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의 두 얼굴, 무엇이 진실인가
본문
지난 4월 25일 장애인라는 이유로 종신보험 가입을 거부한 보험사를 상대로 해당 장애인이 정신적 피해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은 보험제도상 그동안 장애인들이 받아온 수많은 차별의 첫 법적 대응이라는 점에서 시사 하는 바가 크다.
4월 25일 이후 각 일간지들은 해당 기사를 일제히 보도했다. 언론들은 특히 나름대로 민간보험사를 상대로 한 장애인의 국내 첫 소송이라는 점에 주목해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대부분 단순보도에 머물러 상세한 내용은 알 수 없었고 사건의 본질인 차별문제에 대한 심도 깊은 접근이 이루어지지 않은 점은 아쉬웠다. 보험 차별의 진실은 과연 뭘까, 그 내막을 들여다봤다.
지난 2월 17일에 국가인권위원회의 연구용역으로 법무법인 지평이 조사해서 발표한 ‘민간보험상의 장애인 차별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장애인 22.1%가 보험가입에 차별을 당한 경험이 있고 그 이유로 77.5%가 ‘장애’를 들었다. 또 장애를 이유로 보험계약을 해지 당한 경우도 15.4%에 이르렀다.
굳이 이런 통계를 내세우지 않더라도 장애인이 보험사로부터 가입을 거부당하는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이번 소송을 제기한 조병찬씨(29세, 장애인권익문제연구소 간사)는 “많은 장애인들이 보험가입에 있어 부당한 차별을 받고 있음에도 소송은 시간도 많이 걸리고 경제적 부담과 아울러 정신적 스트레스도 상당하기 때문에 그냥 참고 마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개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있지만 보험사가 장애인을 터부시하는 그릇된 관행을 사회에 알리고 민간보험제도상의 차별적 요소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고자 어렵게 소송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장애 때문에 가입거부, 모욕감 느껴
그가 처음 프루덴셜생명 보험모집인인 채모 씨를 만난 것은 작년 9월로 25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평소 유사시 위험을 대비하기 위한 보험 가입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던 그는 직장동료의 소개로 처음 채씨를 만났다. 이 날 채씨는 "프루덴셜의 종신보험은 약간의 비용투자로 어떤 사고에 대하여도 보장받을 수 있는 좋은 상품이며 고객의 상황을 고려해 선택의 다양성이 보장되는 맞춤형 상품이므로 지체장애 1급인 조씨에게 적절한 상품."이라고 설명하였다. 채씨의 권유로 고려 끝에 가입을 결정한 조씨는 바로 보험 계약서를 작성하였고 1회분 보험료 15만 8천원을 지급했다.
그리고 한 달 뒤, 정확히 보험에 가입한 뒤 30일 째 되는 날인 10월 25일 그는 뜻밖의 통지서를 받게 된다. 이름하여 ‘보험청약거절통지서’가 날아온 것. 이유는 간단했다. ‘의적거절’의료적 이유로 거절한다는 뜻이다.
통지서에는 의적거절이라는 단어 외에 가입 거절 이유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없었다. 처음 의적거절이라는 전혀 이해 할 수 없는 단어에 당황했던 그는 뒤늦게 채씨로부터 그의 장애가 보험계약 거절의 이유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병찬 씨는 뇌성마비 장애를 갖고 있다. 그러나 뇌성마비는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이 아니다. 그의 장애가 보험사고율을 높인다는, 혹은 수명을 단축시킨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 더군다나 가입당시 보험모집인인 채씨는 그가 장애를 갖고 있다는 것을 사전에 알고 있었고 특히 청약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최근 3개월 이내에 의사로부터 검사를 받았거나 그 결과 치료, 입원, 수술, 투약을 받은 사실이 있는지 ▷최근 5년이내에 의사로부터 진찰, 검사를 받고 그 결과 입원, 수술, 정밀검사를 받았거나 계속하여 7일 이상 치료 또는 30일 이상 투약받은 적이 있는지 ▷최근 5년 이내에 암, 백혈병, 고혈압, 협심증, 심근경색, 심장판막증, 간경화증과 같은 병명으로 의사로부터 진단을 받았거나 치료, 투약, 입원, 수술, 정밀검사를 받은 적이 있는 지를 물었고 이에 대해 조씨는 사실 그대로 그런 사실이 없다고 답변하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중소기업에서 웹마스터로 일하면서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던 조병찬씨. 고교시절 학생회장을 역임했고 대학에서는 학보사 기자로 활동하는 등 왕성한 활동력을 자부했던 그였기에 자신의 장애가 보험 가입의 ‘장해’가 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채씨로부터 자신의 장애가 문제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심한 모욕감마저 들었다고 한다.
