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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특집]한국장애우 부모운동의 현주소(1)

장애우 부모운동의 어제와 오늘

본문

  장애아를 가진 부모들이 거리로 나왔다.
집에서 아이 문제 때문에 전전긍긍, 온전히 자신의 업보, 책임 탓으로 돌리던 부모들이
"장애 문제는 국가의 책임"이라며 1인 시위를 마다하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의 장애우 부모운동,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가.
「함께걸음」이 진단해 보았다.


<내 아이에서 우리 아이로>
"우리 아이에게 자꾸 특수학교로 가라고만 한다면, 차라리 장애우 나라도 만들어 달라. 그곳에서 살겠다. 대한민국이 아닌 장애우 국가가 있다면..."
절규에 가까운 한 어머니의 이 집회 연설은 막혀있는 그 무엇을 시원하게 뚫는 목소리였지만 너무나 가슴아픈 우리 장애아 교육의 현실을 말해주고 있다. 
지난 5월 23일 세종문화회관 뒤편에서는 통합교육보조인력 배치와 그에 따른 예산을 확보하라며 부모들이 거리로 나와 피켓을 들고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쳤다. 처음엔 낯설고 용기가 나지 않아 망설였지만 우리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뭔가가 있다는 것만으로 기쁘고 행복했단다. 몇몇 지역 혹은 소규모 모임을 통해 정보를 교류하고 마음을 나누던 이들이 "특수교육 보조인력 확보"라는 구체적 목표를 갖고 싸움을 시작한 지 1년이 넘었고, 이제 그들은 동지가 되었다. 자신의 아이가 유치원에서 거부당했다며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내기도 했다. 기존부터 있어 왔던 뿌리깊은 차별이라 "으레 그런 것"이라는 인식이 만연되어 있지만, 차별로 인식하여 시정요구까지 당당히 제기하고 있다.
아이의 장애를 인정하기도 어려웠고, 그래서 치료에 매달리고 집안에서만 전전긍긍하며 자기 아이만을 보던 모습을 이제는 찾을 수 없다. "내 아이"의 문제에서 "우리 아이"의 문제로 거듭나고 있었다.

<한국 장애우 부모운동, 출발점은 어디>
부모운동의 출발점을 어디에 두는가 하는 견해는 일치하지 않는다. 이렇다 할 문서로 정리된 바도 없으며 공론화 과정을 통해 합의되어진 바도 없다. 그러나 조직의 결성은 욕구와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의 의지의 표현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1968년 「한국정신박약아부모회」결성이 그 시초라 할 수 있다. 이 조직은 일본 등과의 국제교류를 중심으로 활동을 시작했지만 자녀들이 사망하거나 이민을 가면서 지속적인 활동을 갖지 못했지만 이후 「한국정신지체인애호협회」로 이어졌다.  또 그 시기 「약시어린이부모회」가 창립되어 우리나라 최초로 월계 초등학교에 약시학급이 개설되는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또 1977년 「뇌성마비복지회」 , 1986년 「한국장애인부모회」를 결성하게 되는데, 경증장애우도 특수학교에서 공부해야 하는 심각한 차별 상황을 인식하면서 장애영역별 로 분리하는 것보다 포괄적이고 힘있는 전체 부모회 조직의 필요성을 느껴 창립하게 되었다. 그러나 장애영역별 요구가 다양하여 애초 생각했던 것만큼의 힘이 모아지지 않아 우선 순위의 정책을 제대로 세워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래로부터의 요구를 모아내기보다 지도부의 로비가 주를 이루고 있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조직임에도 열정을 가진 부모들을 아우르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그후 이런 문제인식에서 「정신지체인전국부모연합회」, 「다운부모회」, 「한국뇌성마비장애인부모회」등이 결성되었으며, 지역 안에서 치료와 교육을 해결하고자 하는 부모모임도 차츰 증가하였다.

