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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로또복권, 이대로는 안 된다

확률 제로(0)를 향한 환상 속의 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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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다. 헐값의 중고 경차를 몰고 있지만, 이젠 3,000cc짜리 새 차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최고 인기의 연예인 모씨가 타고 다닌다는 독일제 그 수입차 수준은 되어야 이 몸에 어울리겠지.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한 이후 더욱 빠듯했던 이따위 18평 아파트는 당장 떠나버리리라. 밤마다 주차 문제로 실랑이가 끊이지 않았던 이 더러운 동네는 아예 지나치지도 않을 것이다. 아주 특별한 고위층만 모신다는 강남의 어느 호화 고층아파트가 내일부터 나의 생활공간이 된다.
  경주나 제주도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사이판이나 방콕처럼 한국인이 들끓는 지역 아닌, 영화 속에서나 보던 유럽과 북미의 그 명소들을 모두 여행하는 거다. 최고급 호텔의 특실이라는 게 도대체 얼마나 멋진 곳인지 직접 드러누워 확인해 보자. 얘기로만 들었던 상어지느러미가 어떤 맛인지 배가 터지도록 먹어 보는 거다. 사발면에 뜨거운 물을 붓던 기억은 짜증뿐인 추억으로 남겨지겠지.
  연예인보다 훨씬 낫다는 강남 어디의 룸살롱 아가씨들은 모조리 내 품에 안겨 있을 것이다. 얼마나 예쁘고 늘씬하기에, 얼마나 화끈한 서비스가 제공되기에 두세 시간에 몇백만 원이나 한다는 건가. 이젠 그따위 액수에 연연하지 말고, 최고급 위스키에 특급 시설만 골라서 내 마음대로 아가씨들을 즐기는 거다.
  포장마차? 기름에 튀긴 안주뿐이던 호프집? 이젠 영원한 작별을 고한다. 시내버스 정류장? 그 또한 굿바이, 아듀, 사요나라다. 막차 놓칠까 허둥대며 뛰어가던 늦은 밤의 지하철역? 그따위 시설에 다신 찾아갈 일조차 없겠지.
  내 모든 스트레스의 주범이었던 A부장과 B차장, 그 녀석들의 얼굴은 더 이상 볼 일이 없을 것이다. 사표는 이미 내 마음속에 작성되어 있으니까 내일 당장 낸다. 아니, 그런 수고까지 할 필요가 없지. 전화 한 통으로 끝이다.
  여권 수속은 여행사에 맡기고, 하루 종일 백화점 쇼핑이나 해야겠다. 월급의 몇 배나 되던 그 시계를 사는 거다. 쇼윈도를 통해서만 봤던 그 구두를 사는 거다. 옷값은 무제한 지불할 수 있으니, 모든 걸 최고급으로 완전히 바꾼다. 나의 인생은 이렇게 대역전된 것이니까, 나의 운명은 앞으로 내 마음대로 만들고 꾸며가는 것이다…….