장애인을 소비자로 인정하지 않는 보험사
프루덴셜 생명보험은 정말 조병찬씨가 생각하는 대로 그가 장애인이기 때문에 가입을 거절한 것일까?
사건과 관련해서 프루덴셜 측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으나 프루덴셜 측은“내부규정상 인터뷰 할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대신 타보험사 보험모집인인 서모씨에게 보험사 내부사정에 대한 통상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서씨에 따르면 각 보험사별로‘인수제한’과 ‘인수금지’라고 하여 가입자를 선별, 제한하는 내부매뉴얼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 인수제한ㆍ금지 항목에 장애의 종류, 경중에 관계없이 장애인은 어김없이 들어가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장애를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보험사고 발생률이 높을 것이다" 라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계약자유의 원칙’에 따라 보험사는 계약 체결 상대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으므로 보험가입자를 결정하는 최종 판단은 전적으로 회사에게 있으며 이는 법의 통제를 받는 사항이 아니라는 것이 서씨의 설명이다. 물론 금융감독원이나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의 규제를 받는 부분도 있지만 단순히 감독하는 것 이상의 기능은 없다는 것이 서 씨의 말이다.
그러나 법무법인 지평의 임성택 변호사(조병찬씨 소송대리인)는 “계약자유의 원칙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존중되어야할 원칙이나 전체사회의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는 범위 안에서 용인된다”면서 “누구와 계약을 체결할 것인지는 원칙적으로 자유의 영역에 속하지만 이 ‘자유’가 누군가의 평등권을 침해하는 형식이라면 분명한 제한을 가진다”고 말했다.
따라서 조병찬씨의 경우 프루덴셜 측이 장애인라는 이유로 가입을 거부한 것은 엄연한 차별행위이며 이는 헌법 및 장애인복지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평등권 및 차별금지 조항에 위반되는 불법행위임이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물론 프루덴셜 측은 장애인이기 때문에 가입을 거절한 것이 아니라 ‘의적거절’이라는 이유를 분명히 밝혔다. 이에 임변호사는 장애를 가진 이의 보험사고율이 더 높다는 아무런 의료적, 통계적 근거도 없고 자료도 없다면서 “프루덴셜측은 차별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합리적 이유와 근거를 제시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소송의 핵심은 조병찬씨의 장애가 보험사고와 어떤 상관관계가 있다, 혹은 없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냐가 관건으로 보인다. 그런데 장애와 보험사고의 상관관계에 신뢰할 수 있는 자료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생명보험협회의 한 관계자는 "장애와 보험사고의 상관관계에 대한, 즉 장애인의 사망률이 일반인보다 더 높거나 낮다는 혹은 비슷하다는 구체적인 통계가 없으며 또 없을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보험사는 궁극적으로 영리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기 때문에 장애인과 관련한 통계를 마련하기 위한 연구ㆍ조사는 시장성이 없다고 판단하여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자면 애초부터 보험사들은 장애인을 소비자로 인정하고 있지 않는다는 것이 된다. 시장성이 없는 장애인들은 소비자로서의 구성요건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장성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장애인의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차별하고 무시하는 행위가 정당화 될 수 있는가.
장애를 가지고 있으면 일단 가입 거부
사실, 보험사들이 뚜렷한 기준 없이 자의적 판단만으로 가입절차부터 장애인을 차별하는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를 시정하기 위해 금융감독원과 생명보험협회는 보험계약의 심사기준을 완하한 ‘장애인 공통계약 심사기준’을 마련해 2000년 9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과거 장해등급분류표상 인수가 금지되거나 제한되었던 71종의 장해항목 중 57개 항목이 ‘불가’에서 ‘정상’으로(그러나 9개 항목은 여전히 불가항목으로 남아 있어 지금까지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고쳐졌다.
또 장애인이 일반보험에 가입할 경우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가입조건 등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지만 그러나 조병찬씨의 경우와 같이 경제ㆍ사회 활동성에 아무런 지장이 없는데도 장애인의 보험가입이 거절되는 일이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보험사들이 ‘장애’의 개념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지 못하는 데 그 원인이 있다.