<부모운동은 발전하고 있는가>
80년대 후반 부모조직에 대해 논문을 썼던 유병주소장(서울시그룹홈지원센터소장)은 "초창기 부모들은 조직활동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내 문제 중심으로 발언했고, 그게 해결되면 끝이었다. 주도했던 사람들은 사회적 지위를 갖고 있는 명망가 중심이었으며, 또 경증의 지체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이었다. 때문에 중증이라 할 수 있는 정신지체나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부모들은 조직에서 얻을 수 있는 게 없다는 소외감과 패배감에 젖어 있었다"며 과거 부모조직이 가진 태생적 한계를 이야기한다.
정신지체인전국부모연합회의 김명실사무국장 또한 "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부모들이 모여 건의서를 만들고 서명을 받는 것은 대단한 활동이고 사건이었다. 그러나 기존 조직은 부모들의 자발적 행동에 대해서도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았다. 한 예로 자동차세 면제에서 정신지체인이 보행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제외되었을 때 몇몇 부모들이 열심히 서명을 받고 건의서를 쓴 적이 있다. 단체의 서명도 있으면 더 수월할 것 같아 정신지체인애호협회를 찾아갔는데, 그 때 돌아온 건 수치심뿐이었다. 쓸데없는 짓이라며 무시를 당했다. 그러다 또 어느 날 부모회의 회장이 국회의원 앞에서 쩔쩔매며 사정하다시피 봐달라고 하는 모습을 보았다. 저런 모습으로 계속 갈 수밖에 없다면 희망을 가질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서둘러 정신지체인 관련 조직을 만들었던 당시의 상황을 이야기한다.
아래로부터의 요구가 무시되고 몇몇에 의해 결정되어지는 구조와 활동방식에 대한 불신이 다른 부모조직의 설립을 부추긴 결과가 돼버렸다. 그러나 그들의 활동방식도 큰 역동성을 갖지는 못했다. 타 장애영역과 연대를 통해 장애계 전체의 발전을 위한 활동에도 참여했으나 그들의 힘을 보여주는 적극적 방식은 거의 없었다. 아이들 손을 잡고 거리로 나와 당당하게 주장하는 모습은 최근의 변화이다. 거리의 투쟁이 어느 정도의 선과를 가져올 지는 두고볼 문제이지만 이 때문에 한 선배활동가는 후배로부터 "선배들이 지금까지 한 것이 뭐가 있느냐"는 질책을 받아야 했다. 후배들의 활동이 바람직하고 힘이 된다고 생각해 온 그녀였지만 순간 눈물이 흐르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단다. 뭐 하나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그래도 그 당시의 상황에서는 최선을 다하려고 애썼다는 것이다. 세대간 갖고 있는 차이의 벽을 넘지 못하는 것일까.

