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4]UN 장애인 인권협약 마련을 위한 아시아의 만남
본문
우리를 움츠리게 했던 SARS의 공포가 있었지만 아태지역 장애우의 목소리를 구체화하기 위한 UNESCAP 회의가 예정대로 방콕(6월 2-4일)에서 열렸다. 한국의 민간단체들이 참가해 논의했던 내용들과 앞으로의 과제들을 나누고자 한다.

▲방콕회의-장애인인권협약
<회의전: SARS(사스), 우리를 막을 순 없다>
지난 6월2일부터 4일까지 2박 3일간 열렸던 방콕회의는 추후 UN 장애인 인권협약(안)을 만들기 위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의 사전 모임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아태지역 장애우의 권리와 존엄성을 증진하고 보호하기 위한 다각적 분석과 대안을 모색하는 이번 방콕회의는 SARS로 인해 취소될 가능성이 있었다. 왜냐하면 지난 4월 중국 베이징에서 장애인인권협약 관련 지역회의를 개최하려 했지만, UNESCAP의 권고와 각 국가들이 회의적 반응으로 인해 무기한 연기된 것이다. 게다가 아태지역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싱가포르는 불참의사를 밝혀왔을 뿐만 아니라, 홍콩, 대만, 중국은 여행기피 지역이라 참석하지 못했다. 태국 보건부 역시 사스 감염지역으로부터 참석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15일간 검역소에 격리시킬 수 있음을 알려오는 등 SARS로 인해 전체 상황이 매우 좋지 않게 돌아갔다. 당연히 우리 입장에서는 회의 준비를 하면서도 주변 환경을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회의 시작 임박해서 일부 주변국의 긍정적 의사를 확인하고, RI KOREA 김형식 의장과 함께 참석을 결정했다.
참, 여담이지만 나는 방콕으로 가는 비행기안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발견했었다. 다름 아닌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집어든 뉴스위크지(5.26-6.2일자) 기사 내용이었다. 지금 중국(상하이)에서는 "심한 감기에 걸린 이웃을 신고한 사람(rat)에게 돈을 나누어주고 있다"라는 소제목이었다. 왜 rat이라는 표현을 썼을까. 이것은 우리말로 "쥐새끼"하고 하면 적절한 표현일 것 같은데, 일종의 배신자, 파업에 딴짓 하는 노동자 등을 지칭하는 말로도 쓰이기 때문이다. 인권이 보편적 가치라고 하지만, 그 인권을 무참히 밟을 수 있는 환경과 법적 기제는 얼마든지 존재하고 있으며, 또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여전히 일반 시민들의 삶이 제약될 수 있는 환경이 존재할진대, 아직 장애우에 대한 편견조차 사라지지 않은 현실 속에서 장애우의 인권을 지켜내고 보호하는 길은 고난의 행군일 수밖에 없음을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도착해서>
도착한 저녁부터 바쁜 일정이 시작되었다. 제2차 아태장애인 10년(2003-2012)의 선포와 함께 민간기구 차원에서 결성한 APDF(Asia and Pacific Disability Forum)의 구체적 활동목표와 조직 구성을 위한 임시회의였다. 그동안 메일이나 서신으로 주고받던 실제 인물들을 직접 만나볼 수 있었던 자리였다. 특히 우리와 긴밀한연대를 맺고 있는 일본 재활협회나 아태지역국제회의를 주관하는 UNESCAP 사무국 직원들을 만나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으로도 나의 1차 목표는 달성한 것이라 볼 수 있었다. 장시간 여행과 처음 접하는 환경이라 정신이 없었다. 긴장을 유지한 채 사람들 얼굴 하나하나와 오고가는 말에 집중해야 했다.
<첫째날>
UNESCAP에서 주관하는 "아태지역 장애우의 권리와 존엄성을 증진하고 보호하기 위한 UN 장애인 인권협약(안)의 구체화를 위한 세미나"(회의 공식 명칭이 너무 길어 보통 아태지역 장애인인권협약을 위한 방콕회의: 이하 방콕회의라 하겠다)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회의가 열리기 전 온라인을 통해 각국의 의견과 발표문들을 미리 게재할 수 있었다. 대략 20개국 100여명이 참석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아태 지역 전체로 보나 회의의 중요성을 고려해보면 저조한 규모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 장애계의 국제활동의 역할을 생각해보면 우리측에서의 참가 규모와 범위는 획기적인 전환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전반적인 국제활동에 있어 한국장애인재활협회와 협회에서 주관하는 RI KOREA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지만, 이번 회의는 DPI와 직업재활시설에서도 함께 참가했다. 그만큼 방콕회의가 장애우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와 이를 구체적으로 제정하고 실현하기 위한 아태 지역의 공통된 의견을 교환한다는 의미가 크게 다가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랬다. 회의 공식 명칭과 마지막 날 합의문이 말해주듯 그동안 아태 지역 4억의 장애우들은 수많은 구조적, 환경적 그리고 개인적 요인들로 인해 사회, 경제, 문화, 정치적 삶으로부터 소외받아 왔음을 공감하고 이에 대한 실질적인 차여와 주체로 서기를 갈망했다.