  누구의 얘기일까? 말 그대로 돈벼락을 맞은 사람일 게 분명한데, 실제로 이런 체험을 한 사람을 직접 만난 것인가? 아쉽게도 그건 아니다. 하지만 위의 내용은 너무나도 쉽게 주변에서 들은 바 있고, 지금도 들리고 있고, 줄어들 일없이 계속 접하게 될 것이다. 매주 토요일 저녁이 가까워질수록 무언가를 구입한 사람들이 똑같은, 아니면 거의 비슷한 상상 속에 빠져들어 있을 테니까 말이다.
  숫자 여섯 개의 마력은 대단하다. 수십 개도 아니고 여섯 개만 맞추면 된다. 그 정도는 거의 확률 백 퍼센트인 양 모두에게 환상적인 믿음을 준다. 당신이 그 주인공이라고 황홀하게 손짓을 한다. 모르는 척 지나칠 수가 없다. 될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토요일 저녁을 그냥 지나친다는 말인가. 
  6개 숫자를 모두 맞춘 1등의 당첨 확률은 8,145,060분의 1이다. 5개의 숫자와 보너스 숫자를 맞춘 2등은 1,357,510분의 1이라고 용지 뒷면에 적혀 있다. 산술적인 계산에서 매주 2,000원짜리 한 게임씩 꾸준히 구입한다면 8,145,060주 즉, 156,635년에 한번은 당첨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다섯 게임인 10,000원씩 매주 똑같이 승부를 건다면 앞으로 31,327년 안에 1등의 영예를 안을 가능성이 높다. 1등은 너무하고 2등 정도로 만족하겠다면 5,221년만 인내력 있게 매주 10,000원씩 투자하면 된다.
  그런데 그것도 완전히 정확한 건 아니다. 상대적인 확률이기에 누군가는 1등을 몇 번 할 수도 있고, 같은 번호가 몇 차례 당첨번호로 반복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매주 십만 원씩 투입한다면 3,133년 이내로, 백만 원씩 투자한다면 313년 이내로, 과감히 천만 원씩 몰입한다면 31년 이내로 1등의 영예를 누리리라 예상할 수 있다. 위의 수치로 결론을 내리자면, 산술적인 계산만으로도 그 확률의 가능성은 0, 다시 말해 제로인 셈이다.
  그런데도 열풍은 계속된다. 이름도 모를 누군가가 계속 1등에 당첨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누군가’도 분명히 6개의 숫자를 검은색 펜으로 기록했을 것이고, 모든 이들과 똑같이 매장에서 영수증을 받아들었을 테니까, 복권을 구입한 모든 이들의 당첨 가능성은 여전히 ‘된다.’와 ‘안 된다.’뿐인 50%가 되는 것이다. 이번 주가 아니면 다음 주에는 될 가능성을 믿는다. 번호가 어긋났을 뿐, 1등의 행운은 반드시 자기에게 다가오리라는 환상의 믿음으로 일 주일을 살게 된다.
  매주 구입한다는 이들이 주위에 꽤 많이 있기에 그들의 얘기를 자주 듣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5억에서 10억 정도까지는 구체적인 사용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몇 배에 해당되는 나머지 횡재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에 대해선 약속이나 한 듯이 고개를 젓는다. “글쎄……?”가 거의 모든 이들의 대답이다. 잠시의 고민 끝에 덧붙이는 반응은 막연하게 ‘어디에 얼마를 기부하고, 어느 단체를 얼마만큼 후원하겠다.’는 식이다. 감도 잡히지 않는 금액을 고깃덩이처럼 몇 조각의 덩어리로 대강 잘라 그 모든 액수를 처리하려 한다.
  그건 실제 필요한 액수 이상의 거품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한 명이 100을 갖는 것보다는 백 명이 1만큼 똑같이 나눌 수 있는 게 오히려 더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게임이 아닐까? 무조건 숨고 멀리 도피하며 자기가 아니라고 애써 부인해야 하는 당첨자들의 후일담을 듣노라면, 건전한 게임의 룰이 아님은 확실한 모양이다. 하긴 축하하기 이전에 떡고물부터 탐내는 게 우리의 솔직한 내면일 테니까,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도 주간뉴스처럼 모두의 귀에 들려올 게 뻔할지도 모를 일이다.
  서민들의 축제가 되어야 할 로또복권의 행진은 심각한 부작용을 낳으며 심리적 공황마저 만들고 있다. 단 한번의 승부에 몇천만 원을 투자했다는 어느 50대 남자에 대한 소식까지 들리는 걸 보니, 현재의 상태가 정상적인 게 아님은 분명하다. ‘되면 좋고 안 되도 그만.’이어야 하는데, ‘반드시 돼야 한다.’는 자기암시에 몰입해야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토요일 오후만 되면 불안해집니다. 구입하지 않고 저녁을 맞이한다는 건 거의 심장마비 상태가 되죠. 허황된 꿈에서 깨어나자고 일주일 내내 다짐하고 또 다짐하지만, 토요일 저녁이 가까워질수록 제 마음은 완전한 공황상태로 돌변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제가 될지도 모르잖아요. 추첨 시간이 임박할 때가 되면, 미친 사람처럼 지갑을 들고 뛰쳐나가서 몇만 원을 쓰고 들어옵니다. 차라리 그 돈으로 술이나 거나하게 마셨으면 나았을 것을…….”
  30대 후반의 나이로 조그만 기업체를 운영한다는 정 아무개 씨는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내내 술잔을 비우기에 바빴다. 이젠 길거리에서 동그란 모양의 네온사인 간판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린단다. 로또복권의 간판 모양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라며 또 한잔을 입에 털어 넣는다.
