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복원과 생존권의 평행선 잇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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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항상 존재하던 것들은 눈길을 끌지 않는다. 골목에 늘어선 여러 가게들, 버스 정류장과 지하철역, 오가는 자동차, 시내의 빌딩 모두 그 자리에 그냥 있을 뿐이다. 아주 드물게 버스 정류장이 십여 미터 이동하면 신기한 양 눈에 띄고, 멀쩡한 건물을 재건축한다며 철거할 때서야 그 건물의 존재가 눈에 들어오는 게 우리의 일상이다. 그런데 건물 하나 정도가 아니라, 대도시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구조물이 사라진다면 어떤 느낌을 받게 될까. 특정 지역에 호화스러운 빌딩의 숲이 들어서는 것과는 다른 의미이다. 이건 막연한 남들의 얘기가 아니다. 우리의 일상이 당장 변화될 것을 요구당하는, 우리는 그런 시험대 같은 시점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 ▲복원과생존-청계고가 |
청계고가도로를 철거한다. 대한민국의 속칭 "서울공화국"에서 그만큼의 대규모로 벌어지는 공사가 없었던 까닭에, 열띤 토론이 계속되는 만큼 그 여진도 쉽게 잠들지 못하고 있다. 자연을 복원해야 한다는, 도시 계획상 반드시 철거해야 한다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을 만큼 위험한 상태라는 주장과 함께, 상권 붕괴로 인한 생존권 위협을 절대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교통대란에 대한 근본 대책도 없이 이렇게 밀어붙여선 안 된다는 각각의 의견들이 여기저기에서 우박처럼 쏟아진다.
1958년부터 1978년까지 복개공사를 거쳐 콘크리트로 덮여진 청계천, 그 습진 밑바닥에 다시 햇살이 찾아들 것 같다. 광교에서 청계9가 신답철교까지 5.86km의 고가도로가 철거되고, 2005년 12월까지 "꽃과 물고기가 있는 청계천, 그 꿈이 이루어집니다."라는 홍보성 플래카드 문장이 정말 현실화되어 우리 앞에 펼쳐진단다.
사실 얼마나 꿈결 같은 이야기인가. 북한산에서 남산을 거쳐 관악산으로 이어지는 숲의 생명길도 이어질 거라 한다. 맑은 개천에 우거진 숲, 새들의 지저귐과 뛰노는 아이들의 평화로운 정경, 말 그대로 살맛나는 도시가 곧 탄생한다는 것이다.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철거가 강행되는 분위기 속에 청계고가도로를 따라 시작부터 끝 부분까지 직접 걸어 보니, 정말 훌륭한 결정을 내렸다는 생각이 앞섰다. 우중충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말끔히 사라지고 뻥 뚫린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속 시원한 일인가. 더군다나 그늘지고 습진 이 거리의 이미지가 맑은 개천과 함께 휴식처로 탈바꿈한다니 얼마나 환상적인 일인가. 유럽의 관광도시에 익숙한 외국인들의 찬사가 잇따를 것이고,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대표적인 랜드마크(landmark·눈에 띄는 건축 및 구조물)로써의 이미지 개선도 확실해질 것이다.
안전성에서 최악의 낙제점을 받고 있다는 이 음침한 구조물을 걷어낸 세상을 자꾸만 상상해 본다. 무조건 신나는 일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구경시킬 게 별로 없는 서울 도심에서 이만한 낙원이 어디 있겠는가. 서울 시내뿐 아니라 수도권, 아니 지방에서도 맑은 개울과 숲의 천국을 체험하고 즐기려 몰려들 것이다. 너무너무 아름다운 시도라서 29개월의 불편함 정도는 꾹 참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런데…… ("그런데"라는 말 뒤에 말줄임표를 붙어야 하는 심정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혼자만의 우려가 아니기에, 미리 양해를 구해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29개월만 인내력 있게 참으면 다 아름답게 해결될까? 딱 29개월만 각자의 피해를 견디면 모두를 위한 세상이 펼쳐질까? 그런 당위성을 따르며 고개를 끄덕여야 할까?