실제 보험가입이 거절되는 장애인들의 장애란 질병을 가진 진행성 장애라기보다는 재해 또는 원인미상에 의해 발생된 장애가 이미 고착화된 상태가 대부분이다. (장애인미래연대, ‘장애인 보험가입 차별제도 개선 건의안’, 2000)
이 고착화된 ‘장애’를 보험사는 진행성 ‘장애’의 개념과 구별하지 않고 생각하여 장애를 가지고 있다 하면 일단은 가입 제외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다시 조씨의 경우를 살펴보자. 그는 현재도 흔히 말하는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그의 장애가 노동활동을 하는데 있어서나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있어서 본인이 개인적으로 느끼는 불편함은 있을지언정 그것이 사회생활을 하는데 어떤 방해가 되지는 않는다. 생명보험협회가 마련한 인수기준 불가 항목에 그의 장애가 포함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또 조병찬씨가 가입하려던 보험상품인 종신보험은 고객의 상황에 따라 상품을 설계할 수 있는 ‘맞춤형 상품’으로 장애인라는 사정을 반영해(실제 계약 청약 당시에 보험모집인이 설명한 내용이다) 상품설계를 할 수 있었음에도 계약을 거절당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그렇듯이, 보험사도 무엇이 장애이고 무엇이 편견인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 그것이 차별인지 모르고 있다. 대다수의 장애인들은 청약심사를 거치기도 전에 보험모집인과의 면담 단계에서부터 가입을 거절당하기 일쑤다. 장애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과 무지는 보험모집 단계에서부터 이미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보험사의 두 얼굴, 어느 쪽이 진실일까
프루덴셜 측으로부터 어떠한 이야기도 들을 수 없어 답답해하던 중 기자는 반가운(?) 기사하나를 발견했다. 모 일간지에 실린 프루덴셜의 최석진 사장 인터뷰 기사를 발견한 것. 기사는 프루덴셜이 공익사업에 많은 돈과 역량을 투자하는 이유는 미국본사의 출발자체가 소외계층에 대한 사랑과 관심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면서 최 사장이 본업보다 공익사업에 더 관심을 쏟고 있다고 전한다. 최사장은 인터뷰 말미에서 “2∼3년 정도 더 현역에서 뛰고 난 뒤에는 진짜 사회봉사활동에 주력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건강하게 사회생활을 하고있는 사람을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보험 가입을 거부한 보험사, 그런데 소외계층을 위한 공익사업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하는 보험사... 이 두 보험사가 같은 회사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가?
기사의 진실성 여부를 떠나 또 하나 석연치 않은 점은 조병찬씨가 보험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는 기사가 처음 보도된 날로부터 불과 일주여 일이 지난 시점에, 다른 일간지들과는 달리 이 사건을 다루지 않은 신문사에 피고 측인 회사 사장의 인터뷰가 실렸다는 점이다. 그 내용도 사장 개인에 대한 인터뷰라기보다는 다분히 회사를 홍보하는 듯 한 내용으로 말이다. 이 시기의 절묘함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조씨는 처음 청약 거절 통지서를 받고 프루덴셜 측에게 수차례 거절이유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했지만 프루덴셜 측은 “회의중이다” “담당자가 자리에 없다”는 말만 되풀이 할 뿐 누구도 명확한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았다고 한다.
문제해결을 위해 장애인 관련 단체, 국가인권위원회 등 여러 곳을 수소문한 그는 국가위원회에 제소하거나 공정거래위에 신고하면 개인적인 문제는 해결 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는 아무런 도움이 못된다라고 판단,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소송에서 이기면 판례가 남아 본인과 유사한 상황에 처한 다른 장애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래서 그는 한국에서 장애인의 보험 가입을 거부한 보험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최초의 장애인라는 달갑지 않은 수식어를 갖게 되었다.
공적 사회보험이 부실한 한국사회에서 보험은 사람들에게 마지막 안전망이라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다. 장애인 역시 다른 사람들이 그렇듯이 보험가입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장애에 대한 보험사의 인식은 사회적 인식과 맞물려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장애와 보험사고에 대한 의학적 보고나 통계적 자료가 없다는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조병찬씨의 소송은 진행 중이다. 장애인들과 차별 없는 세상을 바라는 많은 사람들은 법원이 어떤 결론을 내릴지 지켜볼 것이다.“차별행위를 하면 반드시 책임을 져야한다는 선례를 남기고 싶다”는 조병찬 씨의 말이 바람에서 끝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