한편 인동에서는 국가인권윈원회의 장애분과에서 주제발표를 준비하고 활발한 의견을 제기한 반면, 우리 정부는 어떠한 준비도 없었다. 그나마 우리의 상황과 의견을 개진할 수 있었던 것은 미리 준비해 간 RI KOREA 김형식 의장의 국가 보고서였다. 20개국이 준비를 했지만 주제발표와 의사진행 시간이 늦어지는 관계로 후반부 일부 국가 보고서는 취소되기까지 했다. 국제사회에서 한 국가의 목소리를 내는 것도 냉정한 현실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이 날 회의가 끝난 후 우리 참가자들 모두는 방콕회의와 전체일정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회의 둘째날>
실질적인 토론이 있는 날이었다. 이 날 참가자들은 세 그룹으로 나누었는데, 전 날 주제발표자들과 관련 전문가들이 회의를 이끌고 UNESCAP 사무국 직원들이 정리해 나갔다. 아무래도 중요한 토론은 협약(안)의 구체적 구조와 내용을 담보하는 제1그룹에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제2그룹에서는 권리에 기반을 두고 접근을 주제로 한 사회통합, 편의시설 접근 등이 중점적으로 다루어졌고, 제3그룹은 권리증진을 위한 국가 및 제도적 강화전략 및 정책 등을 다루었다.
나는 제3그룹에서 오전 동안 참여했는데 어떠한 의견을 나누고 주도하기에는 그 역량이 너무 부족함을 느꼈다. 언어적 문제도 있었지만 토론을 위한 사전준비나 한국측 민간단체간의 내용에 대한 합의가 일정정도 정리되었다면 더욱 자신감 있게 토론에 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태 지역 국가 수준과 비례해서 우리 활동가들의 국제적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그 근본 과제가 무엇인지를 부여받게 되었다.
사실 이 날 나에게는 또 하나의 목적이 있었다. 내가 국제 업무에 관여하면서 개인적 소망을 갖고 준비하고 싶은 일이기도 했다. 바로 신장 투석을 받는 장애우들이 해외 여행을 할 수 있도록 근본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해외에서도 신장투석을 할 수 있는지, 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비용은 얼마인지 등. 왜냐하면 지금까지 내가 만났던 사람들은 이러한 물음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국 백두산 여행 때도 그랬고, 영국에 첫발을 내딛을 때도 나는 마음의 각고를 단단히 해야 했다. 이번에도 그랬다. 며칠이야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지만, 이왕 나선 김에 내가 직접 체험해보기로 했다. 마침 UNESCAP 건물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그리 어렵지 않게 등록할 수 있었다. 앞으로 UNESCAP 회의에 갈 때마다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회의 셋째날>
지금가지 토론되었던 내용들을 정리하고 문서화하는 시간이었다. 정리된 내용들을 발표하면서 의견을 수렴하는 동안 한편에서는 기초위원회 구성을 통해 방콕 합의문과 권고안 작업에 들어갔다. 참가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은 역시 장애, 차별, 평등 등 용어의 구체성을 중심으로 협약안이 담보하는 질적 내용들이었다. 또한 수사학적 표현에 불과한 조문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역시 강제할 수 있는 법적 기제와 감시체제 등이었다. 사실 이러한 내용들은 국내적으로도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과도 밀접하게 관련된 것이기에 너무나 중요한 사안들이었다. 그런 만큼 회의시간도 길어졌고 합의문과 권고안은 UN 장애관련 특별위원회에서 다른 지역의 권고안과 함께 논의되어질 것이다.
따라서 이 회의와 권고안의 가장 큰 의미를 둔다면, 그동안 국제 장애인단체들(RI, DPI IDA)등이 개별적으로 선언적 목소리를 내던 상황에서, 이 권고안으로 말미암아 정부와 민간단체, 장애우들이 지역적, 국가적, 개별적 입장을 떠나 공통된 의견에 합의하고 구체화시켰다는 것에 가장 큰 의의를 둘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는 우리 나라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무엇을 담아내고 어떻게 구체화 시켜야 하는지를 국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 깊은 의미가 있다. 바로 이러한 의미와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에 그 만 큼 우리에게 던져주는 과제 또한 그리 간단치가 않다.
사실, 방콕 권고안 그 자체만으로는 아태 지역뿐 아니라 우리에게 미칠 영향이나 의미는 크게 다가오지 않을 수 있다. 국제 사회 권고안이 나름대로 구속력은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그냥 권고안일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이번 회의를 통해 어떻게 그 힘을 집중해서 전개해 가느냐하는 것이 보다 중요할 것이다.