개인적으로 많은 이들에게 계속 질문을 던져 봤지만, 청계고가도로 철거와 청계천 복원에 대해 무조건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았다. 대의(大義)를 위해선 소의(少義)를 접어야 한다니까, 일단 복원 공사가 잘 진행되기를 바라는 게 순리인 것 같다. 그런데도 결사반대를 부르짖는 이들이 적지 않다. 당장의 상권 붕괴와 생활권을 박탈당하는 이들이 적지 않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아니, 고건 시장 때는 멀쩡했던 고가도로가 왜 갑자기 이명박이한테는 붕괴 직전의 흉물이라는 거여? 이게 다 자기 사업하자는 거라고. 그거 알어? 이 고가도로 떼버리고 몽땅 새 건물로 지으면, 여기 살던 사람들이 돈을 벌 것 같어? 천만의 말씀! 다 가진 놈들이 또 챙겨 갖는 거여. 언제 서민들 위해서 판을 벌이는 거 봤어? 다 뻔한 얘기잖어!"
황학동 길에서 좌판을 펼치고 계신 어르신 한 분과 아주 어렵게 대화를 나누었다. 인터뷰를 요청해도 거의 대부분은 얼굴 가득 불쾌한 인상과 함께 손사래를 쳤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욕설마저 심심찮게 들려왔다. 그 동안 수많은 언론 취재가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기사나 방송이 나간 적 없다는 게 불만과 분노의 주된 이유라고 했다.
"젊은 것들이 이 거리의 의미를 알겠어? 청계천을 낙후지역이니 뭐니 싸잡아서 폄하하는데, 청계천이야말로 한국과 서울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곳이야. 우리나라가 이만큼 성장한 배경이 바로 청계천의 기술과 노동이었다는 걸 요즘 애들은 알 리가 없지. 암, 알 턱이 없을 거라고."
사실 청계천에 대한 기억은 30대 중반 이후, 아니면 40대 이상에게만 남겨질지도 모른다. 젊은 세대들은 청계천 양쪽 블록인 종로와 을지로에 몰려든다. 을지로마저도 명동에 가까워져야 그나마 젊은이들이 눈에 띈다. 청계로와 마찬가지로 을지로 역시 전문 특화된 상권이 길게 이어지고 있기에, 을지로1,2가와 시청 인근을 제외하면 청계로와 거의 비슷한 모습으로 비춰진다.
청계고가도로 철거가 서울시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일까를 헤아리는 데에 가장 간편한 방법은 그 고가도로가 어느 지역을 통과하고 있느냐를 살피는 일이다. 광화문 동아일보 사옥 앞부터 청계천이 복원되어 흐른다고 할 때, 고가도로의 시작점인 광교에서 삼일빌딩, 청계2가를 거쳐 세운상가가 위치한 청계3가에 이르면 벌써부터 교통대란의 여파가 어느 정도일지 우려부터 앞선다. 청계4가를 지나 광장시장, 청계5가를 지나 평화시장, 청계6가에 이르러 동대문운동장과 대형 쇼핑몰들의 불야성을 감안한다면, 서울시측의 교통대책에 실효성이 있을까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청계6가와 7가를 거쳐 철거되는 삼일아파트 단지의 공사까지 포함한다면, 도시의 중심부가 거의 마비 상태에 이르지 않을까 걱정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서울시와 정부의 고위 인사들은 한결 같이 "청계천 복원을 통해 승용차 운전에서 대중교통 이용으로 전환되는 획기적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는 속편한 얘기만 늘어놓는다. 대중교통이 왜 시민들에게 외면당했는지에 대한 반성도 없이, 무조건 승용차 운행을 줄이는 게 최우선이라는 논리이다. 물론 필요 이상의 자가 운전자들이 시내에 몰림으로써 교통난을 가중시키는 건 명백한 사실이지만, 일반 시민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다가도 왜 자동차 구입을 불가피하게 고민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질적인 상황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 경험이지만, 시내버스를 타고 약속시간을 맞춘 경우는 거의 없다. 지하철은 약속시간을 지켜 준다지만, 지하철 이용을 위해선 또 하나의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마을버스나 시내버스를 타고 몇 정류장을 거쳐야만 지하철 출입구에 도착하게 된다. 그 유기적 연계성은 언제나 교통 체증과 난폭 운전 등으로 인해 기피하고픈 대상이 된다. 그래서 꽉 막힌 길이라는 걸 알면서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기 승용차를 운전하며 거리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6만 5천 개에 이른다는 청계천 주변 상가들의 운명 또한 희망적이지 않다. 서울시장은 얼마 전 국무회의에서 복원 사업에 반발하는 상인의 숫자를 14개 상가 단체의 8천 명 정도이고, 이 가운데 30%가 강경한 입장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점포만 6만 5천 개에 이르는데, 반대하는 인원수가 8천 명 이내라는 계산은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하다. 거리에서 만난 대다수 상인들의 반응이 불만을 넘어 공격적이기까지 했는데, 겨우 8천 명만 반대한다는 건 도대체 누가 조사한 사항일까.
