 온전치 못한 육체보다 더 큰 고통의 생채기들이 가슴속에 묻혀있다. 녹슨 못을 가슴에 박고 가파른 골짜기를 넘어야할 긴 삶의 여정, 그 속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쳤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식구는 매일 방송국에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또 어떤 식구는 스스로의 목숨을 끊으려 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혼자가 아닌 부모와 자식으로, 형제 자매로 한 가족이 된 사람들, 식구들은 머리를 맞대며 환한 눈빛을 나눈다.
사회에서 버려진(?) 이들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 역시도 버림받은 자들이란 역설적 진리 앞에 샬롬의 집 식구들은 서로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있는 듯이 보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눈이 되고 발이 되어 주고있었다.
샬롬의 집에는 이삼 십대의 젊은 식구들이 반이 넘는다. 그래서 더 집이 꽉 차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심 원장 부부는 식구들이 각자의 삶이 있으니 새 가정을 꾸미고 새 길을 찾아 주어야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말로는 시집 안 간다고 하면서 얼굴이 붉어지는 여자식구들을 보면 더욱 그런 마음이 든다고 한다. 왜냐하면 지금은 그런 대로 살아 갈 수 있지만 장래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식구들은 오죽이나 답답할까>
식구들의 결혼문제와 관련하여 이순자씨가 지나가듯 하는 이야기는 귀를 솔깃하게 만들었다.
"우리집에는 노쳐녀들이 많아요. 정자, 주미, 명숙이 상옥이 모두 다 시집 보내야 하는데 큰일이에요. 같은 또래들이라 그런지 항상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아직 소녀티가 물씬나는 이쁜이들이죠. 맨날 모여서 라디오 듣고 편지만 써요.(웃음) 무슨 편지냐 구요. 교도소의 재소자들에게 쓰는 편지죠. 그녀들의 유일한 낙이기도 해요. 힘들게 또박또박 써서 보낸 그들의 편지가 재소자들에게는 큰 위안이 되고 있는 듯해요. 답장도 많이 오고, 또 출소 후에 찾아오는 이들도 있을 정도이니까요"
편지 좀 보여달라고 졸라대는 통에 한 아가씨가 못이기는 척 두툼한 서류철을 내놓는다. 재소자들이 답장으로 보내온 편지들을 파일에 하나씩 정성스럽게 꽃아두고 있었다. 많은 분량의 답장들을 보면서 흐뭇해하는 식구들의 얼굴은 미소가 가득하다.
샬롬의 집 식구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사이에 두 명의 자원봉사자가 찾아왔다. 어린 중학생들이 방 청소를 하는 모습이 참 대견스러워 보이긴 했지만 끝나고 나서 도장을 받아가는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학교 교육 제도가 바뀌어 봉사 활동에 많은 점수를 준다고 하는데 조금 염려스러운 면도 없잖아 보였다. 심원장 역시 자원봉사자뿐 아니라 장애우들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 전체의 잘못된 시각에 대해 질타했다.
"정말 고마운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형식적으로, 위선적으로 장애우들에게 선의를 베푸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 사람들 때문에 우리 장애우들이 얼마나 많은 상처받는지 몰라요. 장애우들이 열심히 살아보려 하다가 오히려 이용만 당하고 빼앗기고 짓밟히고 있어요. 우리집 식구들만 해도 하루에 한끼먹지 않고 그 비용으로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있어요. 정말 육체적인 고통 속에서도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게 상처주고 가슴에 피멍이 들게 하는 양심도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흥분을 하다가 심 원장은 머쓱한 듯 "92년에 은행 융자를 받아 샬롬의 집을 마련했는데, 조금만 더 갚으면 이제 확실한 우리의 집이 된다"라고 묻지 않은 말을 하며 만족해했다. 다만 집이 아직 수리를 마치지 못해 식구들이 휄체어를 타고 다닐수가 없어 고생을 하고있다고, 그리고 가끔 집에 들어오고 싶어하는 장애우들을 다 받아 줄수가 없어 안타깝다고 심원장은 덧붙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하나님의 인도로 살아왔듯이 앞으로도 가족들과 그렇게 기도하며 살아갈 것이라며 심원장 부부는 얘기를 마친다.
샬롬의 집 식구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석계역을 향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매번 공동체 취재를 하면서 든 생각이기도 하다. 그들도 우리 이웃들이다.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 벗들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이런 평범한 진실에 너무 무감각하다. 마치 자신의 몸을 태우면서 이 세상에 밝은 빛을 선물하는 촛불을 알지 못하듯, 그렇게 살아가는 이들을. 샬롬의 집이 평안을 상징하듯, 진정 "샬롬의 세상"이 되는 길은, 저 샬롬의 가족들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이웃이다 는 평범한 진리가 말 그대로 평범한 진리로 받아들여지는 세상이 되는 길에 있지는 않을까 라는 바람을 가져본다. 샬롬!
전경애 /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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