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여라 꿈동산은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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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도대체 인간의 지적인 능력을 점수화해서 서열을 매길 수 있고 그 서열에 따라 인간의 삶이 결정된다는 생각은 누가 어떻게 시작한 거야?”
지난 호에서 저는 인간의 지적 능력의 서열화가 어떤 의도로 시작되고 진행되었으며 또 정신지체를 규정하는 IQ라는 개념이 어떤 역사적, 정치적 맥락을 통해 오늘날과 같은 막강한 영향력을 갖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려는 것이 이 연재물의 의도라고 밝혔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IQ라는 개념이 창안되기 전 19세기 서구에서 과학의 이름 아래 진행되었던 인간 서열화 작업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우열과 열등을 가르는 기준 "뇌의 크기"
생물학적 결정론자들에 의해 시도되었던 이 과학적 작업은 두개측정법이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뇌의 크기를 재는 것이지요. 뇌의 크기를 측정한다는 발상은 사실 매우 자연스럽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지적 능력이 뇌에 위치하는 것만큼은 분명한 것 같은데 오늘날과 같은 “첨단” 심리측정 도구들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어떻게든 인간집단간의 우월성과 열등성을 규명하려는 의지에 불탔던 과학자들에게 가장 손쉽고도 분명해 보이는 방법은 바로 뇌의 크기를 재서 비교해보는 것이 아니었겠습니까?
물론 19세기 서구에서 뇌의 크기를 재는 방법만이 시도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 이전에 주로 쓰였던 방법은 두개골의 모양을 그려서 진화의 척도를 가늠하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침팬지와 흑인 그리고 백인의 두개골 모양을 비교해서 진화가 보다 진화된 백인의 우월성을 명백히 “입증”하였던 것이지요.
이런 방법이 얼마나 비과학적이냐고요? 실은 그렇게 속단할 문제가 아닙니다. 얼마 전 추석연휴 때 MBC에서 방영된 한 추석특집 프로그램을 기억하실 지 모르겠습니다. 누가 더 똑똑한지 과학영재 두 명과 서울대학교 재학생들을 대결시킨 프로 말입니다. 거기서 영재를 연구하신다는 어느 대학교수님이 과학영재들의 머리모양이 일반사람들과 이렇게 저렇게 다르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듣고 저는 머리 모양과 지적 능력의 관련성이 두 세기를 뛰어넘어 21세기에도 여전히 사람들의 “과학적”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습니다.
또 21세기의 주변에서는 아직도 흑인을 원숭이에 비유하는 말들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데, 19세기 제국주의 시대가 노예인력의 원활한 수급을 위해 “광분하던” 때였음을 감안한다면 두개골의 모양을 비교해서 내놓은 흑인이 거의 원숭이에 가깝다는 “과학적” 연구결과는 그 당시에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확인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리고 두개골의 모양 비교에 이어 뇌의 크기를 재는 방법이 제안됨으로써 이제 인종간의 우월성과 열등성은 의심할 바 없는 과학적 사실로 굳어지게 됩니다.
지적능력=뇌의 크기 ∴백인〉황인〉흑인(?)
19세기 과학자들은 어떤 방식으로 뇌의 크기를 쟀을까요? 두개측정법의 대가로서 추앙 받았던 미국의 과학자 겸 의사인 사무엘 조지 모턴(Samuel George Morton)은 천여 개의 두개골을 수집하여 뇌의 크기를 측정했는데 이를 위해 그가 처음에 사용했던 것은 겨자씨였습니다. 작은 겨자씨를 두개골에 가득 채운다음 그것을 실린더에 부어서 그 부피를 측정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후에 이 겨자씨로는 부피에 대한 일관성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중에는 직경 0.125 인치의 납으로 된 탄환을 쓰게 됩니다.
모턴은 세 편의 연구논문을 통해 아메리카 인디언과 흑인 그리고 백인 뇌의 평균 크기를 발표합니다. 그 연구결과는 우리 모두가 예상하듯이 백인의 뇌가 가장 크고, 그 다음은 황인종인 아메리카 인디언 그리고 가장 작은 것은 흑인들이었습니다. 물론 이 세 인종의 뇌 크기 사이에는 뚜렷한 격차가 있었지요.
앞서 논의했던 두개골 모양의 비교연구와 마찬가지로 뇌 크기 비교연구 또한 그 당시 과학자들 자신이 의식했든 의식하지 못했던 간에 인간의 지적 능력에 대한 과학적 탐구라는 명목 하에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와 노예제도를 정당화하는 더 없이 유용한 논리적 무기로 쓰였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는 사실입니다.