또한 공사 개시 후 2주 정도의 교통 상황을 모니터해서, 즉각적인 보완대책을 시행하겠다고 했다. 허나 2주 정도의 시행착오로 "즉각적인 보완대책"이 마련되고 실시될 정도의 시스템이었다면, 이미 오래 전부터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교통 문제는 말끔히 해결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떻게 2주 만에 해답이 나오고 해결된다고 장담하는 것인가.
더불어 공사가 시작된 이후에도 시민과 시민단체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어서, 언제든지 공사 진행을 수정 보완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고 한다. 29개월의 짧은 공사 자체가 미심쩍은데, 그 공사 과정에서도 수정 보완이 계속될 거란 의미인가? 조금 늦게 시작하더라도 제대로 된 설계와 충분하고 완전한 준비를 갖춰 대공사의 첫 삽을 뜨면 안 될 일인가?
얼마 전까지 29개월에 걸쳐 공사를 하고 2005년 12월에 완공하겠다고 했었는데, 어제 오늘의 신문을 보니 그 공기(工期)마저 3개월을 앞당겼다고 한다. 26개월이면 젊은 남성의 군 복무기간에 견줄 만한 기간이다. 그 기간 내에 5.86km의 지상 구조물을 뜯어내고, 땅을 파고, 제반 기초 공사를 하고, 21개로 발표된 교량과 생태 복원을 완성할 수 있을까? 청계천 양측의 건물 재시공과 도시 체계를 완비할 수 있을까? 더욱이 계천을 다시 만드는 단순 공사가 아닌, 문화재 복원의 임무까지 담당해야 할 이 대역사(大役事)가 단 26개월로 가능하다는 건 문외한의 상식으로도 이해되지 않는다. 이 또한 우리의 고질병인 "빨리빨리"를 통한 외견상의 성과로써 끝나는 건 아닌지 염려부터 앞선다는 것이다. "빨리빨리"는 또 다른 부실과 허점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원 사업은 수중조명을 갖춘 폭포공원이 있는 도시적 이미지, 동대문 인근의 패션 타운과 조화를 이루는 자연의 쉼터, 갈대와 물억새 등의 식물 군락을 형성해 자연을 강조하는 세 가지 특징으로 구간을 달리 해서 표현할 거라 한다. 하루에 9만 3천7백톤의 물이 흐르게 될 청계천은 앞으로 26개월 후가 되면 서울의 밤을 시원하게 만들고, 시민들의 휴식을 담당하게 될 중요한 자산으로 등장하게 될 거라 믿고 싶다.
하지만 끊임없는 우려감이 계속 이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개발독재시대의 상징인 청계고가도로가 지금에 이르러 흉물로 취급받듯이, 복원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될 이 공사가 30여 년 후에 어떻게 평가받을지 걱정이 앞서는 건 혼자만의 생각일까? 26개월의 짧은 공사로 역사의 복원이 과연 가능할까? 계속 보완 공사를 하겠다고 하지만, 그 또한 "빨리빨리"의 후유증으로 이어질 땜질 공사가 될 가능성은 없을까?
마흔을 앞둔 나이로 바라보는 청계천 복원 공사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함께 즐겼던 청계고가도로의 시원한 질주를 떠올리게 만든다. 나의 2세가 내 나이가 됐을 때, 그때의 청계천 또한 지금 거리에 걸려 있는 플래카드의 문구처럼 "꽃과 물고기가 있는 청계천, 그 꿈이 이루어집니다."라고 얘기될 수 있을지…… 개인적으로는 정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은 부분이다. 빨리 완성하는 게 나을지, 아니면 조금 미뤄지더라도 제대로 복원하는 게 나을지……. 수혜와 피해의 차이를 직접 생활로써 체험할 당사자는 바로 시민이자 국민들이기 때문이다.
- 글·사진 채지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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