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이라크 반전평화팀 유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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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장애우 시설 지원활동 나선 반전평화팀
유은하씨와의 인터뷰-
전쟁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공포와 좌절감에 빠져 허우적댄다. 그렇다면 더 어려운 처지에 놓인 시설 장애우들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식사와 생리적 현상까지도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중증의 장애우들이 살고 있는 수용시설은 온전할 수 있을까?
한국 반전평화팀의 일원으로 사람들이 눈 돌리지 않는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 활동한 유은하(29세)씨를 통해 전쟁이 불편한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우리가 할 수 있는 나눔의 실천이란 무엇인지 그이의 제안을 들어보자.
〈밥줄 사람도 없이 방치된 시설의 장애우〉
“4월초 문득 고아원에 가고 싶었어요. 평화활동가라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움직이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외국의 IPT(아이피티 Iraq Peace Team)활동가들 몇몇이 그런 곳을 찾아 방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죠. 처음엔 Missionaries of Charity(미셔너리 오브 채리티)라는 장애 아동 시설을 방문했는데, 그곳은 마더 테레사 수녀님 쪽에서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외국인의 관심과 지원이 어느 정도 있었어요. 일단 정상을 되찾아가고 있다는 판단이 생기니까 다른 고아원 시설이 자꾸 마음에 쓰이더라구요”
특별히 장애우 문제에 관심이 있거나 자원활동에 대한 경험을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이는 마음이 원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알 다르 하난」(자비의 집 혹은 돌봄의 집)이란 중증장애우 시설을 찾아갔다.
“역시나 상황은 매우 열악했어요. 정부에서 운영하는 그 시설은 정신지체, 뇌성마비, 지체장애 등 다양한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지내는 곳이었는데 약 90여명 정도가 있었지만 전쟁이 나자 부모들이 데려가기도 해서 45명의 사람들만이 남아있었죠. 그런데 직원은 5명밖에 없는 거예요. 모든 것이 멈춰버린 상황이고 사람들의 식사제공 또한 어려울 지경이었습니다”
그 후 유은하씨가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당장의 일도 급하지만 지속적인 운영을 위해 직원들이 하루 빨리 복귀해야 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월급을 지급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보내준 후원금이 남아 있던 터라 그녀는 자비를 털기로 했다. 아주 작은 상처도 치료하지 못하고 꼼짝없이 누워있는 바람에 심한 욕창에 걸려 있는 사람 등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는 중증장애우의 시선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반전평화팀, 장애우시설을 운영하다〉
이라크의 한 달 임금은 약 4-6달러. 물가상승을 고려해 7달러(17500디나르)를 기준으로 지급하기 시작했고 소문을 듣고 직원들과 취업을 원하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유은하씨는 본의 아니게 2달간 직원 급여를 지급하는 운영자(?)가 되어 버렸다.
장애우 수용시설은 가족이 없는 중증장애우와 형편상 함께 살기 어려운 가정의 중증장애우들이 입소한다. 오랜 독재시기를 거쳤기 때문에 이라크의 시스템은 가능한 국가가 모든 것을 통제하는 시스템이었다. 때문에 건물 등 하드웨어는 잘 갖춰져 있는 듯이 보였지만 어떤 프로그램도 별도로 마련되어 있지 않으며 직원은 의사 2인, 간호사 2인, 물리치료사 5인, 사회복지사 3인 등 50여명으로 구색을 갖추기는 했어도 90여명의 장애우의 일상을 구체적으로 돌보는 사람은 6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전했다.
“직원들의 태도를 보고 놀랐습니다. 그들에게 사회복지(welfare)라는 개념은 전혀 없었으며, 자기에게 주어진 일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어요. 일손도 모자라고 다급한 상황이었지만 그냥 책상에 앉아 아픈 사람이 오기만을 기다리거나 접촉을 피하는 등 장애우들을 방치하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아무 데나 널부러져 있거나 자기 맘대로 뛰쳐나가 상처가 나도 그들에게 눈을 돌리는 직원은 없었어요. 가져간 사탕과 과자를 일하시는 부인에게 나눠 드리게 했더니 그냥 돌아다니면서 사탕을 던져주는 수준이어서 무척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반전평화팀은 제일 먼저 식사나 목욕서비스 활동 등을 하면서 몸으로 보여줬다. 이를 본 닥터 이만은 “여러분들이 오기 전에 이곳은 정말 야만의 상태였습니다.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들을 동물로 취급해서, 가둬놓고 먹이를 주는 식으로 대했죠. 여러분은 그들에게 인간적으로 접근한 첫 번째 사람들입니다. 나는 그 동안 여러분들이 하는 일을 지켜보았고, 바로 내가 이라크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은 일이 바로 그것이라는 것을 찾아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돌아가게 되면 예전의 상태로 돌아갈까봐 그게 걱정입니다”라며 새로운 마음으로 의지를 곧추세우고 있지만 아무 것도 준비되지 않은 현실의 막막함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매니저라는 사람이 다시 돌아왔지만 후원물품을 뒤로 빼돌리고 차량을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등 파행운영을 하고 있었는데 반전평화팀은 아무 말도 어떤 조치도 취할 입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안타까웠지만 그들의 문제는 그들이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 때문이었다. 이제 그들이 깨달았다면 실천적 활동은 그들의 몫이며 ‘평화의 문제, 구호의 문제’에 대해 친구로서 도움을 줄 준비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반전평화팀의 결론이었다.
〈지속적 관계 절실〉
정치적 의미의 ‘평화’가 아니라 사람들이 보여줬던 맑은 웃음이 긴장의 연속이었던 5개월을 버티게 해 준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하는 유은하씨. 비록 여러 가지 여건이 좋지 않아 반전평화팀은 공식적으로 해산했지만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 준비하고 있다.
“혹, 장애우 특수교육 관련해서 장기간(6-12개월) 사역하실 분이 계실까요? 이라크 국민들의 역할이라 해도 적절한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다행히, 지난 4월부터 「다르 알 하난」을 지원하기 위한 123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앞으로 한 7-8개월 정도는 매달 300불 정도를 살람(반전평화팀과 함께 했던 분)이 만든 엔지오 Iraqi Peace Team 지원을 하기로 했단다. 그를 위해 교회 쪽을 중심으로 장기지원을 위한 재정 마련 계획도 갖고 있는데, 그 보다 필요한 것은 인력이라고 한다. 특히 시각장애우 학교 「Al Nur School」의 경우 복구에 필요한 재정뿐 아니라 교육자재 등의 공급을 위해서는 한국의 시각장애우단체와의 자매결연이 절실하단다. (이라크에서 필요한 것. 박스 기사 참조)
전쟁에서의‘살아남기’란 ‘나’를 중심으로 사고하고 행동하게 만들어 인간의 이기심이 어느 정도까지인지를 실험하는 장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보다 인간의 가치를 드높일 수 있는 내면의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는 기회의 장이기도 하다.
지난 8월 23일 있었던 반전평화팀 활동보고회에서 최혁 팀장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지금도 죽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죽을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힘겹게 이어갔었다. 그래서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다음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 유은하씨(purehand@yahoo.co.kr)가 제안한 내용이다.
글·사진 홍여준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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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책임질 수 있는 단체가 파송 해 줬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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