백인의 우월성 주장을 위한 거짓 과학
그런데 만일 인종간의 뇌 크기 비교연구가 모턴의 발표처럼 사실이라면 우리는 뇌의 크기가 인종의 우월성과 열등성을 입증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여야 할까요? 답은 “아니오”입니다. 왜냐하면 간단히 말해서 뇌의 크기와 인종의 우월성은 결코 인과관계가 성립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요즘 흔히 입에 오르내리는 ‘문화적 상대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인종의 우월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객관적인 변인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단순히 뇌의 크기만을 가지고 따진다면 아마 인간의 뇌보다 수배나 큰 뇌를 가진 코끼리의 지적 능력이 훨씬 우수하다고 말해야 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뇌 크기를 측정하면서는 뇌 크기가 큰 부족의 두개골은 아주 적은 수만 포함시킨다거나 혹은 흑인의 경우 뇌의 크기가 작은 여자들의 두개골을 훨씬 많이 포함시킨다거나 (일반적으로 여성의 뇌는 남성에 비해 크기가 작습니다) 아니면 백인들의 경우 뇌 크기가 작은 종족들을 적게 포함시키는 등 표본의 편향성이 너무 뚜렷했던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편향성을 모두 없애고 나서 모턴이 수집한 두개골에 대한 통계를 다시 돌리게 되면 인종간의 뇌 크기 차이는 사라지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모턴과 같은 과학자들이 노예제도의 왕국이라 할 수 있는 그 당시의 미국 남부지방에서 생각만큼 열렬한 호응을 받은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들의 연구가 흑인의 열등성 입증을 통해 노예제도를 확실히 정당화할 수 있는 과학적인 근거를 마련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호응을 받지 못했던 이유는 인류의 발생 기원에 대한 기본적인 입장 차이가 아주 켰기 때문이었습니다. 독실한 기독교적인 전통이 수립되어 있는 남부지역에서는 성경에 쓰여진 대로 인류가 아담으로부터 시작되었고 현재의 다양한 인종은 에덴동산의 “완전한 환경”에서 쫓겨나 각 인종이 (주로 기후에 의해) 다르게 퇴보한 결과라고 보는 시각이 강했던 반면 (이를 ‘인류의 단일발생설’이라고 합니다), 모턴류의 과학자들은 현재의 다양한 인종들이 서로 다른 생물학적 종이고 (이를 ‘인류의 다원발생설’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흑인과 같은 열등한 인종을 동등한 인간으로 동참시킬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그리고 사람에 따라 노예제도에 대한 찬성과 반대의 목소리가 분명했었는지는 모르지만 흑인의 열등성과 백인의 우월성을 부정하는 인물은 당시의 미국 백인사회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노무현대통령이 존경한다는 링컨조차 인종차별주의라는 당시의 시대정신(?)에 예외적 존재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백인종과 흑인종 사이에는 신체상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차이로 인해 사회적, 정치적 평등이라는 견지에서 이 두 인종이 함께 생활한다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하다고 나는 믿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평등하게는) 살 수 없으므로 이 두 인종이 함께 남아있는 한은 우월한 지위와 열등한 지위가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만큼이나 나 자신도(우리 백인종이) 백인종에 할당된 우월한 지위를 갖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링컨을 전국적인 유명인사로 탄생시킨 1858년 상원의원선거 토론회에서의 발언 가운데)
미국의 독립선언서에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고...”라는 문구를 기억하는 분들이 있을 줄 압니다. 우리에겐 인간의 기본권리를 요약한 명문으로 알려져 있지요. 하지만 이 선언서를 기초한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을 비롯한 미국의 건국인사들에게는 그 “모든 사람”속에 유색인종과 여성 그리고 아동이 애당초 계산에 없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써놓고 보니 이번 호의 글은 정신지체와는 다소 거리가 먼 이야기들로 채워졌습니다. 왠지 미국사회의 역사적 그늘만을 지나치게 부각해서 그린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러나 이것이 오직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이해하실 줄로 믿습니다. 그것이 인종이든 성이든 아니면 장애든 모든 차별의 바탕에는 차별의 사회적인 구조를 유지하고 재생산해내는 논리적인 근거들이 항상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하겠습니다.
다음 호에서는 오늘 다루었던 두개측정술이 어떻게 두개측정학으로 발전되어 가는지 뇌의 브로카(Broca) 영역으로 유명한 폴 브로카(Paul Broca)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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