  “이건 확률이 제로인 도박입니다. 토요일 저녁 여덟 시 반이 넘을 즈음이면 당첨 확률이 거의 백 퍼센트에 가까워지는 환상에 빠졌다가, 십여 분 후에 지옥으로 떨어지는 체험을 반복하고 있는 겁니다. 아마도…… 그런 순간의 기분만 모아놓은 게 바로 종교에서 얘기하는 지옥이 아닐까요? 이젠 대안도 없이 죽고 싶을 뿐입니다.”
  그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이 글이 활자로 나올 때가 되면, 자신의 사업체가 부도를 맞게 될 확률이 백 퍼센트란다. 로또복권의 당첨 확률이 백 퍼센트여야 하는데, 정작 자기 사업의 부도 확률이 백 퍼센트라는 것이다. 안타깝고 아쉬운 얘기지만, 그저 들을 수밖에 없는 심정은 그와 함께 덩달아 숨막혀온다.
  “글쎄요……. 요즘은 계산도 제대로 안 되네요. 이천오백 정도 될 거예요.”
  최악의 취업난 속에서 취직을 준비해야 하는 젊은 여성들이 가장 부러워할 외국계 회사, 그 회사의 과장으로 ‘커리어 우먼’의 삶을 살고 있는 최 아무개 씨는 자신의 몸에 지닌 의상과 소품들을 하나씩 거론하며 말을 이었다.
  “제가 지닌 모든 건 당연히 전부 명품이에요. 제 위치에선 그 정도를 차려 입고 활동해야 하니까요. 그러다 보니 신용카드를 조금씩 쓰기 시작했고…… 후유, 그러다 보니 빚이 조금 많아졌네요. 하지만 로또가 한번 제대로 걸리면, 이 정도야 뭐 순식간에 해결될 일 아닌가요?”
  자신만만하던 그 목소리는 술자리가 길어질수록 자신의 카드 빚이 ‘오천’이라는 말에서 한숨으로 바뀌었다. 처음엔 이천오백이라 하더니, 현찰 빚만 오천만 원이라고 허탈하게 털어놓는 것이다.
  “한번에 갚아버리면 되잖아요. 그까짓 거…… 그 정도야 로또 한방 터지면 ‘‘에브리띵 오케이(Everything Okay)’ 아닌가요?”
  그녀는 매주 10만원씩 투자한단다. 그동안 총 190만원 정도를 로또에 썼는데, 그 흔한 만 원짜리 한번 된 적이 없다고 짜증을 낸다. 그러다가 이내 술에 취한 음성으로 넋두리가 이어진다. 취할수록 하나의 주제를 언급한다는 건, 그만큼 그 주제가 시급하고 인생 자체를 휘어잡는 상태라는 걸 의미한다. 이러다가 빚이 ‘억’ 단위로 올라갈지도 모르겠다는 쓴웃음 속에선 더 이상의 질문이 주저되게 만든다.
  하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부류가 존재한다.
  “저는 딱 두 게임만 합니다. 저의 딸 주민등록번호를 응용한 숫자를 가지고 매번 같은 용지로 계산을 하는 거죠.”
  서른 중반의 동갑내기 부부인 이 아무개 씨는 딸의 주민등록번호가 행운을 줄 거라며, 매주 사천 원씩만 로또복권을 구입한단다.
  “어차피 될 확률이 없는 거 아닙니까? 하지만 목돈이 생긴다면 하고 싶은 일이 있으니까, 버리는 셈치고 그 대열에 동참하는 거죠. 안 될 줄 아니까 즐거운 기대로 번호를 맞춰 봅니다. 미래를 계획하는 데 적지 않은 자극이 되죠. 저의 가족한테는 열심히 노력해서 우리의 노동으로 미래를 열어가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장치로 로또가 존재하는 겁니다. 대박이라고요? 그런 꿈은 빨리 접고 포기하세요. 저는 꿈도 꾸지 않습니다.”
  당첨자가 없어서 상금이 이월됐고, 400억 어쩌고의 ‘인생 대역전’에 대한 얘기가 또다시 들려온다. 이상과열에 대한 해결책을 발표하겠다던 정부의 입장이 뭔지를 이젠 기대하지도 않는 지금, ‘인생 대역전’을 꿈꾸던 이들에게 획기적인 뭔가가 주어질 세상이 과연 현실화 될 것인가?
  아쉽게도 대답은 노(No)일 뿐이다. 매번마다 주말에는 필연적으로 행운이 안길 거라는 그 믿음들 앞에 할 말 없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스포츠, 스크린, 섹스’로 대변되는 ‘3S 정책’에서 이젠 ‘대박’마저 추가되어야 할 것인가? 긴 세월 동안 5퍼센트의 기득권층을 위해 95퍼센트의 소시민들이 희생되어 왔는데, 허상의 대박놀음에 언제까지 국민 정서가 휘둘려야 한다는 것인가.
  선량한, 정직함을 간직한, 대박을 믿지도 않는 많은 이들이 주변 가까운 사람들의 환상 속 질주를 염려하고 있다. 정신적인 음주운전 같은 이 행렬을 치유할 방법은 없는 걸까? 복권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정부 기관들은 서민들의 부작용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인가? 오히려 조장하고 있다는 의혹에 대해 어떻게 해명하고 개선책을 마련할 것인가.
  ‘로또복권’의 광풍(狂風) - 이제는 정말로 가라앉혀야 한다. 당장의 현금이 부족한 소시민들은 차라리 그렇다고 치자. 그런 사회를 바라보며 성장하는 이 땅의 어린 희망들에게, 건전한 노력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논리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로또복권의 허상, 이쯤에서 정말 접어야 한다. 확률 제로(0)를 향한 질주는 결국 한 인간의 삶을 황폐한 제로 상태로 만들기 때문이다.  


- 글/사진 채지민 (소설가)

 

 


 

작성자채지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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