<구체적 목표를 중심으로>
하지만 일각에서는 최근의 다양한 부모조직의 설립에 대해 걱정스런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물론 분명 과거보다는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너무 배타적이거나 자신들의 활동방식만 옳다고 선을 긋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우려다.
처지와 입장에서, 생애주기에 따라 필요한 부분이 다르기 때문에, 학교현장이나 조기교실, 치료실, 지역, 직업훈련현장, 복지관 등을 매개로 현안을 모색하는 것은 바람직하다는 평가지만, 모임이 친목회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욕구에 따라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젊은 부모일수록 권리의식은 높지만 구체적 연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며 참여는 없고 비판만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개별화, 소규모화 됨으로써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눈앞에 닥친 문제중심으로 해결하려는 모습은 이기적 모습으로 표출되기 쉽고, 지속성을 갖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가칭 장애인 참교육서울부모회 준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인용씨는 "지금까지 뚜렷한 목표점을 갖지 못한 채 전 생애에 걸친 포괄적 영역에서 모든 것을 아우른다는 활동방식은 성공하기 어렵다"며 △부모의 결속과 교류(연대.교육.상담) △교육권확보를 위한 사회적 활동 △정책활동을 표방하고 활동에 나섰다. 그는 "중증의 부모들이 생각하는 희망은 무엇인가"가 부모운동의 핵심이며 화두가 되어야 한다며 전국적인 이슈에 대응하고 가장 절박한 상황에 처해져 있는 부모들이 중심이 될 것을 주장했다. 그는 또 국가의 정책에 건의문 하나 올린 것으로 역할을 다했다고 판단했던 과거의 운동방식에서 벗어나 보다 전향적인 자세로 정치적 요구까지 가야 한다고 밝히며 진보적 장애인운동에 대한 철저한 고민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이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권위주의적 가부장제도 또한 부모운동의 걸림돌로 지적되고 있다. 부모모임이 어머니 중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장애를 갖고 있는 자식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남편, 다른 형제들을 주체로 참여하지 못하게 하고 자신이 다 알아서 하겠다. 내 문제니까 내가 총대를 매고 우리 식구 중 나 하나면 족하다는 생각을 많이 갖고 있었다. 가부장제도 속에서 여성, 어머니가 갖고 있는 인지도의 한계를 의미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아버지의 참여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이규철사무국장은 "어머니의 섬세함이 구체적인 정책을 생산하는데 도움이 되지만 아버지들의 참여로 규모있고 조직적인 모습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세대가 변함에 따라 여성, 남성의 일을 구분하지 않고, 또 인터넷의 발달로 쉽게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어 오프라인에서 직접 활동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관심을 점차 확대해 나갈 수 있는 틀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직장생활을 통해 다양한 사회적 통로를 확보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버지이기 때문에 오히려 조직활동에서 보다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 앞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아직도 머나먼 길>
모든 운동은 자기 문제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다. 일종의 속상함이 원인이 되어 출발한 자기 분노 표출이었다. 그러나 발현되는 모습에 있어서는 개인적 접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자신의 자녀가 장애를 갖고 있다는 것에 원죄의식을 갖고 있던 터라 사회적 책임을 당당히 묻고 요구하기 보다,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부모들끼리 위안을 삼고 정보를 공유하는 차원에서 그치고 말았다. 게다가 이들의 고민은 아이의 교육과 앞날에 대한 걱정 뿐 아니라 가족 구성원과의 관계, 부모 본인의 심적 부담 등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또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부모는 나이를 먹고 힘이 쇠약해지는 반면 자식의 문제는 지속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실로 장애 영역과 정도에 따라 발생되는 다양한 문제가 가도가도 끝이 없다는 절망감은 애초 시작 자체를 버겁게 한다. 그래서일까? 개별 단위조직들을 규합할 수 있는 새로운 조직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통합교육시민연대나 참교육부모회 등 새롭게 움틀대는 조직들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을 벌이는 것이 더 부담스럽고 바람직하지 않다며 부모회에 버금가는 거대 조직 건설은 당분간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규철사무국장(한국뇌성마비부모회) 역시 "큰 조직을 만들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힘은 회원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며, "재정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조직을 운영하기에 급급한 형태로 갈 수밖에 없다. 가장 시급하고 해결 가능한 지점에 대한 고민을 필두로 서로간에 네트워크를 구성, 연대활동을 하면 오히려 더 효율적인 운동이 될 것이다. 이것저것 모두 다 하겠다는 욕심보다는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열심히 투쟁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적절한 것 같다"며 중앙 중심의 운동, 거대조직의 필요성 등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2000년에 결성되어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한 조직과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듯한 눈길이 사실 많이 부담스럽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 장애우 부모들의 권리의식, 참여의식, 연대의식은 선진국의 70년대 수준이라는데...그 격차를 어떻게 좁혀나갈 수 있을까.

<그러나 길은 만들어 가는 것>
이미 어떤 길을 가고 있다면 길은 더 넓어지고 다져질 것이다. 그 뒤를 누군가가 다시 간다면 그 사람은 편안하고 행복한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다.
근래 부모들의 활동을 보면 눈물이 난다는 사람이 있다. 치열하면서도 소박하고 아름답단다. 비록 길게, 조직적인 전망을 갖고 있지 않다하더라도 지금 현재의 진지함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단다. 중앙중심, 체계적, 조직적, 위, 아래의 구조 이러한 것들이 과거의 운동 방식이었다면 현재는 위, 아래의 구분이 아닌 그물코처럼 얽히고 설켜 차이를 인정하며 가는 것이다. 과거의 조직과 현재 조직간의 이러한 차이를 극복하고, 자기에게 매몰되지 않고 숲을 볼 수 있는 힘과 지혜가 필요하다.


글 여준민기자

 

작성자여준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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