<우선>
국내외 장애우단체와 당사자들의 참여(Participation)와 연대(Solidarity), 그리고 운동(Movement)을 전개해 나가는 과정에서 그 역량을 강화해 나가고, 한편으로는 정부를 움직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일반 대중뿐 아니라 장애우들에게 인식을 확산시켜 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유엔이 독립적인 장애인인권협약을 만들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하고, 이러한 국제적 흐름을 우리의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과도 연결시키는 것이다. 두 흐름은 매우 상보적이고 유기체적 관계인데, 인권협약이 최고 수준의 이념을 내포한 총론이라면,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이를 실질적으로 구체화하고, 법적 구속력을 담보할 수 있는 각론이기 때문이다.
<둘째>
장애우 인권에 대한 국내외적 현실을 인식하고, 장애우 인권운동의 중요성을 또 한번 각인시켰다는 것이다. 현재 국제적으로 "장애인 인권협약"의 제정이 하나의 대세라고 하지만, UN이나 기존 장차법이 있는 국가들은 인권협약을 제정하는 문제에 있어서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다. 굳이 또 하나의 법을 만들 필요를 못 느낀다는 것이다. 또한 제 3 세계를 중심으로 하는 이른바 저개발 국가의 상황은, 막상 협약이 만들어진다 하더라도 개별적 국가 역량에 따라 이를 흡수하고 실행하는데 있어 큰 차이가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문제는 우리도 장담하기 아직 이른 상황이다. 세계 인권 선언이나 아동권리 조약을 만들어 놓고도 여전히 그러한 문제 속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를 지켜내고 담보하는 길은 법적 장치를 위해 적극적 참여 속에 운동으로 풀어가야 하지 않을까.
<셋째>
이러한 흐름 속에서 우리의 역량 강화와 연대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는 것이다. 이번 회의는 UNESCAP이 저개발 국가들에게 비용을 충당해주면서 국제사회로 견인하고 활동가들의 역할을 강화시키는 측면이 있었다. 사실 국제회의 참가하는 것 그 자체는 예산의 문제로 귀결된다. 저개발 국가에 비해 우리의 경제적 수준은 상당하지만 막상 단체나 개인의 역량으로 돌아가면 여전히 역부족임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국제 사회로부터 지원받을수 있는 것은 이미 과거의 일이 되었다. 우리가 이러한 문제를 스스로 모색하고 풀어가지 않으면 국제연대는 일회성에 불과하고 만다. 결국 이러한 지점에서 개별적 활동보다는 장애 단체간 공동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는 국제연대를 필요로 하는 국내 단체들을 위해서라도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제는 참여와 국제지원이다. 아직 우리의 수준과 역량이 미흡한 것은 사실이지만, 국제 사회에서 우리는 더 이상 견인과 지원대상이 아닌 것도 묵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만큼 아태지역의 많은 장애우와 활동가들이 우리에게 거는 기대가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저개발 국가 중심의 활동가들은 우리의 장애우 관련 직접 서비스 시스템을 궁금해 했고, 지원받을 수 있는 부분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국제 사회의 참여와 주도가 단순히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우리의 역할들을 국내외적으로 찾아야만 하는 때가 온 것이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이번 회의의 중요성만큼이나 개인적으로 배운 경험 또한 자못 크다. 앞으로 산적한 국내의 현실과 환경 속에서 국제연대를 강화해 나가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장애계의 영역도 국제적 흐름에 관심 갖고 참여해야 하는 당위성이 점점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 당위성이란 기존의 권리 협약의 바탕위에 독립적인 장애인 인권협약을 제정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바로 우리가 참여하고 있으며, 분출의 시간을 갖고 있는 것이다.
글. 사진 /조성민(한국 장애인 재활협회 국제협력과)
일주일에 한번 혈액 투석을 받고 있다. 노동 운동에 관심을 갖고 있다가 장애를 인식하고 장애계에 발을 들여논 사라. 국제 활동 분야에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
아침 식사를 하러 나가기 전 숙소로 배달 된 태국 일간지(Bangkok Post 6월3일자)를 접하게 되었다. 제1면 한쪽에 "Weight Discrimination"이라는 제목과 두 모녀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태국의 한 여고생이 간호학교(Mahidol University)입학 시험에 합격했지만 과체중 때문에 거절을 당했다가 사회문제가 늦게나마 입학 허가를 받게 된 내용이었다. 국제사회 인권 현실을 접하게 되는 두 번째 순간 이었다. 물론 당장 UNESCAP 건물 주위로 장애우들이 마음 놓고 다닐 수 없는 접근성의 문제는 둘째 치고 이날 이 소식은 아태지역 인권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사실 우리나라만 해도 체형별로 근무부서를 배정한다든지, 과체중은 면접 시 난색을 표하거나, 특히 개인 병원에서는 용모단정(?)하지 않으면 취업이 힘들다는 현실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지 않은가. 입학 허가를 받은 태국 모녀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남의 일이라 생각하기에는 우리 현실 또한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